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자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의 2016년 지역리서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1950년 대전형무소를 바탕으로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사건들을 6개월간 리서치하고 놀이 방식의 설치물로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서 ‘리서치’ 라는 말의 의미가 조사, 연구라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예술적 맥락으로 시도 가능한 ‘리서치’는 어떤 정보나 이론을 ‘알아내는 것’, ‘알게 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정보의 이해나 해석 이전에,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한 개인이 그 주제에 왜, 어떻게 다가서려 하는가를 스스로 되짚어보는 것에서 그 방향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작업은 대전형무소와 관련한 사건에 대한 ‘비기자’의 입장을 발표하는 것보다, ‘비기자’를 포함하여 어떤 사실을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주체적 궁금함을 움직일 수 있을지를 찾는 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비기자’ 역시 프로젝트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학자, 연구자, 활동가, 사건당사자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기 다른 입장을 확인하고 있지만 그것을 ‘비기자’의 가치관에 따라서라 아니라, 기록된 키워드들로 분류하여, 작품으로 펼쳐 보이려하였습니다.
_멘토 : 신기철 (금정굴평화인권재단 소장), 전갑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주윤정 (사회학자)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프로젝트 결과보고전시가 11월 10일에서 27일까지 열렸습니다.
관객이 전시장에 놓인 토큰을 던지며 퀴즈(대전 형무소 학살과 관련한 수수께끼. 간단한 문맥 파악, 인터넷 검색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 수 있는 수준)를 풉니다. 퀴즈에서 획득한 단어들을 바탕으로 스크린 앞으로 이동합니다. 스크린 앞에 설치된 노트북을 이용해서 여러 단어들을 검색해봅니다. ‘해시태크’ 방식으로 분류되어 있던 200여개의 영상 클립들이 관객의 검색어에 따라 몇 개씩 노출됩니다. 관객은 그 내용을 보며 다음 단어를 찾고 영상들을 봅니다. 이 영상 안에는 대전형무소 학살을 바라보는 (소위 말하는) 우익, 좌익의 입장이 섞여있습니다. 영상을 모두 볼 경우,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마지막에는 ‘노래’로 검색하도록 안내를 해둡니다. ‘노래’를 검색하면 유가족이 만들어 부른 노래의 멜로디가 나옵니다. 이것은 인터뷰에서 기록한 유가족의 노래를 피아니스트가 다시 연주하여 녹음한 음악입니다.
"전쟁을 ‘나’와 ‘적’의 싸움으로 전제해두고 한국전쟁과 학살을 들여다보면 ‘나’ 그리고 ‘적’은 누구인지 그 실체를 파헤치는 방향으로 생각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실체를 감추려 한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해 비판적, 공격적 시선도 생깁니다. 그 사이 나와 적의 경계는 분명해지고 적에 대한 불안 혹은 반감도 커져갑니다. 누가 누군가를 공격했고 죽였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 작업은, 점점 그 잔인한 행위의 이유들을 확인하거나 규명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하지만 리서치 과정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언어로 정리된 어떤 원인이나 사건 전개, 그 이전에 어떤 시대를 살던 평범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이념,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보통 해석되는 전쟁이라는 사건 안에 놓여있지만, 자신의 밥줄을 지켜내고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급박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에서 갑자기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해석들이 시간과 함께 쌓여갈 때, 그 더미를 조금씩 털어내며 몸을 움직여보는 것이 본 리서치 작업이었습니다.
_카드 디자인 : 가까운 디자인
_토큰 제작 : 릴리쿰
_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 주준석
_피아노 연주/녹음 : 최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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