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9년 4월에 쓴 글입니다.

 

 

 

예술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이미 알거나 알지 못하는 이야기부터

 

4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년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 예술가 개인이 예술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수입은 평균 1천281만원(2015년 1255만원)이고 100만원 미만의 비중은 72.7%(2015년 72.5%)로 집계됐다. 지역의 문화든, 개인의 창작이든, 사회적 예술이든 그것의 토대가 될 창작활동이 단지 지속되는 데에도 이렇게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하나도 새롭지 않은 소식이다.

 

 

이와 관련한 개인적 경험을 그야말로 ‘토로’하는 것은 가능하나 힘이 나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말해본다.

 

나는 12년 전 서울의 미대를 졸업했고 함께 졸업한 사람과 10년 전 결혼했다. 함께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부부는 많은 지원사업과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의존도 하고 있다. 함께 졸업을 한 100명 정도의 동기들 중 현재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5명 내외이다. 나머지 중 대부분은 소식을 모르고 일부는 미술학원이나 벽화업체나 예고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창작활동을 하던 일부는 출산 후 작업을 멈췄다. 예술단체를 운영하며 이따금 개인 창작을 하고 문화예술교육과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우리 부부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전혀 안정되어 있지 않다. 낮은 소득 덕분에 주거, 육아, 보육에 있어서 모두 복지제도 안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당장 내년의 활동이나 수익도 예상할 수 없다. 내가 1년 후에, 3년 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모른 채로 사는 것은 절대 흥미진진하지 않다.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주변의 예술가, 기획자, 예술단체 관계자 등을 만날 때마다 “대체 어떻게 먹고 살아요?”, “올해는 괜찮아요?”라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우리에게는 9살 아들이 있다. 나는 출산 후 모유수유를 하면서 회의를 하고 새벽까지 전시 설치를 하고 방과후 강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링거를 맞으며 버텼다. 남편은 하고 싶던 작업도 멈추고 놀이공원의 외벽을 칠하러 다녔다. 이런 과정은 절대 ‘창작을 이어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상황이 아니다. 개개인이 스스로 어떻게든 용쓰지 않으면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고 생계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설명해줄 뿐이다. 이런 예술가들이 모두는 아니지만 적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 와중에 예술가, 기획자, 단체는 매년 지원사업을 내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인건비는 1원도 책정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매년 지원서를 쓰고 마음을 졸이며 한두 달을 기다리고 몇 년간 해오던 작품을 몇 분간 PT하고 질의응답하며. 그 정도는 징징대지 말고 열심히 준비해서 해내야 살 수 있지 않냐, 예술가/기획자가 자기 작업에 대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징징대지 않고 열심히 13년째 살고 있는 나 같은 삶이 ‘과연 제대로 된 삶이 맞냐’고 다시 묻고 싶다. 1년에 10여 개의 기획서를 쓰고 면접을 다니고 있는 내가. 작업에 대한 아카이빙도 매달 하고 창작도 하고 사회적 예술이라 불리는 활동도 하고 단체 운영도 하고 예술교육도 하고 그것을 행정언어로 매일 증명도 하고 보고서도 늦지 않게 제출하고 e나라도움도 마스터한 내가. 그래서 주변 예술가들에게 ‘대단하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는 내가. 이런 예술가는 과연 창작활동과 자신의 삶을 소외시키지 않으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매년 지원사업을 해야 하는 것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기획서도 잘 못 쓰고 면접도 잘 못보고 행정언어도 잘 모르고 정산도 힘들어하는 예술가들이 나처럼 되어버리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잠시 고백을 하자면 나는 최근 몇 년간 개인적 창작을 거의 못하고 있다. ‘안’ 하는 것과도 겹쳐 있지만 나는 위에서 말한 기획, 면접, 행정, 정산, 실무 등등을 모두 해내는 개인으로 살고 있다. 나는 현재 예술가로 불리지만 엄밀하게 보면 오늘의 나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하나의 단체가 지속되고 주변의 예술가들이 창작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러나 현재의 지원사업들은 예술가, 예술단체, 문화기획자에게 ‘활동현장(순수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지역활동, 모임활동, 프로젝트활동 등도 포함하는)’을 설득하고 증명하는 기획과 실무의 역할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그러한 역량까지 지원자가 모두 갖추면 활동이 더 풍부해질 때도 있지만 현재의 지원사업 구조가 현장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태인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원사업 안에서 ‘실무’가 포함된 활동현장을 지원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 정확히는 ‘사업적 운영에 대한 역량’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결국 ‘지원사업 안에서 인정하는 활동’의 범위를 한정 짓는다. 그래서 문화예술활동의 맥락이 깊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 이전에, 나는 좀 더 지원자 입장에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원래 하고 있는 활동에 기반을 둔 세 가지 제안

 

아래 그림 중 주황색 부분은 ‘원래 하고 있는 활동, 또는 문화예술 현장’이다. 그리고 연두색 부분은 ‘지원사업 안에서 인정하는 활동’이다. 이 두 가지 영역이 당연히 일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에 비해 의 영역이 적어질수록 지원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1.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을 있는 그대로 지원서에 써도 될까

2.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은 요즘의 문화예술과 거리가 있는 걸까

3.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문화 혹은 예술이 아닐까

4. 나는 계속 이 활동을 해도 될까

 

즉, ‘사업적 운영에 대한 역량’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지원사업이 지속될 경우, 지원자들이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이나 고민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줄어들게 되고 지원자들의 활동은 위축되거나 사라지거나 혹은 지원기관이 원하는 유형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창작자만의, 기획자만의, 단체만의 활동 철학과 예술적 고집, 기백 같은 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들이 자기 철학을 고집하기도 힘들게 된 상황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했는지 되묻고 싶다.

지원자들은 먹고 살기 힘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예술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야 했다. 예술적 실험을 해보거나 자기 철학을 되돌아볼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고민의 기회도 알아서 만들어야 하고 작은 프로젝트에라도 참여하려면 기획적 역량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악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캔버스를 어떻게 채우는지만 배웠는데 졸업을 하고 나니 갑자기 예술의 사회적 개입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고 예술의 다양한 변신에 대해 고민하라고 한다. 대학 교육이 어떻든, 사회 분위기가 어떻든 창작자, 기획자라면 알아서 예술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즉에 그런 고민을 해오고 있었어야 했던 걸까.

돌고 도는 질문 안에서 지원사업의 방향성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원래 하고 있는 활동’ 안에서 ‘지원사업을 통해 인정하는 활동’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작품을 발표하거나 행사를 열거나 결과물을 제작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 안에도 문화예술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특히 지원사업은 행정적 한계 때문에 결과나 방식에 대한 계획을 계속 묻고 증명을 요구하게 되는데 사실 ‘계획성 있는’ ‘문화예술’는 그 자체로 얼마나 모순적인가. 지원자 스스로가 아니라, 정책을 연구, 평가해왔던 전문가들이 넓은 범위의 활동이나 과정을 지원하는 행정언어의 발굴 및 기획을 해야 한다.

 

둘째, ‘원래 하고 있는 활동’이 아닌 앞으로 지원자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영역의 활동까지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정책이 마련해 나가야 한다.

 

지원자들 대부분은 하나의 장르나 분야에서 자신이 하던 방식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보통 예술 영역 안에서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모두 사회적이거나 다른 분야와 연결되는 작업을 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이슈와 연결되거나 타인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삶과 예술의 교집합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는 필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지원자들이 예술가나 기획자의 의도가 최우선인 활동 위주로 공부해왔지만 이런 방식은 동시대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결과적으로 예술가를 더욱 고립시키고 가난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시장도, 시대적 흐름도, 소비 패턴도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문화나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지원만을 늘리거나 개편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원래 하고 있지 않던 활동에 대한 기회 마련’은, ‘원래 하고 있는 활동’을 소외시키고 지원사업이 기대하는 ‘동시대 예술 또는 기획활동’을 새로이 해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언제나 지원의 우선순위는 ‘원래 하고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많은 지원정책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예술가, 기획자, 단체 등은 스스로도 ‘원래 하고 있는 활동’을 공식화하지 못한 채 기획서에 넣어야 할 것 같은 말을 찾고 현장활동을 행정적 지침대로 실행하면서 활동적 고민을 확장하기보다 사업적 운영 역량을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사업적 운영 역량만 점점 커지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는 지원자들은 역시 이와 같은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이것은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마지막으로 셋째, ‘원래 하고 있는 활동’이 축적된 사람 혹은 활동에 대한 미래적 역량강화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정책들은 (시급한 불을 끄느라) 청년지원에 집중되어 있다. 그럼 그 힘든 청년이라는 시기를 지나왔거나 어느 정도 버텨내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가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청년 지원사업에서 우수한 사례를 만든 후 몇 년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단체나 개인에 대해, 그 이유를 분석하는 시선이 있을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사람들에게는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와도 교차되는 범위의 리서치, 연구, 자기학습, 해외교류 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음 세대를 응원하고 지원할 더욱 다채로운 전문가들이 양성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시기의 사람들은 알아서 타 분야의 지원사업을 알아보거나 자체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학습모임을 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도 자연스럽지만 지원정책 안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시범적인 사업들도 공식화되어야 다양한 문화적 실험과 언어들이 이어질 수 있다.

 

 

다른 고민을 하고 싶다

 

나에게는 사실 이런 미련한 진심이 있다.

 

문화예술활동에 대해 공공지원을 받고 싶은 이유는, 물론 지원금 때문도 있지만 활동 자체가 사회적 존중과 응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돈도 안 되고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고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어떤 활동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매우 외롭기 때문이다. 그걸 왜 하냐, 언제까지 할 거냐는 주변의 인식 속에서 이런 이름 없는 활동을 그래도 좀 더 오랫동안 해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공식화된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지원사업을 했고 하고 있지만 활동에 대한 지원을 받아도 여전히 힘이 나지 않고 외로운 순간이 더 많다. 사업운영은 재촉하지만 현장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 지원기관, 논의의 파트너가 아니라 찰나의 평가자로 만나게 되는 컨설턴트, 예술가나 단체의 장기적인 활동보다는 몇 개월 사업적 성과만 묻는 사업적 구조, 도대체 몇 년을 말해야 반영이 될지 알 수 없는 창작자의 인건비, 이런 내용을 또 쓰거나 그냥 쓰기를 포기하는 성과보고서. 그래서 올해도 작년과 같은 고민 안에 있다.

 

나는 계속 이 활동을 해도 될까

 

내 주변에는 여전히 미련하게 소리를 탐구하는 사람, 이상한 물건을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사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다니는 사람 혹은 예술가들이 있다. 기획서에 쓰기에 굉장히 모호한 방식으로 낯선 활동을 이어가는 기획자인지 지역활동가인지 문화운동가인지 모를 어떤 사람들도 있다. ‘계속 이 활동을 해도 될지’ 이들이 고민을 지속해야만 새로운 가치도 발생되겠지만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통해 이 고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의 정책이 ‘어떻게 현재의 활동을 응원하며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고민이 ‘이 활동을 계속 해도 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활동을 할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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