안녕하세요.
창작그룹 비기자입니다.
 
비기자는 최근 몇년간 장애 예술, 장애인 예술교육, 장애문화예술교육 과 관련하여
강의, 자문, 교육, 연구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웹진, 월간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비록 비기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주축이 되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국내에 소개된 자료가 많지 않기에
그동안 쓴 글 등을 모아 공유합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모두 몇가지 방법론을 제시,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확고하게 정리된 개념과 매뉴얼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활동을 계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비기자는
본 자료가 현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확장된 질문을 발생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련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경우
아래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대표 최선영
voslss@hanmail.net
010.8504.1077 
 
*2021년부터의 자료는 아래 홈페이지에 업로드합니다.
https://uugoorichoi.tistory.com
 
 
 
 
◈ 장애예술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파일) 공유
bigija.tistory.com/161

장애예술기획자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파일) 공유합니다

장애예술기획자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파일) 공유합니다. *책자 파일 다운받기 drive.google.com/file/d/1NlxiScQ6wI-CGoKsKnXo6deasmQn6aBj/view?usp=sharing 2020 장애예술기획자 양성과정_서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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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마치며 
bigija.tistory.com/189

2020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마치며

사단법인 로아트가 운영하는 대야미스튜디오에서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공간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대야미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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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 비 Let it be> 결과자료집 
bigija.tistory.com/181

2020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 결과자료집

2020년 충북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 비 Let it be> 결과자료집을 공유합니다.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 - 책임 프로젝트 매니저 / PM 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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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같이잇는가치" 발제문 <같이 좀 모르자>

bigija.tistory.com/167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2020 같이잇는가치" 발제문 <같이 좀 모르자>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2020 같이잇는가치"에 함께 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및 사전신청 : 소개 같이 잇는 가치 문화예술 오픈포럼 10.16.(금) 오후 5시 / 10.17.(토)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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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군포시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모임 아카데미 "스튜디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가" 
bigija.tistory.com/171

2020 군포시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모임 아카데미

"군포시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모임" 대표의원: 신금자, 연구의원: 장경민, 홍경호, 이우천 협력단체: 사단법인 로아트 "스튜디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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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
bigija.tistory.com/168

2020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

사단법인 로아트가 운영하는 대야미스튜디오에서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공간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대야미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창작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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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예술 매개 온라인 포럼_ 매개자의 자기질문 :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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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장애 예술 매개 온라인 포럼

2020 장애 예술 매개 온라인 포럼 매개자의 자기 질문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 수 있나?" ◎ 일시 : 2020. 9. 22. 2시 ◎ 참여방식 : 온라인 포럼 진행동안 실시간 채팅 참여를 통한 질의응답 및 의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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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자녀의 '예술하기'가 앞서나가기 전에 / 부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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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녀의 ‘예술하기’가 앞서나가기 전에

*본 글은 사단법인 로아트의 내부강의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장애인 자녀의 ‘예술하기’가 앞서나가기 전에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1. 나의 부모는 나의 ‘예술하기’를 사실상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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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강의] 장애문화예술교육 / 부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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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강의] 장애문화예술교육

2020년 6월에 '함께해서신나는문화예술협동조합 틈'에서 진행한 장애문화예술교육 관련 강의가 '틈teum' 유튜브 채널에 공유되었습니다. 1편_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www.youtube.com/watch?v=d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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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사전 간담회 발제문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올리는 일'
https://bigija.tistory.com/155

[발제문]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

*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사전 간담회를 위한 발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다른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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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2019 꿈틔움 예술창작소 1:1멘토링지원사업'  결과자료집 원고 : 해석의 근거, 참조의 흔적 
https://bigija.tistory.com/153

해석의 근거, 참조의 흔적

*본 원고는 서울시 '2019 꿈틔움 예술창작소 1:1멘토링지원사업' 결과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본 사업은 <장애인문화예술판>이 총괄 운영하였습니다. *예술창작소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장애청년(만19세이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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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장애인의 생활예술 활동지원 및 FA 역량 개발방안 연구
https://bigija.tistory.com/m/148

2019  장애인의 생활예술 활동지원 및 FA 역량 개발방안 연구보고서

비기자가 운영하는 '짓거리연구소' 이름으로 참여했던 서울문화재단의 [2019 장애인의 생활예술 활동지원 및 FA 역량 개발방안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서울시 생활문화 활성화 사업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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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충북문화재단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 프로젝트 <렛잇비:Let it be> 결과자료집 원고 :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https://bigija.tistory.com/151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본 원고는 충북문화재단의 '2019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프로젝트 <렛잇비 : Let it be>' 결과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첫날부터 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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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문화재단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 원고 :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https://bigija.tistory.com/138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에 실린 글입니다.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먼저 질문을 하고 싶다. A에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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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좌담회_장애예술 매개자 편
https://bigija.tistory.com/136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좌담회

일시:2019. 10. 27. 일. 오전 11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 참석: 성수연(배우), 신원정(다이애나밴드), 정소은(독립기획자),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진행:문영민(장애예술 연구자) 정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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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발제문]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https://bigija.tistory.com/135

[발제문]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공동체로 살아가기 2019.11.01. (금) 14:30~17:00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예술가(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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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연구 최종보고서 
http://www.i-eum.or.kr/u2/index.busan?contentId=29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

공지사항 korea disability arts & culture center 소통/참여 공지사항

www.i-eum.or.kr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본 연구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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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 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 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테마토크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magazine.sfac.or.kr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에 기고했습니다.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 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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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사례 소개를 위한 긴 서론 장애예술이라는 타이틀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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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도시놀이본부>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도시놀이본부>

비언어적인 놀이의 가능성 : <도시놀이본부> 프로그램을 마치며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인 청소년 10여 명 대부분은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기자는 이러한 상태를 문제로 전제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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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웹진 '이음' 좌담회 : 장애인 예술과 예술교육

 

웹진 '이음' 좌담회 : 장애인 예술과 예술교육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을 통해 '장애인 예술과 예술교육'에 대한 좌담회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좌담회 내용보기 : http://ieumzine.kr/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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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기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2019 경기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http://ggarte.ggcf.kr/?p=23 경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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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잠실창작스튜디오 <잠실,잠시> 오픈스튜디오 자료

 

2018 잠실창작스튜디오 <잠실,잠시> 오픈스튜디오 자료

2018년도에 비기자가 발제자로 참여했던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장애인 문화예술 창작공간' 관련 오픈테이블 자료를 공유합니다. 자료 정리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18 잠실창작스튜디오 <잠실,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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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2호_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 교류와 협력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2호_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 교류와 협력 장애 예술인 창작 역량 강화를 둘러싼 질문들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장애 예술이 장애인의 사회참여 또는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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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① 일본 야마나미 공방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① 일본 야마나미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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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② Swing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② S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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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③ 아틀리에 코나스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③ 아틀리에 코나스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③ 아틀리에 코나스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일본의 예술단체나 기관을 답사하며 사회문화예술교육 관련 조사를 한 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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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④ 코코룸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④ 코코룸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④ 코코룸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이렇게 운영이 어려워지는데 왜 이런 활동을 계속하려고 하나요?” 나에게 매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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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다름의 가치로 만나기> 프로젝트

 

2016 <다름의 가치로 만나기> 프로젝트

비기자는 2016년도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불가사의한 자율학습모임&프로젝트’ 지원사업에 프로젝트 팀으로 선정되어 '다름의 가치로 만나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장애문화예술교육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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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놀이창작물 제작 프로젝트 '다른 시간'

 

2015 놀이창작물 제작 프로젝트 '다른 시간'

2015 놀이창작물 제작 프로젝트 '다른 시간' (인천문화재단 '바로 그 지원' 지원사업 선정) 국내의 발달장애인법은 최근 제정되어 2015년 11월 21일부터 발의되었다. 그러나 법률은 물론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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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사전 간담회를 위한 발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바라본 하늘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다른 이름을 향하는 질문

 

‘장애예술’이라고 범주화된 개념 자체를 해체하거나 다른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강력한 정책용어와 사업명들이 매 순간 작동하고 있으며 에이블아트, 포용적예술, 아르브뤼, 아웃사이더 아트 등의 이름들은 시대에 따라 국내의 상황을 담지 못한채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 마련되어야 할 예술 영역에서 ‘장애예술’을 ‘장애예술’로만 도저히 호명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과 사례, 구체적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비평은 그 지점에서 필요하다. 새로운 이름의 등장이나 명명보다는, 존재했으나 인식되지 않았던 관점의 드러냄과 확장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근 정책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필요하다. 누가/무엇이 누구를/무엇을 포용/포함한다는 전제에 대한 질문도 요구된다. 이 용어를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국에서의 장애 창작자에 대한 인식과 국내의 그것이 갖는 교차지점이 과연 넓은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잡함의 화면

 

국내 장애인이 삶 안에서 경험하거나 마주해야 하는 교육, 복지, 문화 관련 이슈, 혹은 문제는 당연한 말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예술 이외의 영역에서 그것은 ‘복잡함’ 자체로 문제시되거나 장애운동에서 제거의 대상으로 놓인다. 그래서 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는 차별, 철폐, 가난, 부양, 의무, 책임, 보호, 인권 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것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관련성이 높기에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논의 안에 있다. 그러나 예술 영역에서는 그 ‘복잡함’을 복잡함 자체, 사회적 문제의 드러냄으로만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교육의 기회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얻을 수 없었던 장애 예술인의 작품은 교육적 차별을 드러내는 근거자료가 아니라 교육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장애 예술인도, 협력자, 지원기관, 보호자(가족)인 비장애인도 예술적 해석보다 앞서는 사회구조적 문제,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범하게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든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장애인은 주로 배려,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온 장애인에 대한 스스로의 관점도 성찰해야 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자연스러울 정도로 분리시켜온 사회구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예술 영역에서 집중할 수 있는 표현의 이유/이면, 표현된 표면, 그 표현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드러내는 무언가를 향해 멘토링과 비평이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멘토링과 비평이, 장애 예술인에게 따뜻한 다독임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장애인이 사용하는 재료와 표현언어에 대한 비장애인의 호기심1)을 넘어설 수 있다. 동시에 차가울 정도의 정확함(명료한 해석이 아닌 멘토, 비평가로서의 역할에의 충실함)이 서로의 활동 지속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감각과 장애특성을 가로지르는 개별성

 

한편,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정이나 결과물이 신체적 감각을 중심으로만 해석되거나 비평되는 것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에게 있어서 잘 보지 못함, 볼 수 없음, 혹은 다르게 볼 수 있음이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제, 청각장애인에게 있어서 잘 듣지 못함, 들을 수 없음, 혹은 다르게 들을 수 있음이 창작의 출발점일 것이라는 전제 등이 그러하다. 이것은 특정 장애유형이나 특성이 작품을 구성하는 대표적이거나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라고 보는 것인데 이것은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장애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복합장애나 넓은 장애 스팩트럼 등을 고려했을 때에도 장애특성을 중심으로 창작을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장애특성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창작자 스스로도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장애특성, 그것과 쉽게 연결되는 신체적 감각을 중심에 둔 접근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개별성, 개별적 삶이나 표현에 대한 촘촘한 층위들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매우 현실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간에도 소득수준, 사회적 지위, 생활환경, 교육수준 등에 따른 삶의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장애 예술인에 대한 비평의 언어들이 자칫 장애유형별 작품 특성 및 분석으로 재생산될 수 있음2)을 고려할 때,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창작자의 그 무언가를 개별화된 언어들로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각자의 흔들림으로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2007년부터 장애인과의 창작활동을 여러 현장에서 해왔다. 그러나 나의 관점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당연하게 설계되거나 인식되었던 사회, 예술, 창작, 개념의 전반을 성찰하거나 재배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작업실에 앉아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장애 예술인을 볼 때마다 오래전 특수학교에서 만났던 중증장애인이나 부모가 없는 장애아동을 떠올리며 예술에 대한 논의 이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우울한 환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내가 그 과정에서 정확해야만 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혹은 내 관점이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매 순간 (멘토링이든, 기획이든, 해석이든) 정확할 필요성이 동시에 마련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흔들릴 필요 없는 분명함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장애, 장애인, 장애예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평범성, 일반성으로 범주화된 영역에서 오랫동안 사고하고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그 영역을 만들고 범주화해온 언어들로부터 벗어나는 시도는 우리를 충분히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별로 논리적이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흔들리는 개인들이 장애예술과 관련한 언어를 마련하는 데에 장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기존 언어나 인식의 흐름으로부터 예속화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우리를 흔들 수 있는데 그것을 계속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장애예술에 대한 질문을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예술과 관련하여 정책은 흔들림 없는 새로운 이름과 비젼 정도를 원하지만 현장3)에는 확장된 담론과 흔들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언어들은 소수의 재능인으로서의 장애 예술인의 사회참여에만 기여하지 않아야 한다.4) 동시에 그 언어들이 장애예술 관련 사회적 성과나 의미를 작동시키는 간편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함의 표면을 미련하게 읽어내고 지지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공든 탑은 계속 무너진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우리의 삶과 창작은 그러하다. 그렇기에 튼튼한 탑을 쌓는 대신, 흔들리는 탑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다른 출발이 필요하다.

 

 

 

1) 호기심이 생길 때는 다른 나라의 장애 예술인의 창작물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한편으로 국가, 지역과 상관없이 비슷한 양상이나 표현기법이 발견되기도 한다.

(참고 : http://a-yamanami.jp)

 

2) 특히 이번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은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기획 사업으로 외부에 소개, 공유된다는 점에서 장애예술 관련 현장에 강력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다.

 

3) 창작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일상, 장애 관련 창작 및 기획활동의 시도, 장애 예술인을 지원하는 기관의 사업들, 장애예술 관련 사례를 통해 사회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개별화된 시도 등

 

4) "장애 예술인이 ‘창작이 활성화 되는 상태’를 작품발표의 기회 확대 및 전업예술가로서의 자리매김으로만 해석하지 않아야 창작의 지속을 위한 환경과 역량을 스스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복지제도가 안정화되어있지 않아 장애 예술인의 생계유지 및 사회참여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창작’ 자체, 혹은 ‘창작이 활성화되는 상태’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들이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예술활동 안에서 문제의식으로 작동되고 가시화될 때 장애예술의 의미도 국내 상황과 부합되는 독창적인 맥락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윤정 외, 2018,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연구”,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p.119)

*본 원고는 서울시 '2019 꿈틔움 예술창작소 1:1멘토링지원사업' 결과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본 사업은 <장애인문화예술판>이 총괄 운영하였습니다.

 

*예술창작소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장애청년(만19세이상에서 만29세이하)들의 창작역량을 강화하고 창작활동을 모색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전문가를 1:1로 매칭하는 사업입니다. 20명의 장애청년과 20명의 문화예술전문가가 멘티와 멘토가 되어 서로의 성장을 돕고 지원하는 관계맺음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멘토의 20%는 장애예술인이 참여했습니다.

 

*사업공고문 자세히보기 :

 

장애청년을 위한 꿈틔움 예술 창작소 1:1멘토링 지원사업 멘토 및 멘티 모집 공고

사업개요    사 업 명 : 장애청년을 위한 꿈틔움 예술 창작소    사업기간 : 선정 일부터 ~ 11월30일까지          지원자격 : *멘티 : 서울에 거주하는 만19세 이상, 만29세 이하의 장애청년 중 문화예술교육 및 활동에 경험이 있으면서 예술창작활동(연극, 무용, 영화, 미술, 음악)에 욕구가 있는 사람. (5월~11월까지의 창작활동에 성실히 참여 가능한 사람) *멘토 : 장애청년예술가 양성에 관심이 있는 전문예술인으로서 문화예술 활

www.artpan.net

 

*결과자료집 및 사업 관련 문의 : <장애인문화예술판> / 420pan@naver.com / 02-745-4208  

 

 

 

 

 

 

 

 

 

 

 

해석의 근거, 참조의 흔적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1.

경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 몇 개월간 스물다섯 번을 만난다는 것은 서로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을까. 멘토, 멘티로 참여한 40명의 인터뷰를 정리한 나는, 이들이 집중된 만남 안에서 타인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어떻게 발견해나가는지 들어보고자 했다. 사업공고문에 등장하는 ‘장애’ 혹은 ‘장애인’이라는 개념, 관념, 혹은 존재는 여러 만남 안에서 변하거나 사라지거나 도드라지기도 했는데 그 과정을 이끄는 각자의 생각들도 궁금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사업의 이야기를 기록, 정리했던 것은, ‘장애’에 집중되는 사업적 관점을 흐트러트리고자 했던 개인적인 의지와도 관련이 깊다. 나는 공동창작 혹은 멘토링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찾고 싶었다. 멘티의 장애특성에만 집중하지 않는 멘토의 관점, 각자의 개인성을 발견해나가는 창작활동,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자체로 해석 가능한 시간들. 이러한 것들이 사업 참여자, 실무자, 관찰자 그리고 제3자에게까지 공동의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장애유형의 사람에게는 어떤 멘토링 방식이 효과적인지 분석하기 위한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2.

실제로 인터뷰를 정리하고 중간워크숍 등에서 멘토들을 만나면서 멘토와 멘티의 만남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멘토의 예술관이다. 이 사업은 협업보다는 멘토링의 방식으로 창작자간 만남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멘토가 전반적인 흐름을 끌고 가거나 설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멘토가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창작자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멘토링 방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창작자의 주체적인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멘토는, 멘티의 평소 관심사에 기반을 두고 그가 표현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였다. 한편 창작자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멘토는, 멘티가 다양한 것을 배우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과정을 설계하였다. 물론 멘토들이 이러한 두 가지 방향으로만 나뉘어 멘토링을 했던 것은 아니나, 예술에 대한 각자의 상(想)을 토대로 멘티의 활동 방식을 고민하곤 했다. 이것은 멘토가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학습의 경험, 삶의 기억 등과도 연관되어 보였다.

 

두 번째, 멘티의 적극성이다. 몇몇 멘토들은 멘티가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사업이 전반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결국 멘티라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적 근거, 주제, 동기를 스스로 고민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멘토링이 자칫 멘토의 적극성, 전문성에 기대어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보다 먼저 멘티의 태도 혹은 관심사가 멘토링 전반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멘티가 자신이 원래 하던 것만 하는 경우는 그것을 적극적 태도로 해석해야 할지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멘티의 적극성을 받아들이거나, 반대로 파고드는 멘토의 또 다른 적극성이 요구되기도 했다.

 

세 번째, 1:1 만남의 구조적 특성이다. 많은 멘토, 멘티들이 1:1 만남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지만 활동 전반을 멘토가 끌고 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언급했다. 장애인 창작활동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것인지, 멘토링이나 예술교육에 대한 방법론을 더 알아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특히 멘티가 멘토의 제안이나 행동에 많은 부분 의지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멘토들의 고민이 가중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것은 개별 창작자들의 특성에 집중할 수 있는 1:1 멘토링의 장점과 달리 현실적으로 보완책이 필요한 부분으로 읽히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멘티가 다수 안에 묻어가기도 하고 여러 관계 안에서 자극을 받는 등의 기회가 필요해 보였다. 1:1 만남이 사업적 특성으로만 부각되지 않고 창작자들의 상황과 장르적 특성에 따라 변동 가능한 형식 중 일부로 기획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네 번째, 만남의 시기다. 사실 대부분의 멘토, 멘티들은 이번 사업을 통해 처음 관계를 형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장애유형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집중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서로에게 호기심이나 관심을 가지기 수월한 상황에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궁금함, 창작방식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멘토링 과정에 더욱 상호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미 오래전부터 1:1 만남을 이어온 멘토, 멘티의 경우는 호기심과는 다른 관심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사업을 앞으로도 이어질 만남 중 일부의 시간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한편, 사업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감한 멘토, 멘티의 경우, 어떻게 이번 만남을 의미 있게 마무리 지을지 고심하기도 했다. 결국, 만남 자체도 중요하지만, 각기 다른 만남의 시기가 멘토링의 에너지를 여러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창작의 확장 가능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뷰에서는 “멘티와의 만남이 멘토에게 어떤 영감이나 자극을 주는지” 공통적으로 질문을 했었다. 이것은, 멘토가 멘티만을 위해 기능하는 사람으로 전제되지 않기를 바라며 던진 질문이었다. 결국 멘토도 창작자,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멘토가 이 사업에서 본인의 창작에 대한 확장 가능성을 발견해야 스스로 참여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대부분의 멘토들이 각자 발견한 창작적 자극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멘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정작 멘토 본인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답변도 기억에 남는다. 예술적 행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결국 사람에 대한 내밀한 관심이 다른 창작을 발생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할 수 있었다.

 

 

3.

멘토, 멘티의 비언어적 교감의 순간들을 대화 안에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이 기록들이 장애를 빗겨 가거나 관통하는, 사람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로 읽히기를 바란다. 장애특성을 넘어서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개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 스펙트럼의 폭을 (분명하지 않은) 일반성, 정상성을 전제로 매우 좁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 사업을 매우 다양한 사람들간의 만남으로 전제한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더 보일까. 어긋나는 대화, 쉽게 전달되지 못하는 표현기법, 불쑥 튀어나온 솔직함, 변함없는 고집스러움도 만남의 일부로 해석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해석적 근거는 전문적인 자료도 논리적인 연구결과도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등장과 구체적인 대화들로 가능할 것이다.

 

여러 멘토들이 ‘내가 이렇게 멘토링을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 우리가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만나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도 불확실하지만 더듬어보려 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구체적인 참조가 되어 다음의 만남을 상상하게 하고 각자의 창작으로 뻗어 나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참조들은 결코 표준값을 마련하기 위해 기록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도 없이 개별화된 참조들은 ‘사람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미련한 근거들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법 대신 참조의 흔적을 남긴 멘토, 멘티의 대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효율적으로, 혹은 효과적으로 만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까지도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본 원고는 충북문화재단의 '2019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프로젝트 <렛잇비 : Let it be>' 결과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첫날부터 무거운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참여자들이 경험하거나 목격한 장애, 삶 속에서 포착되거나 흘러가는 예술, 슬프거나 답답한 심정, 각자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장애’와 서로가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장애’. 그것은 때론 첨예한 대화로 이어졌고 반복되기도 했다.

멘토인 나는 불안하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살아있는 감정과 표현들이 그 어떤 논의보다 흥미로웠다. 참여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발견했고 그것이 뒤섞이는 과정을 함께 해서 의미가 있었다. 때론 멘토링이 무의미한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는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추가하는 정도로 역할을 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보다 매회의 대화가 궁금했다. 이렇게 해서는 장애인 예술 매개자가 ‘양성’될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렛.잇.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미리 말해두자면, 사실 이것은 무엇을 가르치고 덧씌우고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 점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프로젝트 과정을 계획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버려 두며 함께 가보고자 했다. 설사, 누군가는 예술이나 사람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더라도. 멘토링은 부지런한 가이드가 아니라 재촉하지 않는 기다림, 빈틈을 비추는 질문 던지기일지 모르니까.

그리고 질문 던지기는 언제나 나를 포함한 참여자 모두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후에 현재까지 나에게 남아있는 질문은 ‘우리가 무엇과 무엇을 매개하려고 하는가’ 이다. 사업명에서 쉽게 답을 찾는다면 예술과 장애인을 매개하려는 것이겠지만 이건 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예술이 무엇인지 (여기저기에서 배우고 들었음에도) 여전히 모르겠고 장애인을 어떤 존재로 정의할지도 사회적, 인문학적,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논의를 프로젝트의 끝까지 계속 이어갔다. 오히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이 고민은 (다행히도) 더욱 커졌다. 그래서 예술도 궁금해지고 장애, 장애인도 불확실해졌다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다 우리가 예술과, ‘다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매개하려는 것은 아닐지 생각도 든다. 또한 장애인을 ‘사람’으로 전제해서 생각하는 데에 애써 여러 이유와 시간을 들여야 했던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게 된다.

 

 

 

문득, 우리는 장애인 이전에 ‘사람’, ‘나와 다른 사람’, ‘타인’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혹은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우리가 예술과 사람을 매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질문이 이어진다. 우리는 혹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가치나 의미를 타인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그래서 전달 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매개의 방식을 다양하게 상상하고 있었을까. 혹시 그것을 프로그램이나 사업, 봉사나 나눔으로만 한정한 것은 아닐까. ‘실천연구’의 방식도.

그렇다면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가 ‘사람’에 대해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가 ‘매개’의 방식도 결정짓게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내가 전제한 ‘예술’과 내가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개라면, 우리는 과연 이 매개의 중심에 있는 ‘나’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보았을까.

예술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나, 예술을 하는 나, 예술이 궁금한 나, 예술이 어려운 나, 예술이 친숙한 나, 예술이 삶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는 나, 예술과 삶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그리고,

장애인을 잘 돕는 나, 장애인을 잘 모르는 나, 장애인을 싫어하는 나,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은 나, 장애가 있는 나, 장애인을 만나보지 못한 나, 장애인이 익숙한 나, 장애인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느끼는 나...

우리는 그런 ‘나’를 얼마나 들여다보려고 했을까.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려 하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을 무엇과 매개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프로젝트 중반부터 내게 이런 질문들이 확장됐던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동시에 솔직해질까 말까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어떤 삶 속의 내가, 예술과 사람 사이의 ‘나’와 얼마나 자연스럽게 매개하게 되는지를 살피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장애인이라는 타자를 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에게는 결국 (쉽지 않더라도) 본인 스스로를 발견하고 만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실천연구’도 낯설고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나의 자발적 고민, 능동적 실천, 일상적 연결이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이 실천연구에 관심이 있는가, 내가 정말 이것을 하려고 하는가, 내가 스스로 이것을 고민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외면했다가도 다시 마주해야 했다. 게다가 멘토들은 그 만남, 혹은 매개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거 하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을 주로 했다.

이렇게 낯설고 미련한 멘토링, 혹은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장애인 예술 관련이라면 장애 유형별 교육 방법, 매개 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줘도 모자랄 것 같은데, 열심히 실천연구 계획서를 써온 사람에게 그 사람을 향하는 질문만 이어갔으니 참여자들은 대체 이게 무엇을 염두에 둔 매개인지 모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에게 ‘실천연구’는 나름의 구체적 의미로 해석되었다. 참여자 각자의 ‘삶’이 경험적 근거로 작동하는 연구. 스스로를 마주하려는 과정 없이 부지런히 실행만 하는 것과는 다른 실천. 매개의 방법을 상상하기 위해 각자의 삶의 흔적을 찾는 시간.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이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장애인과 예술에 대한 여러 강의가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 삶 속에 숨어있던 의미나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 연결고리였다. 강의 내용에 따라 나를 바꾸거나, 내 삶과 별개로 ‘장애인 예술 매개’라는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상황 안에 놓인다는 것을 자주 발견할 때, 누군가는 우선적으로 선하고 따뜻한 조력자가 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리는 사람에 대한 접근이 다양할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그것을 상상하는 데에는 각자의 삶이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스스로 마주할 용기도 필요하다. 실천은 그 용기를 드러내는 어떤 시작점일지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렛잇비’는 실천을 해보거나 망설이는 시간을 응원했다고 생각했다. 어서 빨리 실천하라며 재촉하지 않고 같이 더듬어나가보자고. 참여자들에게 이 방식이 좀 어색했더라도 고민의 기회로 작동되었기를 바란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히 명쾌할리 없으니까. 앞으로 우리가 예술과 사람을, 혹은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순간이 온다면, 너무 따뜻하지만은 않기를 기대하며, 끝까지 각자의 속도로 함께 해주신 참여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2019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프로젝트 <렛잇비 : Let it be> 자세히 보기

http://www.cbfc.or.kr/mobile/sub.php?menukey=115&mod=view&no=5265&search=Y&kwd=%EB%A0%9B%EC%9E%87%EB%B9%84

 

충북문화재단 모바일 > 재단소식 > 공지/공고

 

www.cbfc.or.kr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에 실린 글입니다.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먼저 질문을 하고 싶다.

A에서 설명하는 사람을 바탕으로 B에 제시된 교육대상을 연결할 수 있을까.

 

 

A

 

 

 

B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사람

지적장애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지 못한 사람

눈앞에 무언가를

또렷하게 볼 수 없는 사람

시각장애인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한 사람

익숙하지 않은 재료는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

청각장애인

잘하지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

5분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지체장애인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

칭찬이 꼭 필요한 사람

정신장애인

쉬고 싶은 사람

타인의 이야기에

길게 집중하기 힘든 사람

자폐성장애인

타인의 선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

뇌병변장애인

몸의 근육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우리는 큰 망설임 없이 A와 B를 연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유형화할 수 없음에 불편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유형별 특수성이 A에서 언급되지 않아서 망설일지도 모른다. 또는 A에서 언급된 부분이 꼭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A에 언급한 사람들은 내가 교육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다. 그 안에는 이번 장애아동예술교육 지원사업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A에서 장애 특성을 드러내지 않게 설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장애예술교육이 어떠한 관점으로 시도되고 있는지 되묻기 위한 설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예술교육이 주로 B에서 A로 접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B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관점, 방향성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관점으로만 사람을 바라보고 만나게 될 경우 다양한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A와 B의 위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금 더 쉽게 양쪽을 연결할 수 있을까.

물론 장애유형별 특성은 분명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을 구성하는 중심요소가 되지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예술교육 안에서 참여자 이전에 장애인이 된다. 우리가 장애 자체에 대해, 장애유형별 특성에 대해, 그 특성이 담아내지 못하는 개별성에 대해 잘 모름에도 말이다.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 혹은 개념은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 대한 반성적 의미로 획득된 사업적 용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업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개인들을 만나고 있는가. 그 다양함은 장애와 관련된 특수성이 아니라 사람마다의 개별성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본 지원사업의 전반을 참여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부족했던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이들은 표현이나 소통방식에 있어서 비장애인과 차이가 있기에 프로그램 진행과 관련해 준비하거나 고려해야 했던 장치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개별성은 몇 가지 장애 특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대부분의 예술강사, 기획자들이 “장애와 관계없이 그냥 아이들이에요. 별로 특별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예술교육에 대한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장애가 아니라 개별성에서부터. 이것은 장애 이해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을 전제하기도 한다. 그것은 첫째, ‘장애’에 대한 관념화된 요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 둘째, 특성별로 예측 가능한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고 예민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별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예술교육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쉽게 예측하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들의 개별화된 다양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 비장애를 떠나) 예술교육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얼마나 참여의 범위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위의 A,B 설정에서 우리의 관점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교육현장에서 B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A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장애와 관련한 예술교육을 사업적으로 기획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선으로, 후자의 경우는 교육현장을 어느 정도 만나면서 발견한 구체적인 강사나 기획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 관점은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단지, 우리가 사업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 어떤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예술교육, 혹은 어떤 현장을 만들기 때문에 두 관점의 균형을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순간에 어떤 관점을 더욱 고려해야 할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장애예술교육에서 B를 통해 A를 발견했든, 처음부터 A를 만났든, 다시 A를 B로 연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서는 B라는 필터 혹은 분류가 필요하지 않은데 우리는 B의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이고 차별화된 장애예술교육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정책적, 사업적 교육대상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틀이 교육현장에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애예술교육이 개별성과 유연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개별적 장애 특성에 따라 교육적 처세를 능숙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별성을 참여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열린 관점과 태도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장애유형별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따른 노하우가 있는 경력자만이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낯설 정도로 구체적인 개별성을 염두에 두고 존중하려는 유연한 사람들이 앞으로 장애예술교육의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로 살아가기

 

2019.11.01. (금) 14:30~17:00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예술가(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는 매우 소수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예술가를 정의하는 맥락과 범위가 변하고 있고 요즘은 더욱 ‘당신도 예술가, 모두가 예술가’라는 구호가 퍼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예술가는 더욱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그 자체로 유통에 용이한 상품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살아나가기 힘든 사회 덕분에 예술가는 소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나는 예술가는 아니다. 단지 예술프로젝트나 일반적인 작품 발표방식인 전시에 이따금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발제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내가 예술가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이 있는 기획자, 활동가에 가깝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나의 경험을 나누기에 좀 더 수월한 입장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예술가가,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덜 사회적이고, 즉흥적이고, 자기세계에 몰입하며, 집단적 활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캐릭터화된 예술가상에 대해 동의하거나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의 공동체가 특히 조직화, 집단화를 전제하는 경우에 더욱 예술가의 삶의 방식을 끌어안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창작을 하는 과정, 살아가는 방식이 공동체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하는 창작활동은 뚜렷한 하나의 목적을 향해 계획된 일을 해내는 것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단체나 조직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공동체의 경우는 (그것이 느슨하더라도) 운영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과정을 설계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살아가며, 해나가며 방향성을 찾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택하거나 전제한 목표와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그 질문 던지기 자체를 통해 참여 혹은 창작의 의미를 찾는다. 공동체를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전제할 경우, 예술가는 ‘우리가 공통적일 수 있는가’, ‘유사할 수 있는가’, 혹은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며 계속해서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고민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공동체와 결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태도, 혹은 삶의 방식이 공동체의 방해요소가 아닌 다양성의 일부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쉽지 않다. 보통의 현실 속에서 공동체는 예술가가 질문의 생산자가 아닌 예술적 경험의 생산자로 기능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긴 하지만 공동체가 바라는 예술적 경험을 기획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 나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편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활동은 예술가의 공동체 활동 사례로 온전히 소개될 수 없다. 나는 예술가적 삶에 관심은 있으나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으며 예술가라고 스스로 소개하기에도 실제 활동과 맞닿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서론이 매우 길었다. 이제부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공공예술프로젝트나 문화예술교육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10년 넘게 이곳저곳에서 만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보호감시 기관에 있는 청소년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매일 다리 밑에 나와 장기와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들, 경력단절이 된 여성들,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큰 청년들, 그리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 그중 장애인과 만나거나 함께 창작활동을 했던 시간이 다른 활동에 비해 많았는데 그것은 비영리예술단체 내에서의 활동이나 특수학교에서의 예술교육으로 설명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공동체의 대표적 유형으로 볼 수 있는) 단체 관련 활동을 넘어서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결국 모든 활동이 각각의 의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 외의 활동은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문제의식을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로 작동되기 때문에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장애와 관련된 활동을, 각각의 무게로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유형의 공동체, 그것들 간의 상호성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러 공동체와 연결된 나의 활동 범위

 

 

 위의 그림처럼 나는 여러 공동체에 관여하거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중에는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나는 오랜 시간 다양한 현장이나 사회적 현상을 마주하면서 오히려 이것들이 빈부 격차나 도시생활의 일반화, 불안사회 등과 같은 공통된 이슈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 삶에 대한 다층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여러 단체나 모임 혹은 일시적 공동체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내 주변 사람들, 혹은 구체적인 어떤 공동체의 일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활동 범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나의 예술적 경험이나 과정이 다른 삶과 연결될 때에는 이러한 활동 범위가 갖는 위치와 규모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예술 자체가 공동체나 구성원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어떤 가치나 의미를 중심으로 활동의 범위를 기획하고 만들어나가는 개인의 삶이, 그것과 연결된 타인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단지 예술적 경험이 그 활동 범위에서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예술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서 그 현상을 해석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이 장르로서의 예술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이것은 미술이나 문학, 연극, 음악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넘어서는 관점을 필요로 한다. 내가 어떤 공동체에 ‘가서’, 혹은 어떤 자리에 ‘참석해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무언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삶이 불안정하고 이따금 오락가락한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이기에 타인이나 사회와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공동체를 포함한 여러 현장에서 예술적 행위를 시도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좀 더 흥미롭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기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나 예술을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 개인적 활동 범위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예술가는, 혹은 나와 같은 또 다른 기획자나 활동가는 저마다의 활동 범위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스스로 범주화해나가는 맥락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활동 범위가 어느 정도 겹치는 사람, 혹은 동료들을 알고 있다. 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편안한 일시적 공동체가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서로의 적극성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슷한 순간에, 같은 장소에 가서 각자의 방향성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힘을 준다. 나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거나 내가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비슷한 고민을 놓지 않고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서 삶에 대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은 (나와는 다른)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 (오로지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나는 이들의 활동 범위가 갖는 의미, 그 안에서 발생되는 힘이 예술적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긴다. 동시에 예술 자체가 공동체나 삶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인 설정 같기도 하고 예술이 발생되는 전반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떤 실천들이 타인에게도 의미나 가치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본다.

 

여러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겹치는 양상

 

 

 

2019년 10월 5일 활동범위가 겹치는 사람들과 대학로에서 만나 일시적 공동체를 이뤘다.

장애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퍼레이드를 하였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말하는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을 외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퍼레이드 진진진 :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말하기를 예술의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프로젝트)

*사진 출처 : 퍼레이드 진진진 페이스북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술의 힘 이전에 사람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힘은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하고 낯설음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은 마냥 긍정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치유든 자극이든 낯설음이든 시기적절한 슬픔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그 양상이나 파급력도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효율성이나 성과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예술의 이러한 속성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재의 사회적 흐름과 다른 방향성을 띄기 때문이며 그래서 다수를 설득하기에는 힘들지만 그 자체로 방향전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능과 쓸모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증명해야 하는 사회는 빠른 속도와 효율적인 생산성을 추구하지만 예술은 쓸모를 알 수 없는 질문, 속도를 늦추는 실험을 지속한다. 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예술은 그런 측면에서 관계적 미학,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특히 현실적 운영이 필요한 공동체에서 이러한 예술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예술이 어떻게 기능할지보다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어떤 역할을 예술가가 해내는 것은 예술적 삶의 방식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가가 예술적 효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기능인으로 인식될 경우 예술가로서의 개인적 삶 자체를 존중받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와 예술의 관계성에 대한 논의는, 예술이 공동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넘어, 예술가의 삶 혹은 예술적 삶의 방식이 공동체와 공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다른 속성, 지향점, 삶의 방식을 존중하거나 학습하려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는 예술가가 얼마나 특이하거나 덜 사회적인지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 것, 공동체가 예술가라는 개인에게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지 살피는 것, 다양한 양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공동체도 결국 ‘함께 살아나가려는 구체적 의지’로 읽힌다. 그런데 예술도 다르지 않다. (개인의 정치를 해내기 위한 창작 행위나 결과물은 적어도 나에겐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예술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원을 마련하고 방법을 설계하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관점이나 의미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삶에서 효율적 기능을 해내는 것 안에 예술 같은 것이 감지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요소가 들어간 어떤 방법론 혹은 콘텐츠일 것이다. 그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을 때 예술과 함께 살아나가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예술가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을 예술가로 인식하고 존중해주신 분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2012년부터 4년간 함께 했던 (여러 공동체 중 하나인) 비영리예술단체에서의 활동을, 장애인 창작자의 부모가 최근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예술은 장애와 관련된 현실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으나 타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참 미련하고 답답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러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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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예술가는 이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꼭 갖추어야 할 것이라며 부러워하였고, 일군의 그들은 지금까지 장애라 써 놓은 것을 미덕이라 읽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그(장애인 창작자)의 세계에 첨벙 뛰어들 수는 없다. 그저 그의 세계를 기웃거리고, 그의 주변을 서성이며 불현듯 조우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들의 예술 세계와 그의 미덕 있는 세계가 크로스오버 되는 어느 지점을 찾아 헤매며 우주를 유영하는 막막함. 이 두 아웃사이더 그룹의 만남은 그래서 좀 뿌옇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들은 만나기나 할까? 만난다면 불꽃이 튀기는 튈까? 어느 세월에? 처음엔 그랬다. 처음에는.

아마도 내가 생각한 예술은 영감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고, 모두가 우러러 마지않는 걸작을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 생각은 그 예술가들을 만나서 같이 기웃거리고 서성이고 대화하면서 바뀌어 갔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고 아니 조급증을 낼 무슨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파크 따위 안 터지면 뭐 어떤가? 설사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계속 유영만 한대도 저기 어딘가에는 나처럼 우주를 떠다니는 유목민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너도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일 따름이라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고방식과 태도. 예술은 걸작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예술의 껍데기라는 것. 예술의 알맹이는 지금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 이 태도를 나는 중년이 되어 어린 예술가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2019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5호

[젊은 예술가의 태도가 일깨운 삶에 관하여 “재미를 보기에 희망을 가진다”]

고혜실 로사이드 정진호 창작자 어머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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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에서 부스 운영을 통해

장애인의 표현을 활성화하기 위해 연구, 제작한 표현도구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도구들은 2018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를 통해 제작하였습니다.

 

*연구 보고서 보러가기 : https://bigija.tistory.com/96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본 연구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

bigija.tistory.com

 

 

 

 

 

 

 

 

 

 

 

 

 

 

관계셈판

 

 

 

 

발달장애인법 보드게임

 

 

 

 

 

 그리기와 소리 (신원정 제작)

 

 

 

 

그림카드

 

 

 

 

빛그림판 (띠리리제작소 제작)

 

 

 

 

이야기모양자 (릴리쿰 제작)

 

 

 

 

촉감촉감블록

 

 

 

 

본 포럼은 서울문화재단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포럼에서 부스 외에 발제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포럼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보러가기 : https://bigija.tistory.com/120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사례 소개를 위한 긴 서론 장애예술이라는 타이틀은 그..

bigija.tistory.com

 

 

장애인의 창작활동과 관련한 비기자의 연구내용 및 표현도구를 소개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https://bigija.tistory.com/96 

2018년도에 비기자가 발제자로 참여했던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장애인 문화예술 창작공간' 관련 오픈테이블 자료를 공유합니다.

자료 정리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18 잠실창작스튜디오 <잠실,잠시> 오픈스튜디오의 라운드테이블 「우리가 바라는 장애인 문화예술 창작공간」 및 브런치토크「장애정체성과 예술」 발제 내용(온라인 배포용)

 

https://adobe.ly/2tOqNEH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① 일본 야마나미 공방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여기가 누구나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아틀리에입니다.”

 

13평짜리 작은 공간의 한 쪽에 놓인 책상을 가리키며 일본인 스태프가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학교 교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작은 책상이 아틀리에라니.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사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책상의 의미를 설명하던 스태프와 그 공간의 느낌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것은 2008년 방문했던 요코하마의 공간 ‘아트 랩 오바(Art Lab Ova)’에 대한 이야기다. 이곳은 199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비영리그룹으로 ‘13평의 아트센터’라고 불리며 장애인, 홈리스,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최근까지 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관련 현장을 답사하며 연구해오고 있는 나는, 일본의 쾌적하고 거대한 아트센터보다 그 13평의 공간을 기억하게 된 맥락을 이번 연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 이전에 누군가의 태도를 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사회 혹은 사회적인 것과 연결되고자 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 사례들이 사람에 대한 관심과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특히 장애예술과 관련한 일본의 사례를 연구해오긴 했으나 그것은 다양한 감각과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의 활동으로 의미가 깊다. 그래서 앞으로의 글에서 장애에 대한 언급이 많겠지만 그것은 ‘다양한 존재’에 대한 맥락으로 읽히기를 기대한다. 또한 국내와 일본의 복지제도1), 문화정책, 교육, 역사적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우리가 함께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은 사례 속 내용 이전에 철학이나 방향성일 것이다.

 

시가현에 위치한 ‘야마나미 공방’(이하 공방)은 1986년에 '산맥 공동 작업소'로 시작되었고 2008년도에 사회복지법인 산맥위원회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즉, 이곳은 예술 관련 단체가 아니라 장애인복지시설이며 현재 79명의 장애인(이용자)과 22명의 스태프가 있다. 그래서 수급자 증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 주요 이용자이며 이들은 일상적인 활동 외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창작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장애인이 여러 표현활동을 통해서 마음이 넉넉하게 성장하는 것,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방은 평일 오전 8시 45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하며, 장애인이 활동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45분이다. 이러한 운영형태로 보았을 때에는 국내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나 보호작업장과 비슷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 오는 장애인들은 아틀리에에서 매일 창작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 또는 운동을 하고 노래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가운데 각자의 속도와 의욕에 맞게 생활하고 있다. 공방의 운영자는 장애인이 만들거나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끌어내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흐름과 공간을 개개인에 맞게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같은 개개인의 생각과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있다2).

이런 맥락으로 아래와 같은 5가지의 그룹 활동이 공방에서 이루어진다.

 

1) Atelier : 코로봇쿠루 점토와 회화를 중심으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는 일을 살린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한다. 여러 가지 경험을 쌓기 때문에, 조리 실습이나 외출 행사 등도 한다.

2) Studio : 코튼 자수와 회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자 만들기와 요리 실습에도 매월 노력한다.

3) 프렌댐 : 기계 아키라 훈련을 중심으로 체력 만들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다른 그림과 취향을 살린 제품 제작에 임한다.

4) 모락 모락 :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창작 활동을 중심으로 공공시설 등의 유지 보수 작업도 실시한다.

5) 타이어 : 차를 타고 지역을 떠나 폐지 회수나 페트병 뚜껑 회수를 실시한다. 또한 점토와 회화 작업, 과자 만들기 작업에도 노력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최소한의 형식을 갖춘 프로그램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그들의 표현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원래 시설을 아트화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시설에서 아트를 도입하겠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자발성을 존중해서 풍부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들의 혼네(진짜 속마음)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만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태도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여러 표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희망의 모양이다. “지금 저 분이 뭘 하고 싶을까?” “오늘 어떻게 지내고 싶은 걸까?” 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미 하고 싶은 것이 있을 텐데, 그것에 반하는 것을 스텝들이 시키면 안 된다. 스태프의 입장이 그들보다 더 위에 있다고 인식시키는 관계라면, 그들의 진짜 마음이 보이지 않게 된다. 자기표현의 의욕도 닫혀버리게 된다3).”

 

“알기 쉬운 그림과 도예만이 작품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에도 그 사람만의 것, 유일무이하게 빛나는 것이 있다. 표현활동이라는 것은 누구의 왜곡 없이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야마나미 공방’의 전체 이용자에게는 각자의 표현이 존재한다. 그들의 표현은 여러 가지다. 하루 종일 어떤 특정한 일을 계속 하는 사람도 있고, 특정한 말을 계속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종이를 계속 찢는 것이나,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표현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대다수는 일상의 행위나 표현이 아트인지 아닌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인 가치나 칭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모두 자신만을 위한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나 개념을 가지고 그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독특한 발상과 가치관의 곁에서 그 행위나 표현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책임이 아닐까 싶다. 틀려도 그들의 행위나 표현에 손대거나 말 걸거나, 자신의 가치를 강요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닌 것임은 명확하다. 이용자 모두는 각자의 풍부한 표현과 가능성이 있다. 그들의 표현이 사회 속에서 예술로 평가되는지 아닌지, 비싼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자기의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 그들 자신의 목적과 관계가 없는 가치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표현에 대한 존중이 있는가 없는가가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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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미 공방의 장애예술인 작품 (출처 : 야마나미 공방 홈페이지)

 

이곳이 예술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님에도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작품은 국제적인 전시를 통해 활발하게 외부에 소개되고 있다.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 이곳 장애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전시만 13개이다. 이들의 작품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 개별 표현 언어를 다양하게 취하고 있으며 재료나 표현방식, 시각적 완성도에서 예술성도 돋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이곳에 예술 관련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예술적인 교육을 하기 보다는 장애인이 본래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창작이 자연스럽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야마나미 공방’의 이용자 중에는 원래 표현활동을 특별하게 잘해왔던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곳에 와서 표현활동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방 관계자들은 일상에서 그림 그리는 도구나 바느질 도구, 점토 등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재를 충분하게 준비해둘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소재를 쓸지, 쓰지 않을지 어떻게 쓸 건지 모두 장애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활용한다. 공방의 대표는 이러한 맥락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지금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나오는 이유는 대단한 지도(가르침)가 있어서는 아니다. 설비가 좋아서도 아니다. 아티스트 서로와, 그리고 아티스트와 우리들의 강한 신뢰 관계가 생기고 외로워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공간이 있어서이다.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은 서로의 존재나 표현에 영향을 받고 자신 안을 돌아보고 그것이 상승효과를 내어 많은 작품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표현활동의 현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은 단 하나, 신뢰 관계이다. 아티스트와 스태프, 그리고 아티스트 서로가 어느 한쪽이 우위에 서지 않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개인의 빛이 열려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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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 카즈미의 작품 (출처 : 야마나미 공방 홈페이지)

 

 

사람들 간의 신뢰 관계가 쌓이고 각자 외로워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 그 장소의 가치를 채우는 것은 시설이나 규모가 아니라 그 장소를 만들고 지속하려는 사람들의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문득, 그가 말하는 ‘장소’가 내가 10년 전 ‘아트 랩 오바’에서 마주했던 작은 책상과 오버랩되었다. 장소는 어쩌면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작거나 혹은 클 수도 있는 ‘자리’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안에서 사실은 모두의 자리가 고려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그 자리의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떠올려볼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자신의 존재 자체로 편안할 수 있는 자리, 혹은 장소. ‘아트 랩 오바’에서 보았던 자리와 ‘야마나미 공방’을 통해 떠올린 자리는 그래서 다른 듯 닮아있었다.

 

그동안 나는 사회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일본의 현지 조사에서 여러 형태의 자리이자 장소를 발견했고 동시에 그 의미를 강조하는 운영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어떤 교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그것의 성과는 무엇이다, 예술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장소에 오는 사람들이 편안해야 한다, 존중받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고 했다. 문화예술은 단지 그런 장소를 만들기 위한 매개체 혹은 촉매제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관련 사례가, 어떤 예술 활동을 독립된 장르로 성장시키는 것보다 예술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표현활동 및 사회참여를 모색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런 측면에서 시민운동과도 연결되어 보였다. 이것은 내가 예술이나 예술교육과 관련해서 일본의 단체나 기관을 방문했을 때 오히려 예술 외의 다른 맥락을 발견했던 것과도 연관이 깊다. 어떤 경우에 단체의 대표는 (심지어 그가 예술가인 경우에도) “예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은, 역시나 예술가인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하나의 의미나 방향성으로 고정시킬 수 없는 예술을 왜 우선순위로 두고 교육해야할까. 예술이나 예술교육이 사람에게 중요할 수 있는 맥락은 무엇일까.”

 

그런 측면에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은 사회에서 자꾸 튕겨져 나가는 가치나 생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또 다른 모색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끝이 가리키는 책상을 바라보기보다 그 책상을 ‘장소’로 만들어나가는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1) 예를 들어 장애인 연금의 경우, 장애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국내는 월 23-30만원, 일본은 60-160만원이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등 큰 차이가 있다.

2) 야마나미 공방 홈페이지 (http://a-yamanami.jp)

3) 2016 발제문 “Self-Taught가 태어나는 아틀리에의 일상에서부터야마시타 마사토(야마나미 공방 시설장), ソーシャルアート:障害のあるとアートで社会える, 学芸出版社

4) 2016 발제문 “Self-Taught가 태어나는 아틀리에의 일상에서부터야마시타 마사토(야마나미 공방 시설장), ソーシャルアート:障害のあるとアートで社会える, 学芸出版社

 

 

 

관련 연구

본 연구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이다. 

 

관련 링크

*‘아트 랩 오바’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artlabova

*‘야마나미 공방’ 홈페이지 : http://a-yamanami.jp

 

 

 

 

*웹진 보러가기 : http://www.wasuwon.net/129293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② Swing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Swing>은 흔든다는 것이다. 흔든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며 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변화를 위해서는 아웃당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한 상태나 공간에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약간 위험한 것이 좋다.

하지만 너무 벗어나면 잡혀간다.

약간 벗어나는 것을 하면서 그 범위를 조금씩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Swing>의 대표 키노토 마사유키(이하 마사유키)는 <Swing>의 의미를 어렵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설명했다. 잡혀가지 않을 정도로만 약간 위험하게 무언가를 흔들며 변화를 모색하는 것. 이것은 예술이자 교육이자 운동(movement, campaign)일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예술, 교육, 운동을 설명하는 말들과는 차이를 두지만 그것의 의미와 충분히 연결이 되는 그 소개말이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관심, 흥미, 심지어 재미까지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을 <Swing> 공간 곳곳에서, 그리고 활동내용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타인의 관심이나 참여를 다각도로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는 지점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떤 장소를 만들고 있을까? ‘무언가를 흔든다’는 운영철학이 어떤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교토에 위치한 <Swing>은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비영리법인단체로 2006년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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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법인 <Swing> 간판


이곳은 예술단체가 아니라 장애인종합지원법에 따른 장애인 복지서비스사업을 하는 시민단체이다. 그래서 운영 면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상근직원이 8명 있고, 이 중 창작관련 전문 인력(전공자)은 3명이다.

이곳의 운영철학은 ‘Enjoy! Open !! Swing !!!’이다. 그래서 활동내용이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경향이 많다. 다음은 대표 마사유키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 <Swing>의 대표적인 활동 내용이다.



 shiki(박스) olioli(접기접기) : 박스 접기는 전국의 다양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하고 있는 주요업무 중 하나인데 <Swing> 역시 공식적인 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Swing>에서는 이런 활동 자체를 인정하고 재미있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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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ki(박스) olioli(접기접기)’ 작업공간(좌)과 일상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야외공간(우)



 우리는 표현족 :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림·시·제조의 예술창작활동이다. 이 이름은 일본의 유명 TV 프로그램 '우리는 익살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내부에 작업공간이 있지만 사무실 한 쪽에 의자와 테이블을 마련해두고 작업을 하기도 한다. 메인 멤버(장애인)는 13명이며 이들은 매일 오기도 하고 일주일에 3번 정도 오기도 한다. 일주일에 1번 오거나 가끔 오는 사람도 있다. 9시부터 3시가 기본 활동 시간이며 멤버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오간다.



<Swing>은 창작활동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을 전시를 통해 외부에 소개하기도 하는데 작품을 고르고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전시장에서 여러 가지를 작업한다. 시를 낭독하고 박스 접기 같은 체험활동을 하거나 아틀리에가 전시장으로 옮겨진 것과 같은 개념으로 전시 공간에서 평소에 하던 창작활동을 하기도 한다. 장애인만 그 공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간을 쓰고 있다’는 개념으로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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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표현족’ 작업 공간



 Oyss 프로젝트 : 뮤지션 Cocco의 ‘쓰레기 제로 대작전'에서 영감을 받아 2008년 10월부터 시작한 활동이다. "아름다운 교토를 더 아름답게”를 슬로건으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교토 가모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활동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파란색 옷을 입고 동네 청소를 한다. 한 달에 1회씩 진행해 현재 115번째 진행되었으며, 약 10년째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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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yss 프로젝트’ 활동모습 (출처 : <Swing> 블로그)


<Swing>은 쓰레기 줍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재미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이 활동을 재미있어 보이도록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 청소부대 명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이 활동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Swing>과 상관없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서 울고 도망갔으나 지금은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사이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이들이 위험한 사람인 줄 알고 경찰이 와서 심문을 했다. 지금은 이 활동에 참여하는 스윙 멤버들이 귀중품을 주워 경찰서에 전달하기도 하기도 해 그들과도 친해졌다. 이들은 경찰이 찾아오는 등의 반응에 대해 ‘균열내기가 진짜 예술인 것 같다’는 맥락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 활동을 다른 지역에 가서 하기도 한다. 기업, 복지시설, 사무실 등에 청소부대 지부가 15개 있으며(2017년 4월 기준) 베트남에도 지부가 생겼다.



 당신의 목적지를 알려드립니다 : 교토의 교통이 복잡한데 <Swing> 멤버들이 교통 관련 지식을 총동원하여 주로 외국인에게 길 안내를 한다. 한 달에 1회, 2시간~2시간 30분 정도 진행한다. 버스나 지하철 노선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일부 발달장애인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한데 <Swing>은 이것을 장애가 아닌 독특한 능력으로 해석해 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민이나 관광객들은 자주 “왜 이런 옷을 입고 이런 것을 하고 있냐”고 수상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 이유나 의미를 설명해도 “아, 그렇구나”하고 이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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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적지를 알려드립니다’ 프로젝트 활동모습 (출처 : <Swing> 블로그)


<Swing>의 활동은 특히 일본의 장애예술 관련 단체를 조사해온 내게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 장애인의 일상이나 기존 업무와 연결된 활동을 예술적 기획으로 확장한다는 점, 둘째, 전시와 같은 작품 발표의 장소나 길거리에서도 장애인의 일상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소개한다는 점, 셋째, 활동 전반에 유머와 즐거움의 요소를 잃지 않는다는 점, 넷째, 이러한 활동을 예술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장애인의 삶을 드러내는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지속한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스윙의 대표 마사유키가 설명한 운영철학을 바탕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장애인 개개인이 자기 자신으로서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소개한 ‘야마나미 공방’의 운영철학과도 중첩된다. 그러한 장소가 있으면 사람은 알아서 표현하게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한 그는 예술 관련 전공자가 장애인의 창작활동에 함께 하고 있지만 예술이라는 말을 <Swing> 안에서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들의 활동이 그 자체로 존중되기보다 예술이라서 중요해지거나 예술은 대단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술 혹은 예술교육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만났던 일본의 단체들에서 내가 자주 발견하는 태도이다. 예술보다는 사람, 표현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 순간 나는 다시 오래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술이 왜 우선시되지 않는가’가 아니라 ‘예술이란 것은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그래서 ‘예술은 무엇일까’. 문득 <Swing>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잡혀가지 않을 정도로만 약간 위험하게 무언가를 흔들며 변화를 모색하는 것’


여전히 예술 혹은 예술교육이 무언인지는 모르겠지만 <Swing>이 흔들고자 하는 것, 흔들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럼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다보면 우리가 현재 스스로를 흔드는 질문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는 이유, 혹은 흔들릴까봐 불안한 마음이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왜 이러한 강력한 의지들을 조금이라도 움직여보려고 하고 있을까. ‘예술이 중요해서’, ‘장애인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들을 우선으로 두지 않을 때, 이들의 활동 맥락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과 가치들이 머릿속에서 흔들릴 수 있는 시간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관련 연구

해당 내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이다. 


관련 링크

*<Swing> 홈페이지 : http://www.swing-npo.com

*<Swing> 블로그 : http://garden.swing-npo.com

 

 

 

 

*웹진 보러가기 : http://www.wasuwon.net/129728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아틀리에 코나스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일본의 예술단체나 기관을 답사하며 사회문화예술교육 관련 조사를 한 지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누군가의 문제의식이나 의지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는 ‘장소’를 발견할수록 나에게 떠올랐던 것은 이전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나갔던 국내의 특수학교들이었다. 번듯하게 지어진 그 학교들은 아파트 단지의 끄트머리, 혹은 외진 동네에 위치해 있었고 그래서 같은 지역에 수년간 살고 있던 나도 그 곳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학교 수업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동네를 오가던 특수학교 통학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에 OO가 타있겠구나’ 하고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다가, 내가 어떤 사람들의 존재를 그동안은 왜 잘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두 발로 길을 걸을 수 있거나 말을 할 수 있거나 앞을 볼 수 있는 소위 ‘일반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은 외진 곳에 위치한 학교, 닫힌 건물 안에서만 생활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회 안에서 ‘존재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으나 ‘일반인’으로 쉽게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왜 잘 알지 못할까. 그들이 탄 통학버스는 왜 모두의 삶 속이 아닌 닫힌 울타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까.

 

길고 긴 질문들이 이어지던 2016년 가을, 나는 다시 일본을 방문했고 그때 답사했던 몇몇 단체 중 하나가 오사카에 위치한 아틀리에 코나스(이하 코나스)였다. 물론 나라마다 사회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기에 이들 역시 사회적 차별과 나름대로의 운영적 어려움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코나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거시적인 의미나 목표를 우선으로 두지 않는 듯 했다. 그보다는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단체에 오는 개개인의 표현활동을 위한 편안한 장소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코나스의 대표 타카코 시라이와(이하 시라이와)는 그러한 태도가 개인의 삶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내 딸이 중증 장애인입니다. 생후 3개월 동안 간질과 발작을 보였고 저는 그러한 상태가 나아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딸은 40세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장애인은 예전에는 숲이나 사회 변두리에 가둬져 부모나 할머니에 의해 몰래 키워졌습니다. 그런데 1981년, 내 딸이 4세 때 ‘정상화 원리(principle of normalization)’가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어떤 장애도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새로운 이념으로부터 희망을 얻기도 했지만 내 딸이 나아질 거란 환상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딸의 장애는 우리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삶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니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장애인 보호자회를 만들고 아이들이 마을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곤란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제도나 보호 장치가 없었습니다. 바자회 등으로 지원금과 운영비를 마련하며 12년을 보냈는데 너무 어려워서 다른 사람들은 그만두고 저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시대가 변하고 이념도 생기면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93년에 설립된 코나스는 장애인의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지적 장애인 생활보호 시설로, 현재 20명에 가까운 장애인과 6명의 운영진 및 서포터즈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공동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국내의 장애인 그룹홈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장애인이 거주 하지는 않고 주 5일 이곳에 나와서 창작활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80년 된 고가옥을 개조하여 지역 내 장애인을 위한 창작공간을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코나스의 첫인상은 무언가 평화로워보였다. 지역적, 건축적 문화가 쌓인 공간에서의 창작활동이라니, 내심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막연한 인상과 달리, 코나스의 대표 시라이와는 공간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이야기했다.

 

“보통 장애인들은 빌딩 같은 곳에 가두어져 있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문을 열고 장애인들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네 가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코나스가 ‘보통의 집’처럼 운영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웃의 소리도 들리는 그런 집 말입니다. 그래서 코나스라는 단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여기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역에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다른 장애 시설도 ‘열린’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보통 문이 잠겨 있어서 장애인이 나가고 들어가기 힘든데 그런 곳과 차이를 두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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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스 입구(좌)와 테라스 공간(우)

 

코나스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장애인들은 좁고 어두운 방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우산못 조립을 했다.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한 수작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코나스 운영진은 다른 기관(나라 시 소재, ‘하나아트센터’) 장애인의 회화 작품을 만나 에이블아트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노동 형태의 부업 작업은 장애인 본래의 개성과 감성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을 시작하고자 했다. 그래서 운영진은 2005년 오래된 가옥을 개축하여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그곳에서의 작업은 붓으로 좋아하는 것을 그려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후 아틀리에 공간에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놀라운 것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쉽지 않았던 사람이 조용히 앉아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대표 시라이와는 지금까지의 10년과 다른, 미래의 무언가를 예감했다. 그리고 예술 활동 3년차에 멤버(코나스에 오는 장애인)들의 작품은 대외적으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창작활동이 외부와 소통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코나스의 운영진은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을까. 이후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창작활동에 집중적 지원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예상했다. 그러나 시라이와가 설명하는 운영철학을 들으며 그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코나스에서는 장애인에게 창작활동에 대해 칭찬하지 않습니다. 칭찬받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가치관이 창작자에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코나스의 스태프들은 장애인이 현재 하고 있는 행위를 인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있구나, 그 모습이 좋아 보인다.’와 같은 말들로 말입니다. 그 외에 작품의 우수함이나 부족함에 대해 평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그동안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제약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하는 행위 자체가 그대로 수용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을 존재 자체로 인정, 수용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이후, 오히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코나스의 운영진은 장애인이 특별히 창작을 잘 하도록 가르치기보다 사람마다의 속도와 특징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1년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두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재료의 냄새를 하나씩 맡아보는 사람도 있다. 코나스의 운영진은 그런 시간과 방식을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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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마코토 오카와가 2005년부터 지금까지 만든 170개의 마코토 인형 <출처 : 코나스 페이스북>

 

이러한 활동은 예술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참여자 개개인의 표현 또는 편안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로 보인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야마나미 공방이나 스윙의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들은 새롭거나 독특한 예술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인정받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코나스에서 이러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케어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운영진들이 오랜 시간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재료를 잘 쓸 수 있을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창작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드러난다. 자신의 작업에 집중해야 안정감을 찾는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칸막이로 개인공간을 만들어 자리를 마련해준다. 혹은 돌아다니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업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넓은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앉아서 작업하도록 한다. 작업을 하다가 잠시 바람을 쐬거나 돌아다녀야 스스로 진정이 되는 사람도 있어서 오래된 가옥의 옛날식 테라스 공간을 그대로 살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코나스는 창작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편안함을 위해서 창작환경을 세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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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스의 창작공간

 

그렇다면 창작 외에 코나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대표 시라이와는 “중요한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이 지역에 이러한 활동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 작업은 코나스 활동의 30%라고 한다. 그 외에는 동네 청소도 하고 쿠키를 만들어서 주변에 판매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을 다녀오면 이웃사람들에게 꼭 선물을 사서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코나스의 활동이 소개된 잡지를 카피해서 동네에 나누어주기도 하는데 지역 사람들이 그런 활동을 알게 된 후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활동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코나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일본의 사례를 살피다 다시 우리 동네 변두리에 위치한 특수학교를 떠올려보았다. 모든 특수학교가 도심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위치와 상관없이 학교 안과 밖의 거리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결국 교육제도나 사회정책과 같은 시스템을 바꾸자고 외쳐야하는 문제인가, 나는 문화예술교육을 주제로 조사를 하다가 고민이 더 커졌다. 그런데 문득 코나스 운영진의 실천들은 그런 시스템과 별개로 시도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의 작품에 대해 칭찬을 하지 않고 현재 하고 있는 행위 자체를 인정하는 것, 1년 동안 그림을 한 장 그리는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 정기적으로 동네 청소를 함께 하는 것 등. 이것은 안정된 사회제도 안에서만 가능한 실천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해외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그 활동을 국내에서도 실행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보다, 그 사례가 발생될 수 있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관련 연구

해당 내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이다. 

 

관련 링크

<아틀리에 코나스> 페이지 : http://corners-net.com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오픈테이블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된 시간으로 인식되었는지 생각해보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감각과 속도에 대해 어울림을 기대하지 않고 그 자체로 만날 수 있는 장치들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방법을 이것저것 고민하고 시도해보지만 그것은 방법 자체를 고안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두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방법보다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공감하시거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오픈테이블에 함께 하길 바랍니다.

 

 

 

 

 

□ 일시 : 2018.12.5 (수) 2-4시
□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12 이음센터 5층 이음아트홀
 참여대상 :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가신청 : 온라인 사전신청과 현장신청 모두 가능 (
https://bit.ly/2Dn5C2C )

 

 

 

*선착순 50명 마감
*문의 : voslss@hanmail.net / 010.8504.1077 (비기자)
*본 행사는 문자통역이 지원됩니다.

 

 

 

*세부구성
1. 발제 : 유선(노들장애인야간학교 낮수업 교사) / 장애인의 표현을 바라볼 때 고려해야하는 요소들
2. 발제 :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 장애인의 표현,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
3. 발제 : 김지영(예술가) / 장애인의 표현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 가능한 방법들
4. 발제 : 신재(0set프로젝트, 공연 연출) / 장애인의 표현을 바라보는 시선들
5. 발제 : 신원정(미디어아티스트) / 관계적 도구
6. 오픈 토론

 

 

 

*발제자 소개

1. 발제 : 장애인의 표현을 바라볼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

유선 / 노들장애인야학 <발달장애인낮수업> 교사

2018 <진숍 턱걸이>, 턱걸이마을 공동체 아카이브 프로젝트 공동기획, 경기문화재단

2018 <함께 먹는다는 행위에 대하여> 참여작가, 공공예찬, 안양파빌리온

2016 더 빌리지 프로그램 <모두의 식탁> 참여작가, 미디어시티서울2016, 서울시립미술관

2011-2018 장애인문화예술판 <인포숍카페별꼴> 매니저

 

2. 발제 : 장애인의 표현,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2018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비평웹진 <지지봄봄> 편집장

2018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공동연구원

2016 <동아시아 장애인 문화예술 일자리와 창의적 사회통합 연구> 공동연구원

2014 장애문화예술교육 실태조사 <장애문화예술교육, 정형과 비정형의 교차> 공동연구원

 

3. 발제 : 장애인의 표현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 가능한 방법들

김지영 / 예술가

2016-2018 서부장애인 복지관 틈사이로+로사이드 <링크마켓 잇-> 공동진행 및 손놀이 워크숍 강사

2016 일본 간사이지역 장애인/홈리스 사회문화예술교육 조사연구 참여작가

2014 전시 <자리짜기 좋은 사회> 기획, 시민청 B1, 서울문화재단

2013 장애인분야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장애인과 예술가 친구 사귀기> 별거아니다 프로젝트 참여작가

 

4. 발제 : 장애인의 표현을 바라보는 시선들

신재 / 0set프로젝트, 공연 연출

2018 참여 워크숍 <없는 사람> 연출

2018 <나는 인간> 연출

2016 무지개다리문화다양성사업 <평등한 입장 턱없는 극장> 프로젝트 매니저

2014-2015 노들장애인야학 현대문화/연극 교사 

 

5. 발제 : 관계적 도구

신원정 / 미디어 아티스트

2016 문화다양성사업 에이아카이브/사운드 진 워크숍' 참여작가, 인포숍카페별꼴

2015 전시 사물학 II: 제작자들의 도시참여작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6-2018 노들장애인야학 <발달장애인낮수업> 교사

2016 서부장애인 복지관 틈사이로+로사이드 <우리 함께 잇-> 손놀이 워크숍 강사

 

 

 

 

 

주관 / 창작그룹 비기자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2호_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 교류와 협력

 

 

 

장애 예술인 창작 역량 강화를 둘러싼 질문들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장애 예술이 장애인의 사회참여 또는 직업군 개발을 위주로 활성화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술이 창작자 또는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한 목적으로 전제될 때, 그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우리는 왜 창작을 할까.

 

이것은 내가 올해 초 「장애 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며 혼자 노트에 적었던 질문들이다. 국내의 장애 예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창작의 시간이 오래 쌓이지 않았기에 이제야 그것의 가치와 방향을 논의하는 시점에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애 예술인의 창작 활성화는, 장애인의 삶이나 몸의 속도와 어긋날 정도로 활발하게 공식 활동을 하는 것을 전제로 두곤 한다. 대학 교육만 봐도, 비장애 예술인 대부분은 예술 관련 전공자이지만 장애인은 대학 진학도 힘들고 기본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매우 적다. 따라서 장애 예술인의 창작은 일반적 시각에서의 ‘창작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태’가 아닌 여러 차원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그 상태가 ‘장애 예술인의 역량이 강화된 상태’와도 겹쳐서 인식된다는 점에서, 과연 그 상태는 어떤 사회적 기대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어떤 장애 예술인이 수차례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작품도 유명해졌으나 개별 감각과 표현을 마주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면, 혹은 활발한 공식 활동을 그가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상태일까.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창작활동이 그것의 돌파구로만 작용해서는 안 되며 우리 스스로 창작활동을 그 위험성 안에 놓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순간 미련하도록 근본적인 질문이 이어지지 못하면 우리는 눈에 띄는 창작의 순간으로 우르르 뱃머리를 돌리고 그 상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들만 기획 해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국내의 사례는 다양할까.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여러 논의를 끌어낼 만한 개별 시도들이 많지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관련 프로그램이 얼마나 여러 곳에서 많이 실행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논의점을 담고 있느냐이다. 공공 지원 체계 내에서도 장애 예술인의 장애특성이나 개별 감각을 고려한 창작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장애 예술인의 창작 지원은 조금씩 늘고 있고 장애인의 문화 향수 지원도 이어지고 있지만 개별 창작을 내밀하게 살피거나 전통적인 창작 외의 다른 방식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부족하다.

이렇듯 장애 예술인 대상의 창작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보니, 비장애 예술인과 교류하거나 협업하는 활동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 다른 창작자들 간의 네트워크나 창작활동은 각자에게 기존의 자기 작업을 뒤흔들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함에도 말이다. 새로운 시선이나 표현을 경험하거나 배우며 따로 또 같이 무한한 실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창작 프로그램은 ‘다른’ 감각과 표현들 간의 ‘만남’을 다채롭게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장애인의 삶이 일반화된 사회로부터 오랜 시간 격리되고 보호, 관리되어 왔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젠 장애와 비장애가 만나는 현장마저도 기획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러한 상황의 부자연스러움, 부조리함을 소재화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넘어 장애와 비장애가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장애 예술인의 창작 활성화’ 또는 ‘장애 예술인의 역량 강화’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창작이 함께 활성화되는 것, 또는 역량이 함께 강화되는 것.

 

나는 무엇보다 서로가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누가 누구를 만나주는 것이 아니다. 누가 누군가에게 배우기 위해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서로의 생각이나 감각, 표현, 혹은 존재에 대해 자발적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 예술인과 창작을 하는 비장애 예술인의 활동이 ‘착한’ 일로 평가되지 않아야 하며 비장애 예술인과 교류하는 장애 예술인이 ‘의지하는’ 태도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여러 현장에서 발생되고 다양한 장르 안에서 지속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든 창작이 활성화되는 상태이자 역량이 강화되는 상태가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의 여러 사례를 조사해보았을 때, 장애와 비장애가 만나는 장이 섬세한 기획 안에서 이루어진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것이 지속되는 곳은 더욱 찾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사례를 언급하자면 ‘인포숍카페별꼴’에서 진행한 <에이아카이브: 소리(a-archive: sound)>(이하 ‘에이아카이브’)를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인포숍카페별꼴(이하 ‘별꼴’)은 비영리단체 ‘장애인문화예술 판’이 운영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대안 공간으로 2011년에 문을 열었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카페로 운영 중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두지 않은 책이나 진(ZINE, 개인이나 그룹이 이윤과 관계없이 자신의 힘으로 소규모 인쇄하는 출판물), 전단 등을 모은 아카이브가 있고, 소수 집단과 사회 운동, 서브 컬처에 관련된 전시, 영화 상영, 라이브, 워크숍 등을 하고 있다.

‘에이아카이브’는 2016년 성북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사업 지원을 받아 참여자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다 같이 생각해 보고, 자신만의 소리진(ZINE)을 만들어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장애인만을 참여대상으로 정해두고 기획하지 않았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이 다양한 사람 중 일부로 참여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는 점이 에이아카이브의 큰 특징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사람 중에는 언어가 다른 사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 신체적인 장애로 기존의 악기나 도구를 다루는 것이 어려운 사람 등이 뒤섞여 있었다.

별꼴은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이하 ‘노들야학’)의 발달장애인 수업과 연계하고 미디어 아티스트 팀 다이애나밴드와 협력하여 에이아카이브를 진행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포함되어 13명의 참여자가 2개월 간 10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결과 전시회를 개최하고 영상작품을 상영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장애 예술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문화다양성 담론 안에서 활동 맥락을 소개하였다.

자세한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다이애나밴드, 노들야학 교사가 함께 사전 회의를 통해 중증장애인 참여자 수요 조사를 진행했다. 집에서 이동이 쉽지 않은 중증장애인 참여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들야학이나 집으로 찾아가 사전 연구 워크숍을 5회 진행했다. 이후 외부 참여자(주로 비장애인, 예술가, 연구자, 지역주민)를 모집했고, 사전 연구 워크숍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참여자와 집중 워크숍을 5회 진행하고, 다 함께 전시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각자의 창작물(목소리나 주변의 소리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작업물, 중증장애인이 연주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 점자를 이용한 사운드 인쇄물 등)을 만들었다.

이 활동은 장애 예술인이라고 불리거나 그러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참여했던 사례는 아니다. 장애 예술인만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소리를 발견하고 표현해보려 했던 지점은 충분히 예술적 가능성을 갖는다. 오히려 이러한 사례가 장애 예술을 폭넓게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사례는 이러한 활동을 여러 형태로 지속하고 있는 별꼴의 활동 전반과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별꼴은 2011년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 없이 어울릴 수 있는 현장을 일상적, 문화적, 예술적, 사회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문화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 보다 편하게 이곳을 방문하고 있으며 장애 여부를 떠나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하고 있다.

또한 이 사례는 장애와 비장애가 서로를 만날 수 있는 현장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창작이 함께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만남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전의 장애 예술인 대상 역량강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비장애 예술인의 예술 언어를 학습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지만 이와는 다른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 모두의 창작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장애 예술을 사회적으로 특별한 위치에 두지 않기 위해 이러한 모색은 더욱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왜 창작을 할까’라는 질문은 스스로이자 서로를 향한 질문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우리는 왜 함께 창작을 해야 할까.

 

그리고 ‘다른’ 감각들이 만나 함께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창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함께 창작하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부족한 것일까.

어쩌면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기획된 자리로라도 촉발시켜야만 하는 상황 때문이 아닐까.

 

우연한 만남이든 기획된 만남이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의 창작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볼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창작, 혹은 예술은 기대했던 답을 찾게 된 상태. 그래서 사회적 존재 증명을 하게 된 상태. 예술가라고 불리게 된 상태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가 될지 모른 채로 현재 가능한 것, 혹은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해보는 그 순간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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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카이브: 소리> 전시 ⓒ 우에타 지로

 

 

 

* 「장애 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2018,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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