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준비해온 창작그룹 비기자의 해단식을 영상과 책자로 진행합니다.

 

 

 

 

 

 

안녕하세요

창작그룹 비기자입니다.

 

지금부터 해단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비기자는 그동안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든다’고 활동의 의미를 소개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긴다는 것의 의미는 훨씬 다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무언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도 포함됩니다. 한쪽이 빠르게 가려고 할 때, 한쪽이 느린 속도를 고수해서 앞으로 거의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런 팽팽함의 연속 같습니다. 잘 보이는 것, 명확한 것, 효율적인 것, 관습적인 것, 익숙한 것, 쉬운 것, 그것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예술일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무언가가 있고 그로 인한 팽팽함이 이 세계의 균형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하고 불규칙한 것들이 넘쳐나지만, 바로 그런 현실도 지탱하는 균형.

 

그 팽팽함 속에서 비기자의 위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될지 모를 것들을 해보는 것에 집중했던 시간들이, 무엇을 ‘되게’ 하는 과정에 적절히 쓰이는 경험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비기자는 더 명확하고 적당한 것들을 선택하고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것이 단체의 운영을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기자라는 이름을 정리하는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좀 멀리 도망가 보려고 합니다. 분명한 이유와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그렇게만 살 수는 없기에 낯선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려고 합니다. 살짝 빗겨 나와 보니 부지런히 도망가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팽팽함의 어디쯤에서 작동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작그룹 비기자의 활동에 그동안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응원해 주신 더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작은 단체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사실 ‘비기자’는 우리에게 ‘이기자’보다 덜 익숙한 구호일 뿐 누구나 언제든 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만나요.

 

이제, 모두, 안녕.

 

 

 

* 비기자책 다운받기

drive.google.com/file/d/1V-TCJ5M3ol6U7W6Ujh90VEaI2ylckJpO/view?usp=sharing

 

비기자책_210x297_내지_웹.pdf

 

drive.google.com

 

 

* 해단식 준비과정 살펴보기

bigija.tistory.com/category/%ED%95%B4%EB%8B%A8%EC%8B%9D%EC%9D%84%20%EC%A4%80%EB%B9%84%ED%95%98%EB%A9%B0

 

'해단식을 준비하며' 카테고리의 글 목록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예술프로젝트, 전시, 공연, 영화, 교육의 방식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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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에 책을 신청해주신 분들께는 2월 초에 배송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창작그룹 비기자입니다.
 
비기자는 최근 몇년간 장애 예술, 장애인 예술교육, 장애문화예술교육 과 관련하여
강의, 자문, 교육, 연구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웹진, 월간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비록 비기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주축이 되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국내에 소개된 자료가 많지 않기에
그동안 쓴 글 등을 모아 공유합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모두 몇가지 방법론을 제시,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확고하게 정리된 개념과 매뉴얼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활동을 계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비기자는
본 자료가 현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확장된 질문을 발생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련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경우
아래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대표 최선영
voslss@hanmail.net
010.8504.1077 
 
*2021년부터의 자료는 아래 홈페이지에 업로드합니다.
https://uugoorichoi.tistory.com
 
 
 
 
◈ 장애예술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파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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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기획자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파일) 공유합니다

장애예술기획자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파일) 공유합니다. *책자 파일 다운받기 drive.google.com/file/d/1NlxiScQ6wI-CGoKsKnXo6deasmQn6aBj/view?usp=sharing 2020 장애예술기획자 양성과정_서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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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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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마치며

사단법인 로아트가 운영하는 대야미스튜디오에서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공간 ‘큰배미곳아트센터’ 모델링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대야미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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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 비 Let it be> 결과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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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 결과자료집

2020년 충북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 비 Let it be> 결과자료집을 공유합니다.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 - 책임 프로젝트 매니저 / PM 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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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같이잇는가치" 발제문 <같이 좀 모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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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2020 같이잇는가치" 발제문 <같이 좀 모르자>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2020 같이잇는가치"에 함께 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및 사전신청 : 소개 같이 잇는 가치 문화예술 오픈포럼 10.16.(금) 오후 5시 / 10.17.(토)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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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군포시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모임 아카데미 "스튜디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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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예술 매개 온라인 포럼_ 매개자의 자기질문 :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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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장애 예술 매개 온라인 포럼

2020 장애 예술 매개 온라인 포럼 매개자의 자기 질문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 수 있나?" ◎ 일시 : 2020. 9. 22. 2시 ◎ 참여방식 : 온라인 포럼 진행동안 실시간 채팅 참여를 통한 질의응답 및 의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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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자녀의 '예술하기'가 앞서나가기 전에 / 부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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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녀의 ‘예술하기’가 앞서나가기 전에

*본 글은 사단법인 로아트의 내부강의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장애인 자녀의 ‘예술하기’가 앞서나가기 전에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1. 나의 부모는 나의 ‘예술하기’를 사실상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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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강의] 장애문화예술교육 / 부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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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강의] 장애문화예술교육

2020년 6월에 '함께해서신나는문화예술협동조합 틈'에서 진행한 장애문화예술교육 관련 강의가 '틈teum' 유튜브 채널에 공유되었습니다. 1편_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www.youtube.com/watch?v=d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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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사전 간담회 발제문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올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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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

*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사전 간담회를 위한 발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다른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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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2019 꿈틔움 예술창작소 1:1멘토링지원사업'  결과자료집 원고 : 해석의 근거, 참조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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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근거, 참조의 흔적

*본 원고는 서울시 '2019 꿈틔움 예술창작소 1:1멘토링지원사업' 결과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본 사업은 <장애인문화예술판>이 총괄 운영하였습니다. *예술창작소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장애청년(만19세이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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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장애인의 생활예술 활동지원 및 FA 역량 개발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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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애인의 생활예술 활동지원 및 FA 역량 개발방안 연구보고서

비기자가 운영하는 '짓거리연구소' 이름으로 참여했던 서울문화재단의 [2019 장애인의 생활예술 활동지원 및 FA 역량 개발방안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서울시 생활문화 활성화 사업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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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충북문화재단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 프로젝트 <렛잇비:Let it be> 결과자료집 원고 :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https://bigija.tistory.com/151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본 원고는 충북문화재단의 '2019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프로젝트 <렛잇비 : Let it be>' 결과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실천을 망설이던 순간에, 나의 삶으로부터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첫날부터 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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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문화재단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 원고 :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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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에 실린 글입니다.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먼저 질문을 하고 싶다. A에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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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좌담회_장애예술 매개자 편
https://bigija.tistory.com/136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좌담회

일시:2019. 10. 27. 일. 오전 11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 참석: 성수연(배우), 신원정(다이애나밴드), 정소은(독립기획자),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진행:문영민(장애예술 연구자) 정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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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발제문]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https://bigija.tistory.com/135

[발제문]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공동체로 살아가기 2019.11.01. (금) 14:30~17:00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예술가(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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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연구 최종보고서 
http://www.i-eum.or.kr/u2/index.busan?contentId=29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

공지사항 korea disability arts & culture center 소통/참여 공지사항

www.i-eum.or.kr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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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본 연구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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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 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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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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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기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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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http://ggarte.ggcf.kr/?p=23 경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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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에 비기자가 발제자로 참여했던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장애인 문화예술 창작공간' 관련 오픈테이블 자료를 공유합니다. 자료 정리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18 잠실창작스튜디오 <잠실,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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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2호_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 교류와 협력 '우리는 만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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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다름의 가치로 만나기> 프로젝트

 

2016 <다름의 가치로 만나기> 프로젝트

비기자는 2016년도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불가사의한 자율학습모임&프로젝트’ 지원사업에 프로젝트 팀으로 선정되어 '다름의 가치로 만나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장애문화예술교육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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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놀이창작물 제작 프로젝트 '다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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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놀이창작물 제작 프로젝트 '다른 시간' (인천문화재단 '바로 그 지원' 지원사업 선정) 국내의 발달장애인법은 최근 제정되어 2015년 11월 21일부터 발의되었다. 그러나 법률은 물론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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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오픈포럼 "2020 같이잇는가치"에 함께 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및 사전신청 :

 

서울문화재단>예술공간>잠실창작스튜디오>주요사업

장애∙비장애 동행 프로젝트 <같이 잇는 가치> 소개 같이 잇는 가치 문화예술 오픈포럼 10.16.(금) 오후 5시 / 10.17.(토) 오후 6시 ※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온라인 사전 신청자에 한해 입장 가

www.sfac.or.kr

 

 

 

포럼 다시보기

www.youtube.com/playlist?list=PLF6OVRH0Mb0R31QJAawBZZ-kQ2jJ1sqZk

 

[2020 같이 잇는가치] 오픈포럼

 

www.youtube.com

 

 

 

 

 

 

발제문

 

 

같이 좀 모르자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최선영

 

 

내가 왜 지금까지 장애인의 창작활동이나 삶을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고 다시 말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장애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장애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럼 무엇을 더 말하고 싶은지 나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말, 혹은 내가 하는 활동은 타인에 의해 분명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사회적이거나 정의롭거나 선한 것으로 말이다. 누군가는 나의 활동을 이야기할 때 기특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분명하지 않은 동기와 의지, 혹은 목적이 ‘장애’라는 이름과 만나 누군가에게 분명해질 때 나는 의아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판단하기 전에 같이 궁금해할 수는 없을까. 어쩌면 그 단서는 장애라는 주제 밖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13년 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우연히 접한 후로 궁금한 것, 모르는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어쩌면 그 범위가 점점 커져 가기만 해서 기획도 해보고 워크샵도 해보고 해외사례도 찾아보고 낯선 형태의 연구보고서도 써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내가 인식하기 어려운 이야기나 삶, 그리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그 과정의 끝에서 구체적인 무언가를 알고 싶지 않다. 오히려 누군가가 함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어려움과 복잡함’을 더 자주 만나왔기 때문이다. 장애, 거기다 예술까지 덧붙여진 무언가에 있어서. 그래서 이 끝없는 어둠인지 공기인지 시간인지, 그것이 가득찬 터널을 같이 갈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확실한 길의 끝을 또렷하게 그려내는 사람 대신 그 길을 나와는 다른 방식과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해결사가 되고 싶은 것도, 해결사들을 조직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반듯한 길을 가다가도 가파른 동굴 속으로 때굴때굴 굴러가버리는 예술도 함께 쫓고 싶으니까.

 

 

 

낯선 형태의 연구보고서로 마무리된 질문들

(2018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연구원_김지영, 신원정, 신재, 유선, 최선영)

 

 

 

여기에 내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 많으니 앞으로만 나아가지 말고 같이 좀 뒤로도 가고 옆으로도 가고 바닥 깊숙이도 내려가 보자. 외롭지 않게 같이 좀 모르자. 이것은 장애에 대해 알아가자는 주장이 아니라 장애를 포함한 어떤 세계,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에 대해 같이 궁금해하자는 외침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는 왜 장애인의 예술하기를 기대하거나 지원하고 있을까”

 

“정책적 대상으로서의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멀어져 다른 말과 관점을 마련하고자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장애인의 특수성이 아닌 인간의 개별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창작활동을 살펴보려는 시도를 충분히 해봤을까”

 

“누가 누군가를, 혹은 사회가 누군가를 포용하기 위해 예술을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은 정말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가능 여부를 고려할 때 전제된 ‘예술’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 양상, 모습을 띄고 있을까”

 

“(인간의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은데) 나는 왜 장애인의 어둡거나 기괴하거나 더럽거나 모호하거나 처참하거나 우울한 창작활동은 충분히 만나지 못하고 있을까. 또한 그러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장애인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관점과 언어는 마련되어 있을까”

 

“내가 장애인의 창작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연구에 참여했을 때, 왜 10년 전 특수학교에서 만났던 3년간 끈만 흔들던 OOO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을까. 나는 왜 곧바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장애인의 창작이 활성화되는 상태’라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을까”

 

“긍정적인 삶의 경험을 토대로만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장애인에게는 상처받거나 실패할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있을까”

 

“장애인의 표현 및 창작활동이 활성화되는 것과 더불어,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을까”

 

“왜 계속 질문을 하다 보면 그 내용이 꼭 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까”

 

그리고

“나는 대안을 말해야 할 것 같은 자리에서도 왜 아직도 질문만 하고 있을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안을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의 필요성, 혹은 대안을 말하는 것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애인이라고 뭉뚱그려진 존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계속 질문할 수 있으려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 나는 나를 위한 질문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같이 모르자는 말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를 포함한) 질문하는 주체들을 위한 제안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양한 삶이 혼재된 세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궁금해할 수 있는 것은 넘치고 또 넘친다. 만약 사람 간에 서로 동등하게 모를 수 있다면 궁금함이 전제된 다양한 만남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예술’이 그 만남의 방식이나 언어가 된다면 궁금함의 영역은 끝도 없이 넓어지거나 혹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기에 예술 근처에서 서성이며 질문하고자 한다. 예술은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공식은 되기 어렵지만 우리가 맴맴 돌며 떠나지 않게 만드는 장소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언제부터 여기에서 서성이고 있었나 떠올려보다가 몇 장의 흔적을 발견했다. 10년 전 특수학교 방과후 강사 시절, 산속에 덩그러니 있던 학교 주변으로 공사장 펜스가 쳐졌는데 나는 그 앞을 오가다 혼자 시를 썼었다. 나는 왜 수업준비를 해도 모자를 시간에 펜스 위에 덧씌워진 거짓말 같은 꽃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 위에 글을 쓰고 있었을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혼잣말 같은 질문들이 결국 ‘여전히 모르겠다’는 오늘의 고백과 ‘같이 좀 모르자’는 외침만 남기게 되었는데.

 

 

 

 

 

(비기자가 운영하는 '짓거리연구소'의 기획)

 

 

2020 경기상상캠퍼스 입주단체 연계프로젝트

일곱 가지 놀이와 전시 <애간장올림픽>

 


2020.10.27.-11.3 (월요일 휴관)
경기상상캠퍼스 청년1981 2층 밍글링존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

 

 

기획 / 짓거리연구소 
협력 / 띠리리제작소 
후원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경기상상캠퍼스 

 

 

 

놀잇감 제작 : 띠리리제작소, Alpha.lee

전시안내 : 김예원

전시설치 협력 : 고륜호, 권오하

포스터 이미지 : 이려진
포스터 디자인 : 즈즈스

사진 : 양승욱

영상 : 이재환

 

 


띠리리제작소와 함께 만든 놀잇감을 전시를 통해 소개했습니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지만 놀다 보면 비길지 모릅니다.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과 놀이를 관람하는 사람이 애간장이 탈 만큼 과정 자체로 흥미로운 놀이 현장을 올림픽 컨셉으로 만들었습니다. 보통의 올림픽에서는 경쟁을 통한 결과가 중요시되지만 <애간장 올림픽>에서는 오히려 참여자들이 동등하게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더불어 반어적 해석이 드러나도록 더욱 올림픽 컨셉을 유지하고 다양한 참여가 가능한 현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특강] 코로나시대, 아이들을 위한 부모교육은?

불안함의 반대편에서 놀기 

 

강의 보러가기

www.youtube.com/watch?v=moJJ9xW9pjo&t=2726s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
사전프로젝트

 

길을 잃기 위하여

 

 

 

무엇을 할지 안내하지 않고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낯선 질문들을 따라간 자리에
무엇이 남겨졌을까요?

 

 

1차

○ 일정 : 2020. 7. 28
○ 장소 : 인포숍카페 별꼴
○ 기획/진행 : 창작그룹 비기자

 

 

 

 

 

 

 

2차

○ 일정 : 2020. 8. 4
○ 장소 : 띠리리제작소
○ 기획/진행 : 창작그룹 비기자

 

 

 

 

 

- 포스터 이미지 : 이려진 작가의 <타임 머신>

- 포스터 디자인 : 즈즈스

- 사진 : 양승욱

- 영상 : 우에타 지로

 

 

 

* “길을 잃기 위하여”는 9월14일(화) - 9월17일(목) 열리는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의 사전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 홈페이지 : itac5.org

 

http://itac5.org

 

itac5.org

 

 

 

* 이 글은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의 세 개의 주제 중 '언러닝unlearning' 파트에서 기획되었던 사전프로젝트 관련 원고입니다.

 

우리는 길을 잃을 수 있다.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 최선영

 

 

“이 활동의 목적이 뭐죠?”

아리송한 문장 한 줄이 제시되고 밑도 끝도 없는 수수께끼 놀이가 시작되자, 누군가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일단 한번 해보시죠.”

 

수수께끼를 던진 진행자가 대답한다. 하지만 목표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어떤 놀이에 대해 누군가는 계속해서 불안함, 혹은 의구심을 품는다. <창작그룹 비기자>(이하 <비기자>)는 이런 놀이의 기획과 진행을 자주 해오고 있고 그것의 목적을 묻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노를 젓는 상황도 아닌데, 그렇게 위험하고 막막한 일이 아니라면 한번 생각의 노를 저어보자고 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단지 책상에 앉아 질문을 던지는 것에도 불안함, 내지는 불편함을 드러낸다. 일하기도 바쁜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알쏭달쏭한 놀이를 제안한다며 불만도 내비치는 이도 있다. 그래도, 혹은 그래서, <비기자>는 일단 한 번 해보자고 제안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개발시키는 것에 익숙한 우리가, 같이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놀이, 혹은 무언가에 대해 목적을 확인하기 전에, 그것이 무엇일지 같이 찾아보자고.

 

이러한 생각이 ‘언러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와 관련한 힌트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러닝’은 학습된 개념, 관념, 언어, 학습하려는 관성, 학습과정을 지배하는 사회적 구조나 가치관 등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언러닝’은 낯설고 어렵고 불편하다. 특히 예술교육실천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혹은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언러닝’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 쉽지 않음을 마주하거나 인정하는 것부터가 ‘언러닝’의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비기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시대를 경험하며 그동안의 논리성, 합리성, 계획성을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예측하거나 확정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발빠른 대처능력이나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향해 달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상황에서 각자 덜 불안해하거나 즐기거나 혹은 방황을 통해 무언가를 찾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길을 잃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사전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만나기는 하지만 만나서 무엇을 할지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러한 ‘적극적 방황’에 공감하는 이들을 기다린다는 짧은 멘트를 사전프로젝트의 참여자 모집 포스터에 남겨두었다.

 

사전프로젝트는 워크샵 방식으로 총 2회, 각 3시간씩 다른 장소에서 이뤄졌다. 워크샵마다 7명 정도의 예술교육실천가, 혹은 이 프로젝트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

 

* 첫 번째 사전프로젝트 / 2020.7.28. / 인포숍카페 별꼴 *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모른채 모인(몰라도 괜찮은)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았다. 진행자(비기자)의 인사와 진행에 따라 목적없고 모호한 ‘그림받아쓰기’(Drawing Dictation)를 시작했다. ‘그림받아쓰기’는 한 명이 한 장의 그림을 혼자만 보면서 5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나머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토대로 질문을 하며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활동의 이름이 ‘그림받아쓰기’이니 더욱 처음의 그림과 비슷하게 그림을 그려야할 것만 같다. 그러나 진행자는 그것만이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대로, 그릴 수 있는 만큼만, 혹은 자신이 상상하는대로 그려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참여자A가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이렇게 5개의 문장을 이야기했다.

 

 

1. 대머리 남자가 승모근이 뻐근한 상태로 걷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기적 중에 하나를 터득했습니다.
3. 남자는 계단을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가고 있는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4. 대머리 남자는 사실 4명입니다.
5. 한 명은 장님이고 세 명은 눈이 부셨습니다.


참여자들이 질문을 시작했다. 진행자가 어떤 질문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으나 대부분 그림의 시각적 구성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진행자는 “예”, “아니오” 혹은 “모르겠습니다” 중 하나로만 답변할 수 있다.

“계단의 경사가 심한가요?”

 

“대머리라고 하면,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건가요?”

“사람 말고 다른 생물체가 있나요?”

“승모근이 많이 솟아있나요?”

“기적을 행할 때 선글라스가 필요한가요?”

“남자들이 티셔츠를 입고 있나요?”

그러다 점점 질문을 더 쪼개어 자세하게 하게 되었다. 혹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게 되었고 이따금 혼잣말 같은 질문도 하게 되었다.

“그림 속에 계단이 있긴 했어요?”

“남자 4명이 일렬로 서있는데 세 명은 선글라스를 꼈고 한 명은 장님인 것 같다고요? 그게 뭐지?”

“그 남자가 직업이 있다고요? 그건 또 뭐지?”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기적이 뭐가 있지? 검색해 봐도 돼요?”

 

 

30분 이상 질문과 대화를 주고 받은 후에 각자 그림을 그리고 처음에 참여자A가 혼자 봤던 그림을 모두에게 공개했다. 묘하게 비슷한 그림, 비슷하려고 딱히 애쓰지 않은 그림, 비슷하지 않을까봐 조심조심 그리다 미완성이 된 그림 등이 각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림받아쓰기’를 하며 느낀 소감을 나눠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서 질문을 해요. 각자가 떠올리는 상이 이미 있는 거죠. 그럴 때는 그 상이 맞는지 확인하는 대신 여러 질문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난감한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각자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게 흥미로워요.”

 

 

참여자들과 다른 그림을 한 장 골라 ITAC5의 아트프로젝트에서 ‘그림받아쓰기’를 이어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5가지 문장은 참여자들과 함께 의논해서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나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2. 나는 머리가 갈라져있고 팔이 매우 길어요.
3. 나는 의자에 앉아있어요.
4. 내가 키를 쥐고 있어요.
5. 거울에는 나와 다른 모습이 비춰져요.

 

이 5개의 문장을 바탕으로 전세계의 예술교육실천가(Teaching Artist)들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다양한 상상과 표현이 온라인 컨퍼런스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될 것이다.

 

- 아트프로젝트 바로가기 : itac5.org/?act=info.page&pcode=project

 

 

‘그림받아쓰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제시된 그림 없이 문장만 제시하고 이 문장 안에 잘 그려지지 않는 전체적인 상황을 질문을 통해 맞춰보기로 했다. 물론 이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그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림받아쓰기’와 달리 이 활동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다. 이 활동 혹은 놀이의 제목은 ‘이야기의 나머지’이다. 제시된 이야기의 나머지를 상상하고 맞춰보는 것이다. 제시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연기를 끝낸 후, 큰 박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삶이 편안해졌습니다.


그가 어떤 연기를 했기에 큰 박수를 받지 못했지만 삶이 편안해졌을지 참여자들이 알아내기 위해 질문을 시작했다. 답변하는 사람은 역시나 “예”, “아니오” 혹은 “모르겠습니다” 중 하나로만 답변할 수 있다.

 

“그는 죽었나요?”

“몰래카메라인가요?”

“그 편안함은 정서적인 편안함인가요?”

“그가 부유해졌나요?”

“그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했나요?”

“그에게는 가족이 있나요?”

“그 연기는 남이 시켜서 하는 연기인가요?”

 

그림도 없으니 질문이 더욱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해야 했고 답변하는 사람도 (답이 있음에도) 자신이 그려놓은 상황을 전제로 답변해야 했다. 참여자들의 질문은 더욱 산으로 가기도 했고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 하나 덕분에 단번에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나머지’에 대한 정답은 이 글에서는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모호한 것을 계속 궁금해할 때, ‘언러닝’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길을 잃더라도 말이다.

 

첫 번째 사전프로젝트를 마치며 참여자들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최근에는 어느 길로 가야할지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근데 여기서는 제가 생각하려는 것의 정반대더라고요. 그래서 신선했어요. 적극적으로 방황하자는 말이 좋았어요.”

“오랜만에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에요. 지금껏 갖춰진 생각 속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은 그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문장이 제시되니까 자꾸 맞추려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못 맞췄을 때는 자책하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이수한다고 하면 가성비를 따져요. 이걸 들어서 내가 얻는 게 뭐지? 하면서요. 따지고 보면 쓸모없는 건 없잖아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니까요. 사람들이 그러는 데에는 사회가 한몫하는 것 같아요. 불확실함을 지양하는 세상이니까요. 오늘은 불확실한 것도 괜찮다고 위로받는 시간이었어요.”

“안전하게 길을 헤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다들 처음 만났는데도 편안했어요.”

“저는 연필, 지우개, 노트가 주는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 좋았어요. 맛있는 커피와 다과도, 이런 안전한 느낌의 공간도요. 감성을 자극했다고 해야 할까요. 일반 회의실에서 했으면 뭔가 초조했을 것 같아요.”

 

 

** 두 번째 사전프로젝트 / 2020.8.4. / 띠리리제작소 **

 

역시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모른채 모인(몰라도 괜찮은) 8명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았다. 진행자(비기자)의 진행에 따라 몇 가지의 게임 같은 대화를 나눴다. 여기에서는 그 중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게임 [너도나도]

 

하나의 주제어를 정하고 그 밑에 그 주제와 관련된 것을 10개 적어보았다. 그 주제어와 관련해서 나만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다른 참가자들이 썼을 법한 단어를 생각해서 써보았다. 모두가 단어를 쓰고난 후 각자 쓴 것들을 공유했다. 제시한 단어가 다른 참가자들이 쓴 것과 일치하면 인원 수에 따라서 점수를 얻는다. 단,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했을 때 철자가 하나라도 다르면 그건 서로 다른 것이 된다.

 


주제어는 ‘길’이었다. 강아지똥, 나침반, 걷다, 산책, 끝, 배수구, 앞으로, 이정표, 선택, 인생, 신발, 동행 등등 여러 단어가 튀어나온다. 한 가지 주제어에 대해서 단어를 적어 보면, 그 사람이 어떤식으로 사고하거나 언어화하는지에 대해 어림짐작할 수 있다. ‘길’이라는 단어에서 누구는 자연을 떠올렸고 누구는 삶을 떠올렸다. 또한 누군가는 ‘길’을 걸으며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것들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길’이라는 개념과 연관된 상징적 단어들을 떠올렸다. 본인이 적은 단어들을 말하는 도중에 “나 너무 메말라있나?”라고 누군가가 읊조리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쓴 단어에 “어떻게 그게 떠올라요?”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주제어를 제시하고 ‘너도나도’ 게임을 몇 차례 해보았다. 과연 너도 나도 이걸 떠올리겠지 했던 추측이 여지없이 빗겨나갔다. 누군가는 남들과 너무 다른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확인하며 조용히 웃기도 했다. 서로가 각자의 길 위에서 생각하며 단어를 적어보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서로를 만나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번째 게임 [가치게임]

 

조금 전에 적었던 단어들을 빈 카드에 하나씩 적어 카드 더미를 만들었다. 진행자가 카드 더미에서 5장의 카드를 임의로 선택하여 5개의 단어를 모두에게 제시했다. 이 단어에 대해 각자 가치의 우선순위를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다. 그 순위를 공개하지 않은 채 옆 사람과 1:1 대화를 통해 서로 가치의 순서를 맞춰보았다.

서로의 생각을 읽는 이 게임은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어떤 말이나 질문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나와는 다른 상대방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궁금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제시된 다음의 단어들로 가치의 순서를 매겨본다면 어떨까?

 

민들레     동네     미래     과정     선택

 

민들레나 동네와 같이 구체적인 단어는 각자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민들레는 꽃 전체로 전제해도 되고, 오늘 집앞에서 본 한 송이의 민들레로 한정해도 된다. 어쨌든,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의 순서대로 단어들을 나열해보면 우리는 어떤 단어와 단어, 가치와 가치 사이에서 특히 고민하게 될까?

 

 

세 번째 게임은 아직 이름이 없다.

이 게임은 미완성으로 참여자들에게 제시되었다. 게임의 규칙이나 진행방법을 ‘비기자’가 완전히 설계하지 않은 채 어떻게 게임 혹은 대화를 다채롭게 이어갈지 함께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소통의 도구는 제시되었다. ‘비기자’와 협력해서 ‘띠리리제작소(DIRIRI Making Studio)’가 최근 만든 낯선 저울 2개가 그것이다. 그 저울을 만든 배경에 대해서만 ‘비기자’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가치는 무게로도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무게는 몇 kg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무게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말로 전하는 가치의 무게는 굉장히 모호하거든요. 상대적인 것에 대해서 시각화, 개량화는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같은 소통의 과정을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보기 위해 ‘가치 저울’을 만들어보았어요.”

 

나무와 버려진 사물들을 이용해 만든 ‘가치 저울’ 주변으로 참여자들이 둘러 모였다. 앞선 게임들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집’에 대한 이야기가 뜨거웠던 점을 모두 공감하여 ‘집’을 주제어로 저울을 이용한 어떤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참여자들은 저울에 추를 달아보기도 하고 저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러다 알록달록하고 넓직한 판이 있는 저울을 이용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판에 파여진 홈에 나무 조각을 올려놓으면 판은 기울어진다. ‘집’과 관련하여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나무 조각에 단어로 적고 판 곳곳에 올려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울의 한 쪽 구석에 ‘대출’이 적힌 나무 조각이 놓였다. 그러자 누군가에 의해 저울의 반대쪽에 ‘대출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적힌 나무 조각이 놓였다. 이로써 균형은 맞춰졌다. 전세, 사랑, 가족, 눈물, 옥상, 마당, 방수, 환기, 식물, 반려동물 등 여러 단어 각자의 자리에 놓였고 무게를 드러냈다. 안식과 불안함도 뒤따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는 저울이 한쪽으로 더욱 기울도록 했고 누군가는 계속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처음엔 권리, 자유, 독립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듯했으나 그 반대에 이웃, 안정, 사랑이 위치하면서 균형이 생겼다. 나머지 구석에는 로또, 청약, 대출이 강력한 무게로 버티고 있었다. 층간소음, 담배냄새와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담을 나누며 게임은 끝이 났다. 한 바탕 떠들고 나니 이것은 과연 길을 잃은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

 

사전프로젝트1을 진행했던 ‘비기자’의 멤버A는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언러닝을 시도하며 워크샵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 재료, 시간, 언어, 활동 그리고 다과까지 고민하고 준비했었다. 한편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또다른 멤버B는 “길을 잃기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준비하기 보다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도 좋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사전프로젝트2를 기획했다.

 

많은 것을 미리 준비했던 멤버A는 참여자들이 ‘길을 잘 잃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예술교육실천가라고도 볼 수 있다. 덕분에 참여자들은 현장에서 안전함,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고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반면 멤버B는 일종의 열린 구조를 바탕으로 사전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몇 가지 활동은 구체적인 안내를 했지만 일부 활동은 참여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나갔다. 멤버B는 우리가 정말 길을 잃을 수 있을지 같이 실험을 해봤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언러닝에 접근하는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확장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사전프로젝트1과 이번에 소개하는 사전프로젝트2의 과정이, 우리를 언러닝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두 번의 사전프로젝트를 통해 멤버A,B가 모두 공감한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언러닝’을 하기 위해서는 매우 ‘러닝’해야한다는 것. 누군가가 낯설거나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굉장한 노력과 시도를 해야하고 이따금 학습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러닝’은 ‘러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사유와 실천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러닝이다’라는 해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비기자’는 우리가 그런 시도를 얼마나 하려고 하고 있는지 함께 질문해보고 싶다.

 

예술가의 JOB소리 

<예비 예술인을 위한 진로콘서트 - 문화예술기획 편>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솔직한 현재를 나누고자 합니다.

유료행사지만 '예술대학생네트워크'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차원으로

신청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자세히보기 및 신청 :

bit.ly/aun_job

 

<예술가의 JOB 소리> - 문화예술기획편 -

세상의 모든 모임 '온오프믹스'

m.onoffmix.com

 

2020년 6월에 '함께해서신나는문화예술협동조합 틈'에서 진행한 장애문화예술교육 관련 강의가 '틈teum' 유튜브 채널에 공유되었습니다.

 

 

 

1편_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www.youtube.com/watch?v=dzqbKPdWESs&t=2327s

 

 

 

2편_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

www.youtube.com/watch?v=fYcAEBh8flg&t=755s

 

 

 

3편_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1)

youtu.be/iBi0UPQWC4Q

 

 

 

3편_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2)

youtu.be/trzXwXVzgn8

 

 

 

*위의 내용은 아래 연구보고서를 통해 누구나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bigija.tistory.com/96

*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사전 간담회를 위한 발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바라본 하늘

 

흔들리는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다른 이름을 향하는 질문

 

‘장애예술’이라고 범주화된 개념 자체를 해체하거나 다른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강력한 정책용어와 사업명들이 매 순간 작동하고 있으며 에이블아트, 포용적예술, 아르브뤼, 아웃사이더 아트 등의 이름들은 시대에 따라 국내의 상황을 담지 못한채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 마련되어야 할 예술 영역에서 ‘장애예술’을 ‘장애예술’로만 도저히 호명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과 사례, 구체적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비평은 그 지점에서 필요하다. 새로운 이름의 등장이나 명명보다는, 존재했으나 인식되지 않았던 관점의 드러냄과 확장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근 정책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필요하다. 누가/무엇이 누구를/무엇을 포용/포함한다는 전제에 대한 질문도 요구된다. 이 용어를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국에서의 장애 창작자에 대한 인식과 국내의 그것이 갖는 교차지점이 과연 넓은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잡함의 화면

 

국내 장애인이 삶 안에서 경험하거나 마주해야 하는 교육, 복지, 문화 관련 이슈, 혹은 문제는 당연한 말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예술 이외의 영역에서 그것은 ‘복잡함’ 자체로 문제시되거나 장애운동에서 제거의 대상으로 놓인다. 그래서 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는 차별, 철폐, 가난, 부양, 의무, 책임, 보호, 인권 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것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관련성이 높기에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논의 안에 있다. 그러나 예술 영역에서는 그 ‘복잡함’을 복잡함 자체, 사회적 문제의 드러냄으로만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교육의 기회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얻을 수 없었던 장애 예술인의 작품은 교육적 차별을 드러내는 근거자료가 아니라 교육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장애 예술인도, 협력자, 지원기관, 보호자(가족)인 비장애인도 예술적 해석보다 앞서는 사회구조적 문제,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범하게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든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장애인은 주로 배려,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온 장애인에 대한 스스로의 관점도 성찰해야 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자연스러울 정도로 분리시켜온 사회구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예술 영역에서 집중할 수 있는 표현의 이유/이면, 표현된 표면, 그 표현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드러내는 무언가를 향해 멘토링과 비평이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멘토링과 비평이, 장애 예술인에게 따뜻한 다독임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장애인이 사용하는 재료와 표현언어에 대한 비장애인의 호기심1)을 넘어설 수 있다. 동시에 차가울 정도의 정확함(명료한 해석이 아닌 멘토, 비평가로서의 역할에의 충실함)이 서로의 활동 지속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감각과 장애특성을 가로지르는 개별성

 

한편,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정이나 결과물이 신체적 감각을 중심으로만 해석되거나 비평되는 것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에게 있어서 잘 보지 못함, 볼 수 없음, 혹은 다르게 볼 수 있음이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제, 청각장애인에게 있어서 잘 듣지 못함, 들을 수 없음, 혹은 다르게 들을 수 있음이 창작의 출발점일 것이라는 전제 등이 그러하다. 이것은 특정 장애유형이나 특성이 작품을 구성하는 대표적이거나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라고 보는 것인데 이것은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장애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복합장애나 넓은 장애 스팩트럼 등을 고려했을 때에도 장애특성을 중심으로 창작을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장애특성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창작자 스스로도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장애특성, 그것과 쉽게 연결되는 신체적 감각을 중심에 둔 접근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개별성, 개별적 삶이나 표현에 대한 촘촘한 층위들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매우 현실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간에도 소득수준, 사회적 지위, 생활환경, 교육수준 등에 따른 삶의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장애 예술인에 대한 비평의 언어들이 자칫 장애유형별 작품 특성 및 분석으로 재생산될 수 있음2)을 고려할 때,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창작자의 그 무언가를 개별화된 언어들로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각자의 흔들림으로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2007년부터 장애인과의 창작활동을 여러 현장에서 해왔다. 그러나 나의 관점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당연하게 설계되거나 인식되었던 사회, 예술, 창작, 개념의 전반을 성찰하거나 재배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작업실에 앉아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장애 예술인을 볼 때마다 오래전 특수학교에서 만났던 중증장애인이나 부모가 없는 장애아동을 떠올리며 예술에 대한 논의 이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우울한 환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내가 그 과정에서 정확해야만 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혹은 내 관점이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매 순간 (멘토링이든, 기획이든, 해석이든) 정확할 필요성이 동시에 마련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흔들릴 필요 없는 분명함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장애, 장애인, 장애예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평범성, 일반성으로 범주화된 영역에서 오랫동안 사고하고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그 영역을 만들고 범주화해온 언어들로부터 벗어나는 시도는 우리를 충분히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별로 논리적이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흔들리는 개인들이 장애예술과 관련한 언어를 마련하는 데에 장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기존 언어나 인식의 흐름으로부터 예속화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우리를 흔들 수 있는데 그것을 계속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장애예술에 대한 질문을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예술과 관련하여 정책은 흔들림 없는 새로운 이름과 비젼 정도를 원하지만 현장3)에는 확장된 담론과 흔들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언어들은 소수의 재능인으로서의 장애 예술인의 사회참여에만 기여하지 않아야 한다.4) 동시에 그 언어들이 장애예술 관련 사회적 성과나 의미를 작동시키는 간편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함의 표면을 미련하게 읽어내고 지지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공든 탑은 계속 무너진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우리의 삶과 창작은 그러하다. 그렇기에 튼튼한 탑을 쌓는 대신, 흔들리는 탑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다른 출발이 필요하다.

 

 

 

1) 호기심이 생길 때는 다른 나라의 장애 예술인의 창작물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한편으로 국가, 지역과 상관없이 비슷한 양상이나 표현기법이 발견되기도 한다.

(참고 : http://a-yamanami.jp)

 

2) 특히 이번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은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기획 사업으로 외부에 소개, 공유된다는 점에서 장애예술 관련 현장에 강력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다.

 

3) 창작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일상, 장애 관련 창작 및 기획활동의 시도, 장애 예술인을 지원하는 기관의 사업들, 장애예술 관련 사례를 통해 사회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개별화된 시도 등

 

4) "장애 예술인이 ‘창작이 활성화 되는 상태’를 작품발표의 기회 확대 및 전업예술가로서의 자리매김으로만 해석하지 않아야 창작의 지속을 위한 환경과 역량을 스스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복지제도가 안정화되어있지 않아 장애 예술인의 생계유지 및 사회참여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창작’ 자체, 혹은 ‘창작이 활성화되는 상태’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들이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예술활동 안에서 문제의식으로 작동되고 가시화될 때 장애예술의 의미도 국내 상황과 부합되는 독창적인 맥락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윤정 외, 2018,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연구”,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p.119)

🖐신종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비기자 공유회 "내일도 모르는데"를

홈페이지와 오픈채팅방 등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비기자 온라인 공유회

내일도 모르는데


창작그룹 <비기자>가 "내일도 모르는데" 예술, 여성, 장애, 문화, 제작, 놀이, 청년과 관련하여 해봤던 창작, 프로젝트, 연구의 사례와 결과물을 온라인을 통해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 공유회를 열며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분명한 방법과 계획을 설계하는 대신, 현재 가능한 것을 해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동시대 창작자이자 생활인인 창작그룹 <비기자>는 내일도 미래도 확신하지 못한 채 해봤던 것들을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술, 문화운동, 놀이, 연구의 경계를 오가며 해봤던 활동과 그 결과물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를 통해 <비기자>의 활동을 고유한 콘텐츠로 보호, 개발하지 않고 공동의 논의주제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우수 사례의 확산보다 치열하고 지지부진한 사례의 지속이 주는 힘을 실험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기자>의 활동은 경험적 정보가 되어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 공유방식
- 홈페이지 게시물을 통해 자료 및 세부내용 공유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비기자'를 통해 1:1 대화 (상시 대화 가능하나 내부일정으로 답변이 늦을 수 있음)

 

- 그외, 이메일 voslss@hanmail.net 을 통해 대화 가능

 

 

 

■ 공유내용

 

(1) 하고 싶어서 해본 것들 :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만들고 있는 놀잇감, 오락기, 보드게임, 도구 등

 

- 공유링크 1 : 비기자 포트폴리오

 

비기자 포트폴리오_20200222.pdf

 

drive.google.com

- 공유링크 2 : 제작물

 

'작업/제작' 카테고리의 글 목록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예술프로젝트, 전시, 공연, 영화, 교육의 방식으로 만듭니다.

bigija.tistory.com

 

 

 

 

(2) 같이 살면서 해본 것들 :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만들었던 음악 (비기자 멤버가 기획,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 참여)

 

- 공유링크 1 : MC.mama 1,2집 음원 듣기

 

MC.mama

http://choisunyoung.tistory.com

soundcloud.com

- 공유링크 2 : MC.mama 1집 가사집

 

2013_MC MAMA_1집_가사집.pdf

 

drive.google.com

- 공유링크 3 : MC.mama 1집 수록곡 <밤바라밤> 뮤직비디오

 

- 공유링크 4 : MC.mama 2집 가사집

 

2017_MC MAMA_2집_가사집.pdf

 

drive.google.com

 

 

 

 

(3) 먹고 살려고 해본 것들 : 창작활동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나간 경험

 

- 공유링크 1 : 2019 안티카페 손과얼굴 워크숍 '작업과생업: 수작의 기술' <창작그룹 비기자: 생존의 모양>

 

2019 작업과생업: 수작의 기술 <창작그룹 비기자: 생존이 모양>

​​작업이 생업으로 연장되고 생업이 작업으로 되는 하나의 직업적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는...

blog.naver.com

 

 

 


(4) 정리하면서 해본 것들 : 연구하며 정리했던 장애+창작 관련 내용

 

- 공유링크 1 :  장애+창작, 예술교육 관련 원고 및 자료

 

#장애예술 #장애인예술교육 #장애문화예술교육 자료 공유합니다 (20200214업데이트)

안녕하세요. 창작그룹 비기자입니다. 비기자는 최근 몇년간 장애 예술, 장애인 예술교육, 장애문화예술교육 과 관련하여 강의, 자문, 교육, 연구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웹진, 월간지..

bigija.tistory.com

 

 

 

 

 

 

 

창작그룹 비기자의 2010년도부터 현재까지의 활동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공유합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누구나 아래 링크를 통해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tuney.kr/AkIN4I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기자 소개  (0) 2018.02.03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에 얼마전 참여한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관련 글이 실렸습니다.

 

서울연극센터 연극인 - 연극인

 

www.sfac.or.kr

 

 

경력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_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7년 전 젖먹이 아들을 재우고 새벽마다 화장실에서 목소리를 녹음해 MC.mama라는 이름으로 출산, 육아에 대한 음악을 만들었다. 집 안에 앉아 집 밖을 향해 정리되지 못한 말들을 토해내던 그때, 나는 내 안에서도 예술계 안에서도 사라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슬픈 서사로 재생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의 이야기를 너무 개인적이지만은 않게 공유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오픈 테이블에 참여했다.

지난 1월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예술가의 집’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성평등예술지원소위원회 주관으로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경력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이 열렸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경력단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성 예술인 4명이 각자의 사례를 공유하였고, 이어서 한국여성과학기술지원센터의 차은지 팀장이 과학기술분야의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여성과학기술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 사례에 대해 발제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유진 실장이 ‘여성예술인, 경력 유지와 복귀 활성화를 위해 고려해봐야 하는 것들’을 주제로 발제하였고 이어 객석에 있던 참여자들과도 자유토론을 진행하였다.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오픈 테이블에서, 나는 경력단절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의견을 말하는 여성 예술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였다.

 

 

출산 전, 나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전시나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같은 분야의 예술인과 20대 중반에 결혼을 했고, 3년 후 출산을 했다. 육아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서 사람을 키워내는 게 이 정도로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매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거나 기존에 내가 해오던 작업방식을 지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오픈 테이블에서는 영상, 연극, 시각 분야의 여성 예술인들이 이러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코 즐겁고 희망적인 경험들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지금까지도 무리를 하고 있었다. 창작 현장에 아이를 업고 가서 작업을 하거나 친정, 시댁을 오가며 도움을 요청하고 여기저기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트에 적으며 나의 발제를 준비하던 그 시각에도, 내 아들에게서는 엄마 언제오냐는 문자가 오고 있었다. 여느 자리에서처럼 한쪽 신경은 ‘엄마’라는 역할이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출산으로 인한 여성 예술인의 활동에서 오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 이 사회/세계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는 것에 큰 감사함이 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한 예술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출산 전에는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할 수 없게 된 창작활동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생계활동도 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술이고 뭐고 일단 매일 매일의 밥값을 마련하고 사계절을 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보였다. 동시에 그들의 삶을 이용하거나 비판하기에 급급한 예술의 사례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기존의 예술관과 창작방식을 바꿔야 했다.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현재 우리가 마주한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 탐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던 내가 가사를 썼고, 함께 그림을 그렸던 남편이 음악을 만들었다. 새로운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내리는 삶을 야무지게 기억하기 위해서. 생활은 힘들었지만 여전히 무리해가면 그 돈도 안 되는 작업을 했던 경험이, 우리 부부에게는 창작자로서의 큰 전환점이었다. 기존의 관점과 방식을 버릴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이다.

경력단절의 경험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애써 했던 이유는, 우리가 활동하고 발언하고 있는 자리가 창작과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낸 후 전공했던 예술을 활용하여 사회참여 기회를 마련하거나 일자리를 갖는 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그것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논의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삶의 변화를 극복하고 장르 중심의 작품 제작 및 발표의 기회를 지속하는 것만이 예술인의 삶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부하고 연마했던 작품 제작 방식을 우선으로 두지 않고 현재의 관점을 담아 표현행위를 하는 것, 혹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예술일 수 있다. 이것은 예술 이전에 삶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실천으로도 해석된다.

그런 차원에서 오픈 테이블에서의 논의가 궁극적으로는 경력단절 여성 예술인을 위한 제도 마련을 넘어, 다양한 삶의 유입을 고려한 정책적 전환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출산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는 창작이나 사회적 활동을 단절, 변화시키는 많은 사건과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출산과 육아도 남성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밀도와 규모, 속도로 작품을 제작하지 못하거나 않는 사람들의 다양한 창작방식도 정책 안에서 고려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갖고 있는 핵심 요소인 다양성 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한 제도가, 복잡한 삶의 문제,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 만능 요소로 전제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오래전부터 축적된 일상적, 사회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으며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다양한 제도들의 기획과 실행만큼이나, 삶에서의 실천을 예술의 영역과도 연결하여 이어가는 개개인들을 더욱 만나고 싶다. 이것은 작품 활동도 멋지게 해내는 슈퍼맘들의 등장이 아니라 삶의 질문을 끌어당겨 예술의 질문으로 확장하는 개별자들의 실천이다. 그들의 활동이 다양한 해석의 근거를 마련할 때 제도도 여러 사람의 삶을 함께 살피며 변화해나갈 것이다.

 

 

[사진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상남도함양교육지원청과 함께

7-9월 중 6일간 놀이창작 워크숍 <놀이의 모양>을 진행했습니다.

함양의 지역활동가 등 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각자의 놀이를 상상, 만들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비기자가 만들었던 놀이를 함께 해보았습니다.

 

 

 

 

 

 

이후에는 버려진 물건들을 활용해서

일상 속에서 시도할 수 있는 놀이를 만들어보았습니다.

 

경기상상캠퍼스 생활문화센터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제작의맛>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각자의 물건을 만들어보았습니다.

 

15차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에 강사로 참여하여 매해 서울시의 10여개 초등학교를 돌며 2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1회 수업 당 100-200명의 초등학생이 참여하는 대규모 수업이었지만 모두가 해볼 수 있는 놀이 활동을 통해 소외되는 학생이 많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소망하는 미술, 마음그리기 : 비기자가 개발한 '그림받아쓰기' 활동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해석, 표현해봅니다.

 

 

 

 

 

 

 

 

 

 

 

 

 

 

 

 

 

 

 

 

 

 

 

 

 

 

 

 

 

 

 

 

 

 

 

 

 

 

 

 

 

 

 

 

 

 

 

*울퉁불퉁한 상상력 : 미술재룔가 아닌  일상 속 도구를 활용해 '딴생각놀잇감'을 만들어보며 다듬어지지 않은 상상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1:1로 예술적 경험을 교환하는 '예술장돌뱅이'에 참여했습니다.

비기자는 직접 제작한 놀잇감을 관객들과 함께 해봤습니다.

 

 

예술장돌뱅이 자세히보기 : https://www.facebook.com/artnomadictrader

 

 

 

○ 수원 화성문화제

 

 

 

 

 

 

 

○ 천안 중부농축산물류센터 앞 행사

 

 

 

 

 

 

 

 

 

○ 봉평콧등작은미술관 페스티벌 '키득키득 콧등콧등'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열두달놀이터] 중 11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놀이카드, 주사위, 일상물건 등을 이용해 아이와 어른이 각자, 또는 함께 놀이를 만들었습니다.

비기자는 그동안 해봤던 놀이, 만들기의 현장을 소개하며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놀이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자세히보기 : 
https://learning.suwon.go.kr/lmth/02_pro/view.asp?idx=1253

 

평생학습관 강좌 - 수원시 평생학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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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협치 컨퍼런스 '공존 공유  공생'

 

2019.12.12 - 12.13.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모든 것이 허용되는 예술은 이따금 작가의 의도라는 말로 알맹이 없이 그 정당성을 고집부리곤 한다. 그리고 붓을 든 모든 이를 예술가라 부르고 그 사람의 모든 붓질을 의도라 부르는 예술세계에서는 넘쳐나는 해석과 비평이 기꺼이 그것의 날개가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오늘도 예술의 애매모호함이 '원래 그러한' 것이라 여기며 팔짱을 끼고 눈에 힘을 준 채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한다.

그 이상야릇한 현장에서 어떤 이는 심지어 소통을 '꿈꾼다.' 그리고 적지 않은 관객이 작품 건너편 예술가의 생각을 간결하게 찾아내고 싶어 한다. 다시 팔짱을 끼고. 눈에 힘을 주고. 그리고 예술가는 그 놈의 소통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받고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고 의미 있는지를 매순간 고민한다.

소통을 원하는 누군가와 그것의 정당성을 되묻는 누군가, 그 사이에 인쇄된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내가 체험하고 있는 예술세계다. '말'이 되지 않는 문장과 '말'을 기다리는 이의 희망과 '말'에 기대려는 작품 같은 무엇이 파닥거릴 때 슬그머니 걸어 나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미대를 졸업한 내가 10년 전 혼자 끄적인 글 안에는 예술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가득하다. 예술이라 불리던 것의 근처 현실속에는, 캔버스 뒤에 숨어 비평 언어에만 집중하던 내가 있었고 후배들을 시켜 자기 작품을 완성하는 선배가 있었으며 포트폴리오와 작가노트 위주로 작품을 이해하는 유통구조가 있었다. 물론 그시절 나는 전시장에 놓인 미술 작품에 한정하여 ‘예술’을 이야기했지만 다양한 형태의 창작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지금도 생각은 크게 다르지않다.

그래서 이 발제문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예술은 무엇일까. 그것의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나는 이 글에서 전제하는 예술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정의를 먼저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경험했던 것들로부터 가능한데, 적어도 예술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사회활동으로만 예술을 전제하고 싶지 않은 의도도 있다.

 

‘기존의 관습이나 인식에 질문을 던지는 구체적인 활동, 언어로 설명되기 어려우며 마주함의 경험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는 현장의 무엇, 학습이 아닌 실험을 통해 스스로에게도 드러나는 삶의 흔적. 혹은 시간과 함께 쌓인 찰나의 결과물

 

분명 얼마 후에는 위의 정의가 불충분하거나 과하다고 후회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오늘은 위의 맥락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 그것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술은 매우 구체적인 행위를 동반한다. 그리는 것, 노래하는 것, 움직이는 것, 만드는 것, 쓰는 것, 소리내는 것, 표현하는 것 등. 이것은 행위 자체로 존재하며 의미를 갖는다. 즉 쓸모나 기능을 최종 목표로 두지 않는 현재의 행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벌어지는지도 중요하다. 돈을 버는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것이 다급한 상황에서,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진로를 계획해야 하는 상황에서, 몹시 피곤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등.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해결하는 데에 별 기능을 하지 못하는 행위를 하는 것, 심지어 그것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것이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살필 수 있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황과의 팽팽한 싸움이자 자신을 지켜내는 고집 혹은 선택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외부적 요인이나 일반적 기준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으려 할수록 그것은 두터운 시간과 함께 자신의 삶 자체로 쌓인다. 나는 그런 삶을 버텨내거나 그저 살아가거나 혹은 즐기는 누군가를 아주 가끔 만나는데 그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한 예술가다. 몇장의 포트폴리오로 그들의 활동을 소개할 수 없으며 유명한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와도 그들의 삶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분명하지는 않아도 강력한 힘이 그들의 삶과 창작활동을 채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심지어 그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더라도 그 과정과 결말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주제로 그들의 활동이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할 때도 있다. 요즘은 사회적 예술, 예술의 사회적 개입, 사회문화운동 등의 표현과 함께 그 순간들을 자주 접한다. 이러한 현상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예술이 사회적 의미로 해석되는 층위가 어떤 관점을 전제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모호한 생각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어떤 기준에 의해 한 개인의 예술 행위, 혹은 삶의 일부가 사회적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더불어 그 기준이 발생된 이유, 기준의 위치, 기준과 연관된 사회적 요소 등도 궁금하다. 예술이 사회를 바꾸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을 치유한다는 정책적 주문이 울려퍼지면 대체 왜 그런 기대를 갖는지, 그에 따라 어떤 뉘앙스의 예술을 주로 보려고 하는지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명쾌하고 쾌활하고 따듯한 예술도 물론 있지만 불안하고 흐리멍텅하고 우울하고 냉소적인 예술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어떤 뉘앙스를 띄든 각기 다른 맥락의 사회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 가치를 폭넓게 살피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기준에서 예술을 해석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삶을 구체적 활동의 시간, 깊이, 고민의 두께로 읽어내는 과정도 요구된다. 그때 예술의 단면을 향하던 시선은 더 많은 요소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예술의 두께를 바라보게 된다.

 

 

 

예를 들어, <비기자>가 2017년 진행했던 공기청정기 제작 프로젝트 ‘숨정화기 playing Zine & Kit 제작’을 살펴보자. 심지어 이 프로젝트는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을 바꾸는 예술’ 지원사업 안에서 진행되었다. <비기자>는 시민들이 간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우유박스를 이용한 공기청정기 제작방식을 매뉴얼화하고 워크숍과 책자를 통해 그 과정을 외부에 소개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위 그림에서, 기준면 위에 드러난 특정활동들이다. 예술가가 개발한 공기정청기, 시민들과 문화적 경험을 나누며 진행한 워크숍, 예술가의 실험 과정이 담긴 책자 등이 그안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와 연관된 잠재적 활동이 없었다면 이 공식적 프로젝트는 시작조차 될 수 없었다.

 

 

2017 ‘숨정화기 playing Zine & Kit 제작’ 프로젝트에서 소개한 우유박스형 공기청정기(좌)와 시민워크숍 현장(우)

 

 

<비기자>의 멤버인 한 예술가는 어린시절부터 물건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좋아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전제품을 뜯어보고 버려진 물건을 주워와 작동원리를 탐구했다. 그것이 예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술가 역시 그것이 예술이라 주장하지 않으며 예술이 되어야 할 이유를 애써 찾지 않는다. 단지, 관심이 있는 것을 계속 할 뿐이다. 누군가는 뭐하러 그런 행위를 계속하냐고, 현실에 도움이 되냐고, 그런 기술을 생계수단으로 활용해보라고 하지만 그는 그 말에 답변을 하는 대신 나사를 풀고 전동장치의 성능을 실험한다. 그런 시간이 30년 이상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공기청정기의 내부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중고가구와 환풍기를 이용해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다. 오렌지 껍질을 그 위에 올려두면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는 것도 발견했다. 프로젝트가 기획되기 전부터. 지원사업이 설계되기 전부터. 여전히 이것이 예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흥미로운 것을 계속 했다.

 

 

한 예술가가 중고가구를 잘라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던 과정

 

 

그러다 <비기자>가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그가 만들었던 공기청정기의 재료와 제작방식을 보다 간편하게 정리해 프로젝트로 소개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드러나지 않는, 드러날 수 없는 누군가의 경험 혹은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을 모두 드러내 예술의 사회적 가치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단지, 개인 삶의 일부처럼 보이는 순간들을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연결해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많은 것을,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발생되는 상황과 층위에 대해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술이 더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위의 프로젝트를 예로 들자면 “공기청정기의 종류를 다양하게 제작해보면 좋겠다”, “환경단체와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확장하면 좋겠다”, “공기청정기 외에 미세먼지와 관련한 시리즈 작업을 이어가면 좋겠다” 등의 의견으로 그 시선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아래 두 그림과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말들은 분명 애정을 담고 있지만, 예술의 보이지 않는 속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아이디어들로 읽히곤 한다.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늠할 수 없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은 이기적인 선택이나 비효율적인 실천도.

그렇다면 누군가는, 혹은 사회는 왜 예술가들이 창작의 시간을 쌓도록 응원하는 것보다, 드러난 성과나 결과를 확대해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예술가라는 개인의 삶, 혹은 예술의 지난한 과정보다 예술이 사회적 가치를 증명해내는 다양한 현장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예술을 이해해보려는 질긴 질문이 그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질문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답답함을 마주하지 않은 채 명쾌한 예술활동의 유형들로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관련한 논의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 모르겠음이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궁금함으로 이어지지 못함이 더 아쉽다.

그렇다면 이 예술가들의 역할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요즘은 정책화된 기획사업 안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몇가지 문장들로 만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이슈를 발굴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하지만 인간을 향해 명시된 그 구체적인 기대들의 오히려 반대편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상상하게 된다. 사회가 무엇을 문제화하는 관점에 질문을 던지는 것, 무언가가 사회적 이슈로 가시화되는 과정을 살피는 것, 커뮤니티에서 소외되는 개인성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미련하게 자신의 선택을 해나가는 것. 현실적 상황들이 그 선택을 방해하거나 망설이게 만들더라도. 교육기관에서 학습한 예술로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프로젝트 사례에서라면, 예술가의 역할은, 공기청정기를 시리즈로 만들어 환경문제와 메이커스 문화를 연결하는 활동을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공기청정기가 되든 아무것도 되지 않든 계속 물건을 줍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인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해보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와 과정이 설계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은 기획자나 매개자의 역할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자신의 태도이자 일상을 지켜내는 구체적인 행위 외에 다른 것이라고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삼킨 채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경력을 증명해내는 것이 다급한 사회 안에서, 자발적 관점과 재미를 지속시키려는 개개인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사회적이다. 예술가로 불리기 이전의 개인, 그들이 각자의 관심과 의지를 지속시키며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삶의 방식과는 다른 방향성으로 그들이 팽팽한 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술가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과 다르다. 예술가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기능인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방향성을 지속하는 존재로서 중요하다. 사회가 급하게만 나아가지 않게, 누군가가 소외되는 인식구조가 익숙해지지 않게 그들은 각자의 개인성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소리를 모으고 쓸모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흩어지기 좋은 이야기를 애써 주워담으며. 그것을 하고싶어 하는 본인 스스로에게 생활의 속도도 맞추며.

 

 

 

 

예술이 사회적 의미로 해석되는 기준 아래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어떤 시간들을 보자. 이것은 어떤 관점에서 포착되지 못하는 개개인의 삶이자 예술적 가능성이 아닐까. 이것은 사회를 알록달록하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두께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이 시간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축적될 수 있는 환경 안에서 불쑥 혹은 필연적으로 솟아오를 수 있다. 그러나 솟아오르기를 기대하지 않는 어떤 시간도 있다. 그것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깊은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기준 위로 솟아올라 모두에게 보이는 가치로움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을만큼 두꺼워진 누군가의 시간이다. 그곳에 예술의 또 다른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그곳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수원청소년진로박람회 진로․직업체험부스에서

최근 제작한 놀잇감을 매개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예술가의 진로를 소개하였습니다.

 

 

 

 

 

 

 

 

 

 

 

 

 

 

 

 

 

 

근현대 문화자원 조망 프로젝트 결과전시

기록연장

 

2019.12.18.-12.21

수원문화재단 지하1층 기획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1 )

 

관람시간 10:00-17:00

(점심시간 : 11:00-11:40)

*오프닝 없음

 

 

기획 /  최선영

참여작가 / 구은정, 김성삼, 손한샘, 이재환, 조동광

 

 

수원의 근현대 문화자원 건축물의 특징은 화려한 외관이나 거대한 규모보다는 역사적 스토리, 현재와의 연결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자원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작품화하는 과정은 역사에 대한 기록을 문화적 방식으로 연장(어떤 일의 계속)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시각예술가들이 어떤 이야기나 공간에 대한 해석을 작품화할 때, 과정에서 선택, 활용하는 재료들은 그 기록의 연장(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Tool)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선택적 물질이나 장비를 사용해 시각화하는 작업은 역사를 다른 차원으로 기록하고 조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각예술가들이 각자의 창작 도구를 통해 수원의 근현대 문화자원을 어떻게 바라보고 연장된 기록으로 확장시킬지 작품의 제작 과정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여작가별 작품소개

 

구은정

북수동 청과물시장에서 구입한 고구마나 호박, 무 등으로 수원극장, 연초제조창 등 사라진 건축물들의 일부를 조각한다. 땅에서 온 것들로 건물을 만들고 그것들이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통해 현재를 다른 감각으로 사유해보고자 한다.

 

 

 

 

 

김성삼

나의 거주지인 수원 지역 내 근현대 건축물을 나를 둘러싼 메타포로 해석하고 내 삶의 기억이 담겨있는 건축물 주변의 현재 풍경을 작은 사이즈의 회화(일러스트)로 기록한다. 내가 선택한 역사적 장소와 그 주변 단면을 통해 공간이 갖는 일상의 맥락을 공유한다.

 

 

 

 

 

손한샘

근현대 문화자원 중 남아 있지 않은 양성관 가옥, 선경직물, 연초제조창의 터와, 남아 있지만 역할이 변하거나 상실된 건축물, 그리고 그 주변을 거닐면서 사물을 수집하고 공간을 상상한다. 그 과정에서 수집한 사물들로 시간과 공간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재환

영동시장과 매산119안전센터라는 문화자원과 1953년 영동시장에서의 화재 사건을 상상으로 연결하여 관객참여형 놀잇감을 제작한다. 문화자원과 관련한 삶의 이야기를 놀이의 요소로 활용하고 관객들이 당시의 상황에 개별적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조동광  

급수탑의 형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몇개의 요소들을 시각적 흐름에 따라 배치하고 청각적인 리듬으로 재구성하였다. 급수탑은 상층부가 더 넓은데 이러한 실용적 구조를 고려하였다.

 

 

 

 

 

 

 

▍참여작가 인터뷰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선영)

 

 

 

구은정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수원시에 남아있는 근현대 건축물들, 혹은 지금은 사진만 남겨진 채 사라진 건물들 모두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전시를 의뢰받았을 때 사회, 경제적인 이유나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기능과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건축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60년대 TV방송이 본격화되면서 극장가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수원극장’은 1999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선경직물’의 경우에는 아직 그 터와 건물이 남아있지만 여러 이유로 문화유산으로는 보존되기 힘든 상황입니다.

각 건물들은 각자의 사정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건물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도시생태계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남아있는 건물, 사라진 건물 모두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근현대문화자원 중 하나인 ‘북수동 청과물 시장’에서 구한 무, 고구마, 감자, 당근 등을 저의 연장(Tool)으로 선택했습니다. 이곳은 70년대에 성왕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활기찬 모습을 떠올리기는 힘든 곳입니다.

70년대 북적였던 북수동 청과물 시장은 80년대 인계동으로 옮겨갔고 이후 대형상점의 등장으로 분산화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사회, 경제적인 흐름은 개인이 거스르기에 항상 큰 요소로 보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하기에도 어렵습니다.

저는 작업의 재료로 무, 고구마, 감자, 당근 등 땅에서 온 것들을 선택했습니다. 이것들은 대개 한 손에 쥘 수 있으며 참으로 투박하고 무심해보이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북수동에서 인계동으로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우리의 식탁에 자리해왔습니다.

저는 감자의 일부를 조각해서 사라진 벽돌공장을 만들고 당근의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 지금도 남아있는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감자이고 당근이기에 언젠가는 썩을 것이고 언젠가는 또 다른 것으로 변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이번 작업 ‘야채도시’ vegetable city에서는 테이블 위에 조각된 야채들이 진열됩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조각들이 변형될 것입니다. 북수동 청과물 시장에서 사온 야채들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시장의 퇴락과 이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전체적인 도시의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여기 테이블 위에 사라진 공장이 있고 극장이 있고 남겨진 교회가 있습니다.

이 전시를 보고 나갈 당신은 당신이 나고 자라온, 그래서 익숙한 도시 풍경을 다시금 마주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에는 무언가로 변화될 것입니다. 무엇을 남겨야 하고 무엇을 추억해야 할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김성삼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부국원, 구 수원시청사, 시립도서관 등 주로 수원성곽내의 근현대문화공간을 소재로 진행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수원성곽인근 근현대문화공간 주변일상을 소재로 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것들은 현재에도 제 삶의 반경에 겹치는 부분들입니다. 과거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아 제가 매우 마음의 안정을 갖는 곳입니다. 더불어 미술을 배우던 공간이 구시청(현재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이나 부국원 자리에 근접한 곳이어서 추억과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항상 제 일상과 함께한 곳들이 알고 보니 근현대 문화공간들 바로 주변이었던 것입니다.

전시준비 전부터 개인적인 프로젝트 작업으로 ‘수원풍경수집’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이것은 잃어버리기 싫은 기억이나 풍경 그 자체를 기억하기 위한 개인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그 모습들이 사라질 것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기억이나 인상 깊은 장소들, 혹은 바뀌어버린 현재의 모습 등을 정기적으로 담아내어 내가 바라본 수원이란 공간을 기록하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재전시의 기획이 지금 제 ‘수원풍경수집’의 취지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전시 준비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근현대 문화자원 인근의 풍경 수집으로 주제를 조금 좁혀서 진행한 것만이 차이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준비는 ‘수원풍경수집’의 연장이자, 일종의 특별프로젝트입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번 기획을 통해서 내 인생사의 배경이었던 장소들이 근현대문화자원에 속하는 가치 있는 건물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학창시절 오가던 북문과 남문 주변, 그리고 진로를 위해 다니던 미술학원거리 주변 곳곳의 건물들이 알고 보니 모두 근현대 문화자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삶의 기억과 그 공간이 겹치는 부분에 더욱 집중하여 현재 일상풍경의 모습을 다시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기억들이 존재하던 곳의 현재의 모습과 감정을 담아내고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과 시선으로 담아낸 풍경들이지만, 수원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 근처의 추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들이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가 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재료에 대한 함의는 특별히 없습니다. 다만 빠르게 그릴 수 있고 자주 기록할 수 있으며, 색면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매체와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크릴과 과슈 위주로 진행하고 화면의 사이즈는 자주 기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이즈를 선택했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우선 소재가 근현대 문화자원이지만, 저는 그 변두리 일상의 공간을 담아냅니다. 사실 근현대 문화자원이란 걸 알기 전과 후의 차이는 저에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제 기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서적인 손상을 받습니다. ‘수원풍경수집’이란 프로젝트 작업의 취지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그 기억 안에 많은 경우의 수로 근현대 문화자원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제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을 담은 공간을 그리지만, 지역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제 작업을 보면서 ‘여기가 어디지?‘ 라며 궁금해 하거나 ‘나 여기 아는 곳이야. 어떤 어떤 곳이었지’ 혹은 ‘어떤 기억이 있었어’ 하며 당시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 보는 기회가 확장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손한샘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연초제조창을 선택했습니다. 남겨지고 버려진 것들을 통해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고 상실해 가는 것들이 남길 수 있는 의미들을 사유해 보고자 했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초제조장은 현재 변화가 진행 중인 현장으로 개발과 성장을 상징하는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근대적 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연초제조창은 폐기처분 되다시피 해서 일부만 남아 처연하게 버려져 있고 그 옆에 애매하게 잡초만 무성한 공터가 있습니다. 이런 이질적이고 어정쩡한 상태가 우리 사회가 인식하는 근대와 문화에 대한 의식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수원의 근현대 문화유산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근현대 문화유산이라는 것 자체가 온전히 보전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움과 발전에 맹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역사와 문화가 개발과 발전 앞에 쉽게 사라집니다. 오래되고 쓸모없는 것은 당연히 사라져야 되고 마땅히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공간이 시간을 통해 축적한 역사나 문화에 대한 가치는 외면당합니다. 근현대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안쓰럽게 버티고 있지만 해마다 사라지는 유산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문제에서 적당한 타협점으로 연초제조창 일부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연초제조창과 공터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근대와 현대에 대한 메타포와 현실을 보여줍니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쉽거나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 삶처럼 느껴졌습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문제 보다는 이제는 자연스런 현장처럼 이질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개발에 지치고 사라지는 것에 무뎌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도 문화이고 현실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이 현장의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내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현장처럼 나누어져 있어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성공의 욕망, 올바른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갈망,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연초제조장에 여러 번 가서 산책하면서 사물들을 수집했습니다. 아파트 공사현장과 구조만 남아있는 연초장과 빈 공터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것들을 수집했습니다. 대부분 용도 폐기된 것들, 혹은 버려지고 방치된 것들이었습니다. 이 사물들로 현장을 재해석해 보았습니다. 아파트도 연초제조장도 공터도 재현하지 않지만 이질적인 그것들을 한데 모아 설치해서 근대와 현대를 상징하고 은유하면서 그 공간을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연초제조장은 다른 현장과 다르게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연초제조창이 다르게 재생되고 공터도 공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서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과 완성된 후의 활용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연초제조창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된다면 이번 작업을 완공된 공간에서 다시 소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재환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영동시장과 매산119안전센터입니다. 1953년 영동시장의 화재사고를 모티브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의 사건을 통해 일상에 늘 있을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l)’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의미적 도구로서 ‘놀이’를 사용하였습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을 때 지속적으로 놀이의 형식을 실험해왔는데 이번에도 새로운 형식의 놀이를 제작해 이전보다 좀 더 관객의 진입을 낮추려 노력해 보았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과거를 기억하자는 것이 낡게 들립니다. 메시지의 단순 명료함이 반복되면 쉽게 피로해지는데 안전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매번 관객과 닿아보려 시도합니다.

그게 얼마나 닿았는지 피드백이 잘 되지는 않지만 항상 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려 시도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전달된 것이 있다면 나에게 돌아오기 보다는 다른 이에게 쉽게, 재미있게 전달되길 희망합니다.

 

 

 

조동광

 

1. 작업을 위해 선택한 근현대 문화자원 또는 이야기/소재는 무엇인가요?

수원역 근처 급수탑입니다. 과거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2.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급수탑이 1900년도 초반에 만들어진 형태 치고는 현대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주말이면 갔었던 동네 목욕탕 굴뚝과 같은 형태라서 그런지 낯선 느낌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대략 친숙한 형태입니다. 사실 급수탑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역사적 이야기를 개괄하거나 과거의 노스텔지어를 소환하는 방식은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우선 급수탑의 외형이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단편적으로 급수탑의 표면만 보더라도 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소재가 되는 대상의 피부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견지했던 부분입니다.

 

3. 작업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거나 활용한 ‘기록의 연장(Too)’이나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급수탑에서 리듬을 읽으려 했습니다. 제 작업에서 시각적 리듬감은 항상 중요하게 표현되어 왔습니다. 사실 애초에는 단순히 악기를 만들려 했습니다. 급수탑이 마치 타악기처럼 속이 비어있기도 하고 뚫린 창문 등이 악기의 공명을 위한 구멍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청각적인 것들이 추가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주라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기도 했습니다. 예측을 벗어난 감각이 확장되고 사람들이 함께하면 뭔가 새롭거나 혹은 살아있는 느낌이 발생되지 않을까 그런 상상들을 했습니다. 사실 급수탑의 첫 인상은 오래된 마른 노가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4.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정서, 상황, 관점 등이 연장되기를 기대하시나요?

기록의 사전적 의미가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이라고 합니다. 문장의 핵심은 ‘남기다’란 부분인 듯한데 사실 저는 ‘남기다’보단 ‘적다’라는 단어에 좀 더 눈이 갑니다. 같은 동사지만 왠지 ‘남기다‘는 ‘결과’에, ’적다‘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것들은 대체적으로 생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잘한 서사가 증발하고 바삭거리는 결정체들만 남겨진 진열장은 뭔가 허무하기 때문입니다. 서사에 대한 기록이 연장의 과정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 원고는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형 장애 아동, 청소년 예술교육사업' 아카이빙북에 실린 글입니다.

 

 

 

 

 

장애예술교육, 특수성을 넘어 개별성으로

 

창작그룹 비기자 / 최선영

 

 

먼저 질문을 하고 싶다.

A에서 설명하는 사람을 바탕으로 B에 제시된 교육대상을 연결할 수 있을까.

 

 

A

 

 

 

B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사람

지적장애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지 못한 사람

눈앞에 무언가를

또렷하게 볼 수 없는 사람

시각장애인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한 사람

익숙하지 않은 재료는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

청각장애인

잘하지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

5분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지체장애인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

칭찬이 꼭 필요한 사람

정신장애인

쉬고 싶은 사람

타인의 이야기에

길게 집중하기 힘든 사람

자폐성장애인

타인의 선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

뇌병변장애인

몸의 근육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우리는 큰 망설임 없이 A와 B를 연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유형화할 수 없음에 불편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유형별 특수성이 A에서 언급되지 않아서 망설일지도 모른다. 또는 A에서 언급된 부분이 꼭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A에 언급한 사람들은 내가 교육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다. 그 안에는 이번 장애아동예술교육 지원사업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A에서 장애 특성을 드러내지 않게 설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장애예술교육이 어떠한 관점으로 시도되고 있는지 되묻기 위한 설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예술교육이 주로 B에서 A로 접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B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관점, 방향성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관점으로만 사람을 바라보고 만나게 될 경우 다양한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A와 B의 위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금 더 쉽게 양쪽을 연결할 수 있을까.

물론 장애유형별 특성은 분명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을 구성하는 중심요소가 되지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예술교육 안에서 참여자 이전에 장애인이 된다. 우리가 장애 자체에 대해, 장애유형별 특성에 대해, 그 특성이 담아내지 못하는 개별성에 대해 잘 모름에도 말이다.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 혹은 개념은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 대한 반성적 의미로 획득된 사업적 용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업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개인들을 만나고 있는가. 그 다양함은 장애와 관련된 특수성이 아니라 사람마다의 개별성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본 지원사업의 전반을 참여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부족했던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이들은 표현이나 소통방식에 있어서 비장애인과 차이가 있기에 프로그램 진행과 관련해 준비하거나 고려해야 했던 장치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개별성은 몇 가지 장애 특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대부분의 예술강사, 기획자들이 “장애와 관계없이 그냥 아이들이에요. 별로 특별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예술교육에 대한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장애가 아니라 개별성에서부터. 이것은 장애 이해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을 전제하기도 한다. 그것은 첫째, ‘장애’에 대한 관념화된 요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 둘째, 특성별로 예측 가능한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고 예민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별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예술교육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쉽게 예측하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들의 개별화된 다양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 비장애를 떠나) 예술교육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얼마나 참여의 범위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위의 A,B 설정에서 우리의 관점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교육현장에서 B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A를 만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장애와 관련한 예술교육을 사업적으로 기획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선으로, 후자의 경우는 교육현장을 어느 정도 만나면서 발견한 구체적인 강사나 기획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 관점은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단지, 우리가 사업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 어떤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예술교육, 혹은 어떤 현장을 만들기 때문에 두 관점의 균형을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순간에 어떤 관점을 더욱 고려해야 할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장애예술교육에서 B를 통해 A를 발견했든, 처음부터 A를 만났든, 다시 A를 B로 연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교육에서는 B라는 필터 혹은 분류가 필요하지 않은데 우리는 B의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이고 차별화된 장애예술교육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정책적, 사업적 교육대상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틀이 교육현장에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애예술교육이 개별성과 유연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개별적 장애 특성에 따라 교육적 처세를 능숙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별성을 참여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열린 관점과 태도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장애유형별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따른 노하우가 있는 경력자만이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낯설 정도로 구체적인 개별성을 염두에 두고 존중하려는 유연한 사람들이 앞으로 장애예술교육의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로 살아가기

 

2019.11.01. (금) 14:30~17:00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

 

 

 

 

장애-예술-공동체 : 분리된 채로 연결된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예술가(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는 매우 소수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예술가를 정의하는 맥락과 범위가 변하고 있고 요즘은 더욱 ‘당신도 예술가, 모두가 예술가’라는 구호가 퍼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예술가는 더욱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그 자체로 유통에 용이한 상품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살아나가기 힘든 사회 덕분에 예술가는 소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나는 예술가는 아니다. 단지 예술프로젝트나 일반적인 작품 발표방식인 전시에 이따금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발제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내가 예술가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이 있는 기획자, 활동가에 가깝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나의 경험을 나누기에 좀 더 수월한 입장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예술가가,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덜 사회적이고, 즉흥적이고, 자기세계에 몰입하며, 집단적 활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캐릭터화된 예술가상에 대해 동의하거나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의 공동체가 특히 조직화, 집단화를 전제하는 경우에 더욱 예술가의 삶의 방식을 끌어안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창작을 하는 과정, 살아가는 방식이 공동체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하는 창작활동은 뚜렷한 하나의 목적을 향해 계획된 일을 해내는 것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단체나 조직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공동체의 경우는 (그것이 느슨하더라도) 운영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과정을 설계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살아가며, 해나가며 방향성을 찾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택하거나 전제한 목표와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그 질문 던지기 자체를 통해 참여 혹은 창작의 의미를 찾는다. 공동체를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전제할 경우, 예술가는 ‘우리가 공통적일 수 있는가’, ‘유사할 수 있는가’, 혹은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며 계속해서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고민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공동체와 결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태도, 혹은 삶의 방식이 공동체의 방해요소가 아닌 다양성의 일부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쉽지 않다. 보통의 현실 속에서 공동체는 예술가가 질문의 생산자가 아닌 예술적 경험의 생산자로 기능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긴 하지만 공동체가 바라는 예술적 경험을 기획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 나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편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활동은 예술가의 공동체 활동 사례로 온전히 소개될 수 없다. 나는 예술가적 삶에 관심은 있으나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으며 예술가라고 스스로 소개하기에도 실제 활동과 맞닿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서론이 매우 길었다. 이제부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공공예술프로젝트나 문화예술교육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10년 넘게 이곳저곳에서 만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보호감시 기관에 있는 청소년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매일 다리 밑에 나와 장기와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들, 경력단절이 된 여성들,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큰 청년들, 그리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 그중 장애인과 만나거나 함께 창작활동을 했던 시간이 다른 활동에 비해 많았는데 그것은 비영리예술단체 내에서의 활동이나 특수학교에서의 예술교육으로 설명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공동체의 대표적 유형으로 볼 수 있는) 단체 관련 활동을 넘어서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결국 모든 활동이 각각의 의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 외의 활동은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문제의식을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로 작동되기 때문에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장애와 관련된 활동을, 각각의 무게로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유형의 공동체, 그것들 간의 상호성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러 공동체와 연결된 나의 활동 범위

 

 

 위의 그림처럼 나는 여러 공동체에 관여하거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중에는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나는 오랜 시간 다양한 현장이나 사회적 현상을 마주하면서 오히려 이것들이 빈부 격차나 도시생활의 일반화, 불안사회 등과 같은 공통된 이슈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 삶에 대한 다층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여러 단체나 모임 혹은 일시적 공동체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내 주변 사람들, 혹은 구체적인 어떤 공동체의 일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활동 범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나의 예술적 경험이나 과정이 다른 삶과 연결될 때에는 이러한 활동 범위가 갖는 위치와 규모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예술 자체가 공동체나 구성원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어떤 가치나 의미를 중심으로 활동의 범위를 기획하고 만들어나가는 개인의 삶이, 그것과 연결된 타인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단지 예술적 경험이 그 활동 범위에서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예술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서 그 현상을 해석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이 장르로서의 예술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이것은 미술이나 문학, 연극, 음악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넘어서는 관점을 필요로 한다. 내가 어떤 공동체에 ‘가서’, 혹은 어떤 자리에 ‘참석해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무언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삶이 불안정하고 이따금 오락가락한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이기에 타인이나 사회와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공동체를 포함한 여러 현장에서 예술적 행위를 시도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좀 더 흥미롭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기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나 예술을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 개인적 활동 범위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예술가는, 혹은 나와 같은 또 다른 기획자나 활동가는 저마다의 활동 범위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스스로 범주화해나가는 맥락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활동 범위가 어느 정도 겹치는 사람, 혹은 동료들을 알고 있다. 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편안한 일시적 공동체가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서로의 적극성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슷한 순간에, 같은 장소에 가서 각자의 방향성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힘을 준다. 나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거나 내가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비슷한 고민을 놓지 않고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서 삶에 대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은 (나와는 다른)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 (오로지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나는 이들의 활동 범위가 갖는 의미, 그 안에서 발생되는 힘이 예술적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긴다. 동시에 예술 자체가 공동체나 삶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인 설정 같기도 하고 예술이 발생되는 전반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떤 실천들이 타인에게도 의미나 가치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본다.

 

여러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겹치는 양상

 

 

 

2019년 10월 5일 활동범위가 겹치는 사람들과 대학로에서 만나 일시적 공동체를 이뤘다.

장애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퍼레이드를 하였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말하는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을 외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퍼레이드 진진진 :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말하기를 예술의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프로젝트)

*사진 출처 : 퍼레이드 진진진 페이스북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술의 힘 이전에 사람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힘은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하고 낯설음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은 마냥 긍정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치유든 자극이든 낯설음이든 시기적절한 슬픔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그 양상이나 파급력도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효율성이나 성과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예술의 이러한 속성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재의 사회적 흐름과 다른 방향성을 띄기 때문이며 그래서 다수를 설득하기에는 힘들지만 그 자체로 방향전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능과 쓸모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증명해야 하는 사회는 빠른 속도와 효율적인 생산성을 추구하지만 예술은 쓸모를 알 수 없는 질문, 속도를 늦추는 실험을 지속한다. 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예술은 그런 측면에서 관계적 미학,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특히 현실적 운영이 필요한 공동체에서 이러한 예술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예술이 어떻게 기능할지보다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어떤 역할을 예술가가 해내는 것은 예술적 삶의 방식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가가 예술적 효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기능인으로 인식될 경우 예술가로서의 개인적 삶 자체를 존중받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와 예술의 관계성에 대한 논의는, 예술이 공동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넘어, 예술가의 삶 혹은 예술적 삶의 방식이 공동체와 공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다른 속성, 지향점, 삶의 방식을 존중하거나 학습하려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는 예술가가 얼마나 특이하거나 덜 사회적인지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 것, 공동체가 예술가라는 개인에게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지 살피는 것, 다양한 양상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공동체도 결국 ‘함께 살아나가려는 구체적 의지’로 읽힌다. 그런데 예술도 다르지 않다. (개인의 정치를 해내기 위한 창작 행위나 결과물은 적어도 나에겐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예술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원을 마련하고 방법을 설계하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관점이나 의미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삶에서 효율적 기능을 해내는 것 안에 예술 같은 것이 감지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요소가 들어간 어떤 방법론 혹은 콘텐츠일 것이다. 그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을 때 예술과 함께 살아나가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예술가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을 예술가로 인식하고 존중해주신 분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2012년부터 4년간 함께 했던 (여러 공동체 중 하나인) 비영리예술단체에서의 활동을, 장애인 창작자의 부모가 최근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예술은 장애와 관련된 현실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으나 타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참 미련하고 답답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러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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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예술가는 이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꼭 갖추어야 할 것이라며 부러워하였고, 일군의 그들은 지금까지 장애라 써 놓은 것을 미덕이라 읽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그(장애인 창작자)의 세계에 첨벙 뛰어들 수는 없다. 그저 그의 세계를 기웃거리고, 그의 주변을 서성이며 불현듯 조우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들의 예술 세계와 그의 미덕 있는 세계가 크로스오버 되는 어느 지점을 찾아 헤매며 우주를 유영하는 막막함. 이 두 아웃사이더 그룹의 만남은 그래서 좀 뿌옇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들은 만나기나 할까? 만난다면 불꽃이 튀기는 튈까? 어느 세월에? 처음엔 그랬다. 처음에는.

아마도 내가 생각한 예술은 영감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고, 모두가 우러러 마지않는 걸작을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 생각은 그 예술가들을 만나서 같이 기웃거리고 서성이고 대화하면서 바뀌어 갔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고 아니 조급증을 낼 무슨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파크 따위 안 터지면 뭐 어떤가? 설사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계속 유영만 한대도 저기 어딘가에는 나처럼 우주를 떠다니는 유목민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너도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일 따름이라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고방식과 태도. 예술은 걸작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예술의 껍데기라는 것. 예술의 알맹이는 지금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 이 태도를 나는 중년이 되어 어린 예술가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2019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5호

[젊은 예술가의 태도가 일깨운 삶에 관하여 “재미를 보기에 희망을 가진다”]

고혜실 로사이드 정진호 창작자 어머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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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2016년 성북문화재단 <평등한 입장, 턱없는 극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원고는 2019년 오로민경 개인전 <영인과 나비>의 연계프로그램 '공감각 운동회'에서의 발제문으로 공유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턱을 만날 때 보이는 것들 / 최선영

 

 

“생후 1년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엄마가 극장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극장으로 들어가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나 역시 아들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동네 길가의 턱을 넘으며 장을 보고 놀이터를 오가던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 엄마들이 편히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이나, 그것을 위한 시설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아들은 6살이 되었고 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를 오가지만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 그 중에서도 문화공간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번 ‘평등합 입장, 턱없는 극장’ 사업의 초반에는, 그것이 어떤 시설들의 부족 때문이라는 전제로 필요한 장치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범위는 아직 걷지 못하는 갓난아기부터, 7살 정도의 아이까지로 정했다. 내 아들과의 6년간 시간을 돌이켜보며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엄마, 아이에게 정해진 시간에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 엄마, 엄마와 잘 떨어지지는 않는 아이를 가진 엄마의 입장으로, 영화관에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았다. 사업 초반에 정리한 필요 시설물은 아래와 같았다.

 

넓은 자동 출입문

• 유모차와 함께 여닫이문을 통과하려면 누군가가 문을 잡아주거나 엄마가 한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유모차를 밀어야 한다.

• 출입문의 통과 너비가 좁으면 유모차가 지나가기 힘들다. 또한 엄마가 어린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통과하기에도 쉽지 않다.

 

턱이 없는 인테리어

• 조금이라도 바닥에 턱이 있으면 유모차를 밀어서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턱이 높거나 유모차가 무거우면 여성 혼자서 유모차를 옮기기도 버겁다.

•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턱을 잘 넘지 못한다. 서너 살 아이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턱을 잘 살피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엘레베이터

•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유모차와 함께 한 층이라도 이동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 단지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1,2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는 계단 하나하나를 어른보다 높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와 함께 다니면 엄마가 들어야 할 기본적인 짐들이 많은데 이것과 함께 계단을 사용할 경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놀이방

• 영화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도 아이에게는 길고 지루하다. 그럴 때 놀이방이 있으면 어른들이 아이에게 얌전히 기다리라는 주의를 주는 대신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다.

• 만약 아이를 잠시 누군가에게 맡기고 엄마가 영화를 보러 갈 경우, 놀이방이 있으면 아이도 좀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릴 수 있다.

 

수유실

•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수유실은 반드시 필요하다. 수유실이 없으면 엄마는 공중 화장실 변기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수유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탕비실

• 아이에게 이유식이나 분유를 먹여야 하는 엄마에게는 탕비실이 필요하다. 이유식을 전자렌지에 데우거나 분유를 탈 공간이 있어야 제 시간에 아이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배고픈 시간에 음식을 먹지 못하면 크게 울거나 보채곤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시설들이 잘 갖춰진다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 혹은 어떤 문화공간에 자주 가게 될까? 이상하게도 ‘그렇다’ 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내가 꼭 아이와 극장에 가고 싶은가’, 라는 물음도 들고 ‘내가 꼭 극장까지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문화생활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난 더더욱 아이와 떨어져서 나의 시간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문화공간의 시설, 공간,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다른 방향의 질문들을 만들었다. 아니, 그 질문은 이제야 내 안에서 생성되어가는 듯했다. 그래서 주변의 아이엄마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터뷰라는 이름을 빌려, 동네 카페, 집, 키즈 카페에서 여유로울 수 없는 수다를 떨며 만났다. 한 아이가 울고 다른 아이가 물을 엎지르고 그 두 아이가 싸우는 현장 바로 옆에서, 저녁 반찬거리를 걱정하고 내일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두 시간의 대화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그 사이에 문화, 혹은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질문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현장

 

 

 

나를 포함한 엄마들은 사실 문화공간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도 가지 않는 이유들이 많았다. 그 이유들은 푸념 같은 말들로 쏟아졌고 나는 그것을 키워드들고 정리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여기에 담고자 한다.

 

시간이 어딨어요.”

• 예를 들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엄마의 경우, 대략적으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엄마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사노동의 부담이 있고 실제로 그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전 10시부터 대략 1시간 정도 청소나 빨래를 하고 나면 점심을 먹는다. 그럼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지난다. 세탁소를 다녀오거나 동네 마트에 다녀오고 나면 잠깐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가 남는다.

• 직장을 다니는 엄마의 경우는 평일 낮에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주말에는 집안 모임에 참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우선시되곤 한다.

 

몸이 힘들어요.”

• 아이엄마가 낮이나 밤에 영화관 등을 다녀온 후에 오후에 육아를 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집이 휴식 공간이기 전에 엄마에게는 가사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나 영화보고 오겠다고 애 맡기기엔 좀 미안하고 눈치 보여요.”

•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사치가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엄마들이 많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마 스스로 부담감을 가진다.

• 문화생활에 대한 관심이 있는 집안(친정이든 시댁이든)이 아니면, 엄마의 문화생활은 공감받기 힘들다.

• 엄마들은 가정의 살림살이를 하면서 본인의 문화생활을 위해 돈을 쓰는 것 보다 그 돈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애랑 편히 갈 수 있는 분위기면 가겠어요.”

• 만약 엄마가 영화관에 아이들과 가면 애들이 발로 앞좌석을 차거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억지로 구석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이 중간에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내지만 안 좋은 자리에서 온갖 신경을 쓰며 영화를 보는 것이다.

• 아이들을 반기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많아지면서 엄마들이 아이를 공공장소에 잘 데리고 나가지 않게 된다. 대중교통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리도 잘 양보해주지 않고, 엄마가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어디가나 아이에게 조용하라고 해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게 된다. 엄마들은 도시에서 어디를 나가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부분이 크다고 말한다.

 

그냥 혼자 차나 마시고 싶어요.”

•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나의 문화생활이라고 여기는 아이엄마들도 많다. 어떤 공연이나 영화를 보는 것만이 문화생활이 아니라, 혼자 편히 쉬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문화생활이라고 느끼곤 한다.

 

여유롭게 혼자 좀 즐겨야 그게 문화생활인데...언제나 전 비상대기 상태인걸요.”

• 갑자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올 수도 있고 아이가 아플 수도 있어서 엄마는 항상 비상대기상태다. 집안에 어떤 일이 생기면 공연이든 약속이든 취소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모임에 들어가거나 개인적 약속을 잡아도 자신은 자주 그 약속을 변경해야 하는 사람이 되니 그것이 연속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혼자 다운받아서 영화보고 그런 게 맘 편해요.”

• 엄마 스스로 주변의 시선이나 현실적 제약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문화공간에 다녀오느니, 혼자만의 공간에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 영화관에서 조용히 영화는 보는 성향의 아이가 있다고 해도 한 번씩 “엄마, 무서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민폐이기 때문에 요즘은 집에서 영화나 음악을 다운 받아서 가족과 같이 즐기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의견들을 통해 엄마들은 시설과 무관하게 사회적 인식이나 현실적 한계 때문에 문화생활을 하기 힘들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발견된다. 동시에 아이엄마들과의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러한 정서적, 심리적, 현실적 요소들을 파악할 필요성도 확인한다. 그렇다면, 처음에 이 프로젝트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살펴보자.

 

“생후 1년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엄마가 극장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극장으로 들어가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매우 구체적인 이 상황적 질문은 사실 아이엄마에 대한 관념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판단이 든다. 그걸 하나씩 쪼개어 열거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 어린아이 중에는 유모차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다. 엄마들이 허리가 아파도 아기띠로 아이를 메고 이동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모차는 아이엄마의 모습을 상징하는 요소지만 사실 어떤 연령, 어떤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만 해당되는 이동수단이다.

• 엄마는 아이와 함께 극장에 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를 맡길 곳이 없거나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함께 온 것일지 모른다. 엄마는 어딜 가든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이러한 전제를 만든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 아이엄마는 보고 싶은 영화가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영화를 집에서 다운 받아서 보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극장은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문화’를 여유로운 개인의 취미 활동으로 해석할 경우,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버거운 엄마에게는, 극장으로의 외출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엄마가 극장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것만으로, 그녀는 스스로가 문화를 즐겼다고 느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어떤 상황을 아래와 같이 한 번 상상해본다.

 

전업주부 OO는 생후 1년 된 아들과 내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려 한다. OO는 1시에 시작하는 영화에 도전하려 한다. 사실은 아침 9시와 저녁 6시에 하는 영화를 더 보고 싶지만 이른 아침은 남편 출근을 도운 후 움직이기에 빠듯하고, 저녁 4시쯤엔 집에 돌아와야 밀린 빨래를 하고 저녁밥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1시에 하는 영화를 보려는 것이다. 사실 영화관에 아주 가고 싶다기보다는, 어제는 길 건너 쇼핑몰에, 저번 주에는 옆 동네 대형마트에 아들과 무리 없이 다녀오는 데에 성공해서 이번에는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러한 공간들 외에 운전을 하지 못하는 OO가 도시에서 아이와 갈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기도 하다.

OO는 1시 영화를 보기 위해 보통 오후 2시인 아들의 낮잠 시간을 1시간 당겨야겠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전날 밤에 평소보다 일찍 아들을 재웠다. 아들은 자지 않으려 했지만 OO은 온 집안에 불을 끄고 아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허리가 안 좋으신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가기에는 도저히 마음이 편하지 않기에 OO는 혼자 계획을 세우고 도전을 하고 있다.

OO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아들은 여전히 자고 있다. 도통 일어나려 하지 않는 아들을 결국 울리며 깨운 후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고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정리한다. 아들은 잠을 푹 못자서 OO의 다리를 붙잡고 칭얼대고 남편은 오늘 야근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긴 채 현관문을 나간다.

OO는 1시 영화를 보기 위해 아들의 이유식을 만들어 포장하고 이른 점심을 챙겨 먹는다. 12시 20분쯤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나선다. 극장까지 20여분 걸어가야 하는데 그 사이에 만나는 턱은 30개쯤 있다. 유모차에는 이유식, 기저귀, 물티슈, 아들의 여벌 옷, 물병 등이 가득 담겨 있어 무겁다. 곧 도착인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들이 잠이 들려고 한다. 잠이 들면 자칫 영화 중간에 깨서 울 수 있기 때문에 OO는 아들에게 과자를 꺼내주며 눈을 뜨라고 말한다. 아들이 과자를 먹는 시간 동안 OO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른다. 지나가는 차를 보며 감탄사를 하고, 나무가 멋지다고 말해주고, 유모차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다행히 아들은 잠들지 않았지만 비몽사몽으로 극장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극장까지 온 OO는 땀을 닦으며 아들의 물건이 가득한 가방을 뒤져서 지갑을 꺼낸다. 아들이 중간에 혹시나 소리를 낼지도 모르기 때문에 OO는 영화관 구석진 자리의 티켓을 산다. 이제 영화 시작 10분 전이기 때문에 아들이 푹 잠이 들어야 한다. 극장 로비의 구석으로 가서 OO는 유모차를 천천히 밀며 자장가를 부른다. 제발 아들이 10분 만에 잠들기를 빌며.

 

아직 영화는 시작되지 않았다. OO는 무사히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를 편안히 볼 수 있을까. 그의 아들은 기적처럼 2시간을 조용히 잘까. OO는 영화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서 영화의 내용을 여유롭게 떠올려보며 쉴 수 있을까.

위의 상황은 나의 경험담,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아이엄마들의 이야기를 섞은 것이다. 즉, 매일매일 벌어지는 상황이자 특별히 과장된 내용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엄마에게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 ‘문화생활’이라고 말하는 공연, 전시, 영화 관람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이나 그 흐름을 소외시키며 해내야 하는 활동으로 전제될 경우, 그 사람은 그 활동을 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문화, 혹은 문화생활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화는 사회적, 공식적 활동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소외감이 들고, 그것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것을 해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거나 스스로를 실험해보게 되기도 한다. 이번 인터뷰 중, 오늘은 영화관, 내일은 쇼핑몰, 그 다음 날은 또 어디를 가보는 것이 마치 스스로의 미션 같다는, 한 아이엄마의 말도 떠오른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삶의 범위와 조건 안에서 해볼 수 있는 문화, 혹은 문화생활은 사실 우리 안에서도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바느질, 독서, 수다모임 같은 것은 너무 소소하거나 일상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문화라는 사회적 개념보다 덜 의미 있거나 혹은 덜 생산적인 것으로. 실제로 개인이 그 덜 생산적이라 여겨지는 활동에 오히려 더 관심과 동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소소한 것이 아닐까’ 라는 스스로의 의심이 생길 정도로.

그렇다면 기존의 문화에 대한 개념이나 관점 대신, 아이엄마에게 의미화 될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시설의 확보만이 그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할 때 우리는 아이엄마의 일상 안에 담긴 사회적 인식과 가사노동의 현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들을 드러내고 공감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것은 어쩌면 매우 정서적인 관계나 소소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기획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와 엄마, 그리고 그 주변의 삶을 소외시키지 않는 문화적 실천 현장을 위해서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문화생활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적 부담이 되곤 한다. 그 순간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 ‘턱’ 앞에 선 한 사람에게 알아서, 시끄럽지 않게 ‘턱’을 넘으라고 말한다. 혹은 눈에 보이는 ‘턱’들은 없앴으니 이제 괜찮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정말 괜찮을까. 각기 다른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괜찮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려는 타인, 혹은 사회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턱’의 높이를 조금씩 낮출 것이다. 우리는 그 ‘턱’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그 ‘턱’의 높이를 얼마나 많이 낮출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른다.

 

 

 

 

 

 

 

 

 

 

 

 

오로민경 개인전 <영인과 나비>의 연계프로그램 '공감각 운동회'에 참여합니다.

 

*'공감각 운동회' 관련 발제문 보기

https://bigija.tistory.com/131

 

 

 

* 자세히보기 및 신청하기

https://forms.gle/KEojTYtsUBvUbuK39

 

 

 

[ 공감각 운동회 소개 ]

"당신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나요? "
"혹시 당신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강한 모습’ 이 당신을 더욱 긴장하거나 움츠리게 만들지는 않았나요?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어떤 종류의 ‘건강 운동’ 을 하고 계십니까?"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가 키워야 할 운동 신경인 공감각을 깨우는 예술 운동회!"
"감각의 전환과 공감 능력을 통해 공동체의 무한한 가능성, 상생의 가치를 탐색해봅시다!"

<공감각 운동회>는 9월말 총 5일간 팩토리2에서 열리는 예술 참여 프로그램입니다. 배민경 작가와 팩토리 콜렉티브가 기획한 본 프로그램은 감각, 언어, 지각 등에 있어 다양한 한계를 지닌 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적 언어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공감각 운동회>는 예술작품과 장애 또는 비장애인 참가자가 서로의 다른 감각을 이해하고 확장하는 경험을 통해 ‘한계의 기준점’을 옮겨보는 예술교육 실험입니다.

공감각운동회는 <밀고 당기기>, <소리탑 쌓기>, <이야기 줄넘기> 총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밀고 당기기>은 참가자들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감각을 깨우고 전시장 작품을 모티프로 생명의 춤을 만드는 관객 참여 워크숍입니다. <소리탑 쌓기>는 참가자들이 음악을 함께 만들어 듣고 느끼는 프로그램입니다. 대화 프로그램인 <이야기 줄넘기>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활동가들과 참가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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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각 운동회 정보 ]

🌱 프로그램 : 공감각 운동회 <밀고 당기기>, <소리탑 쌓기>, <이야기 줄넘기>
🌱 장소: 팩토리2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15)
🌱 기간 2019년 9월 25일 - 29일
🌱 시간: 프로그램별 상이
🌱 대상: 남녀노소 누구나 (‘밀고 당기기’의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 문의: factory2.seoul@gmail.com | 02-733-4883
🌱 공간 내 지원 서비스: 휠체어 진입로 있음, 문자통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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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각 운동회 세부 프로그램 및 일정 ]

🎈밀고 당기기 🎈
🎈9월 25일 수요일 18:00-19:10 / 9월 27일 금요일 11:00-12:20 | 총 2회 🎈
🎈표현예술치료사와 함께하는 몸을 움직이는 워크숍 🎈
🎈진행자: 성다움 x 배민경 🎈

표현예술치료사와 함께 진행될 본 프로그램은 ‘인간’이라는 동물로서의 원초적 움직임, 아기가 세상과 접촉하는 본능적 움직임을 기본요소로 하는 소매틱 무브먼트(somatic movement) 시간을 갖는다. 밀기-당기기&안기, 던지기-잡기, 때리기-막기, 기타 공격하기(할퀴기, 물어뜯기),
숨기-몸 부풀리기 등 생존을 주제로 구성된 움직임들은 나의 생명,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공동체를 살리는 회복의 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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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탑 쌓기 🎈
🎈 9월 26일 목요일 14:00-15:20 | 총 1회 🎈
🎈소리를 쌓아가며 함께 음악을 만들고 느끼고 들어보는 워크숍 🎈
🎈진행자: 다이애나밴드 x 배민경 🎈

원탁에 동그랗게 앉은 참가자들과 생존을 위한 소리를 찾아보고 꺼내본다. 차례로 녹음된 다양한 소리를 리듬에 맞춰 순차적으로 쌓아가며 공동의 생존 합창곡을 완성해 나간다. 위기의 순간을 우리들의 소리로 지켜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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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줄넘기 (부제: 한계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
🎈 9월 28일 토요일 14:00-15:20 / 9월 29일 일요일 14:00-15:20 | 총 2회 🎈
🎈공동의 감각을 깨우는 대화의 시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활동가, 참가자들이 함께 둘러 앉아 서로 다른 조건에서 경험한 한계의 감각을 공유하며 정상성의 기준, 공동체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이다.

1. 보고 듣는다는 감각에 대하여, ‘만날 수 없는 곳을 보는 법’ ----- 9월 28일 토요일 14:00-15:20

’보고 듣는다는 감각에 대하여’ 라는 부제를 갖고,
서로 다른 한계의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른 세상은 무엇인지,
인지와 인식의 차원, 번역의 관점에서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대화 참가자: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배리어프리콘텐츠 제작) 강내영 화면해설작가
양자나노과학연구단 김진경 연구원
청각 장애인예술가 박주영 작가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작가


2. 돌봄과 공동체, ‘우리가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 ----- 9월 29일 일요일 14:00-15:20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성’의 기준에 질문하며,
질병, 장애, 죽음과 삶, 돌봄, 치유에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의료권력 및 자본주의 산업화 속에서 불려지는 건강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아가 우리가 돌봐야 하는 건강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자 한다.

대화 참가자:
장애, 만성질환 연구자 ‘문영민’
비마이너 칼럼니스트 안희제
세포면역학 연구자 ‘육채민’
[간병일기(9월 출간예정)] 저자 청년 활동가 ‘조기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여성 활동가 ‘조한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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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 운동회>는 오로민경의 <영인과 나비>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자 2019 미술주간 연계 기획교육프로그램 입니다.
'2019 미술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합니다.
www.artweek.kr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현장체험학교>는

청년들이 본격적인 직무탐색과 시작에 앞서,

관심 있던 현장과 전문가 멘토를 만나 강의와 워크숍에 참여하고,

자신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프로젝트 경험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자세히보기

 

[모집] 현장체험학교 현장체험단

현장 멘토링과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경험하는 프로그램

sygc.kr

 

 

 

 

비기자는 4개의 <현장체험학교> 중

소통제작체험단의 멘토링을 진행하였습니다.

 

 

ㅇ 진행 기간

2019년 7-8월

 

ㅇ 모집 대상

일상에서의 소소한 감정과 고민을 그림카드, 도형, 목공 등의 툴을 통해 표현해보고

나에게 맞는 도구를 직접 제작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를 경험하고자 하는 청년

 

ㅇ 진행 과정

참여자들은 삶에서 툴툴댈 법한 ‘문제’들을 다시 바라보고 오히려 그 문제로부터 시작된 고민을 개인의 ‘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툴(Tool)로 개발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문제’를 부정적인 요소가 아닌 ‘상태/조건(condition)’으로 재위치시키는 태도도 필요했습니다. 비기자는 누군가의 ‘문제’가 ‘상태/조건’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직접 연구, 제작한 툴을 함께 활용해보았습니다. 참여자들은 그 툴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들여다보기, 사회와 나의 관계 살펴보기, 개인적 주제와 사회적 주제 연결하기 등을 시도했습니다. 나아가 각자의 일 경험을 만들어낼 툴을 함께 제작합니다. 표현도구, 놀이도구, 창작도구, 소통도구를 연구 및 제작하여 사회적 일로 연결해왔던 비기자는 그동안의 활동 노하우와 사례를 공유하고 다양한 툴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작은 규모라도 각자의 툴이나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실행해보고 그 과정에 필요한 현실적 역량을 멘토와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이후 각자의 삶에서 활동내용을 ‘일’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이 ‘일’은 타인과 소통하거나 교류하는 교육 및 상담, 네트워킹 관련 일의 현장과 연결 가능합니다.

 

* 총 11회 중 6회 진행

* 6회차 협력 : 띠리리제작소, 짓거리연구소

 

 

 

<현장체험학교>를 마치며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소통제작체험단에는 소통에 대한 방법론이나 제작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혹은 자신을 적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라도 표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소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하고도 다층적인 의미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제작기술을 학습하는 것보다 자신을 탐구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솔직한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제작활동이 멘토링 전반에서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단단한 주체성과 고요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거나, 스스로 다음 숙제를 계획해보거나, 솔직한 소감을 전하는 것에서 저는 조금 신기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참여자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기에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편안함을 갖춘 어떤 직장에 그들이 안정적인 취업을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이나 사회가 굴러가는 속도가,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속도와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비정기적이고 한시적인 일이라도 그들에게 안전함을 준다면 그 일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멘토링 과정에서 그들이 현재의 자신을 부족한 상태로 인식하거나 스스로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덜 발생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미 잠재되어 있으나 사회적으로 응원받지 못했던 고요한 힘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그 힘을 서로가 찾고 긍정할 수 있다면 각자의 다음 ‘일’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비기자’에서 제작했던 다양한 스토리텔링 놀이를 워크숍 형태로 해보았습니다. 정답이 없는, 그러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는 놀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첫 시간부터 자기표현을 여러 방식으로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첫 시간이 끝난 후 좀 놀라기도 했고 촘촘한 계획은 오히려 피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비기자’의 작업공간으로 참여자들을 초대하고 함께 오락을 하거나 이상한 놀잇감을 체험해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3시간 내내 음악을 들으며 사포질만 했던 순간이 이러한 과정의 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노동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는데 그러한 순간을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저는 또 한번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무목적성의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것은 어쩌면 큰 용기마저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포질의 목적을 따져 묻지 않았던 참여자들의 태도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참여자들이 많은 변화를 보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조금 편안해진 현장에 그들이 익숙해져서 좀 더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너무 소소해 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것은 중요한 시도이고 움직임일지 모릅니다. 이러한 순간들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작동될지를 읽어내는 것이 오히려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역시나 창작자답게 비효율적인 멘토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잘 소통하고 잘 제작하는 방법을 더 많이 전달했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을 잘 터득한다고 해서 삶이 안정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기에,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는 멘토링을 진행했습니다.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게 흘러가는 사회를 보면 치밀한 계획이 갖는 의미나 효과에 의문이 생길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사회 안에서 자신의 기준을 놓아버리지 않는 경험을 만들어보는 것이 더욱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제 멘토링은 그래서 ‘비기자’의 구체적인 놀이콘텐츠를 분명 소개했지만 결국 참여자들이 자신을 다시 만나고 발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참여자들이 심지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각자의 관점이나 마음 상태를 외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그들이 각자의 사회적 자리를 찾는 것에 앞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과를 전제로 진행된 멘토링에 많은 공감과 지지를 보여준 참여자분들께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테마토크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magazine.sfac.or.kr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에 기고했습니다.

 

 

 

 

 

 

장애 예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
다급함의 문제는 문화나 예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하려는 욕구로부터 멀어지기

장애 예술가의 창작 및 향유지원에 관해 발언의 기회가 생길 때마다 효율적인 방법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다. 이미 장애 관련 이슈는 차별과 소외의 맥락으로 전제되어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을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차별받고 있다’는 문제로 현재 상황을 바라볼 경우, 그것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것은 ‘다름’을 ‘다양성’으로 수용하고 재발견할 수 있는 문화나 예술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관점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조금 다른 방향성, 혹은 조금 다른 공존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 관련 이슈나 상황을 문제로 전제하고 해결된 상태를 목표로 두기보다 오히려 문화예술적인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호한 해결점을 목표로 우수한 국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것에 앞서, 현재 국내의 상황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자 하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념화된 시선의 파악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사회적으로 격리, 보호되기보다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기 힘든 존재로 전제되어 비장애인과 다른 공간,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단지 숨을 쉬고 있는 사람,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 천천히 일을 하는 사람은 일반화된 몸을 움직여 일반화된 속도로 일반화된 생산력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아간다. 이에 따라 삶의 기회에 있어서 비장애인과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안에는 교육 참여나 문화향유의 기회도 포함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산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들은 보통 보호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사회적 시스템 일부를 개선한다고 해도 쉽게 바뀔 수 없는 사안이지만 우리가 이런 인식을 얼마나 당연하게 갖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장애인을 뭉뚱그려진 관념적 존재로 상상하고 있다는데서 출발할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 지팡이를 짚고 걷는 맹인,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정도로 그려지는 장애인은 사실 장애 유형별로 특성이 매우 다르다. 또한 사회적인 요소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도 많기 때문에 장애는 어떤 면에서 충분히 상상하고 경험 가능한 영역 안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장애’는 관념화된 사회적 이슈로 인식되고,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소외계층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 그리고 비장애인도 장애, 비장애가 구분된 삶의 환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비장애의 공존을 문화예술이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먼저 우리가 얼마나 분리된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대체 왜 그럴까’라는 물음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현재 우리가 시도 가능한 공존 방식을 상상할 수 있다.

 

현재 가능하지 않은 목표나 방식에 대한 의심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장애인이 차별받거나 소외받는 상황을 오로지 해결하기 위해 문화나 예술을 활용할 경우, 어떤 차원의 공존도 불가능하다. 오히려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것만 같은, 혹은 부분적으로 해결의 순간을 만드는 소수만이 그 성과를 가져가게 된다. 그럼에도 구체적 근거 없이 모호한 목표나 방식을 공식화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약자로 전제되어 있던 장애인의 삶에 그것은 반가운 ‘희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더욱 쉬운 논리의 사회적 인식이 우리들 일상에도 작동되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업이나 활동이 정말 가능한 목표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혹시 그것이 다른 목적을 위해 작동되고 있거나 (누군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작동될 여지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일수록 이러한 태도를 더욱 공식화된 언어로 고민해야한다.

 

모호한 희망 대신 가능한 시도부터

그런 맥락으로 서울문화재단이 올해 시도하고 있는 사업이나 행사의 방향성도 살펴볼 수 있다.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양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크레아(DDP CREA)에서 진행된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미래 포럼 <같이 잇는 가치>’의 경우 장애인의 창작 활동과 관련한 우수 사례를 콘텐츠 중심으로 열거하지 않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소개했다. 이러한 공론의 장이 지속될 경우 장애인을 ‘위한’ 제도의 설계를 넘어 장애-비장애의 공존 방식을 다채롭게 모색하는 시도가 힘을 얻을 것이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서울형 장애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운영단체지원사업’을 새롭게 진행했는데, 6월 3일 참여단체를 선정, 발표했다. 이 사업은 교육 대상자를 장애아동·청소년으로 한정지었다. 이러한 시도가 장애,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으면서도 예술교육에 대한 생산적 논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선정된 단체뿐만 아니라 재단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또한 잠실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입주 작가들이 참여하는 상호티칭워크숍도 진행되고 있다. 장애 예술가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다른 감각 간의 교류와 만남을 지원하는 이러한 시도가 사업적 성과를 넘어 문화예술 분야에 확장된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예술 현장에서는 비장애인 관람객 중심으로 발표되던 공연을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진행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업이나 행사를 단체나 기관이 주도할 경우 사회적 파급력이 커지고 정치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다. 따라서 불편하지 않은 목표를 설정하고 익숙한 방식을 선택하기보다 재단이나 개별 단체, 기획자들이 낯설더라도 ‘현재 가능한 시도’가 무엇일지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장애 예술가의 창작에 대해

한편으로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장애 예술가의 활동을 다양화하고 장애-비장애인의 경계를 줄이는 문화예술 현장을 만들려면 어떤 방향성을 추구해야 할까. 이 광범위한 질문에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술이 장애 예술가의 사회 참여 기회로만 기능하지 않아야한다.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채 살아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힘든 삶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술이 기능할 경우, 장애인은 예술 영역 안에서 더욱 고립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머물 것이며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 영역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또한 예술에 대한 확장된 의미와 가치를 실험해보는 기회가 더욱 축소될 것이다.
둘째, 장애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몇 가지 유형으로만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최근 장애 예술가의 창작은 사회나 타인과의 관계성보다 개인의 고유성에 집중하거나, 몇 가지 매체를 주로 다루는 방식으로 유형화되고 있다. 타 분야와의 컬래버레이션이나 새로운 매체에의 탐구가 지속되는 동시대 예술 안에서 이러한 현상은 자칫 누군가의 창작을 장애의 관점으로만 해석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장애-비장애, 장애인-창작 활동, 장애-사회 등을 매개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기존에 이러한 역할을 해왔거나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은 ‘장애인이나 사회를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의 활동이 예술적 실험으로 나아가거나 전문화될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이것을 설명할 언어가 부족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의 활동 근거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개별 경험을 통해 전문적 역량을 보유한 매개자이자 창작자이자 기획자인 이들의 역할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의 기회가 단절되지 않을 공식화된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장애의 요소를 사회적인 주제로 만나는 기회만 마련되지 않아야 한다. 장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사회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쉽게 해석된다. 그러나 장애는 우리의 일상과 그리 특별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장애를 특별한 주제로 부각시키는 문화적 기획을 늘리는 대신 서로의 삶이 얼마나 다층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살피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의 네 가지 의견은 대부분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이전에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어떤 목표를 이룰 것 같은 희망과 더욱 거리를 두기 위함이자,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욱 어렵고도 필요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관심을 넘어 문화 다양성의 맥락으로

이 모든 것은 장애인의 창작 및 문화향유 기회를 위해서라기보다 문화 다양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 어떤 대상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문화 자체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애인‘도’,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가진 ‘누구든지’ 각자의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 참여 기회로 기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또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문화가 다양해지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략 수립과 실행 이전에 우리의 인식이나 태도가 더욱 중요함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효율성을 전제로 접근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결과가 큰’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더욱 문화예술적인 방식과 거리가 있다. 우리는 효율적인 방안이 다급한 상황 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비효율적인 실험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 비장애,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우리는 효율적일 수 없는 방식을 찾아보아야 한다. 문화나 예술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돌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불안하고 바쁜 상황에서도 다른 속도로 서로를 만나며 다른 시선을 찾는 순간에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이 시작될 것이다.

 

비언어적인 놀이의 가능성 : <도시놀이본부> 프로그램을 마치며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인 청소년 10여 명 대부분은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기자는 이러한 상태를 문제로 전제하지 않고 비언어적인 소통과 표현의 기회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보자”라고 말하는 대신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상황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촘촘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주로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활동들을 진행했습니다. 던지고 맞추고 끼우고 쌓고 냄새를 맡고 먹고 만지는 등의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의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다양하게 실험하였습니다. 비기자는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이러한 방향성과 어울리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놀이는 특정 이름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종류나 형태가 아니라, 선 하나를 뛰어넘어 보는 것, 컵 위에 컵을 올려놓아 보는 것, 텐트 안에 들어가 보는 것 등 더욱 단순한 행위나 순간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이 왜 많은 의미를 발생시키거나 증명해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매순간 다채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비기자는 참여자가 ‘좋아하거나 반응하는’ 활동에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활동에 대한 실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자가 ‘스스로 놀이에 참여하는 것’과 결국 강사가 많은 노력으로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접근이 필요할지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내용을 순서대로 제시하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자 하였습니다. 2시간 내내 컵을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만들어낼지 확인하는 것보다 그러한 경험이 과연 참여자의 삶에서 충분히 주어졌을 지를 더 살피고자 하였습니다.

 

비기자는 기획된 활동, 프로그램, 심지어 놀이 콘텐츠가 넘쳐나는 도시 안에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기획되지 않은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정형화된 교육 안에서 성장한 비기자도 각자의 상상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놀이를 해석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기에 이 활동은 모두에게 동등한 실험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도시놀이본부’는 참여자에게 다양한 놀이방식을 제안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놀이의 요소를 비기자도 참여자도 각자 발견해보는 일시적 실험실이었습니다. 일상적인 소통이 쉽지 않은 장애인과의 만남은 오히려 그 실험의 현장을 애써 설명하게 만들지 않았고 ‘일단 해보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의미를 설명해서 전달하지 않았거나 할 수 없었던 그 경험적 순간들이 각자의 몸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다시 만난다면 그땐 너무 다르게, 새롭게 만나려 애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몸의 기억이 흐릿해졌다면 그런 채로 만날 수 있는 어떤 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도시놀이본부

- 기간 : 2019년 5-6월

- 장소 : 경기상상캠퍼스

- 기획 : 비기자

- 참여 : 자혜학교 청소년(1회 12명)

 

*협력 : 띠리리제작소

*본 프로그램은 수원문화재단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에서 부스 운영을 통해

장애인의 표현을 활성화하기 위해 연구, 제작한 표현도구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도구들은 2018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를 통해 제작하였습니다.

 

*연구 보고서 보러가기 : https://bigija.tistory.com/96

 

2019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보고서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본 연구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애인의 표현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 왜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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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셈판

 

 

 

 

발달장애인법 보드게임

 

 

 

 

 

 그리기와 소리 (신원정 제작)

 

 

 

 

그림카드

 

 

 

 

빛그림판 (띠리리제작소 제작)

 

 

 

 

이야기모양자 (릴리쿰 제작)

 

 

 

 

촉감촉감블록

 

 

 

 

본 포럼은 서울문화재단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포럼에서 부스 외에 발제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포럼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보러가기 : https://bigija.tistory.com/120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2019 장애-비장애가 공존하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발제문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사례 소개를 위한 긴 서론 장애예술이라는 타이틀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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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수원 오프라인 플랫폼 <미래가 열리는 나무>를

수원시 곳곳에서 총 5회 진행하였습니다.

 

의제별로 수원시민들의 의견을 받아 나무에 설치하였는데

총 7개의 의제에 대해 300개가 넘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수원시에 대한 퀴즈를 주사위놀이와 연결하여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주최/주관 : 수원문화재단

*미래가열리는나무 제작 협력 : 띠리리제작소

*사진 : 양승욱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비기자는 이번호에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http://ggarte.ggcf.kr/?p=23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ggarte.ggcf.kr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창작그룹 비기자 최선영

 

 

 

그냥 쉬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떨까.

푸릇푸릇한 에너지로 교실과 운동장을 뛰어놀 초등학생을 기대했는데.

 

‘이름이 뭐야?’라는 질문에 ‘이름이 뭐야?’라고 답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떨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예상했는데.

 

자신이 소유한 건물 자랑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떨까.

정감 넘치는 인생 이야기를 펼치는 어르신을 기대했는데.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대하고 예상한 모습의 사람만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대상’으로 개념화하고 그 대상을 유아, 청소년, 노인, 장애인, 가족 등으로 겨우 세분화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예술교육이 대상별 교육을 강조하는 정책적 움직임 안에 있을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행정적 서류나 사업 기획안에서 편리하게 분류해 부르는 그 ‘대상’들은, 교육 현장에서 다시 한 명씩 살펴보고 마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된다.

 

예를 들어 중학생들과의 교육 활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학생들은 보통 ‘청소년’으로 불리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청소년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서 ‘학생다움’이나 ‘청소년다움’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시선이 현장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져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교육 현장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번 <지지봄봄>에서는 그 고민을 하나씩 뜯어서 살펴보고 함께 나누려고 한다. 가늠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교육 현장의 사람들이 즉흥적인 교육인지 처세인지를 해내고 있는 순간에 말이다.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도화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근거가 되는 교육 현장은 정신없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우수한 국내외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 사례를 다시 새로운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깊이 있는 교육적 성찰이 이루어지기에도 벅찰 만큼, 기획자나 강사, 실무자 등은 계획안을 쓰고 재료를 나르고 참여자들을 다독이고 일지를 작성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어떠해야 할지 이전에, 당장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현하고 정리하고 이어나갈지를 살피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지지봄봄>에서는 교육 현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쪼개어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 현장의 언어와 주제, 재료의 실험, 현장의 진행, 참여자에 대한 관심, 강사나 기획자의 마음, 활동의 정리나 지속 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항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만나보고 있는 필자들이 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보편화 될 수 있는 방법론을 소개하는 대신 개별화된 경험을 들려준다. 나 역시 그러한데, 이 글에서는 먼저 교육 현장에서의 언어에 대한 경험을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교육 활동에 있어서 ‘주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단어나 개념으로 참여자들에게 공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각자의 집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실제로 계획했더라도 “집을 만들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사각형 건물 위에 삼각형 지붕을 얹어 관념화된 집을 그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나 표현은 생각보다 언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을 그려보자고 하면 졸라맨을 그리고 ‘자동차’를 그리자고 하면 각이 진 몸체에 바퀴가 2개 달린 측면에서 바라본 바로 그 승용차를 그린다. 그래서 나는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요소들을 풀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집’을 풀어서 말하기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나 장소”

“나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사람이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싶은 공간”

“내가 쉬는 곳”

“내가 가끔 숨을 수 있는 곳”

 

· ‘사람’을 풀어서 말하기

“우리와 닮았지만 모두 다른 생명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는 생명체”

“겉과 속이 다른 생명체”

“각기 다른 얼굴과 몸통과 팔과 다리가 달린 것”

“다른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존재”

 

· ‘자동차’를 풀어서 말하기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것”

“바퀴와 엔진과 몸체를 가지고 있는 것”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태울 수 있는 것”

“갑자기 사라지면 삶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것”

“물건을 멀리까지 운반할 때 편리한 운송수단”

 

이러한 표현방식은 하나의 개념을 떠오르게 하기보다 다른 개념까지도 상상하게 만든다.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개념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참여자가 반드시 집, 사람, 자동차를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과 비슷한 속성을 떠올리며 다양하고 엉뚱한 것을 상상하여 자신의 삶과 연결된 어떤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더더욱 무궁무진하게 이어져 문학적인 표현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예시 중에, “다른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존재”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결과물들이 나올까. 그것이 얼마나 예술적일지 아닐지 따져보기 전에, 그것이 ‘사람’이라는 단어를 듣고 표현한 것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 교육적 주제는 계획서에 명시된 언어 그대로 참여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혹시 강사나 기획자가 정해 놓은 주제를 강조하거나 교육 활동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선택된 개념 몇 가지가, 참여자의 다양한 접근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최근에는 교육 활동이 계획서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분명하고 정리된 언어들이 활동 전반에 공지되어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자의 표현 영역에서는 오히려 계획된 언어, 기획된 주제가 흩어지고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참여자의 개별적 관심이 활동 주제와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비언어적인 과정도 포함하기 때문에 우리가 언어의 밖으로 뛰쳐나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다. 또한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 혹은 언어를 쓰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동등한 표현 기회가 주어지려면 문화예술교육은 계획서에 나열된 언어가 아니라 계획될 수 없는 감각이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측면에서 나의 언어를 다른 표현이나 반응으로 튕겨내 버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당황하면서도 시원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이건 괴물이야?”라고 물으면 “그냥 그린 건데요”라는 답변을 들을 때가 그렇다. 나 역시 어떤 결과물을 보고 하나의 개념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그것이 무엇이 되는 것과 무관하게 ‘그저 그려본 것’으로 내버려 둔다. 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도록 이름도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그대로 두면 될 것을. 그저 그림 한 장이거나 어떤 순간의 흔적인데.

 

‘지역’을 ‘발견’하고 ‘도시’를 ‘해석’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등의 문화예술교육 ‘사업’ 내의 개념들은 절대 ‘그냥 해보는 것’의 힘을 이길 수 없지만 언제나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것은 참여자의 관심, 참여, 표현을 덜 살피게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그냥 해보는 것이 지역도 발견하고 도시도 해석하고 자아도 실현하다가 심지어 삶 속으로 문화를 침투시킬 수도 있다고 기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어가 애써 감싸 안지 않아도 되는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의미 이전에 재미를 찾아서 이리저리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 원동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개념들을 언급하지 않는 활동이 너무 산만하게만 느껴질 때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명확한 말들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은 명확한 주제를 놓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계획적이고 치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더 어려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몇 가지 개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에 기대어 활동 전반을 끌어가는 방식은 사실은 참여자와의 소통에서 편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것은 때론 불편하거나 모호하거나 어려운 소통의 여지를 덜 만들기 때문에 참여자에게 일방적인 전달로 비춰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언어나 개념과 관련된 고민을 하게 된 배경을 언급하자면, 그것은 역시나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입으로 소리는 내지만 개념을 언어화해서 문장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 분명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의 의미는 모른 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하듯 말하는 사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유창하게 하는 말 속에 자신의 생각보다 강사의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있는 사람 등을 만나면서 왜 많은 활동이 언어에 기대어 이루어져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은 그냥 해보는 것, 말없이 따라해 보는 것, 느껴보는 것, 같이 있는 것, 혹은 안 해보는 것도 가능한 영역일 텐데 말이다. 교육 ‘사업’이나 ‘프로그램’ 기획서 작성을 위한 언어에 집중하게 되는 상황 안에서, 우리 스스로 그 언어를 빠져나오기 위한 실천들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이것은 사실 누구와 어쩌다 만나게 될 때 그 다음의 만남을 어떻게 이어갈지 상상하며 내뱉어보는 혼잣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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