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사례 소개를 위한 긴 서론

장애예술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매우 사회적인 주제로 보인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만 장애예술을 사회적 성격이 강한 대주제로 전제하면, 개인은 시대적 흐름에 의해서 그것을 ‘공부하거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과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는 무엇보다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나는 장애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을 ‘장애예술’로 만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장애예술을 다른 관점으로, 혹은 다른 이름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장애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하지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정형화된 표현방법을 오랜 시간 연습했고 그 과정에서 그림에 대한 흥미를 오히려 잃어버렸다. 미대에 합격 후 빈 캔버스를 채우는 것은 더욱 두렵고 힘든 일이 되었다. 내가 정말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혹은 표현활동에 훈련되기 쉬운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15년 전 그때, 우연히 장 뒤뷔페가 쓴 ‘아웃사이더 아트’ (1972년 로저 카디널이 아르 브뤼트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아르 브뤼트란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장 뒤뷔페가 1945년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창작 작품을 조사하다 알게 된, 그들의 작품을 지칭한 말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미술제도 바깥에서 창작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책소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12 )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2003년에 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나는 ‘장애’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보지 않았다. 나와 달리 미술을 학습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표현활동 자체와 그 에너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특별하게만 조명 받는 맥락에 관심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장애예술’을 ‘장애’의 관점으로 만나지 않았던 시작점이며 지금의 고민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 혼자 책을 보고 인터넷 자료를 뒤지다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돈을 벌기위해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문화예술교육 수업 촬영을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하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그 수업은 모두 장애인 청소년들과의 미술수업이었다. 그때는 내 삶에서 ‘장애’와 관련한 구체적 현장을 처음으로 만났던 시기지만 ‘장애인’에 초점을 둔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그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을 하면서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교육적 기회에 대해, 예술표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표현에 더 깊은 관심이 있었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한 학생은 장애 때문에 미술학원을 다닐 수 없었지만(미술학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내 관점에서는 독특한 시각 표현을 하고 있었다.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발달장애인은 크레파스가 부러지도록 도화지의 일부분을 집중적으로 칠했지만, 그는 흰 종이를 두려워하던 나와 너무도 다르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서툴고 거친 표현일지 몰라도 손이 이끄는 대로, 덕지덕지 칠하고 붙이는, 혹은 마음속에 떠다니는 말들을 그림처럼 도화지에 채우는 장애 학생들의 표현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색다른 표현활동 이면에,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격리되어온 장애인의 삶을 알아가게 되었다. 장애인의 개성적인 표현을 응원하는 것이 한 편에서는 장애의 증상을 부추기는 것일 수 있다는 것, 장애인이 공공 교육을 받기 위해 부모들이 교육청과 긴 싸움을 해야 했다는 것, 후천적 장애의 증상은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 특수학교가 지역 사회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운영되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는 것, 장애인의 예술표현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복지제도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 장애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생산성과 관련되어 재정의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래서 장애는 사회문화적 흐름과 그 인식에 따라 논의되는 지점이 변한다는 것 등. 그렇게 독특한 표현활동과 관련한 나의 고민은 더 넓은 영역에 대한 관심으로 퍼져나갔다. 장애인의 미술표현을 마주하면서 ‘다양한 존재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세계를 인식하고 개별화된 창작언어를 찾는 나/예술가에게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단순히 ‘장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예술은 결국 ‘다양성’의 실험과 발견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던 삶이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자극이 되었다. 사회나 개인이 장애인을 포함한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피는 것은 나에게 창작의 관점을 되짚어 보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격리시키거나 관리하려는 사회적 인식, 제도, 그 안에 길들여진 개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소중한 기회였다.
최근까지 내가 어떤 단체의 소속으로, 혹은 개인으로 하고 있는 활동들은 그 기회들을 좀 더 공식화된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장애인과의 1:1 창작활동,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연구, 일본의 장애인 창작활동 사례조사, 장애예술 관련 문화예술 기획활동 등이 그것이다. 단지 그 타이틀에 ‘장애’가 등장하지만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개인적 관심과 고민이 공통된 주제와 만나 드러난 것이다. 학습된 예술에 대한 개인의 문제의식은 이런 저런 이유와 삶의 우연적 요소를 만나 복지제도의 한계, 장애인의 삶, 다양한 존재, 사회문화적 현상 등으로 뻗어나갔을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의 관심’이다. 이것은 개개인이 장애예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복잡한 삶의 문제와 사회적 요소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깊으면 장애와 장애예술을 더 넓은 관점으로 만날 수 있다.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적 주제로 만나지 않고 말이다. 장애예술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언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삶의 주제를 장애예술과 관련한 관점에서 혹은 또 다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혹시 그것이 좁은 시야 안에서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본론이 될 수 없는 사례

그래서 장애예술과 관련한 사례 소개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장애예술을 ‘잘’ 드러내거나 담아낸 사례라는 것은 자칫 하나의 관점으로만 어떤 현장을 읽어내고 재생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사례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이전에, 그 사례가 발생될 수 있었던 배경, 특히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의 개별적 관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함께 활동했던 비영리단체 ‘로사이드’의 사례도 그러하다. 장애인 창작자와 비장애인 창작자의 공동창작 방식인 ‘1:1 아트링크’는 미술,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로사이드의 창작자(장애인 창작자)와 1:1로 연결, 그들의 공동창작을 지원한다. 로사이드 창작자와 공동창작자는 예술 작업으로 교감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출처 : 로사이드 홈페이지 http://rawside.kr )
사례가 외부에 많이 소개되었는데 이 활동의 운영구조를 참조하는 것 이전에 이 활동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참여 동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누가 누구와 어떻게 1:1로 만나게 되느냐가 결국 이 활동의 방향성과 의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나 장애인에 대해 잘 알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개별 창작을 하고 있던 비장애인 창작자들이 장애 유형이나 특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장애인 창작자와 작업 과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공동창작을 시작했다. 나 역시 이전 단체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통해서 3년 정도 만남을 이어오던 장애인 창작자와 다시 만나(내가 그 창작자의 그림 속 이야기와 화면구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창작을 했다.(이것은 ‘로사이드’를 알기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하던 활동이었다) 또한 자신이 재구성한 내용을 말로 끊임없이 쏟아내는 장애인 창작자와는, 이야기 하는 퍼포먼스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공동창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1아트링크’에 참여했던 입장에서 이 활동 방식은 ‘창작을 하는’ 두 사람이 만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행위를 되도록 장애의 증상이 아니라 창작의 맥락으로 바라보려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만남이 중요했던 것이다.
일본의 사례 역시 장애예술에 대한 것 이전에, 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려고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내가 만났던 일본의 단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예술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활동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장애예술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일본은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모색하는 과정에서 예술적 표현 및 소통방식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다. 비영리법인단체 <Swing>과 아틀리에 <코나스>가 특히 그러했다.

 

<Swing>
교토에 위치한 <Swing>은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비영리법인단체로 2006년에 설립되었다.
이곳은 예술단체가 아니라 장애인종합지원법에 따른 장애인 복지서비스사업을 하는 시민단체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활동은 “Oyss 프로젝트”로 뮤지션 Cocco의 ‘쓰레기 제로 대작전'에서 영감을 받아 2008년 10월부터 시작한 활동이다. "아름다운 교토를 더 아름답게”를 슬로건으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교토 가모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활동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파란색 옷을 입고 동네 청소를 한다. 한 달에 1회씩 진행해 현재 115번째 진행되었으며, 약 10년째 해오고 있다.

 

‘Oyss 프로젝트’ 활동모습 (출처 : <Swing> 블로그)

 

<Swing>은 쓰레기 줍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재미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이 활동을 재미있어 보이도록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 청소부대 명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이 활동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Swing>과 상관없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서 울고 도망갔으나 지금은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사이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이들이 위험한 사람인 줄 알고 경찰이 와서 심문을 했다. 지금은 이 활동에 참여하는 <Swing> 멤버들이 귀중품을 주워 경찰서에 전달하기도 하기도 해 그들과도 친해졌다. 이들은 경찰이 찾아오는 등의 반응에 대해 ‘균열내기가 진짜 예술인 것 같다’는 맥락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 활동을 다른 지역에 가서 하기도 한다. 기업, 복지시설, 사무실 등에 청소부대 지부가 15개 있으며(2017년 4월 기준) 베트남에도 지부가 생겼다.


<코나스>
1993년에 설립된 아틀리에 <코나스>는 장애인의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지적 장애인 생활보호 시설로, 현재 20명에 가까운 장애인과 6명의 운영진 및 서포터즈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공동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국내의 장애인 그룹홈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장애인이 거주 하지는 않고 주 5일 이곳에 나와서 창작활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코나스>의 운영진은 장애인이 특별히 창작을 잘 하도록 가르치기보다 사람마다의 속도와 특징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1년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두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재료의 냄새를 하나씩 맡아보는 사람도 있다. <코나스>의 운영진은 그런 시간과 방식을 그대로 둔다.
대표 시라이와는 “중요한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이 지역에 이러한 활동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 작업은 <코나스> 활동의 30%라고 한다. 그 외에는 동네 청소도 하고 쿠키를 만들어서 주변에 판매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을 다녀오면 이웃사람들에게 꼭 선물을 사서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코나스>의 활동이 소개된 잡지를 카피해서 동네에 나누어주기도 하는데 지역 사람들이 그런 활동을 알게 된 후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활동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코나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본론이 될 수 없는 사례 소개 이후에,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시대적 흐름과 함께 ‘알아가야 할 주제’로 장애예술을 접하는 것과, 삶의 어디에선가부터 시작된 개별적 관심이 장애예술을 만나게 되는 것 중 어떤 것이 우리의 자발적 관심을 더 오래 지속시킬까.


결론은 우리에게 있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궁금하다. 우리는 만날 수 있는가.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우리는 현재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애는 이미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복잡하고 미묘하게, 그리고 깊게 연관되어 있다. 단지 그 문제들을 장애와 연결해서 논의하려했던 자리가 부족했을 뿐이다.
세계는 이미 충분하게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며 불평등하기에 우리는 장애와 만날 수 있고 장애예술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고민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동창작의 시작이자 지속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각자의 삶에서 시작된 문제의식들이 장애예술이라 불리는 영역 안에서 더욱 다양하게 교차되며 덜 외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과 같은 논의 자리가 그 만남을 함께 이어갈 잠재적 동료를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장애예술에 대해 스스로가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여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장애예술’이라는 주제를 향해 급작스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려 하지 말고 이미 우리 삶에 넘치는 문제를 바라보자.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럼 영상 보러가기

 

http://bitly.kr/248Q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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