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자가 운영하는 '짓거리연구소' 이름으로 참여했던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2019 경기형 포스트 문화예술교육 지원 프로그램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연구의 방향성은 교육주체(강사, 예술가, 기획자 등)의 지속적인 활동 동력 마련으로 설정하였고 2년간 참여한 웹진 "지지봄봄"에서의 현장  목소리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구진 : 김보라, 나보리, 성연주, 최선영



보고서 보기 : 

https://ggarte.ggcf.kr/?p=26&page=1&viewMode=view&reqIdx=202001091013469588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테이블
"경력 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에 참여합니다.

장소 및 일시 : 2020.1.9.(목) 오후 2시~6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

 

사전신청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DhSdtWX7NXQz8rmLX_QCaXX68WkyJrXas7uTRtYGEzt9OPg/viewform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 3차 오픈 테이블] 사전참가신청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테이블 "경력 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 장소 및 일시 : 2020.1.9.(목) 오후 2시~6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성평등예술지원 소위원회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성평등 관점에서 위원회 지원정책의 지형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여성예술가들이 임신, 출산, 육아 및 그 외의 이유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경험하며 다시 예술가로서 활동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어려움들이 상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

docs.google.com

 

 

 

 

 

근현대 문화자원 조망 프로젝트 결과전시

기록연장

 

2019.12.18.-12.21

수원문화재단 지하1층 기획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1 )

 

관람시간 10:00-17:00

(점심시간 : 11:00-11:40)

*오프닝 없음

 

 

기획 /  최선영

참여작가 / 구은정, 김성삼, 손한샘, 이재환, 조동광

 

 

수원의 근현대 문화자원 건축물의 특징은 화려한 외관이나 거대한 규모보다는 역사적 스토리, 현재와의 연결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자원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작품화하는 과정은 역사에 대한 기록을 문화적 방식으로 연장(어떤 일의 계속)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시각예술가들이 어떤 이야기나 공간에 대한 해석을 작품화할 때, 과정에서 선택, 활용하는 재료들은 그 기록의 연장(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Tool)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선택적 물질이나 장비를 사용해 시각화하는 작업은 역사를 다른 차원으로 기록하고 조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각예술가들이 각자의 창작 도구를 통해 수원의 근현대 문화자원을 어떻게 바라보고 연장된 기록으로 확장시킬지 작품의 제작 과정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여작가별 작품소개

 

구은정

북수동 청과물시장에서 구입한 고구마나 호박, 무 등으로 수원극장, 연초제조창 등 사라진 건축물들의 일부를 조각한다. 땅에서 온 것들로 건물을 만들고 그것들이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통해 현재를 다른 감각으로 사유해보고자 한다.

 

 

 

 

 

김성삼

나의 거주지인 수원 지역 내 근현대 건축물을 나를 둘러싼 메타포로 해석하고 내 삶의 기억이 담겨있는 건축물 주변의 현재 풍경을 작은 사이즈의 회화(일러스트)로 기록한다. 내가 선택한 역사적 장소와 그 주변 단면을 통해 공간이 갖는 일상의 맥락을 공유한다.

 

 

 

 

 

손한샘

근현대 문화자원 중 남아 있지 않은 양성관 가옥, 선경직물, 연초제조창의 터와, 남아 있지만 역할이 변하거나 상실된 건축물, 그리고 그 주변을 거닐면서 사물을 수집하고 공간을 상상한다. 그 과정에서 수집한 사물들로 시간과 공간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재환

영동시장과 매산119안전센터라는 문화자원과 1953년 영동시장에서의 화재 사건을 상상으로 연결하여 관객참여형 놀잇감을 제작한다. 문화자원과 관련한 삶의 이야기를 놀이의 요소로 활용하고 관객들이 당시의 상황에 개별적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조동광  

급수탑의 형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몇개의 요소들을 시각적 흐름에 따라 배치하고 청각적인 리듬으로 재구성하였다. 급수탑은 상층부가 더 넓은데 이러한 실용적 구조를 고려하였다.

 

 

 

 

 

 

 

▍참여작가 인터뷰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선영)

 

 

 

구은정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수원시에 남아있는 근현대 건축물들, 혹은 지금은 사진만 남겨진 채 사라진 건물들 모두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전시를 의뢰받았을 때 사회, 경제적인 이유나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기능과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건축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60년대 TV방송이 본격화되면서 극장가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수원극장’은 1999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선경직물’의 경우에는 아직 그 터와 건물이 남아있지만 여러 이유로 문화유산으로는 보존되기 힘든 상황입니다.

각 건물들은 각자의 사정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건물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도시생태계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남아있는 건물, 사라진 건물 모두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근현대문화자원 중 하나인 ‘북수동 청과물 시장’에서 구한 무, 고구마, 감자, 당근 등을 저의 연장(Tool)으로 선택했습니다. 이곳은 70년대에 성왕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활기찬 모습을 떠올리기는 힘든 곳입니다.

70년대 북적였던 북수동 청과물 시장은 80년대 인계동으로 옮겨갔고 이후 대형상점의 등장으로 분산화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사회, 경제적인 흐름은 개인이 거스르기에 항상 큰 요소로 보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하기에도 어렵습니다.

저는 작업의 재료로 무, 고구마, 감자, 당근 등 땅에서 온 것들을 선택했습니다. 이것들은 대개 한 손에 쥘 수 있으며 참으로 투박하고 무심해보이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북수동에서 인계동으로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우리의 식탁에 자리해왔습니다.

저는 감자의 일부를 조각해서 사라진 벽돌공장을 만들고 당근의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 지금도 남아있는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감자이고 당근이기에 언젠가는 썩을 것이고 언젠가는 또 다른 것으로 변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이번 작업 ‘야채도시’ vegetable city에서는 테이블 위에 조각된 야채들이 진열됩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조각들이 변형될 것입니다. 북수동 청과물 시장에서 사온 야채들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시장의 퇴락과 이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전체적인 도시의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여기 테이블 위에 사라진 공장이 있고 극장이 있고 남겨진 교회가 있습니다.

이 전시를 보고 나갈 당신은 당신이 나고 자라온, 그래서 익숙한 도시 풍경을 다시금 마주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에는 무언가로 변화될 것입니다. 무엇을 남겨야 하고 무엇을 추억해야 할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김성삼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부국원, 구 수원시청사, 시립도서관 등 주로 수원성곽내의 근현대문화공간을 소재로 진행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수원성곽인근 근현대문화공간 주변일상을 소재로 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것들은 현재에도 제 삶의 반경에 겹치는 부분들입니다. 과거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아 제가 매우 마음의 안정을 갖는 곳입니다. 더불어 미술을 배우던 공간이 구시청(현재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이나 부국원 자리에 근접한 곳이어서 추억과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항상 제 일상과 함께한 곳들이 알고 보니 근현대 문화공간들 바로 주변이었던 것입니다.

전시준비 전부터 개인적인 프로젝트 작업으로 ‘수원풍경수집’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이것은 잃어버리기 싫은 기억이나 풍경 그 자체를 기억하기 위한 개인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그 모습들이 사라질 것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기억이나 인상 깊은 장소들, 혹은 바뀌어버린 현재의 모습 등을 정기적으로 담아내어 내가 바라본 수원이란 공간을 기록하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재전시의 기획이 지금 제 ‘수원풍경수집’의 취지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전시 준비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근현대 문화자원 인근의 풍경 수집으로 주제를 조금 좁혀서 진행한 것만이 차이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준비는 ‘수원풍경수집’의 연장이자, 일종의 특별프로젝트입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번 기획을 통해서 내 인생사의 배경이었던 장소들이 근현대문화자원에 속하는 가치 있는 건물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학창시절 오가던 북문과 남문 주변, 그리고 진로를 위해 다니던 미술학원거리 주변 곳곳의 건물들이 알고 보니 모두 근현대 문화자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삶의 기억과 그 공간이 겹치는 부분에 더욱 집중하여 현재 일상풍경의 모습을 다시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기억들이 존재하던 곳의 현재의 모습과 감정을 담아내고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과 시선으로 담아낸 풍경들이지만, 수원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 근처의 추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들이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가 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재료에 대한 함의는 특별히 없습니다. 다만 빠르게 그릴 수 있고 자주 기록할 수 있으며, 색면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매체와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크릴과 과슈 위주로 진행하고 화면의 사이즈는 자주 기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이즈를 선택했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우선 소재가 근현대 문화자원이지만, 저는 그 변두리 일상의 공간을 담아냅니다. 사실 근현대 문화자원이란 걸 알기 전과 후의 차이는 저에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제 기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서적인 손상을 받습니다. ‘수원풍경수집’이란 프로젝트 작업의 취지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그 기억 안에 많은 경우의 수로 근현대 문화자원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제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을 담은 공간을 그리지만, 지역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제 작업을 보면서 ‘여기가 어디지?‘ 라며 궁금해 하거나 ‘나 여기 아는 곳이야. 어떤 어떤 곳이었지’ 혹은 ‘어떤 기억이 있었어’ 하며 당시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 보는 기회가 확장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손한샘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연초제조창을 선택했습니다. 남겨지고 버려진 것들을 통해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고 상실해 가는 것들이 남길 수 있는 의미들을 사유해 보고자 했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초제조장은 현재 변화가 진행 중인 현장으로 개발과 성장을 상징하는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근대적 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연초제조창은 폐기처분 되다시피 해서 일부만 남아 처연하게 버려져 있고 그 옆에 애매하게 잡초만 무성한 공터가 있습니다. 이런 이질적이고 어정쩡한 상태가 우리 사회가 인식하는 근대와 문화에 대한 의식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수원의 근현대 문화유산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근현대 문화유산이라는 것 자체가 온전히 보전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움과 발전에 맹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역사와 문화가 개발과 발전 앞에 쉽게 사라집니다. 오래되고 쓸모없는 것은 당연히 사라져야 되고 마땅히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공간이 시간을 통해 축적한 역사나 문화에 대한 가치는 외면당합니다. 근현대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안쓰럽게 버티고 있지만 해마다 사라지는 유산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문제에서 적당한 타협점으로 연초제조창 일부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연초제조창과 공터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근대와 현대에 대한 메타포와 현실을 보여줍니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쉽거나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 삶처럼 느껴졌습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문제 보다는 이제는 자연스런 현장처럼 이질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개발에 지치고 사라지는 것에 무뎌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도 문화이고 현실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이 현장의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내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현장처럼 나누어져 있어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성공의 욕망, 올바른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갈망,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연초제조장에 여러 번 가서 산책하면서 사물들을 수집했습니다. 아파트 공사현장과 구조만 남아있는 연초장과 빈 공터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것들을 수집했습니다. 대부분 용도 폐기된 것들, 혹은 버려지고 방치된 것들이었습니다. 이 사물들로 현장을 재해석해 보았습니다. 아파트도 연초제조장도 공터도 재현하지 않지만 이질적인 그것들을 한데 모아 설치해서 근대와 현대를 상징하고 은유하면서 그 공간을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연초제조장은 다른 현장과 다르게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연초제조창이 다르게 재생되고 공터도 공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서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과 완성된 후의 활용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연초제조창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된다면 이번 작업을 완공된 공간에서 다시 소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재환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영동시장과 매산119안전센터입니다. 1953년 영동시장의 화재사고를 모티브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의 사건을 통해 일상에 늘 있을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l)’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의미적 도구로서 ‘놀이’를 사용하였습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을 때 지속적으로 놀이의 형식을 실험해왔는데 이번에도 새로운 형식의 놀이를 제작해 이전보다 좀 더 관객의 진입을 낮추려 노력해 보았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과거를 기억하자는 것이 낡게 들립니다. 메시지의 단순 명료함이 반복되면 쉽게 피로해지는데 안전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매번 관객과 닿아보려 시도합니다.

그게 얼마나 닿았는지 피드백이 잘 되지는 않지만 항상 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려 시도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전달된 것이 있다면 나에게 돌아오기 보다는 다른 이에게 쉽게, 재미있게 전달되길 희망합니다.

 

 

 

조동광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수원역 근처 급수탑입니다. 과거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급수탑이 1900년도 초반에 만들어진 형태 치고는 현대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주말이면 갔었던 동네 목욕탕 굴뚝과 같은 형태라서 그런지 낯선 느낌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대략 친숙한 형태입니다. 사실 급수탑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역사적 이야기를 개괄하거나 과거의 노스텔지어를 소환하는 방식은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우선 급수탑의 외형이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단편적으로 급수탑의 표면만 보더라도 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소재가 되는 대상의 피부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견지했던 부분입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급수탑에서 리듬을 읽으려 했습니다. 제 작업에서 시각적 리듬감은 항상 중요하게 표현되어 왔습니다. 사실 애초에는 단순히 악기를 만들려 했습니다. 급수탑이 마치 타악기처럼 속이 비어있기도 하고 뚫린 창문 등이 악기의 공명을 위한 구멍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청각적인 것들이 추가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주라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기도 했습니다. 예측을 벗어난 감각이 확장되고 사람들이 함께하면 뭔가 새롭거나 혹은 살아있는 느낌이 발생되지 않을까 그런 상상들을 했습니다. 사실 급수탑의 첫 인상은 오래된 마른 노가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기록의 사전적 의미가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이라고 합니다. 문장의 핵심은 ‘남기다’란 부분인 듯한데 사실 저는 ‘남기다’보단 ‘적다’라는 단어에 좀 더 눈이 갑니다. 같은 동사지만 왠지 ‘남기다‘는 ‘결과’에, ’적다‘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것들은 대체적으로 생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잘한 서사가 증발하고 바삭거리는 결정체들만 남겨진 진열장은 뭔가 허무하기 때문입니다. 서사에 대한 기록이 연장의 과정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7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

 

https://ggarte.ggcf.kr/?p=23#url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ggarte.ggcf.kr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 / 최선영

 

 

문화예술교육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는 ‘어떤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 혹은 ‘이것은 아닌’ 것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의 상을 가지고 있다. 교육서비스는 아닌, 체험프로그램은 아닌, 대중문화는 아닌, 사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등등. 이것은 문화예술교육을 정확히 개념화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동의를 얻어낼 법한 어떤 기준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촘촘한 근거나 경험은 무엇일까. 문화예술교육 사업 내에서 기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때, 사실 교육서비스 같기도 하고 체험프로그램 같기도 한 문화예술교육이라 불리는 현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반대로, 사람과 삶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질문을 품고 있는 사교육 현장이나 대중문화 사례, 혹은 일상 속 창작활동에 대해서는 그 형식만을 근거로 참조의 가능성을 배제할 것인가.


이번 호에는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으로 불리지 않는 현장을 이끌고 있거나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아래 그림에서의 )를 통해 과연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들이 다양한 관점을 함의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쩌면 ‘문화예술교육은 적어도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모호한 기대나 일반화된 전제가 교육의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으로 불리지 않는 현장이,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아래 그림에서의) 어디쯤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는 어떤 기준의 밖에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기준의 안에 있기도 하다.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상(想)에 약간 겹쳐지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 저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의 거리는 멀기도 하고 매우 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불규칙하고 불명확한 을 바라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위치한 곳의 의미와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아래 그림과 같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는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질긴 논의가 존재한다. 혹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이나 형식이 현재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도 등장한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확장된 상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끄는 질문의 방향성(아래 그림에서의 )이다. 어떤 방향성을 고려하는가, 그리고 그 방향성은 고민의 의지를 얼마나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사회나 문화가 변해가면 고민의 방향성과 더불어 문화예술교육의 위치도 변해갈 것이다. 그렇기에 변화는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그 변화의 가능성이나 의미를 얼마나 바라보려고 하는지에 따라 오늘의 질문을 미래의 질문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거나 사라진다. 답보다 질문의 다양성을 모색해야 각자의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에 그야말로 재미도 생길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동력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지봄봄] 27호는 질문하기의 재미를 발동시키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이것은 논리적인 질문을 위한 목적 및 전략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을 설계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 놓치고 있는 현장에 대한 개별적 관심과 재미를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문화예술교육은 공공기관의 지원사업 틀로 인식되기 쉽고 비록 우리가 주로 그 안에서 현장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책으로 호명된 개념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해석과 재미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순간을 지속시키지는 못해도, 지난한 고민의 끄트머리에 불쑥 찾아오는 탄성 혹은 탄식 같은 순간으로 감지되기도 한다. 그건 얼마나 비효율적이면서도 감사한 순간인가.


그 순간들은 우리의 활동을 지속시키는데 가장 불규칙하고도 강력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대체 찾아올까 싶지만 그럴 때 문득 사람을 향하는 이상한 마음과 동반하여 찾아온다. 심지어 다음에 그 순간이 또 찾아올 것 같은 희망을 갖게까지 한다. 그래서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던 각자의 활동은 모호한 이끌림에 의해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다 그 모호함이 확실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린 이따금 그 이유에 대해 서로의 안부를 묻듯 왜 문화예술교육을 계속 하고 있는지, 혹은 하려고 하는지 서로의 의견을 구할 뿐이다. 이번 27호의 ‘가봄’에 등장하는 기획자, 강사, 예술가간의 좌담회는 특히 그런 현장이었다. 그런데 어떤 시기의 사람들이 잠시 만나 짧은 질문에 답변을 시도해본 것 치고는 그 대화가 참 길다. 그렇게 말하고 또 말해도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각자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이유는, 정리된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가 가능할지 불확실함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그 순간 안에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들의 자신이 서 있는 환경을 마주하는 과정, 혹은 창작으로 풀어보는 과정과도 닮아있기에 역시나 질문의 폭을 확장시킨다. 이번호 ‘더봄’의 이려진, 신민의 글은 그것을 상상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술가 이전에 표현의 욕구가 있는 한 개인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개개인을 특정 공간이나 상황, 관계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도 궁금해진다. 그것은 문화예술교육 강사의 시선과도 닮아있다. ‘곁봄’의 김인규, 서수경의 글은 이 시선을 교육 혹은 만남의 맥락에서 보여준다. 그러다 문득 그 글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상상하다가, 모범적인 참여자는 아니더라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개구쟁이의 생각, 혹은 매우 개인적인 회상이 궁금해진다. 그때는 ‘곁봄’ 곽재원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개개인들이 참 많을 텐데 우리가 만나는 교육현장은 다양한 참여의 기회나 방법을 상상하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더봄’에 등장하는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유투공 사례와 ‘넘봄’의 캐나다 예술 프로젝트 사례가 그것에 작은 참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의 확장은 개개인의 몫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을 주로 사업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이 함께 질문을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기능과 역할.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당연해지기를 바라며 ‘곁봄’ 이지혜의 글을 읽어본다. 그러다 ‘넘봄’에서 유선이 전하는 일본의 예술가이자 활동가 이치무라 미사코의 인터뷰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을 뛰어넘어 우리가 어디까지 인식을 확장해야만 할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리저리 들썩이는 사례와 시선들이 섞이는 가운데 우리의 관심이 잠시라도 머무는 이야기, 혹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한다면 그때 감지되는 각자의 ‘기준’을 돌이켜보자. 그 기준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각자의 예술관, 교육관, 그리고 가치관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설정한 것일까, 혹은 외부에 의한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외부에 의한 설정일까.


이번 호의 제목이 ‘문화예술교육의 기준’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인 이유가 그 안에 있다. 결국 스스로가, 혹은 상황이나 구조가 형성한 기준들, 그것이 형성된 맥락을 살피는 시도 안에서, 기준 밖에 위치시켰던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 기준들이 만들어낸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틀로 인해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들어봄으로써 우리가 현재 질문을 던지는 위치가 어디일지 함께 생각해보자. 이왕이면 더 멀리 질문을 던지고 미련하게 그 흔적을 찾으러 움직여본다면 어떨까. 질문을 튕겨버리는 벽이,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우뚝 서있을 테지만, 그 벽을 투명하게 만들거나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상상이 지금 여기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벽 앞에서 질문의 방향을 트는 대신 질문이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청스럽거나 과감한 상상이 필요하다.

 

 

 


최선영

기획자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에 실린 글입니다.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먼저 질문을 하고 싶다.

A에서 설명하는 사람을 바탕으로 B에 제시된 교육대상을 연결할 수 있을까.

 

 

A

 

 

 

B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사람

지적장애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지 못한 사람

눈앞에 무언가를

또렷하게 볼 수 없는 사람

시각장애인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한 사람

익숙하지 않은 재료는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

청각장애인

잘하지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

5분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지체장애인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

칭찬이 꼭 필요한 사람

정신장애인

쉬고 싶은 사람

타인의 이야기에

길게 집중하기 힘든 사람

자폐성장애인

타인의 선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

뇌병변장애인

몸의 근육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우리는 큰 망설임 없이 A와 B를 연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유형화할 수 없음에 불편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유형별 특수성이 A에서 언급되지 않아서 망설일지도 모른다. 또는 A에서 언급된 부분이 꼭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A에 언급한 사람들은 내가 교육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다. 그 안에는 이번 장애아동예술교육 지원사업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A에서 장애 특성을 드러내지 않게 설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장애예술교육이 어떠한 관점으로 시도되고 있는지 되묻기 위한 설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예술교육이 주로 B에서 A로 접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B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관점, 방향성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관점으로만 사람을 바라보고 만나게 될 경우 다양한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A와 B의 위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금 더 쉽게 양쪽을 연결할 수 있을까.

물론 장애유형별 특성은 분명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을 구성하는 중심요소가 되지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예술교육 안에서 참여자 이전에 장애인이 된다. 우리가 장애 자체에 대해, 장애유형별 특성에 대해, 그 특성이 담아내지 못하는 개별성에 대해 잘 모름에도 말이다.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 혹은 개념은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 대한 반성적 의미로 획득된 사업적 용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업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개인들을 만나고 있는가. 그 다양함은 장애와 관련된 특수성이 아니라 사람마다의 개별성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본 지원사업의 전반을 참여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부족했던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이들은 표현이나 소통방식에 있어서 비장애인과 차이가 있기에 프로그램 진행과 관련해 준비하거나 고려해야 했던 장치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개별성은 몇 가지 장애 특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대부분의 예술강사, 기획자들이 “장애와 관계없이 그냥 아이들이에요. 별로 특별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예술교육에 대한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장애가 아니라 개별성에서부터. 이것은 장애 이해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을 전제하기도 한다. 그것은 첫째, ‘장애’에 대한 관념화된 요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 둘째, 특성별로 예측 가능한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고 예민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별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예술교육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쉽게 예측하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들의 개별화된 다양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 비장애를 떠나) 예술교육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얼마나 참여의 범위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위의 A,B 설정에서 우리의 관점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교육현장에서 B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A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장애와 관련한 예술교육을 사업적으로 기획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선으로, 후자의 경우는 교육현장을 어느 정도 만나면서 발견한 구체적인 강사나 기획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 관점은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단지, 우리가 사업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 어떤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예술교육, 혹은 어떤 현장을 만들기 때문에 두 관점의 균형을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순간에 어떤 관점을 더욱 고려해야 할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장애예술교육에서 B를 통해 A를 발견했든, 처음부터 A를 만났든, 다시 A를 B로 연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서는 B라는 필터 혹은 분류가 필요하지 않은데 우리는 B의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이고 차별화된 장애예술교육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정책적, 사업적 교육대상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틀이 교육현장에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애예술교육이 개별성과 유연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개별적 장애 특성에 따라 교육적 처세를 능숙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별성을 참여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열린 관점과 태도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장애유형별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따른 노하우가 있는 경력자만이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낯설 정도로 구체적인 개별성을 염두에 두고 존중하려는 유연한 사람들이 앞으로 장애예술교육의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9 광명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자원발굴 '싹수야 어딨니'

지원사업 운영자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자세히 기록해주신 센터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https://cafe.naver.com/gmcaedu/3191

 

 

2019 문화예술교육자원발굴 운영자 ...

2019 광명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문화예술교육자원발굴 '싹수야 어딨니' 지원사업 운영자...

cafe.naver.com

 

일시: 2019. 10. 27. 일. 오전 11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

참석: 성수연(배우), 신원정(다이애나밴드), 정소은(독립기획자),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진행: 문영민(장애예술 연구자)

정리: 강보름(본지 편집위원)

 

 

 

 

 

좌담회 자세히 보러가기 :

www.sfac.or.kr/site/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1904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예술 #1

웹진 연극in은 “장애예술”을 주제로 총 6번에 걸쳐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제 현황을 확인하고, 현재 연극계(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www.sfac.or.kr

 

공동체로 살아가기

 

2019.11.01. (금) 14:30~17:00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예술가(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는 매우 소수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예술가를 정의하는 맥락과 범위가 변하고 있고 요즘은 더욱 ‘당신도 예술가, 모두가 예술가’라는 구호가 퍼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예술가는 더욱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그 자체로 유통에 용이한 상품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살아나가기 힘든 사회 덕분에 예술가는 소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나는 예술가는 아니다. 단지 예술프로젝트나 일반적인 작품 발표방식인 전시에 이따금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발제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내가 예술가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이 있는 기획자, 활동가에 가깝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나의 경험을 나누기에 좀 더 수월한 입장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예술가가,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덜 사회적이고, 즉흥적이고, 자기세계에 몰입하며, 집단적 활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캐릭터화된 예술가상에 대해 동의하거나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의 공동체가 특히 조직화, 집단화를 전제하는 경우에 더욱 예술가의 삶의 방식을 끌어안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창작을 하는 과정, 살아가는 방식이 공동체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하는 창작활동은 뚜렷한 하나의 목적을 향해 계획된 일을 해내는 것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단체나 조직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공동체의 경우는 (그것이 느슨하더라도) 운영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과정을 설계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살아가며, 해나가며 방향성을 찾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택하거나 전제한 목표와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그 질문 던지기 자체를 통해 참여 혹은 창작의 의미를 찾는다. 공동체를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전제할 경우, 예술가는 ‘우리가 공통적일 수 있는가’, ‘유사할 수 있는가’, 혹은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며 계속해서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고민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공동체와 결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태도, 혹은 삶의 방식이 공동체의 방해요소가 아닌 다양성의 일부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쉽지 않다. 보통의 현실 속에서 공동체는 예술가가 질문의 생산자가 아닌 예술적 경험의 생산자로 기능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긴 하지만 공동체가 바라는 예술적 경험을 기획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 나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편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활동은 예술가의 공동체 활동 사례로 온전히 소개될 수 없다. 나는 예술가적 삶에 관심은 있으나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으며 예술가라고 스스로 소개하기에도 실제 활동과 맞닿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서론이 매우 길었다. 이제부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공공예술프로젝트나 문화예술교육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10년 넘게 이곳저곳에서 만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보호감시 기관에 있는 청소년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매일 다리 밑에 나와 장기와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들, 경력단절이 된 여성들,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큰 청년들, 그리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 그중 장애인과 만나거나 함께 창작활동을 했던 시간이 다른 활동에 비해 많았는데 그것은 비영리예술단체 내에서의 활동이나 특수학교에서의 예술교육으로 설명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공동체의 대표적 유형으로 볼 수 있는) 단체 관련 활동을 넘어서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결국 모든 활동이 각각의 의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 외의 활동은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문제의식을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로 작동되기 때문에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장애와 관련된 활동을, 각각의 무게로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유형의 공동체, 그것들 간의 상호성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러 공동체와 연결된 나의 활동 범위

 

 

 위의 그림처럼 나는 여러 공동체에 관여하거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중에는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나는 오랜 시간 다양한 현장이나 사회적 현상을 마주하면서 오히려 이것들이 빈부 격차나 도시생활의 일반화, 불안사회 등과 같은 공통된 이슈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 삶에 대한 다층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여러 단체나 모임 혹은 일시적 공동체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내 주변 사람들, 혹은 구체적인 어떤 공동체의 일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활동 범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나의 예술적 경험이나 과정이 다른 삶과 연결될 때에는 이러한 활동 범위가 갖는 위치와 규모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예술 자체가 공동체나 구성원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어떤 가치나 의미를 중심으로 활동의 범위를 기획하고 만들어나가는 개인의 삶이, 그것과 연결된 타인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단지 예술적 경험이 그 활동 범위에서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예술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서 그 현상을 해석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이 장르로서의 예술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이것은 미술이나 문학, 연극, 음악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넘어서는 관점을 필요로 한다. 내가 어떤 공동체에 ‘가서’, 혹은 어떤 자리에 ‘참석해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무언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삶이 불안정하고 이따금 오락가락한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이기에 타인이나 사회와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공동체를 포함한 여러 현장에서 예술적 행위를 시도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좀 더 흥미롭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기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나 예술을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 개인적 활동 범위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예술가는, 혹은 나와 같은 또 다른 기획자나 활동가는 저마다의 활동 범위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스스로 범주화해나가는 맥락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활동 범위가 어느 정도 겹치는 사람, 혹은 동료들을 알고 있다. 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편안한 일시적 공동체가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서로의 적극성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슷한 순간에, 같은 장소에 가서 각자의 방향성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힘을 준다. 나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거나 내가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비슷한 고민을 놓지 않고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서 삶에 대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은 (나와는 다른)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 (오로지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나는 이들의 활동 범위가 갖는 의미, 그 안에서 발생되는 힘이 예술적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긴다. 동시에 예술 자체가 공동체나 삶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인 설정 같기도 하고 예술이 발생되는 전반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떤 실천들이 타인에게도 의미나 가치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본다.

 

여러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겹치는 양상

 

 

 

2019년 10월 5일 활동범위가 겹치는 사람들과 대학로에서 만나 일시적 공동체를 이뤘다.

장애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퍼레이드를 하였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말하는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을 외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퍼레이드 진진진 :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말하기를 예술의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프로젝트)

*사진 출처 : 퍼레이드 진진진 페이스북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술의 힘 이전에 사람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힘은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하고 낯설음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은 마냥 긍정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치유든 자극이든 낯설음이든 시기적절한 슬픔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그 양상이나 파급력도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효율성이나 성과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예술의 이러한 속성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재의 사회적 흐름과 다른 방향성을 띄기 때문이며 그래서 다수를 설득하기에는 힘들지만 그 자체로 방향전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능과 쓸모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증명해야 하는 사회는 빠른 속도와 효율적인 생산성을 추구하지만 예술은 쓸모를 알 수 없는 질문, 속도를 늦추는 실험을 지속한다. 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예술은 그런 측면에서 관계적 미학,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특히 현실적 운영이 필요한 공동체에서 이러한 예술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예술이 어떻게 기능할지보다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어떤 역할을 예술가가 해내는 것은 예술적 삶의 방식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가가 예술적 효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기능인으로 인식될 경우 예술가로서의 개인적 삶 자체를 존중받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와 예술의 관계성에 대한 논의는, 예술이 공동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넘어, 예술가의 삶 혹은 예술적 삶의 방식이 공동체와 공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다른 속성, 지향점, 삶의 방식을 존중하거나 학습하려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는 예술가가 얼마나 특이하거나 덜 사회적인지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 것, 공동체가 예술가라는 개인에게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지 살피는 것, 다양한 양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공동체도 결국 ‘함께 살아나가려는 구체적 의지’로 읽힌다. 그런데 예술도 다르지 않다. (개인의 정치를 해내기 위한 창작 행위나 결과물은 적어도 나에겐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예술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원을 마련하고 방법을 설계하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관점이나 의미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삶에서 효율적 기능을 해내는 것 안에 예술 같은 것이 감지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요소가 들어간 어떤 방법론 혹은 콘텐츠일 것이다. 그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을 때 예술과 함께 살아나가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예술가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을 예술가로 인식하고 존중해주신 분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2012년부터 4년간 함께 했던 (여러 공동체 중 하나인) 비영리예술단체에서의 활동을, 장애인 창작자의 부모가 최근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예술은 장애와 관련된 현실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으나 타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참 미련하고 답답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러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어느 젊은 예술가는 이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꼭 갖추어야 할 것이라며 부러워하였고, 일군의 그들은 지금까지 장애라 써 놓은 것을 미덕이라 읽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그(장애인 창작자)의 세계에 첨벙 뛰어들 수는 없다. 그저 그의 세계를 기웃거리고, 그의 주변을 서성이며 불현듯 조우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들의 예술 세계와 그의 미덕 있는 세계가 크로스오버 되는 어느 지점을 찾아 헤매며 우주를 유영하는 막막함. 이 두 아웃사이더 그룹의 만남은 그래서 좀 뿌옇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들은 만나기나 할까? 만난다면 불꽃이 튀기는 튈까? 어느 세월에? 처음엔 그랬다. 처음에는.

아마도 내가 생각한 예술은 영감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고, 모두가 우러러 마지않는 걸작을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 생각은 그 예술가들을 만나서 같이 기웃거리고 서성이고 대화하면서 바뀌어 갔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고 아니 조급증을 낼 무슨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파크 따위 안 터지면 뭐 어떤가? 설사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계속 유영만 한대도 저기 어딘가에는 나처럼 우주를 떠다니는 유목민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너도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일 따름이라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고방식과 태도. 예술은 걸작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예술의 껍데기라는 것. 예술의 알맹이는 지금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 이 태도를 나는 중년이 되어 어린 예술가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2019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5호

[젊은 예술가의 태도가 일깨운 삶에 관하여 “재미를 보기에 희망을 가진다”]

고혜실 로사이드 정진호 창작자 어머니, 작가

----------------------------------------------------------------------------------------------------------------------------

1회 서울 청년예술인 회의

1인칭 주인공 시점

 

2019.11.11. () 2-6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층 대회의실

(서울시 종로구 동숭길 122)

 

 

 

 

이번 서울 청년예술인 회의에서는 청년예술인이 직접 이야기하고 듣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청년예술에 대한 쟁점과 논의구조를 모색합니다. 이에 따라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청년예술인의 창작환경 및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논의의 장을 어떻게 마련해 나갈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더불어 앞으로도 청년예술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공동의 주제로 인식하고 논의할 수 있는 지속적인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사회 : 박도빈 / 동네형들 공동대표

14:00-14:10

개회 및 인사말

14:10-14:30

[발제 01]

서울시 청년예술인 정책방향 의견조사 결과 (이정현 / 서울연구원 연구원)

14:30-14:50

[발제 02]

청년예술인 거버넌스 관련 준비과정 및 향후 계획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14:50-15:20

질의응답

15:20-15:30

휴식

15:30-16:20

[그룹별 토론 01]

공통주제_청년예술을 왜 지원해야 되는가

16:20-17:10

[그룹별 토론 02]

선택주제_예술인의 생활자원, 예술의 공공성, 예술의 창작자원, 예술의 관계망과 협업망

17:10-18:00

종합토론

 

- 토론 진행 안내

· 퍼실리테이터의 진행에 따라 공통주제에 대한 그룹별 토론을 진행합니다.

· 이후 선택주제(사전신청 시 선택)에 대한 그룹별 토론을 진행합니다.

· 사전신청 시 선택한 주제는 현장에서 발제 및 토론내용을 바탕으로 재선택 가능합니다.

 

- 참여대상 : 청년예술인의 창작환경 및 삶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예술인

               (기관실무자는 참관 가능합니다.)

 

- 사전신청 : https://hoy.kr/7e1JG

               * 주제별 토론을 위해 참여자를 50명으로 제한합니다.

 

- 문의전화 : 02-3290-7075

 

 

**** 접수완료 확인문자는 11/8() 오후 발송 예정입니다.

**** , 11/8 13시 이후 접수자는 접수완료 확인문자 서비스가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1/8까지 선착순 50명 접수가 완료되면 신청자 전원에서 접수완료 확인문자가 발송되며, 미달 시 추가접수는 가능하나 접수완료 문자 서비스는 발송이 어렵습니다

**** 행사 당일 주차장이 협소하여 주차가 불가능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최/주관 서울청년예술인캠프준비위원회*, 서울연구원, 서울문화재단

 

 

*서울청년예술인캠프준비위원회는 서울시 청년예술지원제도 개선을 위해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연구원이 공동 진행 중인 연구(서울시 청년예술인 실태 조사 및 지원혁신방안 연구)에 참여했던 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예술정책 관련 협치구조를 모색하고자 구성한 그룹입니다. 2019년 하반기 '서울 청년예술인 회의'를 시작으로 새로운 정책실험(Policy Lab)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본 원고는 2016년 성북문화재단 <평등한 입장, 턱없는 극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원고는 2019년 오로민경 개인전 <영인과 나비>의 연계프로그램 '공감각 운동회'에서의 발제문으로 공유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턱을 만날 때 보이는 것들 / 최선영

 

 

“생후 1년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엄마가 극장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극장으로 들어가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나 역시 아들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동네 길가의 턱을 넘으며 장을 보고 놀이터를 오가던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 엄마들이 편히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이나, 그것을 위한 시설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아들은 6살이 되었고 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를 오가지만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 그 중에서도 문화공간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번 ‘평등합 입장, 턱없는 극장’ 사업의 초반에는, 그것이 어떤 시설들의 부족 때문이라는 전제로 필요한 장치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범위는 아직 걷지 못하는 갓난아기부터, 7살 정도의 아이까지로 정했다. 내 아들과의 6년간 시간을 돌이켜보며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엄마, 아이에게 정해진 시간에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 엄마, 엄마와 잘 떨어지지는 않는 아이를 가진 엄마의 입장으로, 영화관에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았다. 사업 초반에 정리한 필요 시설물은 아래와 같았다.

 

넓은 자동 출입문

• 유모차와 함께 여닫이문을 통과하려면 누군가가 문을 잡아주거나 엄마가 한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유모차를 밀어야 한다.

• 출입문의 통과 너비가 좁으면 유모차가 지나가기 힘들다. 또한 엄마가 어린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통과하기에도 쉽지 않다.

 

턱이 없는 인테리어

• 조금이라도 바닥에 턱이 있으면 유모차를 밀어서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턱이 높거나 유모차가 무거우면 여성 혼자서 유모차를 옮기기도 버겁다.

•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턱을 잘 넘지 못한다. 서너 살 아이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턱을 잘 살피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엘레베이터

•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유모차와 함께 한 층이라도 이동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 단지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1,2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는 계단 하나하나를 어른보다 높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와 함께 다니면 엄마가 들어야 할 기본적인 짐들이 많은데 이것과 함께 계단을 사용할 경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놀이방

• 영화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도 아이에게는 길고 지루하다. 그럴 때 놀이방이 있으면 어른들이 아이에게 얌전히 기다리라는 주의를 주는 대신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다.

• 만약 아이를 잠시 누군가에게 맡기고 엄마가 영화를 보러 갈 경우, 놀이방이 있으면 아이도 좀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릴 수 있다.

 

수유실

•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수유실은 반드시 필요하다. 수유실이 없으면 엄마는 공중 화장실 변기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수유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탕비실

• 아이에게 이유식이나 분유를 먹여야 하는 엄마에게는 탕비실이 필요하다. 이유식을 전자렌지에 데우거나 분유를 탈 공간이 있어야 제 시간에 아이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배고픈 시간에 음식을 먹지 못하면 크게 울거나 보채곤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시설들이 잘 갖춰진다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 혹은 어떤 문화공간에 자주 가게 될까? 이상하게도 ‘그렇다’ 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내가 꼭 아이와 극장에 가고 싶은가’, 라는 물음도 들고 ‘내가 꼭 극장까지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문화생활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난 더더욱 아이와 떨어져서 나의 시간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문화공간의 시설, 공간,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다른 방향의 질문들을 만들었다. 아니, 그 질문은 이제야 내 안에서 생성되어가는 듯했다. 그래서 주변의 아이엄마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터뷰라는 이름을 빌려, 동네 카페, 집, 키즈 카페에서 여유로울 수 없는 수다를 떨며 만났다. 한 아이가 울고 다른 아이가 물을 엎지르고 그 두 아이가 싸우는 현장 바로 옆에서, 저녁 반찬거리를 걱정하고 내일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두 시간의 대화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그 사이에 문화, 혹은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질문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현장

 

 

 

나를 포함한 엄마들은 사실 문화공간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도 가지 않는 이유들이 많았다. 그 이유들은 푸념 같은 말들로 쏟아졌고 나는 그것을 키워드들고 정리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여기에 담고자 한다.

 

시간이 어딨어요.”

• 예를 들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엄마의 경우, 대략적으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엄마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사노동의 부담이 있고 실제로 그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전 10시부터 대략 1시간 정도 청소나 빨래를 하고 나면 점심을 먹는다. 그럼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지난다. 세탁소를 다녀오거나 동네 마트에 다녀오고 나면 잠깐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가 남는다.

• 직장을 다니는 엄마의 경우는 평일 낮에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주말에는 집안 모임에 참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우선시되곤 한다.

 

몸이 힘들어요.”

• 아이엄마가 낮이나 밤에 영화관 등을 다녀온 후에 오후에 육아를 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집이 휴식 공간이기 전에 엄마에게는 가사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나 영화보고 오겠다고 애 맡기기엔 좀 미안하고 눈치 보여요.”

•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사치가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엄마들이 많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마 스스로 부담감을 가진다.

• 문화생활에 대한 관심이 있는 집안(친정이든 시댁이든)이 아니면, 엄마의 문화생활은 공감받기 힘들다.

• 엄마들은 가정의 살림살이를 하면서 본인의 문화생활을 위해 돈을 쓰는 것 보다 그 돈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애랑 편히 갈 수 있는 분위기면 가겠어요.”

• 만약 엄마가 영화관에 아이들과 가면 애들이 발로 앞좌석을 차거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억지로 구석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이 중간에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내지만 안 좋은 자리에서 온갖 신경을 쓰며 영화를 보는 것이다.

• 아이들을 반기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많아지면서 엄마들이 아이를 공공장소에 잘 데리고 나가지 않게 된다. 대중교통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리도 잘 양보해주지 않고, 엄마가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어디가나 아이에게 조용하라고 해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게 된다. 엄마들은 도시에서 어디를 나가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부분이 크다고 말한다.

 

그냥 혼자 차나 마시고 싶어요.”

•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나의 문화생활이라고 여기는 아이엄마들도 많다. 어떤 공연이나 영화를 보는 것만이 문화생활이 아니라, 혼자 편히 쉬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문화생활이라고 느끼곤 한다.

 

여유롭게 혼자 좀 즐겨야 그게 문화생활인데...언제나 전 비상대기 상태인걸요.”

• 갑자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올 수도 있고 아이가 아플 수도 있어서 엄마는 항상 비상대기상태다. 집안에 어떤 일이 생기면 공연이든 약속이든 취소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모임에 들어가거나 개인적 약속을 잡아도 자신은 자주 그 약속을 변경해야 하는 사람이 되니 그것이 연속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혼자 다운받아서 영화보고 그런 게 맘 편해요.”

• 엄마 스스로 주변의 시선이나 현실적 제약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문화공간에 다녀오느니, 혼자만의 공간에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 영화관에서 조용히 영화는 보는 성향의 아이가 있다고 해도 한 번씩 “엄마, 무서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민폐이기 때문에 요즘은 집에서 영화나 음악을 다운 받아서 가족과 같이 즐기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의견들을 통해 엄마들은 시설과 무관하게 사회적 인식이나 현실적 한계 때문에 문화생활을 하기 힘들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발견된다. 동시에 아이엄마들과의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러한 정서적, 심리적, 현실적 요소들을 파악할 필요성도 확인한다. 그렇다면, 처음에 이 프로젝트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살펴보자.

 

“생후 1년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엄마가 극장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극장으로 들어가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매우 구체적인 이 상황적 질문은 사실 아이엄마에 대한 관념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판단이 든다. 그걸 하나씩 쪼개어 열거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 어린아이 중에는 유모차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다. 엄마들이 허리가 아파도 아기띠로 아이를 메고 이동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모차는 아이엄마의 모습을 상징하는 요소지만 사실 어떤 연령, 어떤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만 해당되는 이동수단이다.

• 엄마는 아이와 함께 극장에 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를 맡길 곳이 없거나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함께 온 것일지 모른다. 엄마는 어딜 가든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이러한 전제를 만든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 아이엄마는 보고 싶은 영화가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영화를 집에서 다운 받아서 보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극장은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문화’를 여유로운 개인의 취미 활동으로 해석할 경우,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버거운 엄마에게는, 극장으로의 외출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엄마가 극장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것만으로, 그녀는 스스로가 문화를 즐겼다고 느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어떤 상황을 아래와 같이 한 번 상상해본다.

 

전업주부 OO는 생후 1년 된 아들과 내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려 한다. OO는 1시에 시작하는 영화에 도전하려 한다. 사실은 아침 9시와 저녁 6시에 하는 영화를 더 보고 싶지만 이른 아침은 남편 출근을 도운 후 움직이기에 빠듯하고, 저녁 4시쯤엔 집에 돌아와야 밀린 빨래를 하고 저녁밥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1시에 하는 영화를 보려는 것이다. 사실 영화관에 아주 가고 싶다기보다는, 어제는 길 건너 쇼핑몰에, 저번 주에는 옆 동네 대형마트에 아들과 무리 없이 다녀오는 데에 성공해서 이번에는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러한 공간들 외에 운전을 하지 못하는 OO가 도시에서 아이와 갈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기도 하다.

OO는 1시 영화를 보기 위해 보통 오후 2시인 아들의 낮잠 시간을 1시간 당겨야겠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전날 밤에 평소보다 일찍 아들을 재웠다. 아들은 자지 않으려 했지만 OO은 온 집안에 불을 끄고 아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허리가 안 좋으신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가기에는 도저히 마음이 편하지 않기에 OO는 혼자 계획을 세우고 도전을 하고 있다.

OO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아들은 여전히 자고 있다. 도통 일어나려 하지 않는 아들을 결국 울리며 깨운 후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고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정리한다. 아들은 잠을 푹 못자서 OO의 다리를 붙잡고 칭얼대고 남편은 오늘 야근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긴 채 현관문을 나간다.

OO는 1시 영화를 보기 위해 아들의 이유식을 만들어 포장하고 이른 점심을 챙겨 먹는다. 12시 20분쯤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나선다. 극장까지 20여분 걸어가야 하는데 그 사이에 만나는 턱은 30개쯤 있다. 유모차에는 이유식, 기저귀, 물티슈, 아들의 여벌 옷, 물병 등이 가득 담겨 있어 무겁다. 곧 도착인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들이 잠이 들려고 한다. 잠이 들면 자칫 영화 중간에 깨서 울 수 있기 때문에 OO는 아들에게 과자를 꺼내주며 눈을 뜨라고 말한다. 아들이 과자를 먹는 시간 동안 OO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른다. 지나가는 차를 보며 감탄사를 하고, 나무가 멋지다고 말해주고, 유모차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다행히 아들은 잠들지 않았지만 비몽사몽으로 극장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극장까지 온 OO는 땀을 닦으며 아들의 물건이 가득한 가방을 뒤져서 지갑을 꺼낸다. 아들이 중간에 혹시나 소리를 낼지도 모르기 때문에 OO는 영화관 구석진 자리의 티켓을 산다. 이제 영화 시작 10분 전이기 때문에 아들이 푹 잠이 들어야 한다. 극장 로비의 구석으로 가서 OO는 유모차를 천천히 밀며 자장가를 부른다. 제발 아들이 10분 만에 잠들기를 빌며.

 

아직 영화는 시작되지 않았다. OO는 무사히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를 편안히 볼 수 있을까. 그의 아들은 기적처럼 2시간을 조용히 잘까. OO는 영화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서 영화의 내용을 여유롭게 떠올려보며 쉴 수 있을까.

위의 상황은 나의 경험담,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아이엄마들의 이야기를 섞은 것이다. 즉, 매일매일 벌어지는 상황이자 특별히 과장된 내용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엄마에게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 ‘문화생활’이라고 말하는 공연, 전시, 영화 관람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이나 그 흐름을 소외시키며 해내야 하는 활동으로 전제될 경우, 그 사람은 그 활동을 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문화, 혹은 문화생활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화는 사회적, 공식적 활동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소외감이 들고, 그것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것을 해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거나 스스로를 실험해보게 되기도 한다. 이번 인터뷰 중, 오늘은 영화관, 내일은 쇼핑몰, 그 다음 날은 또 어디를 가보는 것이 마치 스스로의 미션 같다는, 한 아이엄마의 말도 떠오른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삶의 범위와 조건 안에서 해볼 수 있는 문화, 혹은 문화생활은 사실 우리 안에서도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바느질, 독서, 수다모임 같은 것은 너무 소소하거나 일상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문화라는 사회적 개념보다 덜 의미 있거나 혹은 덜 생산적인 것으로. 실제로 개인이 그 덜 생산적이라 여겨지는 활동에 오히려 더 관심과 동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소소한 것이 아닐까’ 라는 스스로의 의심이 생길 정도로.

그렇다면 기존의 문화에 대한 개념이나 관점 대신, 아이엄마에게 의미화 될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시설의 확보만이 그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할 때 우리는 아이엄마의 일상 안에 담긴 사회적 인식과 가사노동의 현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들을 드러내고 공감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것은 어쩌면 매우 정서적인 관계나 소소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기획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와 엄마, 그리고 그 주변의 삶을 소외시키지 않는 문화적 실천 현장을 위해서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문화생활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적 부담이 되곤 한다. 그 순간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 ‘턱’ 앞에 선 한 사람에게 알아서, 시끄럽지 않게 ‘턱’을 넘으라고 말한다. 혹은 눈에 보이는 ‘턱’들은 없앴으니 이제 괜찮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정말 괜찮을까. 각기 다른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괜찮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려는 타인, 혹은 사회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턱’의 높이를 조금씩 낮출 것이다. 우리는 그 ‘턱’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그 ‘턱’의 높이를 얼마나 많이 낮출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른다.

 

 

<서울 청년예술인 정책 포럼> 

□ 일시 : 2019년 9월 23일(월) 오후 2시
□ 장소 : (구)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층 대회의실 (서울 종로구 동숭길 122)

□ 구성
사회 :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주제발표 01

/ 청년정책의 흐름과 방향_서복경(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청년정책센터장)
- 주제발표 02

/ 청년예술(인) 개념과 정책 방향_박소현(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 주제발표 03

/ 청년예술인의 실태와 정책 방향_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 종합토론 / 좌 장: 박도빈(동네형들 공동대표)
토론자: 성연주(문화사회학 연구자)
옥민아(공공연희 단장)
전수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정진세(극작가, 비평가)


주최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구원
주관 서울청년예술인캠프준비위원회

* 발제문 : https://www.sfac.or.kr/opensquare/notice/notice_list.do?cbIdx=955&bcIdx=106049&type=

팝업 퍼포먼스 <노니노니방>이 열립니다.

 

예술가들이 수원시를 소재로 만든 놀잇감을
관객과 함께 해봤습니다.

 

 

 

 

기획 / 비기자
참여작가 / 고륜호, 구은정, 김예원, 김진주, 이재환, 조동광, Playlink, 최선영

 

 

2019.9.7. (토)
오후 2-4시
경기상상캠퍼스 생활1980 1층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

 

 

포스터디자인 / 고륜호

 

 

 

 

 

 

 

 

 

 

 

 

 

 

 

 

 

 

 

 

 

 

 

 

 

 

 

 

 

 

 

 

 

 

 

 

 

 

 

 

 

 

 

 

 

 

 

 

 

 

 

 

 

 

 

 

 

 

 

 

 

 

오로민경 개인전 <영인과 나비>의 연계프로그램 '공감각 운동회'에 참여합니다.

 

*'공감각 운동회' 관련 발제문 보기

https://bigija.tistory.com/131

 

 

 

* 자세히보기 및 신청하기

https://forms.gle/KEojTYtsUBvUbuK39

 

 

 

[ 공감각 운동회 소개 ]

"당신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나요? "
"혹시 당신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강한 모습’ 이 당신을 더욱 긴장하거나 움츠리게 만들지는 않았나요?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어떤 종류의 ‘건강 운동’ 을 하고 계십니까?"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가 키워야 할 운동 신경인 공감각을 깨우는 예술 운동회!"
"감각의 전환과 공감 능력을 통해 공동체의 무한한 가능성, 상생의 가치를 탐색해봅시다!"

<공감각 운동회>는 9월말 총 5일간 팩토리2에서 열리는 예술 참여 프로그램입니다. 배민경 작가와 팩토리 콜렉티브가 기획한 본 프로그램은 감각, 언어, 지각 등에 있어 다양한 한계를 지닌 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적 언어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공감각 운동회>는 예술작품과 장애 또는 비장애인 참가자가 서로의 다른 감각을 이해하고 확장하는 경험을 통해 ‘한계의 기준점’을 옮겨보는 예술교육 실험입니다.

공감각운동회는 <밀고 당기기>, <소리탑 쌓기>, <이야기 줄넘기> 총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밀고 당기기>은 참가자들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감각을 깨우고 전시장 작품을 모티프로 생명의 춤을 만드는 관객 참여 워크숍입니다. <소리탑 쌓기>는 참가자들이 음악을 함께 만들어 듣고 느끼는 프로그램입니다. 대화 프로그램인 <이야기 줄넘기>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활동가들과 참가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될 것 입니다.

----------------------------------------------

[ 공감각 운동회 정보 ]

🌱 프로그램 : 공감각 운동회 <밀고 당기기>, <소리탑 쌓기>, <이야기 줄넘기>
🌱 장소: 팩토리2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15)
🌱 기간 2019년 9월 25일 - 29일
🌱 시간: 프로그램별 상이
🌱 대상: 남녀노소 누구나 (‘밀고 당기기’의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 문의: factory2.seoul@gmail.com | 02-733-4883
🌱 공간 내 지원 서비스: 휠체어 진입로 있음, 문자통역 제공

--------------------------------------------------------------------------------------------

[ 공감각 운동회 세부 프로그램 및 일정 ]

🎈밀고 당기기 🎈
🎈9월 25일 수요일 18:00-19:10 / 9월 27일 금요일 11:00-12:20 | 총 2회 🎈
🎈표현예술치료사와 함께하는 몸을 움직이는 워크숍 🎈
🎈진행자: 성다움 x 배민경 🎈

표현예술치료사와 함께 진행될 본 프로그램은 ‘인간’이라는 동물로서의 원초적 움직임, 아기가 세상과 접촉하는 본능적 움직임을 기본요소로 하는 소매틱 무브먼트(somatic movement) 시간을 갖는다. 밀기-당기기&안기, 던지기-잡기, 때리기-막기, 기타 공격하기(할퀴기, 물어뜯기),
숨기-몸 부풀리기 등 생존을 주제로 구성된 움직임들은 나의 생명,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공동체를 살리는 회복의 춤이 될 것이다

----------------------------

🎈 소리탑 쌓기 🎈
🎈 9월 26일 목요일 14:00-15:20 | 총 1회 🎈
🎈소리를 쌓아가며 함께 음악을 만들고 느끼고 들어보는 워크숍 🎈
🎈진행자: 다이애나밴드 x 배민경 🎈

원탁에 동그랗게 앉은 참가자들과 생존을 위한 소리를 찾아보고 꺼내본다. 차례로 녹음된 다양한 소리를 리듬에 맞춰 순차적으로 쌓아가며 공동의 생존 합창곡을 완성해 나간다. 위기의 순간을 우리들의 소리로 지켜내자!

----------------------------

🎈 이야기 줄넘기 (부제: 한계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
🎈 9월 28일 토요일 14:00-15:20 / 9월 29일 일요일 14:00-15:20 | 총 2회 🎈
🎈공동의 감각을 깨우는 대화의 시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활동가, 참가자들이 함께 둘러 앉아 서로 다른 조건에서 경험한 한계의 감각을 공유하며 정상성의 기준, 공동체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이다.

1. 보고 듣는다는 감각에 대하여, ‘만날 수 없는 곳을 보는 법’ ----- 9월 28일 토요일 14:00-15:20

’보고 듣는다는 감각에 대하여’ 라는 부제를 갖고,
서로 다른 한계의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른 세상은 무엇인지,
인지와 인식의 차원, 번역의 관점에서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대화 참가자: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배리어프리콘텐츠 제작) 강내영 화면해설작가
양자나노과학연구단 김진경 연구원
청각 장애인예술가 박주영 작가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작가


2. 돌봄과 공동체, ‘우리가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 ----- 9월 29일 일요일 14:00-15:20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성’의 기준에 질문하며,
질병, 장애, 죽음과 삶, 돌봄, 치유에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의료권력 및 자본주의 산업화 속에서 불려지는 건강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아가 우리가 돌봐야 하는 건강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자 한다.

대화 참가자:
장애, 만성질환 연구자 ‘문영민’
비마이너 칼럼니스트 안희제
세포면역학 연구자 ‘육채민’
[간병일기(9월 출간예정)] 저자 청년 활동가 ‘조기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여성 활동가 ‘조한진희’

--------------------------------------------------------------------------------------------
<공감각 운동회>는 오로민경의 <영인과 나비>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자 2019 미술주간 연계 기획교육프로그램 입니다.
'2019 미술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합니다.
www.artweek.kr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현장체험학교>는

청년들이 본격적인 직무탐색과 시작에 앞서,

관심 있던 현장과 전문가 멘토를 만나 강의와 워크숍에 참여하고,

자신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프로젝트 경험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자세히보기

 

[모집] 현장체험학교 현장체험단

현장 멘토링과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경험하는 프로그램

sygc.kr

 

 

 

 

비기자는 4개의 <현장체험학교> 중

소통제작체험단의 멘토링을 진행하였습니다.

 

 

ㅇ 진행 기간

2019년 7-8월

 

ㅇ 모집 대상

일상에서의 소소한 감정과 고민을 그림카드, 도형, 목공 등의 툴을 통해 표현해보고

나에게 맞는 도구를 직접 제작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를 경험하고자 하는 청년

 

ㅇ 진행 과정

참여자들은 삶에서 툴툴댈 법한 ‘문제’들을 다시 바라보고 오히려 그 문제로부터 시작된 고민을 개인의 ‘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툴(Tool)로 개발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문제’를 부정적인 요소가 아닌 ‘상태/조건(condition)’으로 재위치시키는 태도도 필요했습니다. 비기자는 누군가의 ‘문제’가 ‘상태/조건’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직접 연구, 제작한 툴을 함께 활용해보았습니다. 참여자들은 그 툴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들여다보기, 사회와 나의 관계 살펴보기, 개인적 주제와 사회적 주제 연결하기 등을 시도했습니다. 나아가 각자의 일 경험을 만들어낼 툴을 함께 제작합니다. 표현도구, 놀이도구, 창작도구, 소통도구를 연구 및 제작하여 사회적 일로 연결해왔던 비기자는 그동안의 활동 노하우와 사례를 공유하고 다양한 툴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작은 규모라도 각자의 툴이나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실행해보고 그 과정에 필요한 현실적 역량을 멘토와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이후 각자의 삶에서 활동내용을 ‘일’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이 ‘일’은 타인과 소통하거나 교류하는 교육 및 상담, 네트워킹 관련 일의 현장과 연결 가능합니다.

 

* 총 11회 중 6회 진행

* 6회차 협력 : 띠리리제작소, 짓거리연구소

 

 

 

<현장체험학교>를 마치며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소통제작체험단에는 소통에 대한 방법론이나 제작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혹은 자신을 적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라도 표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소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하고도 다층적인 의미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제작기술을 학습하는 것보다 자신을 탐구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솔직한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제작활동이 멘토링 전반에서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단단한 주체성과 고요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거나, 스스로 다음 숙제를 계획해보거나, 솔직한 소감을 전하는 것에서 저는 조금 신기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참여자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기에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편안함을 갖춘 어떤 직장에 그들이 안정적인 취업을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이나 사회가 굴러가는 속도가,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속도와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비정기적이고 한시적인 일이라도 그들에게 안전함을 준다면 그 일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멘토링 과정에서 그들이 현재의 자신을 부족한 상태로 인식하거나 스스로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덜 발생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미 잠재되어 있으나 사회적으로 응원받지 못했던 고요한 힘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그 힘을 서로가 찾고 긍정할 수 있다면 각자의 다음 ‘일’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비기자’에서 제작했던 다양한 스토리텔링 놀이를 워크숍 형태로 해보았습니다. 정답이 없는, 그러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는 놀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첫 시간부터 자기표현을 여러 방식으로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첫 시간이 끝난 후 좀 놀라기도 했고 촘촘한 계획은 오히려 피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비기자’의 작업공간으로 참여자들을 초대하고 함께 오락을 하거나 이상한 놀잇감을 체험해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3시간 내내 음악을 들으며 사포질만 했던 순간이 이러한 과정의 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노동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는데 그러한 순간을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저는 또 한번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무목적성의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것은 어쩌면 큰 용기마저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포질의 목적을 따져 묻지 않았던 참여자들의 태도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참여자들이 많은 변화를 보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조금 편안해진 현장에 그들이 익숙해져서 좀 더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너무 소소해 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것은 중요한 시도이고 움직임일지 모릅니다. 이러한 순간들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작동될지를 읽어내는 것이 오히려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역시나 창작자답게 비효율적인 멘토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잘 소통하고 잘 제작하는 방법을 더 많이 전달했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을 잘 터득한다고 해서 삶이 안정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기에,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는 멘토링을 진행했습니다.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게 흘러가는 사회를 보면 치밀한 계획이 갖는 의미나 효과에 의문이 생길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사회 안에서 자신의 기준을 놓아버리지 않는 경험을 만들어보는 것이 더욱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제 멘토링은 그래서 ‘비기자’의 구체적인 놀이콘텐츠를 분명 소개했지만 결국 참여자들이 자신을 다시 만나고 발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참여자들이 심지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각자의 관점이나 마음 상태를 외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그들이 각자의 사회적 자리를 찾는 것에 앞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과를 전제로 진행된 멘토링에 많은 공감과 지지를 보여준 참여자분들께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을 통해 '장애인 예술과 예술교육'에 대한 좌담회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좌담회 내용보기 :
http://ieumzine.kr/archives/75822

 

 

누구에게나 예술의 힘이 함께하기를 | ieumzine

정리 프로젝트 궁리

ieumzine.kr

 

 

테마토크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magazine.sfac.or.kr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에 기고했습니다.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
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하려는 욕구로부터 멀어지기

장애 예술가의 창작 및 향유지원에 관해 발언의 기회가 생길 때마다 효율적인 방법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다. 이미 장애 관련 이슈는 차별과 소외의 맥락으로 전제되어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을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차별받고 있다’는 문제로 현재 상황을 바라볼 경우, 그것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것은 ‘다름’을 ‘다양성’으로 수용하고 재발견할 수 있는 문화나 예술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관점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조금 다른 방향성, 혹은 조금 다른 공존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 관련 이슈나 상황을 문제로 전제하고 해결된 상태를 목표로 두기보다 오히려 문화예술적인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호한 해결점을 목표로 우수한 국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것에 앞서, 현재 국내의 상황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자 하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념화된 시선의 파악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사회적으로 격리, 보호되기보다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기 힘든 존재로 전제되어 비장애인과 다른 공간,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단지 숨을 쉬고 있는 사람,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 천천히 일을 하는 사람은 일반화된 몸을 움직여 일반화된 속도로 일반화된 생산력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아간다. 이에 따라 삶의 기회에 있어서 비장애인과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안에는 교육 참여나 문화향유의 기회도 포함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산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들은 보통 보호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사회적 시스템 일부를 개선한다고 해도 쉽게 바뀔 수 없는 사안이지만 우리가 이런 인식을 얼마나 당연하게 갖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장애인을 뭉뚱그려진 관념적 존재로 상상하고 있다는데서 출발할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 지팡이를 짚고 걷는 맹인,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정도로 그려지는 장애인은 사실 장애 유형별로 특성이 매우 다르다. 또한 사회적인 요소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도 많기 때문에 장애는 어떤 면에서 충분히 상상하고 경험 가능한 영역 안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장애’는 관념화된 사회적 이슈로 인식되고,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소외계층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 그리고 비장애인도 장애, 비장애가 구분된 삶의 환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비장애의 공존을 문화예술이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먼저 우리가 얼마나 분리된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대체 왜 그럴까’라는 물음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현재 우리가 시도 가능한 공존 방식을 상상할 수 있다.

 

현재 가능하지 않은 목표나 방식에 대한 의심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장애인이 차별받거나 소외받는 상황을 오로지 해결하기 위해 문화나 예술을 활용할 경우, 어떤 차원의 공존도 불가능하다. 오히려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것만 같은, 혹은 부분적으로 해결의 순간을 만드는 소수만이 그 성과를 가져가게 된다. 그럼에도 구체적 근거 없이 모호한 목표나 방식을 공식화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약자로 전제되어 있던 장애인의 삶에 그것은 반가운 ‘희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더욱 쉬운 논리의 사회적 인식이 우리들 일상에도 작동되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업이나 활동이 정말 가능한 목표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혹시 그것이 다른 목적을 위해 작동되고 있거나 (누군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작동될 여지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일수록 이러한 태도를 더욱 공식화된 언어로 고민해야한다.

 

모호한 희망 대신 가능한 시도부터

그런 맥락으로 서울문화재단이 올해 시도하고 있는 사업이나 행사의 방향성도 살펴볼 수 있다.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양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크레아(DDP CREA)에서 진행된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미래 포럼 <같이 잇는 가치>’의 경우 장애인의 창작 활동과 관련한 우수 사례를 콘텐츠 중심으로 열거하지 않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소개했다. 이러한 공론의 장이 지속될 경우 장애인을 ‘위한’ 제도의 설계를 넘어 장애-비장애의 공존 방식을 다채롭게 모색하는 시도가 힘을 얻을 것이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서울형 장애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운영단체지원사업’을 새롭게 진행했는데, 6월 3일 참여단체를 선정, 발표했다. 이 사업은 교육 대상자를 장애아동·청소년으로 한정지었다. 이러한 시도가 장애,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으면서도 예술교육에 대한 생산적 논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선정된 단체뿐만 아니라 재단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또한 잠실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입주 작가들이 참여하는 상호티칭워크숍도 진행되고 있다. 장애 예술가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다른 감각 간의 교류와 만남을 지원하는 이러한 시도가 사업적 성과를 넘어 문화예술 분야에 확장된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예술 현장에서는 비장애인 관람객 중심으로 발표되던 공연을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진행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업이나 행사를 단체나 기관이 주도할 경우 사회적 파급력이 커지고 정치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다. 따라서 불편하지 않은 목표를 설정하고 익숙한 방식을 선택하기보다 재단이나 개별 단체, 기획자들이 낯설더라도 ‘현재 가능한 시도’가 무엇일지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장애 예술가의 창작에 대해

한편으로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장애 예술가의 활동을 다양화하고 장애-비장애인의 경계를 줄이는 문화예술 현장을 만들려면 어떤 방향성을 추구해야 할까. 이 광범위한 질문에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술이 장애 예술가의 사회 참여 기회로만 기능하지 않아야한다.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채 살아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힘든 삶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술이 기능할 경우, 장애인은 예술 영역 안에서 더욱 고립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머물 것이며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 영역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또한 예술에 대한 확장된 의미와 가치를 실험해보는 기회가 더욱 축소될 것이다.
둘째, 장애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몇 가지 유형으로만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최근 장애 예술가의 창작은 사회나 타인과의 관계성보다 개인의 고유성에 집중하거나, 몇 가지 매체를 주로 다루는 방식으로 유형화되고 있다. 타 분야와의 컬래버레이션이나 새로운 매체에의 탐구가 지속되는 동시대 예술 안에서 이러한 현상은 자칫 누군가의 창작을 장애의 관점으로만 해석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장애-비장애, 장애인-창작 활동, 장애-사회 등을 매개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기존에 이러한 역할을 해왔거나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은 ‘장애인이나 사회를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의 활동이 예술적 실험으로 나아가거나 전문화될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이것을 설명할 언어가 부족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의 활동 근거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개별 경험을 통해 전문적 역량을 보유한 매개자이자 창작자이자 기획자인 이들의 역할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의 기회가 단절되지 않을 공식화된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장애의 요소를 사회적인 주제로 만나는 기회만 마련되지 않아야 한다. 장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사회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쉽게 해석된다. 그러나 장애는 우리의 일상과 그리 특별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장애를 특별한 주제로 부각시키는 문화적 기획을 늘리는 대신 서로의 삶이 얼마나 다층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살피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의 네 가지 의견은 대부분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이전에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어떤 목표를 이룰 것 같은 희망과 더욱 거리를 두기 위함이자,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욱 어렵고도 필요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관심을 넘어 문화 다양성의 맥락으로

이 모든 것은 장애인의 창작 및 문화향유 기회를 위해서라기보다 문화 다양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 어떤 대상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문화 자체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애인‘도’,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가진 ‘누구든지’ 각자의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 참여 기회로 기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또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문화가 다양해지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략 수립과 실행 이전에 우리의 인식이나 태도가 더욱 중요함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효율성을 전제로 접근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결과가 큰’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더욱 문화예술적인 방식과 거리가 있다. 우리는 효율적인 방안이 다급한 상황 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비효율적인 실험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 비장애,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우리는 효율적일 수 없는 방식을 찾아보아야 한다. 문화나 예술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돌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불안하고 바쁜 상황에서도 다른 속도로 서로를 만나며 다른 시선을 찾는 순간에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이 시작될 것이다.

 

비언어적인 놀이의 가능성 : <도시놀이본부> 프로그램을 마치며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인 청소년 10여 명 대부분은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기자는 이러한 상태를 문제로 전제하지 않고 비언어적인 소통과 표현의 기회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보자”라고 말하는 대신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상황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촘촘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주로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활동들을 진행했습니다. 던지고 맞추고 끼우고 쌓고 냄새를 맡고 먹고 만지는 등의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의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다양하게 실험하였습니다. 비기자는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이러한 방향성과 어울리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놀이는 특정 이름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종류나 형태가 아니라, 선 하나를 뛰어넘어 보는 것, 컵 위에 컵을 올려놓아 보는 것, 텐트 안에 들어가 보는 것 등 더욱 단순한 행위나 순간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이 왜 많은 의미를 발생시키거나 증명해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매순간 다채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비기자는 참여자가 ‘좋아하거나 반응하는’ 활동에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활동에 대한 실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자가 ‘스스로 놀이에 참여하는 것’과 결국 강사가 많은 노력으로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접근이 필요할지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내용을 순서대로 제시하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자 하였습니다. 2시간 내내 컵을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만들어낼지 확인하는 것보다 그러한 경험이 과연 참여자의 삶에서 충분히 주어졌을 지를 더 살피고자 하였습니다.

 

비기자는 기획된 활동, 프로그램, 심지어 놀이 콘텐츠가 넘쳐나는 도시 안에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기획되지 않은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정형화된 교육 안에서 성장한 비기자도 각자의 상상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놀이를 해석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기에 이 활동은 모두에게 동등한 실험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도시놀이본부’는 참여자에게 다양한 놀이방식을 제안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놀이의 요소를 비기자도 참여자도 각자 발견해보는 일시적 실험실이었습니다. 일상적인 소통이 쉽지 않은 장애인과의 만남은 오히려 그 실험의 현장을 애써 설명하게 만들지 않았고 ‘일단 해보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의미를 설명해서 전달하지 않았거나 할 수 없었던 그 경험적 순간들이 각자의 몸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다시 만난다면 그땐 너무 다르게, 새롭게 만나려 애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몸의 기억이 흐릿해졌다면 그런 채로 만날 수 있는 어떤 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도시놀이본부

- 기간 : 2019년 5-6월

- 장소 : 경기상상캠퍼스

- 기획 : 비기자

- 참여 : 자혜학교 청소년(1회 12명)

 

*협력 : 띠리리제작소

*본 프로그램은 수원문화재단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에서 부스 운영을 통해

장애인의 표현을 활성화하기 위해 연구, 제작한 표현도구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도구들은 2018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를 통해 제작하였습니다.

 

*연구 보고서 보러가기 : https://bigija.tistory.com/96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본 연구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

bigija.tistory.com

 

 

 

 

 

 

 

 

 

 

 

 

 

 

관계셈판

 

 

 

 

발달장애인법 보드게임

 

 

 

 

 

 그리기와 소리 (신원정 제작)

 

 

 

 

그림카드

 

 

 

 

빛그림판 (띠리리제작소 제작)

 

 

 

 

이야기모양자 (릴리쿰 제작)

 

 

 

 

촉감촉감블록

 

 

 

 

본 포럼은 서울문화재단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포럼에서 부스 외에 발제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포럼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보러가기 : https://bigija.tistory.com/120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사례 소개를 위한 긴 서론 장애예술이라는 타이틀은 그..

bigija.tistory.com

문화도시 수원 오프라인 플랫폼 <미래가 열리는 나무>를

수원시 곳곳에서 총 5회 진행하였습니다.

 

의제별로 수원시민들의 의견을 받아 나무에 설치하였는데

총 7개의 의제에 대해 300개가 넘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수원시에 대한 퀴즈를 주사위놀이와 연결하여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주최/주관 : 수원문화재단

*미래가열리는나무 제작 협력 : 띠리리제작소

*사진 : 양승욱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http://ggarte.ggcf.kr/?p=23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ggarte.ggcf.kr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그냥 쉬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떨까.

푸릇푸릇한 에너지로 교실과 운동장을 뛰어놀 초등학생을 기대했는데.

 

‘이름이 뭐야?’라는 질문에 ‘이름이 뭐야?’라고 답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떨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예상했는데.

 

자신이 소유한 건물 자랑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떨까.

정감 넘치는 인생 이야기를 펼치는 어르신을 기대했는데.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대하고 예상한 모습의 사람만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대상’으로 개념화하고 그 대상을 유아, 청소년, 노인, 장애인, 가족 등으로 겨우 세분화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예술교육이 대상별 교육을 강조하는 정책적 움직임 안에 있을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행정적 서류나 사업 기획안에서 편리하게 분류해 부르는 그 ‘대상’들은, 교육 현장에서 다시 한 명씩 살펴보고 마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된다.

 

예를 들어 중학생들과의 교육 활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학생들은 보통 ‘청소년’으로 불리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청소년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서 ‘학생다움’이나 ‘청소년다움’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시선이 현장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져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교육 현장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번 <지지봄봄>에서는 그 고민을 하나씩 뜯어서 살펴보고 함께 나누려고 한다. 가늠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교육 현장의 사람들이 즉흥적인 교육인지 처세인지를 해내고 있는 순간에 말이다.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도화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근거가 되는 교육 현장은 정신없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우수한 국내외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 사례를 다시 새로운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깊이 있는 교육적 성찰이 이루어지기에도 벅찰 만큼, 기획자나 강사, 실무자 등은 계획안을 쓰고 재료를 나르고 참여자들을 다독이고 일지를 작성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어떠해야 할지 이전에, 당장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현하고 정리하고 이어나갈지를 살피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지지봄봄>에서는 교육 현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쪼개어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 현장의 언어와 주제, 재료의 실험, 현장의 진행, 참여자에 대한 관심, 강사나 기획자의 마음, 활동의 정리나 지속 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항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만나보고 있는 필자들이 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보편화 될 수 있는 방법론을 소개하는 대신 개별화된 경험을 들려준다. 나 역시 그러한데, 이 글에서는 먼저 교육 현장에서의 언어에 대한 경험을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교육 활동에 있어서 ‘주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단어나 개념으로 참여자들에게 공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각자의 집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실제로 계획했더라도 “집을 만들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사각형 건물 위에 삼각형 지붕을 얹어 관념화된 집을 그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나 표현은 생각보다 언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을 그려보자고 하면 졸라맨을 그리고 ‘자동차’를 그리자고 하면 각이 진 몸체에 바퀴가 2개 달린 측면에서 바라본 바로 그 승용차를 그린다. 그래서 나는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요소들을 풀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집’을 풀어서 말하기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나 장소”

“나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사람이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싶은 공간”

“내가 쉬는 곳”

“내가 가끔 숨을 수 있는 곳”

 

· ‘사람’을 풀어서 말하기

“우리와 닮았지만 모두 다른 생명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는 생명체”

“겉과 속이 다른 생명체”

“각기 다른 얼굴과 몸통과 팔과 다리가 달린 것”

“다른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존재”

 

· ‘자동차’를 풀어서 말하기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것”

“바퀴와 엔진과 몸체를 가지고 있는 것”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태울 수 있는 것”

“갑자기 사라지면 삶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것”

“물건을 멀리까지 운반할 때 편리한 운송수단”

 

이러한 표현방식은 하나의 개념을 떠오르게 하기보다 다른 개념까지도 상상하게 만든다.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개념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참여자가 반드시 집, 사람, 자동차를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과 비슷한 속성을 떠올리며 다양하고 엉뚱한 것을 상상하여 자신의 삶과 연결된 어떤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더더욱 무궁무진하게 이어져 문학적인 표현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예시 중에, “다른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존재”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결과물들이 나올까. 그것이 얼마나 예술적일지 아닐지 따져보기 전에, 그것이 ‘사람’이라는 단어를 듣고 표현한 것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 교육적 주제는 계획서에 명시된 언어 그대로 참여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혹시 강사나 기획자가 정해 놓은 주제를 강조하거나 교육 활동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선택된 개념 몇 가지가, 참여자의 다양한 접근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최근에는 교육 활동이 계획서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분명하고 정리된 언어들이 활동 전반에 공지되어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자의 표현 영역에서는 오히려 계획된 언어, 기획된 주제가 흩어지고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참여자의 개별적 관심이 활동 주제와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비언어적인 과정도 포함하기 때문에 우리가 언어의 밖으로 뛰쳐나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다. 또한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 혹은 언어를 쓰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동등한 표현 기회가 주어지려면 문화예술교육은 계획서에 나열된 언어가 아니라 계획될 수 없는 감각이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측면에서 나의 언어를 다른 표현이나 반응으로 튕겨내 버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당황하면서도 시원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이건 괴물이야?”라고 물으면 “그냥 그린 건데요”라는 답변을 들을 때가 그렇다. 나 역시 어떤 결과물을 보고 하나의 개념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그것이 무엇이 되는 것과 무관하게 ‘그저 그려본 것’으로 내버려 둔다. 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도록 이름도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그대로 두면 될 것을. 그저 그림 한 장이거나 어떤 순간의 흔적인데.

 

‘지역’을 ‘발견’하고 ‘도시’를 ‘해석’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등의 문화예술교육 ‘사업’ 내의 개념들은 절대 ‘그냥 해보는 것’의 힘을 이길 수 없지만 언제나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것은 참여자의 관심, 참여, 표현을 덜 살피게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그냥 해보는 것이 지역도 발견하고 도시도 해석하고 자아도 실현하다가 심지어 삶 속으로 문화를 침투시킬 수도 있다고 기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어가 애써 감싸 안지 않아도 되는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의미 이전에 재미를 찾아서 이리저리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 원동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개념들을 언급하지 않는 활동이 너무 산만하게만 느껴질 때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명확한 말들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은 명확한 주제를 놓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계획적이고 치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더 어려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몇 가지 개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에 기대어 활동 전반을 끌어가는 방식은 사실은 참여자와의 소통에서 편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것은 때론 불편하거나 모호하거나 어려운 소통의 여지를 덜 만들기 때문에 참여자에게 일방적인 전달로 비춰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언어나 개념과 관련된 고민을 하게 된 배경을 언급하자면, 그것은 역시나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입으로 소리는 내지만 개념을 언어화해서 문장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 분명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의 의미는 모른 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하듯 말하는 사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유창하게 하는 말 속에 자신의 생각보다 강사의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있는 사람 등을 만나면서 왜 많은 활동이 언어에 기대어 이루어져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은 그냥 해보는 것, 말없이 따라해 보는 것, 느껴보는 것, 같이 있는 것, 혹은 안 해보는 것도 가능한 영역일 텐데 말이다. 교육 ‘사업’이나 ‘프로그램’ 기획서 작성을 위한 언어에 집중하게 되는 상황 안에서, 우리 스스로 그 언어를 빠져나오기 위한 실천들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이것은 사실 누구와 어쩌다 만나게 될 때 그 다음의 만남을 어떻게 이어갈지 상상하며 내뱉어보는 혼잣말일지 모른다.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사례 소개를 위한 긴 서론

장애예술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매우 사회적인 주제로 보인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만 장애예술을 사회적 성격이 강한 대주제로 전제하면, 개인은 시대적 흐름에 의해서 그것을 ‘공부하거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과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는 무엇보다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나는 장애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을 ‘장애예술’로 만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장애예술을 다른 관점으로, 혹은 다른 이름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장애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하지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정형화된 표현방법을 오랜 시간 연습했고 그 과정에서 그림에 대한 흥미를 오히려 잃어버렸다. 미대에 합격 후 빈 캔버스를 채우는 것은 더욱 두렵고 힘든 일이 되었다. 내가 정말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혹은 표현활동에 훈련되기 쉬운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15년 전 그때, 우연히 장 뒤뷔페가 쓴 ‘아웃사이더 아트’ (1972년 로저 카디널이 아르 브뤼트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아르 브뤼트란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장 뒤뷔페가 1945년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창작 작품을 조사하다 알게 된, 그들의 작품을 지칭한 말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미술제도 바깥에서 창작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책소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12 )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2003년에 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나는 ‘장애’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보지 않았다. 나와 달리 미술을 학습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표현활동 자체와 그 에너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특별하게만 조명 받는 맥락에 관심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장애예술’을 ‘장애’의 관점으로 만나지 않았던 시작점이며 지금의 고민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 혼자 책을 보고 인터넷 자료를 뒤지다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돈을 벌기위해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문화예술교육 수업 촬영을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하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그 수업은 모두 장애인 청소년들과의 미술수업이었다. 그때는 내 삶에서 ‘장애’와 관련한 구체적 현장을 처음으로 만났던 시기지만 ‘장애인’에 초점을 둔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그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을 하면서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교육적 기회에 대해, 예술표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표현에 더 깊은 관심이 있었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한 학생은 장애 때문에 미술학원을 다닐 수 없었지만(미술학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내 관점에서는 독특한 시각 표현을 하고 있었다.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발달장애인은 크레파스가 부러지도록 도화지의 일부분을 집중적으로 칠했지만, 그는 흰 종이를 두려워하던 나와 너무도 다르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서툴고 거친 표현일지 몰라도 손이 이끄는 대로, 덕지덕지 칠하고 붙이는, 혹은 마음속에 떠다니는 말들을 그림처럼 도화지에 채우는 장애 학생들의 표현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색다른 표현활동 이면에,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격리되어온 장애인의 삶을 알아가게 되었다. 장애인의 개성적인 표현을 응원하는 것이 한 편에서는 장애의 증상을 부추기는 것일 수 있다는 것, 장애인이 공공 교육을 받기 위해 부모들이 교육청과 긴 싸움을 해야 했다는 것, 후천적 장애의 증상은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 특수학교가 지역 사회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운영되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는 것, 장애인의 예술표현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복지제도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 장애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생산성과 관련되어 재정의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래서 장애는 사회문화적 흐름과 그 인식에 따라 논의되는 지점이 변한다는 것 등. 그렇게 독특한 표현활동과 관련한 나의 고민은 더 넓은 영역에 대한 관심으로 퍼져나갔다. 장애인의 미술표현을 마주하면서 ‘다양한 존재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세계를 인식하고 개별화된 창작언어를 찾는 나/예술가에게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단순히 ‘장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예술은 결국 ‘다양성’의 실험과 발견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던 삶이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자극이 되었다. 사회나 개인이 장애인을 포함한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피는 것은 나에게 창작의 관점을 되짚어 보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격리시키거나 관리하려는 사회적 인식, 제도, 그 안에 길들여진 개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소중한 기회였다.
최근까지 내가 어떤 단체의 소속으로, 혹은 개인으로 하고 있는 활동들은 그 기회들을 좀 더 공식화된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장애인과의 1:1 창작활동,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연구, 일본의 장애인 창작활동 사례조사, 장애예술 관련 문화예술 기획활동 등이 그것이다. 단지 그 타이틀에 ‘장애’가 등장하지만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개인적 관심과 고민이 공통된 주제와 만나 드러난 것이다. 학습된 예술에 대한 개인의 문제의식은 이런 저런 이유와 삶의 우연적 요소를 만나 복지제도의 한계, 장애인의 삶, 다양한 존재, 사회문화적 현상 등으로 뻗어나갔을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의 관심’이다. 이것은 개개인이 장애예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복잡한 삶의 문제와 사회적 요소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깊으면 장애와 장애예술을 더 넓은 관점으로 만날 수 있다.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적 주제로 만나지 않고 말이다. 장애예술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언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삶의 주제를 장애예술과 관련한 관점에서 혹은 또 다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혹시 그것이 좁은 시야 안에서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본론이 될 수 없는 사례

그래서 장애예술과 관련한 사례 소개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장애예술을 ‘잘’ 드러내거나 담아낸 사례라는 것은 자칫 하나의 관점으로만 어떤 현장을 읽어내고 재생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사례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이전에, 그 사례가 발생될 수 있었던 배경, 특히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의 개별적 관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함께 활동했던 비영리단체 ‘로사이드’의 사례도 그러하다. 장애인 창작자와 비장애인 창작자의 공동창작 방식인 ‘1:1 아트링크’는 미술,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로사이드의 창작자(장애인 창작자)와 1:1로 연결, 그들의 공동창작을 지원한다. 로사이드 창작자와 공동창작자는 예술 작업으로 교감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출처 : 로사이드 홈페이지 http://rawside.kr )
사례가 외부에 많이 소개되었는데 이 활동의 운영구조를 참조하는 것 이전에 이 활동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참여 동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누가 누구와 어떻게 1:1로 만나게 되느냐가 결국 이 활동의 방향성과 의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나 장애인에 대해 잘 알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개별 창작을 하고 있던 비장애인 창작자들이 장애 유형이나 특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장애인 창작자와 작업 과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공동창작을 시작했다. 나 역시 이전 단체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통해서 3년 정도 만남을 이어오던 장애인 창작자와 다시 만나(내가 그 창작자의 그림 속 이야기와 화면구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창작을 했다.(이것은 ‘로사이드’를 알기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하던 활동이었다) 또한 자신이 재구성한 내용을 말로 끊임없이 쏟아내는 장애인 창작자와는, 이야기 하는 퍼포먼스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공동창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1아트링크’에 참여했던 입장에서 이 활동 방식은 ‘창작을 하는’ 두 사람이 만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행위를 되도록 장애의 증상이 아니라 창작의 맥락으로 바라보려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만남이 중요했던 것이다.
일본의 사례 역시 장애예술에 대한 것 이전에, 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려고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내가 만났던 일본의 단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예술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활동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장애예술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일본은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모색하는 과정에서 예술적 표현 및 소통방식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다. 비영리법인단체 <Swing>과 아틀리에 <코나스>가 특히 그러했다.

 

<Swing>
교토에 위치한 <Swing>은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비영리법인단체로 2006년에 설립되었다.
이곳은 예술단체가 아니라 장애인종합지원법에 따른 장애인 복지서비스사업을 하는 시민단체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활동은 “Oyss 프로젝트”로 뮤지션 Cocco의 ‘쓰레기 제로 대작전'에서 영감을 받아 2008년 10월부터 시작한 활동이다. "아름다운 교토를 더 아름답게”를 슬로건으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교토 가모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활동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파란색 옷을 입고 동네 청소를 한다. 한 달에 1회씩 진행해 현재 115번째 진행되었으며, 약 10년째 해오고 있다.

 

‘Oyss 프로젝트’ 활동모습 (출처 : <Swing> 블로그)

 

<Swing>은 쓰레기 줍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재미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이 활동을 재미있어 보이도록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 청소부대 명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이 활동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Swing>과 상관없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서 울고 도망갔으나 지금은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사이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이들이 위험한 사람인 줄 알고 경찰이 와서 심문을 했다. 지금은 이 활동에 참여하는 <Swing> 멤버들이 귀중품을 주워 경찰서에 전달하기도 하기도 해 그들과도 친해졌다. 이들은 경찰이 찾아오는 등의 반응에 대해 ‘균열내기가 진짜 예술인 것 같다’는 맥락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 활동을 다른 지역에 가서 하기도 한다. 기업, 복지시설, 사무실 등에 청소부대 지부가 15개 있으며(2017년 4월 기준) 베트남에도 지부가 생겼다.


<코나스>
1993년에 설립된 아틀리에 <코나스>는 장애인의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지적 장애인 생활보호 시설로, 현재 20명에 가까운 장애인과 6명의 운영진 및 서포터즈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공동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국내의 장애인 그룹홈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장애인이 거주 하지는 않고 주 5일 이곳에 나와서 창작활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코나스>의 운영진은 장애인이 특별히 창작을 잘 하도록 가르치기보다 사람마다의 속도와 특징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1년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두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재료의 냄새를 하나씩 맡아보는 사람도 있다. <코나스>의 운영진은 그런 시간과 방식을 그대로 둔다.
대표 시라이와는 “중요한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이 지역에 이러한 활동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 작업은 <코나스> 활동의 30%라고 한다. 그 외에는 동네 청소도 하고 쿠키를 만들어서 주변에 판매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을 다녀오면 이웃사람들에게 꼭 선물을 사서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코나스>의 활동이 소개된 잡지를 카피해서 동네에 나누어주기도 하는데 지역 사람들이 그런 활동을 알게 된 후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활동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코나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본론이 될 수 없는 사례 소개 이후에,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시대적 흐름과 함께 ‘알아가야 할 주제’로 장애예술을 접하는 것과, 삶의 어디에선가부터 시작된 개별적 관심이 장애예술을 만나게 되는 것 중 어떤 것이 우리의 자발적 관심을 더 오래 지속시킬까.


결론은 우리에게 있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궁금하다. 우리는 만날 수 있는가.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우리는 현재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애는 이미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복잡하고 미묘하게, 그리고 깊게 연관되어 있다. 단지 그 문제들을 장애와 연결해서 논의하려했던 자리가 부족했을 뿐이다.
세계는 이미 충분하게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며 불평등하기에 우리는 장애와 만날 수 있고 장애예술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고민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동창작의 시작이자 지속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각자의 삶에서 시작된 문제의식들이 장애예술이라 불리는 영역 안에서 더욱 다양하게 교차되며 덜 외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과 같은 논의 자리가 그 만남을 함께 이어갈 잠재적 동료를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장애예술에 대해 스스로가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여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장애예술’이라는 주제를 향해 급작스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려 하지 말고 이미 우리 삶에 넘치는 문제를 바라보자.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럼 영상 보러가기

 

http://bitly.kr/248Qmw

 

 

 

 

 

 

 

포럼 소개

 

비기자는 일부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신청하세요.

 

http://www.siheung.go.kr/administration/173067

 

 

 

 

장애인의 창작활동과 관련한 비기자의 연구내용 및 표현도구를 소개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https://bigija.tistory.com/96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본 연구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된 시간으로 인식되었는지 생각해보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감각과 속도에 대해 어울림을 기대하지 않고 그 자체로 만날 수 있는 장치들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본 연구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보다 교육의 방향성과 관련한 논의 확장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공감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본 연구보고서가 낯설지 않은 질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보고서는 아래 링크를 통해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GDuBqH7UjrdytxUx6qlPOHKqyMJHv2GU/view

 

 

 

목차

 

1. 장애인의 표현 바라보기

(1) 장애인의 표현을 바라볼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

(2) 장애인의 표현,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

(3) 장애인의 표현을 바라보는 시선들

 

2. 장애인의 표현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 가능한 방법들

(1) 표현과 관련된 요소들을 중심으로

(2) 교육 현장을 반영한 방법의 재구성

 

3. 장애인의 표현을 고려한 교보재 개발

(1) 표현의 관점을 확장하는 도구

(2) 관계적 도구

 

 

 

*  이 책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선정된 <성인 장애인의 자기표현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및 교보재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이 책자에는 2018년 12월 5일에 이음센터에서 진행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오픈테이블의 발제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픈테이블 소개 : https://bigija.tistory.com/74)

 

 

 

펴낸 날   2019년 1월
펴낸 곳   창작그룹 비기자
연구원    김지영 신원정 신재 유선 최선영
디자인    사만키로미터

 

 

 


* 인쇄본 배송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성함/주소/신청 권수를 보내주세요.

010-8504-1077

 

 

*  배송비 : 착불(우체국택배)
*  개인정보는 우편물 발송 용도로만 사용 후 폐기합니다.

 

 

 

 

 

 

놀이터 토크 "놀이를 놀이답게 하는 것들"

일시: 2018년 10월 12일(금) 저녁7시~9시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앞마당 모두의숲

 

토크 참여자

이소영_<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저자, 마그앤그래 대표

최선영_예술가, 비기자 멤버

만들이_놀이적 삶을 만드는 창작집단

신경아_숲놀이 강사

채진백_대학생놀이팀 언니오빠형누나 대표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된 놀이터토크에 참여했습니다.

 

*토크 자세히 보기 : http://www.wasuwon.net/131508

 

이슈 - 놀이를 놀이답게 하는 것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칼퇴근을 하면서 삶의 여유가 생겼다고 하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이도 있고, 해당되지 않는 업종의 종사자는 상실감만 크다는 이도 있다. 우리사회가 워낙 복잡해져서 하나의 제도가 모두를 웃게도 울게도 하지 못한지 한참. 안타깝기도 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지 감정이입도 된다. 그 사이, 평생학습계에서는 이 늘어난 여가시간을 평생학습을 ...

www.wasuwon.net

 

 

 

*토크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재미를 찾을 만큼 '심심한 상황'과 '심심한 사람들'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 ‘보이지 않던 놀이의 장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비기자’는 경쟁하는 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문화예술적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남편인 이재환 작가가 디렉터이고 저와, 다양한 그룹들이 함께 한다. 다른 생각들끼리, 사람들끼리, 생명들끼리 비기자는 것을 위한 한 가지의 수단으로 놀이를 취하고 있다.

 

 

위)온갖 것들을 다다다다 갖다놓고 우다다다 놀자는 컨셉의 전시 <다다다방> @서울 마포의 문화비축기지

(아래)숲 속 오락실 @경기상상캠퍼스

 

 

미로를 만들고 오락기를 만드는 이런 활동들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별 것 없다’고 여겨지는 환경에서도 ‘별 별 짓거리를 이어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놀이라서 중요한 게 아니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서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좌)폐교에 예술가들이 모여 뭐가 재밌을까 찾다가, 근처에서 자연물들만 가지고 커다란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중)주안 쓰는 물건들을 주워서 소독기 안에 주크박스를 만들고 지역주민들이 가져온 CD를 틀 수 있도록 했다. ‘주크박스를 만들자’라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놀다가 재미있는 것을 찾았다. (우)회의실에서 어떻게 하면 제일 높게, 다르게 쌓아볼까 하며 어른들이 놀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려면 심심한 상황이 필요하다.' 기획해보자' '잘해보자' '독특한 놀이를 개발해보자', 이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건 좀 심심하지 않나 할 정도의 상황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재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비기자의 활동이 아니라 가족의 활동을 잠깐 이야기하면, 나는 강아지 네 마리와 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신나게 놀려면 공터가 필요한데,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을 주로 찾아다닌다. 누군가 보았을 때 ‘여기는 아무것도 없네, 놀이터도 없네.' 이런 공간을 주로 찾아다녔다. 그러다보니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공간에서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시선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 ‘어떤 놀이터를 만들자’보다는 놀이의 장소를, 보이지 않던 놀이의 장소를 상상해보자고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 놀 수 있을까 생각되는 공간에서도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보통 ‘할 게 없다’,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의 상황을 이어갔는데, 이런데서 놀면 안 될 것 같은 곳, 가지고 놀면 안 될 것 같은 것도 모두 놀이의 소스가 된다. 아들이 놀 때, 어떻게 저 어린 인간이 세상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잘 노는지를 지켜보고 그걸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공사장에 가서 놀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를 보는 것도 놀이다.

하지만 계속 놀듯이 사는 건 정말 어렵다. 많은 분들로부터 대체 저래서 돈은 언제 벌까, 애가 저렇게 놀기만 해서 어쩌나 등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필요한 것이 놀이터는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그보다는 삶을 놀이의 장소로 의미화하는 것, 그런 시선이나 인식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어른들이 기획한 놀이터에 대해서 이야기를 요즘 많이 하지만, 사실 어른들도 놀 수 있는 삶의 장소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이 두 가지 맥락이 비기고 있는가. 놀이터라고 기획되지 않은 곳에서도 과연 우리가 신나게 놀 수 있는가. 가장 큰 힌트는 심심한 상황과 심심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어떤 것을 해볼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하고 있는 상태다.

 

안티카페 손과얼굴이 주관한 <작업과 생업> 워크숍에서

비기자의 활동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워크숍을 준비하며

 

쓸모와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그 사회를 벗어나거나 모른척하지 않으면서 ‘예술’이라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을 개인과 사회가 ‘가치가 있는 활동’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자체를 굶지 않으며 이어가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생존’이다.

<비기자>는 현재는 생존해있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현재 <비기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제까지 어떻게 생존해왔는지, 현재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생존 전략을 계획하고 있는지 정도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 어떻게 10년 넘게 생존해왔는지’이다.(<비기자>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이름으로) 심지어 이런 것도 해봤다, 해보니까 진짜 힘들더라, 못해먹겠더라, 그럼에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어떤 식으로 찾게 되더라, 가끔은 그런 이유를 찾지 못해도 하게 되더라, 이런 이야기를 경험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대안은 없다. 대안은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대안이 있다고 외치는 건 무책임하다. 그래서 우리가 해봤던 것을 작은 실마리로 던져 같이 나누고자 한다. 어차피 대안이 있든 없든 우린 이 근처에서 살아갈 테니까. 어딘가로 떠나버릴 입장도 아니고 용기도 없다면 삶(혹은 예술)의 태도를 바꿔볼 결단이 각자에게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자.

 

 

 

구성

 

① 비즈니스 생산모델을 위한 프로세스

-비공식적 작업을 공식적 프로젝트로 기획하기

-삶의 조건이 변화했을 때 창작도 변화시키기

-기획, 교육, 공연, 전시, 연구, 리서치, 영화, 컨설팅, 강의까지 연결하며 하기

 

② 예술가를 위한 사업계획서

-비언어적인 실험들을 언어로 설득하기

-기획서 작성 경험 나누기

-행정언어에 기죽지 않기

 

 

 

 

사진 : 안티카페 손과얼굴 제공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자유학년제 프로그램 <낙서로 시작하는 여행스케치>를 진행했습니다.

 

중학생 25명과 함께

비기자가 제작한 '구도잡기 도구'를 활용해 그림의 구도에 대해 생각해본 후

경기상상캠퍼스의 풍경을 자유롭게 스케치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이뤄진 프로그램이었지만

학생들이 그림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일상적으로 스케치를 시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진행 : 김예원, 이재환
협력 : 뜻뜻네트워크

 

 

 

 

어린이 미술전 <숨은그림찾기>에 참여하여 그림자놀이 작품 '그림자의 기억'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림자의 기억 / 영상, 나무, 야광 안료 / 가변크기 / 2018

 

 

 

 

 

 

 

 

 

 

 

말을 하지 않아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지 않아도 그림자는 그 자체로 놀이가 될 수 있다. 누구든 벽을 바라보고 빛을 등지면 그림자를 만들 수 있고 각자의 모습으로 그림자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비기자’는 단지 그 놀이의 참여를 유도하는 몇 가지 장치를 배치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 안에서 만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비기자’가 ‘놀이’라는 개념을 해석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잘하거나 못하는 것의 기준이 없는 ‘놀이’는, 더욱 많은 사람의 참여기회를 비길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놀이 자체에서 비기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래서 ‘비기자’는 놀이 과정에서 경험적으로 기억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행위의 과정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동등한 표현의 기회를 가졌다면 그것은 비기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라 여긴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림자의 기억> 작품은 눈에 띄는 그림자(결과물)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참여 기회를 비길 수 있게 한다. 야광안료가 칠해진 벽이나 설치물 위에서 금세 사라져버리는 그림자(결과물)의 잔상도 그러한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은 자신의 표현물인 그림자를 만들어보는 놀이에 참여하지만 그 표현물은 이내 사라져 놀이의 과정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요한 것은 잠시 완성되는 그림자만이 아니라, 관객의 망설임,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잔상에 대한 아쉬움, 다시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보려는 시도 등일 것이다. ‘비기자’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작동될 수 있도록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걸고자 한다.

 

 

 

 

 

경기상상캠퍼스에서 4월27일에 열린 지역문화축제 포레포레에서 <주사위놀이존>을 기획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참여자는 주사위에 숫자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자유롭게 주사위놀이를 해볼 수 있습니다.

비기자는 띠리리제작소와 함께 만든 주사위타워 10여종을 배치하고

지역주민들이 각자의 놀이를 시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비기자가 몇가지의 놀이도구를 제시하지만

참여자가 스스로 놀이를 개발, 실험해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입니다.

 

주사위타워의 구조와 재질에 따라

주사위가 타워를 통과해 밖으로 나오는 동안

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데

이 점이 주사위놀이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주사위타워 제작 협력 : 띠리리제작소

*사진 : 양승욱

 

 

 

 

 

경기상상캠퍼스에서 4월27일에 열린 지역문화축제 포레포레에서 <숲속오락실>을 기획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습니다.

 

2년 동안 비기자가 제작하거나 리뉴얼한 레트로 오락기들을 설치하여

숲속오락실을 만들었습니다.

 

오락기는 한 판에 100원이었지만

이것은 지역주민들이 동전을 넣고 스릴있게 게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한 기획적 장치였습니다.

 

오락실에는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레트로 오락기에 관심이 있는 어른들도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레트로 오락기 디자인 및 제작 협력 : 띠리리제작소

*사진 : 양승욱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