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에 얼마전 참여한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관련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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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_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7년 전 젖먹이 아들을 재우고 새벽마다 화장실에서 목소리를 녹음해 MC.mama라는 이름으로 출산, 육아에 대한 음악을 만들었다. 집 안에 앉아 집 밖을 향해 정리되지 못한 말들을 토해내던 그때, 나는 내 안에서도 예술계 안에서도 사라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슬픈 서사로 재생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의 이야기를 너무 개인적이지만은 않게 공유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오픈 테이블에 참여했다.

지난 1월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예술가의 집’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성평등예술지원소위원회 주관으로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경력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이 열렸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경력단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성 예술인 4명이 각자의 사례를 공유하였고, 이어서 한국여성과학기술지원센터의 차은지 팀장이 과학기술분야의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여성과학기술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 사례에 대해 발제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유진 실장이 ‘여성예술인, 경력 유지와 복귀 활성화를 위해 고려해봐야 하는 것들’을 주제로 발제하였고 이어 객석에 있던 참여자들과도 자유토론을 진행하였다.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오픈 테이블에서, 나는 경력단절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의견을 말하는 여성 예술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였다.

 

 

출산 전, 나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전시나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같은 분야의 예술인과 20대 중반에 결혼을 했고, 3년 후 출산을 했다. 육아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서 사람을 키워내는 게 이 정도로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매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거나 기존에 내가 해오던 작업방식을 지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오픈 테이블에서는 영상, 연극, 시각 분야의 여성 예술인들이 이러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코 즐겁고 희망적인 경험들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지금까지도 무리를 하고 있었다. 창작 현장에 아이를 업고 가서 작업을 하거나 친정, 시댁을 오가며 도움을 요청하고 여기저기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트에 적으며 나의 발제를 준비하던 그 시각에도, 내 아들에게서는 엄마 언제오냐는 문자가 오고 있었다. 여느 자리에서처럼 한쪽 신경은 ‘엄마’라는 역할이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출산으로 인한 여성 예술인의 활동에서 오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 이 사회/세계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는 것에 큰 감사함이 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한 예술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출산 전에는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할 수 없게 된 창작활동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생계활동도 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술이고 뭐고 일단 매일 매일의 밥값을 마련하고 사계절을 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보였다. 동시에 그들의 삶을 이용하거나 비판하기에 급급한 예술의 사례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기존의 예술관과 창작방식을 바꿔야 했다.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현재 우리가 마주한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 탐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던 내가 가사를 썼고, 함께 그림을 그렸던 남편이 음악을 만들었다. 새로운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내리는 삶을 야무지게 기억하기 위해서. 생활은 힘들었지만 여전히 무리해가면 그 돈도 안 되는 작업을 했던 경험이, 우리 부부에게는 창작자로서의 큰 전환점이었다. 기존의 관점과 방식을 버릴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이다.

경력단절의 경험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애써 했던 이유는, 우리가 활동하고 발언하고 있는 자리가 창작과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낸 후 전공했던 예술을 활용하여 사회참여 기회를 마련하거나 일자리를 갖는 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그것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논의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삶의 변화를 극복하고 장르 중심의 작품 제작 및 발표의 기회를 지속하는 것만이 예술인의 삶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부하고 연마했던 작품 제작 방식을 우선으로 두지 않고 현재의 관점을 담아 표현행위를 하는 것, 혹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예술일 수 있다. 이것은 예술 이전에 삶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실천으로도 해석된다.

그런 차원에서 오픈 테이블에서의 논의가 궁극적으로는 경력단절 여성 예술인을 위한 제도 마련을 넘어, 다양한 삶의 유입을 고려한 정책적 전환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출산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는 창작이나 사회적 활동을 단절, 변화시키는 많은 사건과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출산과 육아도 남성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밀도와 규모, 속도로 작품을 제작하지 못하거나 않는 사람들의 다양한 창작방식도 정책 안에서 고려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갖고 있는 핵심 요소인 다양성 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한 제도가, 복잡한 삶의 문제,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 만능 요소로 전제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오래전부터 축적된 일상적, 사회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으며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다양한 제도들의 기획과 실행만큼이나, 삶에서의 실천을 예술의 영역과도 연결하여 이어가는 개개인들을 더욱 만나고 싶다. 이것은 작품 활동도 멋지게 해내는 슈퍼맘들의 등장이 아니라 삶의 질문을 끌어당겨 예술의 질문으로 확장하는 개별자들의 실천이다. 그들의 활동이 다양한 해석의 근거를 마련할 때 제도도 여러 사람의 삶을 함께 살피며 변화해나갈 것이다.

 

 

[사진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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