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에 실린 글입니다.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먼저 질문을 하고 싶다.

A에서 설명하는 사람을 바탕으로 B에 제시된 교육대상을 연결할 수 있을까.

 

 

A

 

 

 

B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사람

지적장애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지 못한 사람

눈앞에 무언가를

또렷하게 볼 수 없는 사람

시각장애인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한 사람

익숙하지 않은 재료는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

청각장애인

잘하지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

5분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지체장애인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

칭찬이 꼭 필요한 사람

정신장애인

쉬고 싶은 사람

타인의 이야기에

길게 집중하기 힘든 사람

자폐성장애인

타인의 선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

뇌병변장애인

몸의 근육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우리는 큰 망설임 없이 A와 B를 연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유형화할 수 없음에 불편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유형별 특수성이 A에서 언급되지 않아서 망설일지도 모른다. 또는 A에서 언급된 부분이 꼭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A에 언급한 사람들은 내가 교육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다. 그 안에는 이번 장애아동예술교육 지원사업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A에서 장애 특성을 드러내지 않게 설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장애예술교육이 어떠한 관점으로 시도되고 있는지 되묻기 위한 설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예술교육이 주로 B에서 A로 접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B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관점, 방향성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관점으로만 사람을 바라보고 만나게 될 경우 다양한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A와 B의 위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금 더 쉽게 양쪽을 연결할 수 있을까.

물론 장애유형별 특성은 분명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을 구성하는 중심요소가 되지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예술교육 안에서 참여자 이전에 장애인이 된다. 우리가 장애 자체에 대해, 장애유형별 특성에 대해, 그 특성이 담아내지 못하는 개별성에 대해 잘 모름에도 말이다.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 혹은 개념은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 대한 반성적 의미로 획득된 사업적 용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업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개인들을 만나고 있는가. 그 다양함은 장애와 관련된 특수성이 아니라 사람마다의 개별성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본 지원사업의 전반을 참여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부족했던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이들은 표현이나 소통방식에 있어서 비장애인과 차이가 있기에 프로그램 진행과 관련해 준비하거나 고려해야 했던 장치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개별성은 몇 가지 장애 특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대부분의 예술강사, 기획자들이 “장애와 관계없이 그냥 아이들이에요. 별로 특별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예술교육에 대한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장애가 아니라 개별성에서부터. 이것은 장애 이해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을 전제하기도 한다. 그것은 첫째, ‘장애’에 대한 관념화된 요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 둘째, 특성별로 예측 가능한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고 예민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별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예술교육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쉽게 예측하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들의 개별화된 다양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 비장애를 떠나) 예술교육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얼마나 참여의 범위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위의 A,B 설정에서 우리의 관점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교육현장에서 B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A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장애와 관련한 예술교육을 사업적으로 기획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선으로, 후자의 경우는 교육현장을 어느 정도 만나면서 발견한 구체적인 강사나 기획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 관점은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단지, 우리가 사업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 어떤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예술교육, 혹은 어떤 현장을 만들기 때문에 두 관점의 균형을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순간에 어떤 관점을 더욱 고려해야 할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장애예술교육에서 B를 통해 A를 발견했든, 처음부터 A를 만났든, 다시 A를 B로 연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서는 B라는 필터 혹은 분류가 필요하지 않은데 우리는 B의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이고 차별화된 장애예술교육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정책적, 사업적 교육대상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틀이 교육현장에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애예술교육이 개별성과 유연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개별적 장애 특성에 따라 교육적 처세를 능숙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별성을 참여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열린 관점과 태도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장애유형별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따른 노하우가 있는 경력자만이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낯설 정도로 구체적인 개별성을 염두에 두고 존중하려는 유연한 사람들이 앞으로 장애예술교육의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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