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경기도청 주변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의 주관으로 청년문화기획자 양성과정 <문화로 길을 잇다>에서

동시대 문화기획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그룹 멘토링을 진행하였습니다.

 

비기자의 활동 사례, 일본의 지역 연계 사례, 놀이 및 커뮤니티 관련 사례 등을 소개하고

삶과 연결될 수 있는 문화기획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참여자분들은 그룹 멘토링에 참여한 후 청년페스티벌을 통해

각자의 기획활동을 소규모로 실험, 소개하였습니다.

 

 

 

 

 

 

 

 

 

 

 

 

 

 

 

 

 

화성시문화재단의 주관으로 <가족과 함께 만드는 건강 숨정화기>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비기자가 2017년에 연구, 제작한 공기청정기 '탁사용 숨정화기'를 화성시민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작은 환풍기와 자동차 에어컨 필터 등을 활용하여

어린아이도 만들 수 있는 공기청정기를 소개하고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숨정화기 제작워크숍' 참여신청 안내 : http://bigija.tistory.com/50

 

*'숨정화기 제작 프로젝트' 자세히보기 : http://bigija.tistory.com/41

 

*'숨정화기 제작 관련 발간물' 다운받아 보기 : http://bigija.tistory.com/52

 

 

 

 

 

 

 

 

 

 

 

 

 

 

 

 

 

 

 

 

 

 

 

 

 

 

 

 

 

 

 

 

 

 

 

 

 

 

 

 

 

 

 

 

 

 

 

 

 

 

 

성호중학교에서 <상상의 모양>이라는 주제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시각적 표현으로 연결해보는 프로그램을 1회차 수업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상상하는 세상의 모양,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예술의 모양,

우리 모두가 듣는 것만으로 상상하는 음악의 모양에 대해 생각해보고

표현도구 '수상한 설문지'와 '이야기모양자'를 통해 그것을 시각화하였습니다.

 

*'이야기모양자' 디자인/제작 : 띠리리제작소

 

 

 

 

수상한 설문지

 

 

 

 

 

 

 

 

 

 

 

 

 

 

 

 

 

 

 

 

 

 

 

 

 

 

 

 

 

 

 

 

 

 

 

 

 

 

 

 

 

 

 

 

 

 

이야기모양자

 

 

 

 

 

 

 

 

 

 

 

 

 

 

 

 

 

 

 

 

 

 

 

 

 

 

 

 

 

 

 

 

 

 

 

 

 

성호중학교에서 <커뮤니티와 아트 사이>라는 주제로

학생들의 생각을 놀이로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4회차 수업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정답이 없는 예술,

나의 생각으로 다시 만나는 예술,

놀면서 발견하는 예술을 해보며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와 예술 사이에서 무엇이 발생될 수 있을지 실험해보았습니다.

 

 

 

 

 

 

 

 

 

 

 

 

 

 

 

 

 

 

 

 

 

 

 

 

 

 

 

 

 

 

 

 

 

 

 

 

 

 

 

 

 

 

 

 

 

 

 

 

 

 

 

 

 

 

 

 

 

 

 

 

 

 

 

 

2018년 하반기에 수원시 고색중학교 학생들과 10회차로 진행한 자유학년제 프로그램

'노동의맛_제작의맛'을 소개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경기상상캠퍼스 생활문화센터가 주관하고 비기자가 강사로 참여한 프로그램입니다.

 

경기상상캠퍼스 야외 공간에서 주워온 물건으로 간단한 제작 실험을 해보고

비기자가 제작한 표현도구를 이용해 자유로운 만들기를 해보았습니다.

 

 

*표현도구 제작 협력 : 띠리리제작소

 

 

 

 

 

 

 

 

 

 

 

 

 

 

 

 

 

 

 

 

 

 

 

 

 

 

 

 

 

 

 

 

 

 

 

 

 

 

 

 

 

 

 

 

 

 

 

 

 

 

 

 

2018년 상반기에 수원시 서호중학교에서 14회차로 진행한 자유학년제 프로그램

'노동의맛_그림의맛' 결과물을 소개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경기상상캠퍼스가 주관하고 비기자가 강사로 참여한 활동으로

중학교 실내 공간에 학생들과의 공동작업으로 벽화를 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원래는 실외 공간 벽에 벽화를 그릴 예정이었으나

학교의 상황 변화로,

레이저컷팅한 나무판에 칼라링을 한 후 실내 벽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림의 주제나 디자인은 학생들이 직접 하였고

참여학생들의 이름도 작품의 일부로 벽에 설치하였습니다.

 

 

 

 

 

 

 

 

 

 

 

 

 

 

 

 

 

 

 

 

 

 

 

 

 

 

 

 

 

중학교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으로 <놀이로 만나는 문화기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기자가 입주해있는 경기상상캠퍼스에서 1회성으로 진행하거나

중학교를 방문하여 1-3차로 진행 가능합니다.

 

예술가들이 참여한 다양한 문화기획 사례를 살펴보고

표현도구를 이용해 기획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쳐봅니다.

 

비기자는 문화기획의 고정된 개념이나 방법론을 가르치기보다

놀이를 통해 다채로운 기획 방식을 함께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2호_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 교류와 협력

 

 

 

장애 예술인 창작 역량 강화를 둘러싼 질문들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장애 예술이 장애인의 사회참여 또는 직업군 개발을 위주로 활성화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술이 창작자 또는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한 목적으로 전제될 때, 그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우리는 왜 창작을 할까.

 

이것은 내가 올해 초 「장애 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며 혼자 노트에 적었던 질문들이다. 국내의 장애 예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창작의 시간이 오래 쌓이지 않았기에 이제야 그것의 가치와 방향을 논의하는 시점에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애 예술인의 창작 활성화는, 장애인의 삶이나 몸의 속도와 어긋날 정도로 활발하게 공식 활동을 하는 것을 전제로 두곤 한다. 대학 교육만 봐도, 비장애 예술인 대부분은 예술 관련 전공자이지만 장애인은 대학 진학도 힘들고 기본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매우 적다. 따라서 장애 예술인의 창작은 일반적 시각에서의 ‘창작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태’가 아닌 여러 차원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그 상태가 ‘장애 예술인의 역량이 강화된 상태’와도 겹쳐서 인식된다는 점에서, 과연 그 상태는 어떤 사회적 기대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어떤 장애 예술인이 수차례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작품도 유명해졌으나 개별 감각과 표현을 마주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면, 혹은 활발한 공식 활동을 그가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상태일까.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창작활동이 그것의 돌파구로만 작용해서는 안 되며 우리 스스로 창작활동을 그 위험성 안에 놓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순간 미련하도록 근본적인 질문이 이어지지 못하면 우리는 눈에 띄는 창작의 순간으로 우르르 뱃머리를 돌리고 그 상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들만 기획 해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국내의 사례는 다양할까.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여러 논의를 끌어낼 만한 개별 시도들이 많지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관련 프로그램이 얼마나 여러 곳에서 많이 실행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논의점을 담고 있느냐이다. 공공 지원 체계 내에서도 장애 예술인의 장애특성이나 개별 감각을 고려한 창작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장애 예술인의 창작 지원은 조금씩 늘고 있고 장애인의 문화 향수 지원도 이어지고 있지만 개별 창작을 내밀하게 살피거나 전통적인 창작 외의 다른 방식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부족하다.

이렇듯 장애 예술인 대상의 창작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보니, 비장애 예술인과 교류하거나 협업하는 활동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 다른 창작자들 간의 네트워크나 창작활동은 각자에게 기존의 자기 작업을 뒤흔들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함에도 말이다. 새로운 시선이나 표현을 경험하거나 배우며 따로 또 같이 무한한 실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창작 프로그램은 ‘다른’ 감각과 표현들 간의 ‘만남’을 다채롭게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장애인의 삶이 일반화된 사회로부터 오랜 시간 격리되고 보호, 관리되어 왔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젠 장애와 비장애가 만나는 현장마저도 기획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러한 상황의 부자연스러움, 부조리함을 소재화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넘어 장애와 비장애가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장애 예술인의 창작 활성화’ 또는 ‘장애 예술인의 역량 강화’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창작이 함께 활성화되는 것, 또는 역량이 함께 강화되는 것.

 

나는 무엇보다 서로가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누가 누구를 만나주는 것이 아니다. 누가 누군가에게 배우기 위해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서로의 생각이나 감각, 표현, 혹은 존재에 대해 자발적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 예술인과 창작을 하는 비장애 예술인의 활동이 ‘착한’ 일로 평가되지 않아야 하며 비장애 예술인과 교류하는 장애 예술인이 ‘의지하는’ 태도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여러 현장에서 발생되고 다양한 장르 안에서 지속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든 창작이 활성화되는 상태이자 역량이 강화되는 상태가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의 여러 사례를 조사해보았을 때, 장애와 비장애가 만나는 장이 섬세한 기획 안에서 이루어진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것이 지속되는 곳은 더욱 찾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사례를 언급하자면 ‘인포숍카페별꼴’에서 진행한 <에이아카이브: 소리(a-archive: sound)>(이하 ‘에이아카이브’)를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인포숍카페별꼴(이하 ‘별꼴’)은 비영리단체 ‘장애인문화예술 판’이 운영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대안 공간으로 2011년에 문을 열었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카페로 운영 중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두지 않은 책이나 진(ZINE, 개인이나 그룹이 이윤과 관계없이 자신의 힘으로 소규모 인쇄하는 출판물), 전단 등을 모은 아카이브가 있고, 소수 집단과 사회 운동, 서브 컬처에 관련된 전시, 영화 상영, 라이브, 워크숍 등을 하고 있다.

‘에이아카이브’는 2016년 성북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사업 지원을 받아 참여자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다 같이 생각해 보고, 자신만의 소리진(ZINE)을 만들어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장애인만을 참여대상으로 정해두고 기획하지 않았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이 다양한 사람 중 일부로 참여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는 점이 에이아카이브의 큰 특징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사람 중에는 언어가 다른 사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 신체적인 장애로 기존의 악기나 도구를 다루는 것이 어려운 사람 등이 뒤섞여 있었다.

별꼴은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이하 ‘노들야학’)의 발달장애인 수업과 연계하고 미디어 아티스트 팀 다이애나밴드와 협력하여 에이아카이브를 진행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포함되어 13명의 참여자가 2개월 간 10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결과 전시회를 개최하고 영상작품을 상영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장애 예술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문화다양성 담론 안에서 활동 맥락을 소개하였다.

자세한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다이애나밴드, 노들야학 교사가 함께 사전 회의를 통해 중증장애인 참여자 수요 조사를 진행했다. 집에서 이동이 쉽지 않은 중증장애인 참여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들야학이나 집으로 찾아가 사전 연구 워크숍을 5회 진행했다. 이후 외부 참여자(주로 비장애인, 예술가, 연구자, 지역주민)를 모집했고, 사전 연구 워크숍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참여자와 집중 워크숍을 5회 진행하고, 다 함께 전시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각자의 창작물(목소리나 주변의 소리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작업물, 중증장애인이 연주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 점자를 이용한 사운드 인쇄물 등)을 만들었다.

이 활동은 장애 예술인이라고 불리거나 그러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참여했던 사례는 아니다. 장애 예술인만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소리를 발견하고 표현해보려 했던 지점은 충분히 예술적 가능성을 갖는다. 오히려 이러한 사례가 장애 예술을 폭넓게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사례는 이러한 활동을 여러 형태로 지속하고 있는 별꼴의 활동 전반과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별꼴은 2011년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 없이 어울릴 수 있는 현장을 일상적, 문화적, 예술적, 사회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문화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 보다 편하게 이곳을 방문하고 있으며 장애 여부를 떠나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하고 있다.

또한 이 사례는 장애와 비장애가 서로를 만날 수 있는 현장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창작이 함께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만남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전의 장애 예술인 대상 역량강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비장애 예술인의 예술 언어를 학습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지만 이와는 다른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 모두의 창작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장애 예술을 사회적으로 특별한 위치에 두지 않기 위해 이러한 모색은 더욱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왜 창작을 할까’라는 질문은 스스로이자 서로를 향한 질문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우리는 왜 함께 창작을 해야 할까.

 

그리고 ‘다른’ 감각들이 만나 함께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창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함께 창작하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부족한 것일까.

어쩌면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기획된 자리로라도 촉발시켜야만 하는 상황 때문이 아닐까.

 

우연한 만남이든 기획된 만남이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의 창작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볼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창작, 혹은 예술은 기대했던 답을 찾게 된 상태. 그래서 사회적 존재 증명을 하게 된 상태. 예술가라고 불리게 된 상태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가 될지 모른 채로 현재 가능한 것, 혹은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해보는 그 순간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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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카이브: 소리> 전시 ⓒ 우에타 지로

 

 

 

* 「장애 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2018,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였다. 

'경기아카이브_지금,' 전시 연계 프로그램

따로 노는 시선

 

 

 

따로 노는 시선은 나의 정체를 숨기고 전시장 공간을 탐색하는 놀이 프로그램입니다.

하나의 '공간'도 각기 다른 시선/ 입장으로 마주하면 서로 다른 '장소'가 됩니다. <경기 아카이브_지금,> 전시는 2003년 이후로 시간이 멈춰있던 ()임학임산학관 건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5년간 닫혀 있던 건물에서 비기자 멤버가 건네는 비밀스러운 역할 카드를 가지고 <경기 아카이브_지금,> 전시 공간을 다르게 상상하며 탐험합니다.

 

- 일시 : 2018.10.07./ 10.14. 14~16(2시간 소요)

- 참가비 : 무료

- 장소 : <경기아카이브_지금,> 전시장 전체

- 참여 인원 : 회차당 8(16)

- 대상 : 초등학교 고학년(4, 5, 6학년)

- 진행 : 창작그룹 비기자(김지영, 최선영), 경기도미술관 <경기 아카이브_지금,>

 

 

 

사진 촬영 / 권하형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5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보세요^^

 

http://ggarte.ggcf.kr/?p=23

 

 

 

 

 

 

25호 곁봄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

 

 

“가위바위보에서 졌어요.”

얼마 전 진행한 한 중학교 문화예술교육 첫 시간,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곳곳에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의 관심사나 참여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위바위보에 져서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학생들. 언제부턴가 이런 학생들을 다른 수업에서도 종종 만나게 되어 수업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시 가위바위보에서 졌나요?”라고 물어보면 학생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교육 현장을 당장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은 학생들의 개별 의지가 교육 참여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이유, 그 이유와 연관된 여러 문제들, 그것들 간의 복잡하고도 유기적인 연관성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준비해온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애써 힘을 내야 한다. 


강사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에 관여하는 실무자, 기획자, 예술가, 자문위원 등 많은 사람들이 현장의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큰 사업들은 교육 참여자의 욕구나 변화에 상관없이 상위 조직으로부터 기획되어 내려오고 단체나 강사는 개별 고민을 실험할 여유나 여력이 사라지고 교육 참여자는 자발적 관심보다는 다른 이유들로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게 되곤 한다. 지원기관, 단체, 교육 참여자의 입장과 상황은 10년 사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강사비도 제자리걸음이다. 어쩌면 큰 변화를 기대했던 것이 애초에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원사업 관련 간담회, 좌담회, 자문회의, 결과워크숍, 인터뷰 등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어쨌든 이제 무엇이 얼마나 문제인지 말하는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과연 그 내용을 총체적으로 듣고 현장을 위한 개선책을 마련할 누군가가 있는지, 바로 그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무기력해진다. 사업 담당자마저도 다음 해에 그 자리에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떠나게 되는 복잡하고 현실적인 원인들도 안다.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비판만큼, 각자의 교육 현장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겠으나) 제도나 시스템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만나고 함께 경험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거시적인 문제의 해결만큼이나, 개별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다른’ 접근, 혹은 시도는 주로 거시적인 문제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덜 중요할까? 사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번 [지지봄봄]은 무엇의 중요도를 강조하기보다,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각자에게 덜 중요하게 ‘여겨졌던’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을 해보고 있을까. 도저히 무엇도 할 수 없을까. 거시적인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적인 접근이나 시도는 큰 의미가 없을까. 


다시 가위바위보에 져서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과의 만남으로 돌아가 보자.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에서 탈락된 아쉬움 혹은 짜증 때문에 몇몇 학생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 학생들에게 강사는 며칠 동안 준비해 온 무언가를 어떻게 같이 해보자고 해야 할까. 첫 시간부터 너무 솔직한 학생들 덕분에 담당자 혹은 담임 선생님은 조금 난감하지만 프로그램 별로 정해진 인원은 맞춰야 하고, 이 프로그램도 몇 개월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그 순간 우린, 교육의 기획과정이 얼마나 섬세하지 못했는지 비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당장의 교육 현장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적당히 각자의 시간을 때우다 헤어지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때 강사나 기획자, 담당자가 해보게 ‘되는’ 것들이 매번 탁월한 선택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미봉책과 임기응변이 지속되다가 교육 기간의 절반이 지나가기도 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역시나 잘 안 되는구나 느끼며 수업이 끝날 때마다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지지봄봄]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공한 사례들의 소개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 [지지봄봄]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어떤 순간들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묘하게도 교육에 참여했거나 관여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오히려 성공적이었던 어떤 선택이나 해법보다 누군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려 했던 의지를 기억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잘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그러다 잘 되기도 했지만 참 어설프고도 힘들었던, 그래서 잘 된 결과보다 지난하고 미련했던 과정이 자꾸 생각나는, 바로 그것을 여러 현장에서 듣고 싶다. 이것은 교육 현장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질 고민들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제도나 시스템이 현장 중심으로 싹 다 개선되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날이 결코 금방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좀 달리하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각자 해보고 있는 여러 시도들이 힘을 잃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지속을 위해 역시나 제도나 시스템이 개선될 필요도 있겠지만, 오로지 그것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쉽게 달라지지 않고 있음에도 무언가를 여전히 해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쯤에서, 문화예술교육 강사이기도 하고 교육 관련 기획자이기도 하고 예술가이기도 하고 이따금 자문위원이기도 한 내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을 풀어놓고자 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문제라고 상정된 것들을, 내가 이끌어야 하는 상황/만남/교육/활동 안에서 문제가 아니라 상태(condition)로 두려고 노력한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내 수업에 온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를 들자면 참여 인원수에 비해 넓지 않은 교육 공간, 프로그램에는 관심 없는 담당자나 보조자, 자기표현을 하는 데에 다른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교육 참여자, 넉넉하지 않은 예산이나 시간 등. 그동안 마주했던 문제, 아니 ‘상태’는 참으로 다양하고도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도 매번 마음의 평정을 찾고 모든 상황을 ‘상태’로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불과 두 달 전 자유학년제 수업에서도 단 두 시간 만나는 중학생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런 태도를 보이면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혼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학생이 아니라, 교육 참여자의 관심사와 무관하게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그 안에 학생들을 배정해 넣은 어떤 운영구조 혹은 누군가의 욕심이었다. 사실 학생들의 낮은 참여 의지만을 문제로 두는 것은 나의 가장 편한 논리가 아니었을까. 요즘 학생들은 어떻더라, 그래서 문제더라 하는 일반적인 말들이 더욱 쉽게 내 머릿속을 채워 어떤 ‘상태’를 더 문제로 견고히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한 달이 지나, 비록 다른 중학생들이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나는 학생들이 얼마나 이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힘든 ‘상태’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그래서 활동의 내용과 방식을 완전히 바꿔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위바위보에 져서 왔나요?”라고 묻는 여유도 부려보았는데 역시나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고, 오늘 또!’이러고 화를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을 텐데, 마음을 달리 먹으니 학생들이 딱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 그럼 오늘 한 번 너희들의 예상을 뛰어넘게 재미있게 놀아보자’ 다짐하고 이런 저런 재료를 꺼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활동은 이렇게 저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지난번과는 다른 힘을 얻었다. 프로그램 진행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나의 태도가 교육 현장과 앞으로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함께 그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상태’를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또 이건 진짜 문제다! 하며 분노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계속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각자의 고민을 지켜내는 힘은 ‘그럼에도 해보고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이것은,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강사나 기획자, 담당자의 개별적 시도로만 풀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들이 각자의 경험과 태도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기를 응원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활동의 의미를 각자가 찾기에 어렵지 않을까. 더불어 교육 현장의 현실적 어려움,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발언해야 하는 것이 사업적, 공식적 역할인 사람들이 보다 좀 더 적극성을 띄기를 기대한다.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교육이라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하는 여러 사람들의 입장, 그와 관련된 상황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는 지치지 않고 교육 현장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러한 시도들이 담아내는 의미와 어려움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지지봄봄]은 이중 전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사실은 후자의 누군가가 이러한 내용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 그것을 보고 들으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당장 어떤 결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것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여러 방식으로든 기억될 것이다. 이건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버텨보자는 것과 다르다. 스스로에게도 기억될 만한 시도를 이어가보자는 것이다. 우수하거나 우수하지 않은 시도는 없다.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그 가능성을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가능한 것을 해보자. 날선 눈으로 여기저기의 사례나 사업구조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시간만큼. 

 

 

 

 

최선영

예술가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비기자X러플 협업 프로젝트 <숨은기억찾기>

놀이소프트웨어 개발팀 <러플>이 개발한 핸드폰 어플을 이용해

<비기자>의 활동 포스터를 모니터상으로나 인쇄물로 스캔해서 보면

증강현실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러플 : http://www.playlink.or.kr

 

 

 

  

 

 

 

집에서도 이 작업을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숨은기억찾기> 어플을 설치합니다. ('Play 스토어'에서 '비기자' 또는 '숨은기억찾기'로 검색)

2. 어플을 켜고 '관람' 버튼을 누릅니다.

3. 어플 화면을 통해 아래 31장의 포스터들을 컴퓨터 모니터상으로 하나씩 스캔해서 보세요.

4. 띠용! 뭔가 나타납니다.

 

*아이폰은 현재 이 어플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작품 설명

이건 재밌자고 하는 겁니다. 사는 것도 작업하는 것도 사업하는 것도 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성과나 존재 증명을 위해서만 하는 일도 재미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에게 다르게 인식되니까요. 그런데 그 재미는 그 일을 할 때 당장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혼자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대표했던 공식적 이미지들 속에 쌩뚱맞은 기억의 재미들을 숨겨두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재미있으시길 바랍니다. 이걸 만든 사람들도 좀 재미있었습니다.

 

 

 

 

자, 그럼 어플을 켜고 아래 포스터를 스캔해보세요!

 

 

 

 

 

 

 

 

 

 

 

 

 

 

 

 

 

 

 

 

 

 

 

 

 

 

 

 

 

 

 

 

 

 

 

 

 

 

 

 

 

 

 

 

 

 

 

 

 

 

 

 

 

 

 

 

 

 

 

 

 

 

 

 

 

 

 

 

 

 

 

 

 

 

 

 

 

 

 

 

 

 

 

 

 

 

 

 

 

 

 

 

 

 

 

 

 

 

 

 

 

 

 

 

 

 

 

 

 

 

 

 

 

 

 

 

 

 

 

 

 

 

 

 

 

 

 

 

 

 

 

 

 

 

 

 

 

 

 

 

 

 

 

 

 

 

 

 

 

 

 

 

 

 

 

 

 

 

 

 

 

 

 

 

 

 

 

 

 

 

 

 

 

 

 

*이 작업은 9월29일까지 열리는 '다다다방' 전시에서도 즐길 수 있으니,

전시장에 오실 분께서는 미리 어플을 설치하고 오시면 원활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 안내

 

 

 

 

2018. 9. 14() ~ 9. 29() 10:00 ~18:00

, 17() 및 점심시간(11:30 ~ 13:00) 휴관

문화비축기지 T1 (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전시 자세히 보기 : http://bigija.tistory.com/69

 

 

 

 

 

 

 

놀다보면 탱크에 다다르는

 

다다다방

DADA D'AVANT

 

 

 

2018. 9. 14() ~ 9. 29() 10:00 ~18:00

, 17() 및 점심시간(11:30 ~ 13:00) 휴관

 

문화비축기지 T1 (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전시 선언문

 

 

만약 비기자<다다다방>에 대해 다방인 척 하는 것이다.”라고 소개한다면 어떨까. 혹은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예술인 척 하는 것이다.”

문화인 척 하는 것이다.”

놀이인 척 하는 것이다.”

교육인 척 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면.

개천가 다리 밑에서 할아버지들과 장기를 두던, 버려진 물건들로 주크박스를 만들던, 재래시장에서 아이들과 12일 캠프를 하던, 폐교 운동장에 돌과 나무로 보드게임을 만들던, 구슬을 굴리며 미술관을 탐험하던, 화장실에서 녹음한 음악으로 음반을 발표하던, 근로기준법 내용으로 카드게임을 만들던, 우주에서 날아온 질문들로 공연을 준비하던, 우유박스로 공기청정기를 만들던, 숲속에서 오락실을 열던, 헛짓거리의 가치와 의미를 연구하던 비기자다다다방을 연다면, 그들이 진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나마 예술가라고 불리지만 미학이나 비평의 시선으로부터는 저만치 튕겨져 나가있는 비기자가 그동안 만든 온갖 것들을 다다다다 모아두고 질문을 던진다.

많은 것이 담겨있어 보이는 방 안에 만약 의미가 없다면? 혹은 어떤 의미가 생기기 전이라면?”

제목에는 다방이라고 해놓고 다방인 척 하는 것이라 하고, 심지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비기자는 관객에게 작품과 관련된 구체적인 행위들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것은 친절한 은유이자 자세한 함정이다. 결국 참여의 범위와 방식은 개별 우주 같은 관객들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있을 것 같은 방 안에서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의미를 찾아보는 건 그래서 각자의 몫이다.

그 순간 비기자가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힌트는 다음 세 가지이다.

 

1. 필요한 건 동전보다 용기

2.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의미보다 재미를 발견하는 쪽으로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3. 헛짓거리 만만세





 ※놀다보면 탱크에 다다르는 "다다다방"


“다다다방”은 "DADA D’avant"를 그대로 음독한 것이다. "DADA"는 서양미술사에서 1, 2차 세계대전 사이, 스위스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으로 난장과 선언 등 퍼포먼스와 같은 요소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개념 미술의 창시가 되는 운동이다. 

"DADA"란 본래 프랑스어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것은 "dadaism(다다이즘)"의 본질에 뿌리를 둔 ‘무의미함의 의미’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D’avant는" 불어로 "전(前)의, 먼저의=précédent”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본 전시는 '무의미함의 의미, 그보다 앞의' 무엇들을 담아냈다. 또한 놀이, 장난을 추구했던 다다이즘의 정신을 따르며, 누구나 친숙한 장소로 인식하는 '다방'을 공간 콘셉트로 활용했다. 이에 따라 "다다다방(DADA D’avant)"이라는 용어는 중의적이고 유희적으로 사용되었다. 


 

 

 

주최 / 서울시, 문화비축기지

주관 / 비기자

 

 

 

기획 / 최선영

디렉터 / 이재환

컴퓨터 프로그래밍 / 러플

기획보조 / 김예원

진행 / 조동광

협력 / 손한샘

그래픽 디자인 및 일러스트 / wishgraphy

 

 

사진 제공 / 문화비축기지

 

 

 

 

 

 

 

 

 

 

 

 

 

 

 

 

 

 

 

 

 

 

 

 

 

 

 

 

 

 

 

 

 

 

 

 

 

 

 

 

 

 

 

 

 

 

 

 

 

 

 

 

 

 

 

 

 

 

 

 

 

 

 

 

 

 

 

 

 

 

 

 

 

 

 

 

 

 

 

 

 

 

 

 

 

 

 

슈퍼마리오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비기자가 입주해있는 경기상상캠퍼스의 보안실 간판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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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으로 중고가구와 자동차에어컨 필터를 이용해 공기청정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오렌지껍질와 피톤치드를 올려넣거나

주변에 공기정화 식물을 두어 추가적인 효과를 실험해보았습니다.

 

 

 

 

 

 

 

 

 

 

 

이후 더 가볍고 일상적인 소재를 생각하다가

우유박스를 이용한 공기청정기를 <숨정화기>라는 이름으로 제작하였고

공식 프로젝트로 활동을 확장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워크숍을 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숨정화기>를 제작하였습니다.

 

*공기청정기 만들기 워크숍 참여안내 : http://bigija.tistory.com/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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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상상캠퍼스, 뜻뜻네트워크와 공동기획하여 경기상상캠퍼스 야외 및 실내 공간에서 대규모 지역문화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4-10월 총 7회 61,736명의 일반인이 참여했습니다.

파이프 미로를 체험하는 포레놀이터, 청년창업가들의 작품을 전시 및 판매하는 포레아트샵, 경기상상캠퍼스 입주팀들의 활동을 체험프로그램으로 소개하는 뚝딱동산, 비기자 제작 오락기를 일반인과 함께 하는 숲속오락실 등을 전담 기획 및 진행하였습니다.

 

- 주최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 주관 : 경기상상캠퍼스, 뜻뜻네트워크, 비기자

 

*숲속장터, 포레사운드 운영, 포레놀이터 미로 제작 : 뜻뜻네트워크

*포레바운드, 포레수영장 운영, 포레놀이터 운영 협력 : 비엔아이스포에듀

 

 

 

6월 행사 포스터

 

 

 

*사진 촬영 : 양승욱

 

 

 

 

 

 

 

 

 

 

 

 

 

 

 

 

 

 

 

 

 

 

 

 

 

 

 

 

 

 

 

 

 

 

 

 

 

 

 

 

 

 

 

 

 

 

 

 

 

 

 

 

 

 

 

 

 

 

 

 

 

 

 

 

 

 

 

 

 

 

 

 

 

 

수원시평생학습관 오픈데이 축제 활짝에서 열린 <모두의 놀이터> 축제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터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였습니다. 학습관 내 거북이공방에서 기획, 제작한 놀이터 구조물을 기반으로 지역주민이 다양한 놀이를 시도할 수 있는 연결점을 마련하였습니다.

 

 

 

 

 

23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1. 어른들을 위한 놀이 관찰 워크숍 <보이지 않던 시간>

-참여자들과 놀이 관찰의 경험여부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놀이를 관찰하는 것과 사람을 관찰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놀이/사람을 관찰할 때 감각, 행위, 관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눠본다.

-놀이터에서 노는 사람들을 관찰해본다.

-‘모조리 관찰하기의 방식으로 관찰한 것을 모두 기록해본다.

-기록한 것들을 공유하며 관찰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관찰을 통해 발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놀이터 디자인에 필요한 요소를 도출해본다.

 

 

 

 

 

 

 

 

 

 

 

 

 

 

 

 

 

 

2. 모두를 위한 놀이 연결 프로그램 <나의 놀이를 초대합니다>

 

-놀이터에 각자의 놀잇감을 가지고 오도록 홍보를 하여 지역주민들이 익숙한 물건이나 장난감 등을 가지고 놀이터에 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비기자 멤버들은 전문적인 예술가보다, 동네에서 혼자 잘 노는 아이 같은 역할로 참여한다.

-참여자가 오면 놀이를 함께 해본다.

-결과물을 남기기보다 놀이 자체를 즐기도록 한다.

-현장은 일러스트로 기록한다.

 

 

 

 

 

 

 

 

 

 

 

 

 

 

 

 

 

 

 

 

 

3. 놀이를 통한 공간탐색 프로그램 <딴짓을 위한 공간찾기>

-참여자들과 모두의 연구소에 모인다.

-참여자들이 개별적으로 20분 동안 자유롭게 공간을 탐색한다. 각자의 딴짓공간을 찾는다.

-각자 찾은 공간에서 딴짓도구를 이용해 딴짓을 해보며 딴짓하기에 얼마나 좋은지 20분간 실험해본다.

-참여자들은 다시 모두의연구소에 모인다.

-참여자들은 각자의 딴짓공간에서 느꼈던 것들, 했던 것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딴짓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딴짓공간"에 비밀스런 안내판을 설치하고 활동을 마무리한다.

 

 

 

 

 

 

 

 

 

 

 

 

 

 

 

 

 

 

 

 

 

 

 

 

 

 

 

 

 

 

고양시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진행된 어린이체험전시에서 그림자놀이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제작, 발표하였습니다.

시각예술작가들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그림자 놀이키트와 축광페인트를 이용해 그림의 잔상이 남는 그림자놀이존을 구성하였습니다.

축광페인트가 칠해진 벽면에 관객이 조명을 비추어 그림자를 만들고 10초 후에 조명을 끄면 그 그림자의 잔상이 벽면에 남겨졌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방식의 작품입니다.

18천명의 관객이  참여하였습니다.

 

*일러스트 및 그림자놀이도구 제작 협력 : 40000km

 

(작품사진 제공 : 고양문화재단)

 

 

 

 

 

 

 

 

 

 

 

 

 

 

 

 

 

 

 

 

 

 

 

 

 

 

 

 

 

 

 

 

 

 

 

 

 

 

 

 

 

 

 

*인스타그램에서 캡쳐한 관객들의 사진

 

 

 

 

 

 

 

 

 

 

 

 

 

 

 

 

 

오합지졸 헛짓거리 만만만세 레지던시 <짓거리 극장>

 

 

 

 

 

-기획 : 창작그룹 비기자

-후원 : 수원시, 수원문화재단

-레지던시 기간 : 2018.6.5.-6.9

-장소 : 경기상상캠퍼스 일대

-공연 일시 및 장소 : 2018.6.9. 오후6시 경기상상캠퍼스 공작1967 라이브홀

-참여예술가() : 구은정, 러플, 몽식, 비기자, 손한샘, 솜수프, 은가비, 조동광, 티들랜드

 

 

 

미술, 디자인, 공예, 퍼포먼스, 게임, 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 10명이 경기상상캠퍼스(이하 캠퍼스’)의 공간적, 감각적 특성을 바탕으로 각자의 창작을 실험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짓거리극장에 참여했습니다. 5일간 진행된 이번 레지던시에서 기획팀 비기자는 참여예술가들과 두려움이라는 주제로 공동작업을 진행하며 창작적 영감을 함께 찾아갔습니다. , 공터, 빈 건물이 많은 캠퍼스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주제와 스토리를 탐색하는 실험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레지던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레지던시 과정

 

65

-오리엔테이션

-경기상상캠퍼스 공간 탐색

 

 

 

66

-예술워크숍 01 : 기존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강제적으로 가져보기

-예술워크숍 02 : 개인의 두려움을 시각화한 영화 바바둑관람 후 의견 나누기

 

 

 

67

-예술워크숍 03 :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쌓기. 목적이나 목표 없이 무언가를 해보는 과정의 즐거움 찾기

-예술워크숍 04 : 자신의 운을 실험해보는 주사위 게임 참여하기

-예술워크숍 05 : 핸드폰 어플리케이션과 큐알코드를 이용한 게임 참여하기

 

 

 

 

 

 

 

 

 

68

-예술워크숍 06 : 기존 물건의 다른 용도를 상상해보기

-예술워크숍 07 :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궁금한 물건 찾아보기

-예술워크숍 08 : 실을 이용해 관계를 시각화하는 설치작업 시도하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예술가들이 각자 시도했던 창작 실험들은 다원예술 형태의 공연으로 69일 경기상상캠퍼스 공작1967 라이브홀에서 관객들에게 소개되었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은 예술가들이 제안하는 짓거리에 참여하며 두려움에 대한 생각의 범위를 확장해보았다. 관객들은 종이컵을 쌓아서 각자의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주사위 놀이를 통해 본인의 두려움을 게임의 요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예술가와 이상한 카드를 펼치고 두려움에 대해서 1:1 대화를 하기도 하고 어떤 물건을 밟거나 때리며 두려움을 마주하는 과정을 행위적으로 풀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과 큐알코드를 이용한 게임에 참여하며 예술가가 해석한 두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비기자는, 목적도 이유도 분명하지 않은 짓거리를 해보기까지, 사실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참여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연 사진 촬영 : 양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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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4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보세요^^

 

http://ggarte.ggcf.kr/?p=23

 

 

 

 

 

 

24호 곁봄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 



10년 전에 나와 함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진행했던 사람들은 왜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러 떠났을까. 그런 생각을 오랜 시간 해왔었다.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을 확인할수록 그 문제의 양상과 심각성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정말이지 기적처럼) 그 문제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들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까.

소설 같은 상상을 해보다가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라는 곳이 누군가가 떠나고 돌아오는 고정된 범위로 전제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만나거나 접했던 사람과 사건들 덕분에. 당장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던 방과후교실 미술수업에서, 5살 조카와의 1:1 방문미술에서, 동네 엄마들과의 놀이터 수다 모임에서,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비영리 예술단체에서 만난 장애인 창작자들과의 워크숍에서, 혹은 예술도 교육도 목표가 아닌 어떤 공공프로젝트에서, 그리고 혼자만의 표현 언어를 실험하고 있는 예술가의 미련한 시간 속에서. 조금 낯설거나 너무 익숙한 그 현장들이 반드시 문화예술교육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해석되거나 참조될 만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려는 의지가 그 안에서 작동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 예술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넓은 의미의 문화예술교육을 마음껏 상상해 보았을까. 이번 [지지봄봄]을 기획하면서 그 상상의 범위와 방식을 더욱 산만하게 펼쳐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원사업만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전제하지 않고 더 나아가, ‘에이, 그건 진짜 문화예술교육이 아니지. 그건 그냥 사는 거지.’ 혹은 ‘그건 예술이지’ 하는 범위까지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그 관심이 돌아올 길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멀리멀리 뻗어 나가 우리가 새로운 장소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기존의 사업 범위에서든 새로운 영역에서든 우리가 기대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불안해하지 말자.”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이 길을 잃었다는 많은 진단 속에 우리는 이미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틀 안에서 길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길을 더 잃을 수 있는 ‘가능성’ 안에 있다. 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우리 스스로 불안해한다면 우리는 다시 위태롭다는 교육‘사업’의 구조 안에서만 답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여기 이렇게 문제가 많다는데 답은 저 멀리에도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같이 더 멀리까지 가보자고 손을 내밀어본다.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 손을 잡아주길 기대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24호 [지지봄봄]에서는, 복잡한 함수에서 변수인 x값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이번 호의 주제가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인 이유이다. 정책과 제도와 프로그램을 함수에서의 ‘공식’으로 비유한다면, 그것의 기획이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논의들은 이미 많이 있었으니 그 공식의 변수로 작용하는 x값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교육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 외에 더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고민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하고자 한다. 그들의 활동범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업 범위 안에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문제의식과 의지가 우리의 고민을 확장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원고를 써주신 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 창작활동을 하면서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몇 차례 참여했었으나 다시 교육사업을 할지 고민하는 사람
-교육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지만 교육의 지속 자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몇 해 관찰하고 촬영했던 사람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려는 초등학교에서 방과후강사를 하고 있는 사람
-문화예술교육에는 현재 전혀 참여하지 않으며 개인 창작을 하고 있는 사람
-개인 창작의 맥락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으나 외부에서 그것을 교육활동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시람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관련 기관 실무자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모
-기업이 기획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강사
-현재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해보고 있는 단체 관계자
-문화예술교육 관련 제도나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끔 문화예술교육 관련 활동에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보조강사 역할을 하는 사람 
-기존의 방식과 다른 문화예술교육 관련 정책이나 지원체계를 상상하고 있는 사람 등

그리고 위의 필자들이 쓴 글 속에는 현장과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문화예술교육을 언급할 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떠올리기보다 다음 두 그룹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곤 한다. 첫째, 교육대상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교육참여자’. 둘째, 교육참여자에게 잘 맞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 실현해야 할 강사/기획자. 그러나 교육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더 많은 입장과 사람들이 그 안에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부모의 요구나 가치관에 따라 교육참여자의 참여 동기가 결정되기도 하고, 교육실무자의 관심도나 교육철학에 따라 프로그램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고, 강사와 친한 예술가 동료들의 작업이 교육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교육보조자의 성향에 따라 활동의 범위나 가능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연결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은 공식화된 개념의 예술이나 교육의 영역보다는 개별 주체들의 ‘삶’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강사의 생계 문제나 정서적인 부분이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것은 삶의 안정이나 시스템의 개선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의 고민을 토대로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 삶’, 더 나아가 ‘삶을 담을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모색을 기대한다. 교육사업과 같은 기존의 유형으로부터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문화예술교육을 다양하게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뻗어나가는 생각들을 따라 질문들을 품다보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들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안에서는 삶과 연결된 교육을 하기 힘든 게 아닐까.’ 혹은 ‘완전히 다른 판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슬금슬금 불안해질 수 있다. ‘그래도 교육사업은 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무기력함과 허무함과 불안감과 회의감까지 교차할 바로 그때, 나는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의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궁금함이 펼쳐지고 있는 자리가 이전과 얼마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더 넓어진 영역, 장소, 범위, 규모, 방식, 시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고민할 수 있는 것은 교육사업을 할지 말지, 프로그램을 몇 차시로 짤지, 어떤 장르를 할지 차원의 것이 아닐 것이다. 고민의 자리가 옮겨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멈추고 싶거나 많은 걸 더 해보고 싶은 어떤 의지가 먼저 작동할 수도 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지원했을 때 선정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교육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동료에게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일상에 대해 묻게 될지도 모른다. 본인의 현재를 달래기 위해서 깊은 낮잠을 자거나 느린 산책을 할지도 모른다.

그랬던 순간이 있었을까? 충분히?

당연히 웹진의 글 몇 편이 그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영역이나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의 자리를 확장해보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나의 교육주제나 철학으로부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로부터 그 질문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개개인의 고민이 타인의 입장이나 삶의 무게에 따라 조금씩 흔들릴 때, 그것과 연결된 사람들의 현재가 서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다. 각자의 고민이나 시도가 공식적이거나 일반적인 틀에서 너무 벗어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불리는 것을 해보고 있는 이유는, 그 틀을 더욱 잘 다듬고 공고히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틀이 담아내지 못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기 위함이 아닐까.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비전을 ‘말하는’ 시간을 잠시 접고 논의의 장에 포함되지 못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최선영
예술가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현재와 미래의 친구들 모여라
연말 맞춤형 퍼포먼스 <모여서 비기자>

 

 

2017.12.20 저녁7시
인디아트홀 공 (서울 영등포구 선유서로30길 30)

 

 

 

 

 

 

 

어떤 주제를 다루는 예술가의 입장 말고, 오늘도 이 지경으로 살고 내일도 이 지경으로 살아보는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봤을 때, 우리는 각자 무엇과 무엇이 비기는 것에 관심이 있을까요. 혹은 전혀 관심이 없을까요.
비기는 게 대체 뭔데? 궁금하다면 한번 모여 봅시다. 그리고 과연 뭘 하려는 것인지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는 그 현장에 대해, 경계심 대신 궁금함을 가져볼 수 있다면, “모여서 비기자”.
비기자는 적당한 소리와 짓거리를 준비했습니다.

 

 

 

* ‘비기자’가 요즘 만들고 있는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 비길 듯 말 듯한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 참여자 : 모여버린 ‘비기자’들

 

 

_이 작업은 ‘인디아트홀 공’에서 기획한 <Move Move Move Festival :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이 됐나>의 일부로 진행되었습니다.
_이 작업은 공연인 것 같기도 하고 전시 같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은 <비기자>의 최근 활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견고한 이름의 곁을 맴도는

 

 

 

우주에서 날아온 보따리

라고 하니 조금 궁금하지 않나요?

차별’, ‘인권’, ‘사회문제’, ‘환경’, ‘인문학이라는 이름보다 더 말입니다.

 

지난 해 <비기자>는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우주보따리라는 공연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차별’, ‘인권’, ‘사회문제’, ‘환경’, ‘인문학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다른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우주’, 혹은 우주보따리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직설적으로 해도 전달이 될까 말까 하는데 말입니다.

이전에는 차별’, ‘인권’, ‘사회문제’, ‘환경’,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움찔움찔 놀라기도 하고 헛웃음을 보이며 뒷걸음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건 우리의 관심사 혹은 문제아니라며 말입니다.

그래서 말걸기의 방식을 여러모로 고민해보았습니다. 같이 놀기, 먹기, 움직이기 등의 방식으로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같이할 그 무언가를 어쨌든 소개하고 제안해야했습니다. 그때마다 원래 우리가 부르던 차별’, ‘인권’, ‘사회문제’, ‘환경’, ‘인문학같은 이름을 슬며시 빼고 다른 말들을 선택하거나 그것을 상상하게 할 짓거리들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우주가 등장하기도 했고 다른 활동들도 여러 표현들로 소개되었습니다. 청년들의 복지를 말하기 위해 상상캠퍼스에 흥 오르니 짓거리가 절로 난다라는 긴 이름을 가져오기도 하고 미세먼지 문제를 말하기 위해 숨정화기라는 이상한 말을 지어내기도 했습니다. 스펙만 강조하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자 짓거리 투어라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견고한 예술의 아우라를 깨기 위해 모여서 비기자라는 연말맞춤형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주보따리' 공연 현장. 공연장에 설치되어있던 그림 중에는 비장애인 예술가의 작품과 장애인 초,중학생의 작품이 섞여 있었습니다.

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볼지, 혹은 그림마다의 다른점을 얼마나 부각시켜 볼지는 관객의 몫이었으며 공연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진_우에타 지로)

 

 

하지만 기존의 이름들을 대신하는 그 표현들은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한 말걸기의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낯선 표현들을 의미적으로 채울 수 있는 짓거리들을 상상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이미 우리 삶에서 지속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이름이나 의미를 찾지 못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어떤 활동 혹은 행위였습니다. <비기자>가 그것을 어떤 표현으로 불러봤던 것은 그것을 보다 일상적인 인식의 차원으로 소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행위들은 자체로 이미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별’, ‘인권’, ‘사회문제’, ‘환경’, ‘인문학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 견고한 이름의 테두리 때문에 우리의 일상과 가까워지기 힘들고, 낯선 행위들은 모호한 이름도 갖추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의 인식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며, <비기자>는 후자의 그것을 잠시 사윳이라고 이름 붙여 이 글에서나마 불러보려 합니다.

 

당신이 알고 있거나 하고 있는 사윳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왜 더 익숙하거나 대중적인 이름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사윳이 무엇일지 전혀 상상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비기자>는 올해도 원래 하고 있던 사윳에 이런 저런 이름 혹은 표현을 붙여 그것의 가치나 재미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윳을 표현하는 방식이 기획이자 창작이라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그것은 사윳이 각자의 힘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순간들입니다. 미련하고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애매하고 쓸모를 알 수 없는 그 순간들 말입니다. <비기자>는 획기적인 사윳을 위해 그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양합니다. 그보다는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기존의 사윳을 찾고 응원하고, 좀 더 오지랖을 떨어서 널리 퍼트리기도 하며 활동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는 사윳이 있습니까?”

그것이 정확히 뭐냐고 다시 묻고 싶으시다면, 그 질문은 스스로에게 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기자>는 고작 그동안 봐왔던 것들에 사윳이라는 임시적 이름을 붙이는 정도로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힌트를 드리자면, 반대적 질문을 던져볼 수는 있을 것 같군요.

 

당신에게는 사윳이 없습니까?”

이 질문은, 왜 당신의 삶이 모두 정확한 이름과 표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그 이름들은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말입니다. 타인이나 사회가 일컫는 이름 안에서만 당신의 삶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힘이 나는 일일지 궁금합니다.

 

 

2018.2.24.

 

창작그룹 <비기자>

 

 

 

*이 글은 경기상상캠퍼스 청년 입주단체들과 함께 했던 <상상캠퍼스에 흥 오르니 짓거리가 절로 난다> 프로젝트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은 프로젝트 자료집인 "짓거리 연구 보고서"에 담겨있습니다.

*자료집 문의 및 프로젝트 자세히 보기 : http://bigija.tistory.com/51

 

 

 

속도를 늦추는 질문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각자가 살아내기 바쁩니다. 오늘 밀려온 일감을 해치우고 며칠 후 마감인 기획서를 쓰고 몇 달 후 다가올 평가를 준비하고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생활의 변화를 대비해야 하니까요. 몇 개월, 몇 년, 시작이 기억나지 않는 바쁜 일상이 나를 삼켜버리고 나면 통장 잔고가 조금씩 채워지고 활동 기회가 이어져도 문득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근데 바로 그때쯤 우리에겐 조금 다른 에너지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엄청나게 바쁜데 딴청을 피울 여유가 생기고 밤을 새며 일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예전부터 미뤄두었던 수다 모임을 추진합니다. 그 기묘한 에너지에 당신은 어떤 이름을 붙이시겠습니까.

라는 발전기를 돌리고 성과라는 결과물을 생산해내지도 못하는 그 에너지에게 말입니다. 짓거리 연구원들은 그것의 이름을 찾는 대신 일단 그것의 속성을 연구해보았습니다. 그것의 필요성도 실험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에너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일단 몇 가지 짓거리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상상캠퍼스라는 곳에서 몇 개월의 활동을 이어갈 때쯤, 함께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생기고 같이 놀기도 좋아졌을 때쯤에 말입니다.

우리가 했던 짓거리들의 과정은 앞에 보고서에 자세하게 담겨있습니다. <사례품앗이>를 통해 서로의 현장에 품앗이를 해보기도 하고 <문화복지랩>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서나 고민을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나 성과가 있을까요? 그전에 질문을 조금 다르게, 그리고 길게 던져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어떤 측면에서 잘 살기도 하지만 힘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당신도, 친구들도 이 세계의 시스템과 규칙을 단번에 바꿀 수 없으며 그런 현실을 모른 척 해도 될 만큼의 엄청난 재화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각자 하고픈 것을 펼칠 사회적 기회가 많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당장 몇 달 후, 몇 년 후에 당신과 친구들은 생활이 안정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누구의 요구 혹은 기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래전부터 그렇게 느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피차 서로 가진 것도 없는 지금 말입니다.”

 

이 질문에 니가 하는 거 나도 같이 해볼게했던 게 <사례품앗이>입니다. 사실 각자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없지만 친구에게는 어떤 기회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친구의 활동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또한 이 질문에 같이 오락기나 두들기자고 했던 게 <문화복지랩>입니다.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팔아보자고 했던 것도,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고민 상담을 시작했던 것도. 오락기 속 동전들을 긁어모아 누군가의 복지를 만들어냈던 것도.

이 얼마나 미련하고 부질없는 짓거리란 말입니까. 저렇게도 길고 답답한 질문에 이렇게도 헛도는 대답을 하다니.

 

 

<문화복지랩> 12월 문화복지주간에 그루버들과 함께 먹은 저녁밥상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사업 기회를 마련해주거나 현금 다발을 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오늘 품앗이 하는 날혹은 복지, 복지, 복지가 최고라며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흥이 나고 있었습니다. <문화복지랩>에서 고작 3,000원쯤 되는 복지 혜택 쿠폰을 받았을 때에도, 어디다 팔아도 10원도 받을 수 없는 문화복지 트로피를 작업실 간판에 매달 때에도 우리는 신나있었습니다. 사실 이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에도 이런 현상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짓거리는 짓거리일 뿐 일거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각자 살아내야 할 테고 이런 짓거리는 삶의 작은 이벤트 정도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린 여전히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고 어느 순간에는 이런 짓거리들을 잊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의 생활은 이 짓거리들로 인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여기서 긴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런 걸 해봤거나 해보려 했던 시간은 있었을까요?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실제로 현실적 도움을 타인에게 줄 수도 없을 때. 우리는 효과적이지 않아 보이는 시도라도 해봤을까요? 혹은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나요? 마음껏 딴짓하며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도록 하는. 혹은 나의 현재가 다급하긴 하지만 옆 사람의 고민에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는. 그렇다면 지금의 짓거리는 나중에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잊혀 질까요? 혹은 이것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그 기억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제 와서 저의 다른 기억을 결코 비장하지 않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고3 때 모의고사를 앞두고 아파트 계단에서 목을 멘 옆 반 친구는 이름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학교는 며칠 동안 뒤숭숭했고 학생들 중 몇몇은 그 친구 때문에 모의고사가 취소되었다고 푸념을 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죽고 싶을 만큼 견디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아무도 되짚어 주지 않았습니다. 교실은 굴러갔고 수능은 다가왔고 우리는 그런 채로 흘러갔습니다. 그때와 같은 속도로 삶이 흘러가는 요즘, 자주 그 친구를 떠올립니다. 누군가 그때 다급한 시험을 뒤로 하고 그 친구와 부질없는 짓거리를 하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린 누군가에게 큰 일이 나야 그제서야 그곳을 바라봅니다. 이미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우리 옆에 있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현재를 같이 보내자고 말을 걸어왔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요즘 청년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청년문제 라는 말은 고유명사처럼 뉴스를 도배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 고유명사를 매일 떠올립니다. 하지만 옆 사람의 절박한 신호는 쉽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우린 각자도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그런 걸 해 볼만한 여유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정말 없을까요?”

 

이번 질문은 짧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길고 긴 대답을 기다립니다. 제도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답도 기다립니다. 오래된 기다림이 더 이상 지루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일단 여기에서 오늘도 어떤 짓거리를 해보고 있겠습니다.

 

*본 원고는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3호에 소개된,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채효정)에 대한 서평입니다.

(웹진 바로가기 : http://gbom.net/344)

 

 

 

 

사람을 따라갈 때 보이는 좌표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이 글에서는 ‘중심’이라고 잠시 이름을 붙여볼까 한다. 강사, 기획자, 예술가, 실무자, 보조인력, 활동가 등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개별 사람들에게. 그 ‘중심’이 본래의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로 쓰일지 혹은 다른 단어로 대체되어 쓰여도 무방할지 고민해 보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비기자 진행, 문화예술교육 현장



 만약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그 ‘잘’은 ‘효과적으로’라는 의미로 일반화되어 쓰이곤 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효과가 있어야 할까. 교육사업 기획서 후반부에는 ‘기대효과’를 최소 3가지씩 꼬박꼬박 적어 넣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효과를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이나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얼마나 충분하고 명확한가. 기대효과를 내기 위한 현실적 지원이나 활용 가능한 자원은 누가, 어떻게, 얼마나 확보하고 지원해주고 있는가. 설마 몇 개월짜리 지원사업, 불안정한 고용상태, 실험보다는 실행이 다급한 상황 안에서 사람도 삶도 심지어 사회도 바뀌길 바라는 것은 아닐 테지. 설마. 

 혹은 문화예술교육의 효과를 핑계로 사회나 조직이, 또는 누군가가 ‘중심’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교육은 같은 배를 끌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도 충분히 살피지 못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어떤 의미나 목적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화예술이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는 학문이 되니, 그 ‘무언가’와 ‘가르치는 목적’과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만 강조되어 그것을 행하는 ‘중심’들이 소진되고 있다. 문화예술은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논리 안에서 이 ‘중심’들의 삶은 더더욱 소외된다. 좀 덜 임금을 받아도, 좀 덜 먹어도, 좀 더 일해도, 좀 덜 쉬어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 강사가 쓴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채효정)’도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 책은 (교육이든 삶의 현장이든) 어떤 활동의 주체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과, 그 조직이 표방하는 주제 안에서 소진, 소외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대학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대학이 누구를 위해, 누구와 함께 존재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단지 대학의 역할을 강조,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대학을 굴러가게 하는 모든 이들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돌아와 ‘중심’들은 교육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관념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이 질문을 좀 더 긴 예시로 풀어보자. 

 “지역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사업에 참여하는 A는 2시간 수업에 44,000원의 강사료를 받는 보조강사이자 예술가이다. 1년간 정부지원을 받는 이 교육사업은 총 20회 진행되며 내년에 또 사업이 선정될지는 그때까지 알 수 없다. 
 A는 수업을 전반적으로 기획하지는 않지만, 재료를 준비하거나 자세한 활동내용을 계획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한 달에 1회 강사 회의에도 참여한다. 초등학생 10여 명과 진행하는 수업 안에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뭐라도 좀 같이 해보자고 다독인다. 
 수업이 진행되는 장소는 A가 사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자동차가 없는 A는 매회 무거운 수업 재료를 들고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간다. 수업이 끝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먹을 때에는 밥 먹는 모습이나 회의하는 사진을 따로 촬영하고 집에 돌아가 회의록을 작성한 후 정산보고서를 위해 영수증을 정리한다.”

 A에 대해 함께 질문을 던져보자. 

하나. A가 2시간 강사료로 44,000원을 받는 것은 합당할까.
둘. A는 보조강사 역할을 몇 건 정도 동시에 해내야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셋. 만약 A가 5건의 보조강사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는 그 역할에 모두 충실할 수 있을까.
넷. A가 교육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지 아닌지는 누구, 무엇에게 영향을 줄까.
다섯. A는 왜 수업을 위한 이동, 식사, 휴식을 알아서 해내거나 증명해야 할까.
여섯. A가 수업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은 수업 재료 준비와 수업 보조가 전부일까.
일곱. A는 내년에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믿거나 기대할 수 있을까.
여덟. A는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자발적 동기를 가질 수 있을까.
아홉. A는 현재 행복할까.
열. A는 자신이 문화예술교육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이쯤에서 나에 대해 털어놓자면 난 A보다는 조금 더 강사료를 받는 주강사의 역할을 하며 10년째 살아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 창작을 하는 예술가이며 운 좋게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문화예술교육이나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기획자이자 강사이다. 출산 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때는 동네 학교에서 방과후 강사를 몇 년 하기도 했다.

 이런 나의 입장으로 위의 10가지 질문에 답변하자면 답변과 답변 사이에 한숨만 쏟아진다. 압축적으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그건 분명하게 ‘아니다’이다. 그리고 이제는 대부분 사라진, 어디선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중심’들의 답변도 어느 정도 상상이 된다고 감히 말해본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해직한 강사가 받았던 대우나 통보가 구체적으로 ‘중심’들이 받는 그것과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그러한 상황을 발생시키는 구조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목적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이 담론이거나 효과이거나 성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손에 잡히지도 않고 숨을 헐떡대지도 않고 발을 동동 구르지도 않고 힘들다고 푸념하지도 않는 것들. 

 그러나 사람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면 피곤해지기 일쑤다. 이 사람 저 사람 사정 다 봐줄 수 없다. 사정이 다 다르니 그거 따라가다가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어디로’를 정할 필요 없이 ‘사람 먼저’라고 하다간 요즘 같은 세상에 미련하거나 어리석다는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언제나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생계가 불안정하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감정에 치우치기도 하고, 능력이 좀 부족하기도 하고, 일의 효과적 진행보다 마음이 쓰이는 것을 먼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서로를 살피는 과정 안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삶에 대한 철학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것은 문화도 되고 예술도 되고 교육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문화예술교육은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보다 어떤 주제로 교육을 ‘한다’라는 것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연속되면 그 주제가 담고 있던 문제의식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한다’, ‘안 한다’로 이분법화 되어 타자의 정치나 사회적 담론 안에서 간편하게 소모된다.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전공 교육의 특수성과 전문성 이전에 먼저 인간의 삶을 배우고 읽어야 한다’는 보편적 교육의 이념을 담고 출발했으나 현장에서는 그 이념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사람들을 모두 주인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과 같이. 교과 개편을 이유로 100여 개의 강좌가 정리되어 수많은 강사가 갑자기 강의의 기회를 잃은 것처럼. 그럼에도 후마니타스칼리지가 보편적 교육의 가치를 표방 ‘한다’는 것은 마치 어떤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처럼 변함이 없듯이. ‘하고 있다’라고 하면 실제로는 어떻든지 간에 그 자체로 우선적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어떤 주제를 ‘한다’고 스스로 말하기 전에, 그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사람을 챙기고 활동을 채우는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중심’들이 있다. 그들은 이따금 그 문제의식이 뒤늦게 만들어낸 공동의 테두리 안에서도 밀려나곤 한다. 어느새 지혜란, 각자의 문제의식을 도드라지게 드러내지 않으며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자리 확보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쨌든 버텨내라’는 말을 애써 길게 쓰자면 말이다.

 그만큼 단지 버티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A의 삶을 보라. 수많은 A들, ‘중심’들. 많은 삶의 영역들이 그러하지만,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경향 때문에 더더욱 ‘중심’들에게 힘든 장소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정책이나 제도를 결정할 때, 예산지침이나 행정절차를 강조할 때, 현장이나 사업을 평가할 때, 교육의 의미를 논의할 때, 기획서를 쓸 때, 수업을 진행할 때, 그리고 교육현장과 직접 연결되어있다고 여겨지기 힘들지만 분명 연결된 삶의 매 순간.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중심’들을 위해서일까. 

 마지막으로 내 주변에 분명하게 있는 ‘중심’들의 본래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나열해본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 불리거나 여겨지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심지어 교육의 주제를 증명해내는 것보다 먼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했고’ 우수한 사업들을 ‘했다’는 답변은 정중히 사양한다. 이미 많은 ‘중심’들이 현장을 떠나거나 튕겨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지금부터 기억하자. 사람을 기억하고 챙기는 것에서 우리는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창작그룹 <비기자>

 

 

 


<비기자>는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하지만 비기자라고 말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비기는 것을 해내자고 외치는 동시에, 우리 모두 비길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는 것, 심지어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에서 비기자의 활동 의미가 조금씩 드러난다.

승패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문화예술은 그 과정에서 훌륭한 실천 장치가 된다.

 


 

*홈페이지 : http://bigija.tistory.com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drawparty/

*인스타그램 계정 : https://www.instagram.com/bigija_777/

짓거리 연구 보고서

 

 

이 책은 2017년 9월부터 2018년 1월까지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입주 청년들과 함께 진행한

<상상캠퍼스에 흥 오르니 짓거리가 절로 난다>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각자의 사업과 생활을 챙기느라 바쁜 청년들의 현재 상황을 공감하며 시도했던 여러 짓거리들에 관한 활동입니다.

그 활동은 크게 짓거리를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짓거리는 1)문화복지랩과 2)사례품앗이로 기획되었습니다.

책에는 그 내용과 참여자 설문조사, 연구원의 기록 등이 담겨있습니다.

 

비기자는 청년문화, 청년정책, 입주공간 프로그램 등과 관련하여

이 책이 참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념

 

짓거리 실험

 

짓거리 연구

내용

사례품앗이 : 상상캠퍼스 그루버들의 문화예술 콘텐츠/작업을 함께 체험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무형의 나눔 및 사례생산 활동 (10회 진행)

사례품앗이실험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연구

문화복지랩 : 상상캠퍼스 그루버들의 보이지 않는 정서와 고민들을 상시로 나누는 랩실 (상시 진행)

문화복지랩실험을 통한 생활 속 연대가능성 연구

결과물

-공개 스터디 1

-사례품앗이, 문화복지랩 운영 매뉴얼

-연구보고서

활용 계획

-청년 커뮤니티 공간이나 입주공간에서 참고 가능한 상호적 컨설팅 모델 개발

-경기상상캠퍼스만의 네트워크 구축 사례 연구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메일(voslss@hanmail.net)로 문의주세요.
무료배포이며 착불로 보내드립니다.

 

 

*책자 내용는 아래 링크를 통해 pdf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eFd-FxplMxDlk8PpUhC_kFb8NbQVE7Om/view?usp=sharing

 

 

*디자인 : 40000km

 

 

_62페이지

_칼라인쇄

_A5 사이즈

_2018월 1월 발간

 

 

 

 

 

 

 

 

 

 

 

 

 

 

 

 

 

미세먼지가 뭔지

 

 

이 책은 2017년 7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공기청정기 제작 프로젝트 <숨정화기 playing Zine & Kit 제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하여 일상 속 재료로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활동을 시도하였습니.

이를 통해 메이킹 활동 자체를 삶의 대안으로 강조하기보다 개개인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을지를 메이킹 활동을 매개로 질문해 보았습니.

 

이 책에는,

우유박스를 이용해서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던 과정,

그 사이에서 만났던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에 도움이 되거나 되지 않는 자료들이 담겨있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메일(voslss@hanmail.net)로 문의주세요.
무료배포이며 착불로 보내드립니다.

 

 

 

*책자 내용는 아래 링크를 통해 pdf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q6RmJsXqD8AoBwG58GstiA09bzeAfRWv/view?usp=sharing

 

 

 

 

*디자인 : 40000km

 

 

_62페이지

_흑백인쇄

_A5 사이즈

_2017월 11월 발간

 

 

 

 

 

 

 

 

 

 

 

 

 

 

창작그룹 <비기자>는 <숨정화기 playing Zine & Kit 제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숨정화기라는 이름의 공기청정기를 만들며 미세먼지와 우리 삶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가져보았습니다. 

프로젝트 과정과  연구내용을 담은 책자 "미세먼지가 뭔지"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주세요.

voslss@hanmail.net

 

 

 

 

 

 

◇ 프로젝트 목적 및 방향

 

미세먼지가 인간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에너지를 쌓아가는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본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가능한 메이킹 활동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것은 해결책으로써의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그것과 관련한 스스로의 실천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공기청정기를 연구하고 제작함과 동시에 미세먼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주요내용

일정

내용

730~ 820

미세먼지 관련 자료 수집 및 연구

숨정화기 제작원리 연구

730~ 915

거실용 숨정화기 연구/제작

탁상용 숨정화기 연구

책자 기획

918, 1118

시민참여형 워크숍 2회 진행

91~ 1130

탁상용 숨정화기 연구/제작

책자 컨텐츠 정리 및 디자인 

1120 ~ 1130

책자 제작 및 배포

 

 

*프로젝트 진행_구은정, 이재환, 장한나, 주준석, 최선영
*사진_양승욱

*워크숍 장소_인포숍카페 '별꼴', 세운상가 코워킹 스페이스 (561호)

 

 

 

(1차 시민워크숍 현장)

 

 

 

 

 

 

 

 

 

 

 

 

 

 

 

 

*아래는 본 워크숍 진행과 관련한 비기자의 짧은 글입니다.

 

 

 

 

 

1.

우리 스스로 미세먼지의 원인을 당장 제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기자는 현재 시도 가능한 것을 해보고자 올해 초 부터 중고가구와 자동차 에어컨 필터를 이용해 공기청정기를 제작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기자는 어떤 부품을 이용해 어떤 방식으로 공기청정기를 만들지 우리만의 제작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이 작업을 매개로 여러 사람들과 우리의 고민을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2.

이러한 메이킹을 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상 속 물건을 이용하고 메이킹에서 말하는 해킹이라는 것을 하며 공기청정기를 만들면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기술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기 전에 자신이 무언가를 했음에 스스로 위안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미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원인들을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3.

우리는 사회 안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이 많은 기능을 대처해줄 거라고 믿지만 사실 공기를 정화시키는 기능은 이미 자연 안에 있습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공기정화에 도움이 되듯이 말입니다. 또한 공기 중에 분무기를 뿌린 후 수분과 함께 내려앉은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이 귀찮아서 전기를 사용해 공기청정기를 돌리려는 것은 아닐까요.

 

4.

우리가 만드는 공기청정기는 공식적인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아닙니다. 환풍기에 필터를 씌워놨기 때문에 시제품에 비해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쓰려면 누전차단 기능이 있는 멀티탭을 쓰고, 집에 사람이 있을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제작 활동을 장려합니다.

안전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제작 과정에서 물품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도 하게 되는데, 우리는 왜 제작 활동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5.

메이킹 활동은 친환경적인 물건/제품을 만드는 것일까요?

대표적인 친환경 제품 전기자동차의 경우도, 그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는 않지만, 원료인 전기를 만드는 대부분의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씩 확인하면서도 비기자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자 합니다.

 

6.

사물의 해킹을 통한 메이킹은 답일까요? 아니라면 이것은 대체 뭘까요? 우리는 왜 이거라도 해보려고 할까요? 우린 대체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제자리를 돌기만 하는 것 같은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7.

사회는 여러 가지 시대적 담론과 국가적 비젼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자발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은 생활 속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당장 미세먼지를 없앨 수도 없고, 삶의 답도 될 수 없는 작은 공기청정기를, 심지어 함께 만들어보자고 하며, 비기자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기를 놓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문화재단 <2017 서울을 바꾸는 예술:청년편 Y>에 선정된 사업입니다.

 

*본 원고는 2017 현대 생활문화 진단시리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기획의도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행사 개요

 

행 사 명 : 2017 현대 생활문화 진단 시리즈 <작지만 확실한 행복>

기 간 : 2017129, 16, 23() 2-5

장 소 : 경기상상캠퍼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

주 최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주 관 : 경기문화재단, 비기자

후 원 : 경기도

 

 

 

분명해지지 않을 시간을 향해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체험프로그램 레트로 게임진행 현장

 

 

 

 

방에 누워 뒹굴거리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습니다.’

어릴 적 문구점 앞에서 하던 추억의 오락기를 길가에서 발견하고 신나게 오락 한판을 해봅니다.’

병에 물과 꿀을 붓고 며칠 동안 마음과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이 술이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

 

이런 시간, 혹은 행위는 무엇인가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 속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꼭 무엇이어야만 하나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 꼭 그렇지는 않지요.”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무엇이 되어야만 하거나 아닌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심해서, 그냥 이것저것 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했던 것들에 이유와 필요가 붙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던 3가지 행위들은 이번 현대 생활문화 진단시리즈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우리가 해봤던 것들입니다. 생활문화를 진단해보는 3일간의 기획 행사에서 말이죠. 그래서 행사에 참여한 누군가는 , 이런 게 생활문화구나혹은 이런 건 생활문화가 아니구나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진단이라는 타이틀을 함정처럼 달고 진단하지 말자는 의도를 해내려 노력했습니다. 단지 강연이나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문화를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은 생활문화의 개념이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비밀스럽게 숨기며 힌트를 찾아보라고 권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도 생활문화에 대한 의미를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 퍼져있거나 잠재되어 있는 것, 이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 그래서 특별하게 해석해야만 하는 상황이 고민스러운 것, 그것이 이 알쏭달쏭한 생활문화의 길고 긴 부연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활문화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상상을 해보려는 이유는 있습니다. 우리 삶과 동떨어진 곳에서 환상적으로 빛나고 있는 행복이 아니라, 생활과 연결되거나 그 자체로 생활이기도 한 어떤 행복을 발견하는 데에 이 모호한 힌트들은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생활직업, 생활혁신, 생활자본, 생활공부 같은 것도 아니고 생활문화라니! 그것은, 현재의 내가 애써 성취하거나 실현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자고 입고 놀고 사는 것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무언가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른 삶 안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그 행복을 좀 어색한 형태이긴 하지만 며칠 모여서 같이 상상해보자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것이다, 저것은 이것이 아니다, 이런 분명한 구분과 판단을 할 수 없는 생활문화는 사실 의구심을 품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떤 용어의 개념을 파악하기보다 우리 삶에 대해 궁금해 할 수 있다면, 알고 싶었던 것이 더욱 모호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삶의 태도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단 3일의 행사를 통해 무언가가 분명해지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뒹굴거리는 시간을 추천해드립니다. 성인이 시도하기에는 용기마저 필요한 오락이나 놀이에 일단 몸을 맡겨보거나 물이 술이 되는 길고 긴 발효의 시간을 함께 해보시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시간 안에서 행복한 기운이 결코 거대하지 않게 생겨나길 바랍니다. 많은 것을 갖거나 해내거나 갖춰야만 확실한 행복이 올 것이라고 기대되는 요즘에 말입니다.

 

 

 

 

 

*본 원고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상상력의 징후>의 기록 활동을 기반으로 쓴 글로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2호에 소개되었습니다.

(웹진 바로가기 : http://gbom.net/327)

 

 

워크숍 개요

 

. 사 업 명 : 2017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상상력의 징후

. 일 시 : 2017.09.06. () ~ 09.08. (), 3

. 참 여 자 : 문화예술교육가로의 전환을 희망하는 예술가 20여명

. 장 소 : 경기상상캠퍼스

. 주 최 :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

. 주 관 :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사진_워크숍이 진행된 경기상상캠퍼스 주변 숲

 

 

 

 

 

 

안전하지 않은 상상에 대한 응원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한다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상상력의 징후중간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왔다. 본 워크숍은 이러한 물음들을 뜬금없이 던지면서도 과연 그것이 정말 뜬금없는 것인지 또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워크숍은 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교육만을 위한 상상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빠의 코 고는 소리, 그것을 녹음해보고자 마음을 먹은 누군가의 고민, 녹음의 타이밍이 어긋나버리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이 교육을 위해서 기획된 것들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육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듯이 말이다.

워크숍에서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 교육이 되고 무엇이 교육이 될 수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교육이라는 것을 얼마나 더 넓고 깊게 상상해볼 수 있을지가 중요했다. 또한 그 과정에 예술가의 개별 창작활동이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을지, 그 방식과 범위는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았다. 창작 안에 존재하지만 쉽게 정리될 수 없는 상상력의 징후들이 그 실험의 단서들로 작용했다. 그래서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지런히 산으로 가기도 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품기도 하고 제도와 행정에 대한 뒷담화로 흐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부질없거나 쓸모없는 논의로 치부되지 않고 그 자체로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든 감각이든 그 무엇이든 더 적극적으로 산으로 가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참여자들은 맨발로 주변의 숲을 걷기도 하고, 말없이 요가를 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한다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워크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더 확장해본다.

 

맨발로 숲을 걸으며 개미를 만나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

요가를 하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

복싱을 하는 것은?’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옥상에서 볼링을 하는 것은?’

버려지는 물건들로 체스말을 만드는 것은?’

햇볕이 비추는 풍경의 일부를 오랜 시간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이발소들을 찾아다니며 그 모습을 기록하는 것은?’

.......

 

‘( ) 하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

 

본 워크숍은 이 빈칸에 특히 예술가의 창작에 관한 것들을 넣어보고자 했다. 워크숍의 기획의도에서 언급된, ‘예술가들이 창작을 하기 전에, 혹은 창작 중에 발생되거나 개입되는 다양한 신호나 행동,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빈칸을 채우고 있는 창작활동과 고민들을 안고 10여명의 예술가, 문화예술교육 실무자, 예술강사 등이 워크숍에 참여했고 5명의 모더레이터가 현장의 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 대화는 더욱 구체적으로 흘러서,

 

‘( ) 하는 것의 ( )이 교육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로 뻗어나갔다. 여기에서 두 번째 빈칸을 채우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하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는 무언가 안에 잠재되어 있는 신호, 징후, 가치, 의미, 가능성을 읽어 내거나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술가 스스로 그것을 해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경우, 본 워크숍에서는 모더레이터의 적극적인 개입이 작동되기도 했다. 그것은 수많은 키워드들로 나열되었고 참여자들은 다시 그 키워드들로부터 교육에 대해 상상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것은 또 다른 질문을 만들었다.

 

‘( ) 하는 것의 ( )이 교육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그런데, 빈칸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해서, 과연 우리의 상상력은 확장될 수 있을까. 논의에 집중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참 많아지고 있을 때, 예술가이자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이자 예술강사이기도 한, 그래서 또 한 명의 워크숍 참여자일 수 있는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교육현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만났던 참여자들이었다. 본 워크숍 현장과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교육 참여자들의 모습은 마치 평행하는 대화, 혹은 엇갈리는 외침처럼, 양쪽으로 나뉘어 허공에서 핑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참여자들이 유독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연스러웠고 다양했다. 그 다양함들을 잠시 언급해본다.

 

남겨진 재료 몇 가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챙겨가고 싶은 사람,

도화지를 가로로 놓아야 할지 세로로 놓아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

타인의 이야기에 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사람,

연필을 스스로 쥐기에 손 근육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

작품을 완성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

옆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칭찬이 꼭 필요한 사람,

일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부모의 선택으로 수업에 참여한 사람,

쉬고 싶은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

익숙하지 않은 재료는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

5분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구와 짝을 지어 하는 지가 중요한 사람,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

앞을 볼 수 없는 사람,

너무 외로워서 수업 참여보다는 자기 표출에 열을 올려야하는 사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지 못한 사람,

잘하지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사람,

......

교육현장에서 무엇을 하든 능동적이고 다채롭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실 소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사람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더욱 많다. 그것은 본 워크숍 2일차에서 진행된 나쁜 예술과 나쁜 예술교육에 대한 불평시간에 언급된 것들과 겹치기도 한다. 제도적 한계, 행정의 경직성, 담당자나 실무자와의 의견 차이, 공간적 제약, 참여자 부모의 지나친 개입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워크숍 안에서 나쁜 것으로 전제되었지만 사실 그 나쁜 것들이 촘촘하고 복합적으로 얽힌 현장이 교육의 기본 테두리를 만들기 때문에, 어쩌면 어떤 상태, 혹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본 워크숍에서 말하는 상상력이라는 것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것들을 전제하는 것일지, 혹은 자연스럽다고 도저히 말하고 싶지 않은 나쁜 것들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전제하는 것일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예로 든다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고, 재료는 정해진 문구점에서만 일주일 전에 구입할 수 있고, 새로 세팅된 정산 시스템을 마스터해야하고, 교육 공간을 바꾸려면 서너 개의 서류와 승인이 필요하고, 보조강사의 인원은 부족하고, 강사나 기획자의 인건비는 10년 째 거의 오르지 않고, 그럼에도 진행하는 활동 안에서 참여자의 일부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그 활동에 집중하기 힘들고, 몇몇 참여자는 자유로운 활동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 자체의 상태(condition)’로 두고 그것을 최대한 끌어안거나 건드리거나 혹은 그것과 부딪힐 수 있는 상상을 시도하고 있을까.

혹은 현실의 요소나 참여자의 상황을, 예술가의 주제가 다채롭게 펼쳐지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조건들로 상정해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할 수 있는, 혹은 시도해야할 상상을 고민하고 있을까.

문제점이 많다고 여기는 기존의 시스템이 견고해지고 유지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를 우리는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것을 문제시하기 전에 존중해보려는 순간은 충분히 있었을까. 누군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며 지켜내고 있는 현장을, 우리의 상상력과 재미가 작동되기에는 너무 답답하거나 대안적이지 않은 것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고민들은 참여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그 차이를 만드는 기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예술가/기획자/예술강사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A라고 칭한다면, A의 창작 주제가 타인에게도 주제화될 수 있는가, 더 구체적으로는 A라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도 중요하게 의미화 될 수 있는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이라는 것을 기획하거나 실행하는 A, 과연 자신의 창작 주제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타인을 만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A의 창작 주제가 최우선이 된다면 교육현장의 여러 요소 중에는 당연히 잘못되거나 느리거나 나쁜 것들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반대로, A가 타인의 이야기나 상황을 부정적인 요소로 두지 않고 그 자체를 어떤 상태로 받아들이며 먼저 귀를 기울인다면 A의 창작 주제는 고민의 일부가 되고 심지어 재검토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본 워크숍에서 염두에 두었던 상상력혹은 그것의 징후는 어떤 범위에서 이루어졌을까. 이것은 참여자들 각자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로 물음을 던지고 있을까.

질문을 좀 바꿔보려 한다. 참여자들이 워크숍 기간 중 가장 오랜 시간 집중하고 언급했던 것은 자신의 창작 주제나 그것의 변주 가능성인가, 혹은 타인과의 연결이나 소통 가능성인가.

예술가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질문과 주제를 찾으며 작업을 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타인이나 사회를 바라보든 혹은 자신을 바라보든 스스로의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작업을 하기도 한다. 혹은 가라앉지 않은 채로 그저 살아내기 위해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창작이라면 창작에서 교육으로 넘어오는 순간, 예술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리드하고, 보듬고, 챙겨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타인이 예술가보다 더 마음이 힘들어보여도, 혹은 예술가의 힘든 마음과 반대되는 가치로 행복이 충만해있어도.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는 만감이 교차하지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해야하는 순간도 온다. 예술가가 작품과 1:1로 만나 침묵의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파닥대는 개개인의 감정들과 제한된 시간 안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참여자 중 누군가가 너무 마음이 쓰여 예술가 스스로도 가만히 그 사람과 그림을 그리거나 그저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도, 뭐라도 진행을 해야 할 것 같고, 다른 참여자들도 챙겨야하는 것이 교육이다. 마냥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긴 시간동안 그저 해보는 것이 쉽게 용인되지도 못한다. 모든 교육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많은 교육이 그러한 상태 안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부정하기 힘들다.

이렇게 사방으로 빽빽한 감정과 상황들 안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에 관한 것들을 가지고 본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 안에는 수년간 리서치하거나 실험하고 있는 작업들과 그것이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길고 외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그 예술가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할 수 있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 타인에게 절대 소중하지 않은 것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예술가는 이것을 견디거나 인정할 수 있을까. 예술가는 자신의 해석언어가 재미있지만 확고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지가 교육, 혹은 상상의 가능성을 좌우한다. 워크숍에서 한 모더레이터는 그 확고함을 뚝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혹시 그 뚝심이 타인의 반응이나 참여를 위해 남겨둘 수 있는 자리는 얼마나 있을까.

예술가는 사회적 이슈나 사안에 대해 접근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업 소재로 다루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사안을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가치판단하거나 기존의 가치로 재생산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한 시선이 전제된 상태에서 교육의 언어를 찾게 되면 다양한 생각이나 입장들이(심지어 그것이 작가의 생각과 정반대라고 하더라도) 개입되고 표현되기 힘들다. 예술가는 뚝심도 있어야 하지만 그 뚝심이, 타인이 지향하는 가치와 다를 수도 있음을 언제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워크숍에서 한 참여자가 수업 중에 내가 어떤 의견을 말하기도 하는데, 내가 과연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인가 고민이 된다고 말한 부분도 이러한 맥락과 이어진다.

이렇게 끊임없이 판단을 유보하고 그 근거로 타인과 나와의 위치나 관계를 되짚어보려는 예술가의 태도는, 교육 활동에서 타인과의 공유를 위한 자리를 확보한다. 그리고 그 자리가 커질수록 각기 다른 성격, 가치관, 삶의 역사, 감각이 만나버리는 현장의 소통 가능성도,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범위도 커진다. 본 워크숍에서 말하는 상상력의 징후가 예술적 아이디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면, 예술가의 작업을 교육적 방법론화 하는 것 이외의 영역에 어떤 자리가 남겨져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가의 견고한 작업을 여러 형태로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작업이 중요함에도 남겨둘 수 있는 소통의 여지’, 그 사이의 긴장감은 착하거나 아름답기 어렵다. 교육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은 부조리하고 불편한 소통들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풍성한 상상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예술가에게 상상력의 징후가 많을 수 있는 것은, 예술가가 독특한 아이디어가 넘쳐서라기보다는 남들은 쓸모없다고 여기거나 과하다고 여기는 것을 오랜 시간 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비언어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좀 이상하기도 한 기운이 가득하다. 미련하고 부질없고 효과적이지 못한 행위와 공정도 넘쳐난다. 그럼에도, 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본 워크숍은 그것이 교육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가를 실험해보았다. 교육은 불완전한 정서와 불합리한 제도와 불편한 관계 안에서, 예민하게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3일간의 워크숍이 끝났고 나를 포함한 참여자들은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현장으로 간다. 그것은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사업일 수도 있고, 지역 프로젝트의 단발성 워크숍일 수도 있고, 어떤 기관이 기획해 놓은 주말 프로그램의 일부일 수도 있고, 혹은 친구와 마주 앉은 시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워크숍 기간 동안 부지런히 논의하고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환기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상상하거나 조금 다른 교육을 해볼만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렇지만 워크숍에서의 경험들은 다시 어떤 현장에서 제도나 행정의 한계, 누군가의 개입이나 외로움 때문에 무력감으로 변할지 모른다. 그건 얼마나 우리를 또 힘들게 만들까.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교육, 혹은 사람간의 만남이 건강하게 살아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육이라고 말하는 활동 안에서 선을 넘고 불편하고 부조리한 상상이 시작하도록 부추길 것이다. 이 워크숍은 안전하지는 않더라도 바로 그러한 상상을 응원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 ) 하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빈칸에 안전하지 않은 것, 예술가의 창작보다 중요할 수 있는 것, 타인과 함께 해볼 만한 것을 얼마나 여유롭게 상상해서 채워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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