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경기상상캠퍼스 청년 입주단체들과 함께 했던 <상상캠퍼스에 흥 오르니 짓거리가 절로 난다> 프로젝트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은 프로젝트 자료집인 "짓거리 연구 보고서"에 담겨있습니다.

*자료집 문의 및 프로젝트 자세히 보기 : http://bigija.tistory.com/51

 

 

 

속도를 늦추는 질문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각자가 살아내기 바쁩니다. 오늘 밀려온 일감을 해치우고 며칠 후 마감인 기획서를 쓰고 몇 달 후 다가올 평가를 준비하고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생활의 변화를 대비해야 하니까요. 몇 개월, 몇 년, 시작이 기억나지 않는 바쁜 일상이 나를 삼켜버리고 나면 통장 잔고가 조금씩 채워지고 활동 기회가 이어져도 문득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근데 바로 그때쯤 우리에겐 조금 다른 에너지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엄청나게 바쁜데 딴청을 피울 여유가 생기고 밤을 새며 일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예전부터 미뤄두었던 수다 모임을 추진합니다. 그 기묘한 에너지에 당신은 어떤 이름을 붙이시겠습니까.

라는 발전기를 돌리고 성과라는 결과물을 생산해내지도 못하는 그 에너지에게 말입니다. 짓거리 연구원들은 그것의 이름을 찾는 대신 일단 그것의 속성을 연구해보았습니다. 그것의 필요성도 실험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에너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일단 몇 가지 짓거리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상상캠퍼스라는 곳에서 몇 개월의 활동을 이어갈 때쯤, 함께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생기고 같이 놀기도 좋아졌을 때쯤에 말입니다.

우리가 했던 짓거리들의 과정은 앞에 보고서에 자세하게 담겨있습니다. <사례품앗이>를 통해 서로의 현장에 품앗이를 해보기도 하고 <문화복지랩>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서나 고민을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나 성과가 있을까요? 그전에 질문을 조금 다르게, 그리고 길게 던져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어떤 측면에서 잘 살기도 하지만 힘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당신도, 친구들도 이 세계의 시스템과 규칙을 단번에 바꿀 수 없으며 그런 현실을 모른 척 해도 될 만큼의 엄청난 재화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각자 하고픈 것을 펼칠 사회적 기회가 많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당장 몇 달 후, 몇 년 후에 당신과 친구들은 생활이 안정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누구의 요구 혹은 기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래전부터 그렇게 느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피차 서로 가진 것도 없는 지금 말입니다.”

 

이 질문에 니가 하는 거 나도 같이 해볼게했던 게 <사례품앗이>입니다. 사실 각자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없지만 친구에게는 어떤 기회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친구의 활동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또한 이 질문에 같이 오락기나 두들기자고 했던 게 <문화복지랩>입니다.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팔아보자고 했던 것도,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고민 상담을 시작했던 것도. 오락기 속 동전들을 긁어모아 누군가의 복지를 만들어냈던 것도.

이 얼마나 미련하고 부질없는 짓거리란 말입니까. 저렇게도 길고 답답한 질문에 이렇게도 헛도는 대답을 하다니.

 

 

<문화복지랩> 12월 문화복지주간에 그루버들과 함께 먹은 저녁밥상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사업 기회를 마련해주거나 현금 다발을 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오늘 품앗이 하는 날혹은 복지, 복지, 복지가 최고라며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흥이 나고 있었습니다. <문화복지랩>에서 고작 3,000원쯤 되는 복지 혜택 쿠폰을 받았을 때에도, 어디다 팔아도 10원도 받을 수 없는 문화복지 트로피를 작업실 간판에 매달 때에도 우리는 신나있었습니다. 사실 이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에도 이런 현상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짓거리는 짓거리일 뿐 일거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각자 살아내야 할 테고 이런 짓거리는 삶의 작은 이벤트 정도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린 여전히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고 어느 순간에는 이런 짓거리들을 잊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의 생활은 이 짓거리들로 인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여기서 긴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런 걸 해봤거나 해보려 했던 시간은 있었을까요?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실제로 현실적 도움을 타인에게 줄 수도 없을 때. 우리는 효과적이지 않아 보이는 시도라도 해봤을까요? 혹은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나요? 마음껏 딴짓하며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도록 하는. 혹은 나의 현재가 다급하긴 하지만 옆 사람의 고민에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는. 그렇다면 지금의 짓거리는 나중에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잊혀 질까요? 혹은 이것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그 기억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제 와서 저의 다른 기억을 결코 비장하지 않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고3 때 모의고사를 앞두고 아파트 계단에서 목을 멘 옆 반 친구는 이름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학교는 며칠 동안 뒤숭숭했고 학생들 중 몇몇은 그 친구 때문에 모의고사가 취소되었다고 푸념을 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죽고 싶을 만큼 견디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아무도 되짚어 주지 않았습니다. 교실은 굴러갔고 수능은 다가왔고 우리는 그런 채로 흘러갔습니다. 그때와 같은 속도로 삶이 흘러가는 요즘, 자주 그 친구를 떠올립니다. 누군가 그때 다급한 시험을 뒤로 하고 그 친구와 부질없는 짓거리를 하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린 누군가에게 큰 일이 나야 그제서야 그곳을 바라봅니다. 이미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우리 옆에 있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현재를 같이 보내자고 말을 걸어왔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요즘 청년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청년문제 라는 말은 고유명사처럼 뉴스를 도배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 고유명사를 매일 떠올립니다. 하지만 옆 사람의 절박한 신호는 쉽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우린 각자도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그런 걸 해 볼만한 여유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정말 없을까요?”

 

이번 질문은 짧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길고 긴 대답을 기다립니다. 제도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답도 기다립니다. 오래된 기다림이 더 이상 지루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일단 여기에서 오늘도 어떤 짓거리를 해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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