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4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보세요^^
24호 곁봄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
10년 전에 나와 함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진행했던 사람들은 왜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러 떠났을까. 그런 생각을 오랜 시간 해왔었다.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을 확인할수록 그 문제의 양상과 심각성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정말이지 기적처럼) 그 문제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들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까.
소설 같은 상상을 해보다가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라는 곳이 누군가가 떠나고 돌아오는 고정된 범위로 전제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만나거나 접했던 사람과 사건들 덕분에. 당장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던 방과후교실 미술수업에서, 5살 조카와의 1:1 방문미술에서, 동네 엄마들과의 놀이터 수다 모임에서,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비영리 예술단체에서 만난 장애인 창작자들과의 워크숍에서, 혹은 예술도 교육도 목표가 아닌 어떤 공공프로젝트에서, 그리고 혼자만의 표현 언어를 실험하고 있는 예술가의 미련한 시간 속에서. 조금 낯설거나 너무 익숙한 그 현장들이 반드시 문화예술교육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해석되거나 참조될 만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려는 의지가 그 안에서 작동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 예술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넓은 의미의 문화예술교육을 마음껏 상상해 보았을까. 이번 [지지봄봄]을 기획하면서 그 상상의 범위와 방식을 더욱 산만하게 펼쳐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원사업만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전제하지 않고 더 나아가, ‘에이, 그건 진짜 문화예술교육이 아니지. 그건 그냥 사는 거지.’ 혹은 ‘그건 예술이지’ 하는 범위까지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그 관심이 돌아올 길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멀리멀리 뻗어 나가 우리가 새로운 장소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기존의 사업 범위에서든 새로운 영역에서든 우리가 기대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불안해하지 말자.”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이 길을 잃었다는 많은 진단 속에 우리는 이미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틀 안에서 길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길을 더 잃을 수 있는 ‘가능성’ 안에 있다. 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우리 스스로 불안해한다면 우리는 다시 위태롭다는 교육‘사업’의 구조 안에서만 답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여기 이렇게 문제가 많다는데 답은 저 멀리에도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같이 더 멀리까지 가보자고 손을 내밀어본다.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 손을 잡아주길 기대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24호 [지지봄봄]에서는, 복잡한 함수에서 변수인 x값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이번 호의 주제가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인 이유이다. 정책과 제도와 프로그램을 함수에서의 ‘공식’으로 비유한다면, 그것의 기획이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논의들은 이미 많이 있었으니 그 공식의 변수로 작용하는 x값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교육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 외에 더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고민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하고자 한다. 그들의 활동범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업 범위 안에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문제의식과 의지가 우리의 고민을 확장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원고를 써주신 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 창작활동을 하면서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몇 차례 참여했었으나 다시 교육사업을 할지 고민하는 사람
-교육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지만 교육의 지속 자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몇 해 관찰하고 촬영했던 사람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려는 초등학교에서 방과후강사를 하고 있는 사람
-문화예술교육에는 현재 전혀 참여하지 않으며 개인 창작을 하고 있는 사람
-개인 창작의 맥락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으나 외부에서 그것을 교육활동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시람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관련 기관 실무자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모
-기업이 기획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강사
-현재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해보고 있는 단체 관계자
-문화예술교육 관련 제도나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끔 문화예술교육 관련 활동에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보조강사 역할을 하는 사람
-기존의 방식과 다른 문화예술교육 관련 정책이나 지원체계를 상상하고 있는 사람 등
그리고 위의 필자들이 쓴 글 속에는 현장과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문화예술교육을 언급할 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떠올리기보다 다음 두 그룹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곤 한다. 첫째, 교육대상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교육참여자’. 둘째, 교육참여자에게 잘 맞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 실현해야 할 강사/기획자. 그러나 교육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더 많은 입장과 사람들이 그 안에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부모의 요구나 가치관에 따라 교육참여자의 참여 동기가 결정되기도 하고, 교육실무자의 관심도나 교육철학에 따라 프로그램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고, 강사와 친한 예술가 동료들의 작업이 교육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교육보조자의 성향에 따라 활동의 범위나 가능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연결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은 공식화된 개념의 예술이나 교육의 영역보다는 개별 주체들의 ‘삶’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강사의 생계 문제나 정서적인 부분이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것은 삶의 안정이나 시스템의 개선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의 고민을 토대로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 삶’, 더 나아가 ‘삶을 담을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모색을 기대한다. 교육사업과 같은 기존의 유형으로부터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문화예술교육을 다양하게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뻗어나가는 생각들을 따라 질문들을 품다보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들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안에서는 삶과 연결된 교육을 하기 힘든 게 아닐까.’ 혹은 ‘완전히 다른 판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슬금슬금 불안해질 수 있다. ‘그래도 교육사업은 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무기력함과 허무함과 불안감과 회의감까지 교차할 바로 그때, 나는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의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궁금함이 펼쳐지고 있는 자리가 이전과 얼마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더 넓어진 영역, 장소, 범위, 규모, 방식, 시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고민할 수 있는 것은 교육사업을 할지 말지, 프로그램을 몇 차시로 짤지, 어떤 장르를 할지 차원의 것이 아닐 것이다. 고민의 자리가 옮겨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멈추고 싶거나 많은 걸 더 해보고 싶은 어떤 의지가 먼저 작동할 수도 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지원했을 때 선정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교육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동료에게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일상에 대해 묻게 될지도 모른다. 본인의 현재를 달래기 위해서 깊은 낮잠을 자거나 느린 산책을 할지도 모른다.
그랬던 순간이 있었을까? 충분히?
당연히 웹진의 글 몇 편이 그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영역이나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의 자리를 확장해보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나의 교육주제나 철학으로부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로부터 그 질문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개개인의 고민이 타인의 입장이나 삶의 무게에 따라 조금씩 흔들릴 때, 그것과 연결된 사람들의 현재가 서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다. 각자의 고민이나 시도가 공식적이거나 일반적인 틀에서 너무 벗어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불리는 것을 해보고 있는 이유는, 그 틀을 더욱 잘 다듬고 공고히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틀이 담아내지 못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기 위함이 아닐까.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비전을 ‘말하는’ 시간을 잠시 접고 논의의 장에 포함되지 못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최선영
예술가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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