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어린이상상의숲을 중심으로 

만물작업소와 함께 약 4개월간 유아문화예술교육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연구 참여자들은 각자의 어린시절 놀이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지역의 키즈카페를 답사해 아이들을 관찰하고 부모 대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놀이시설이나 도구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행위적, 경험적 가능성을 연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개발보다는 환경과 조건, 방향성에 집중했습니다.

연구기간이 끝난 후에는

아이와 부모가 참여하는 프로그램 너는 어떻게 노니?를 1회 진행하였습니다.

 

 

'너는 어떻게 노니?' 참가 신청(신청 및 예비 접수 마감)

너는 어떻게 노니?

 

본 프로그램은 아이는 놀고 부모는 그 현장을 바탕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은 ‘만물작업소’와 상상의 숲 안팎을 오가며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놀아봅니다. ‘만물작업소’는 놀이도구를 제공하거나 놀이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아이들의 단순한 행위, 감각적 경험, 비언어적 경험, 본능적 움직임 등을 관찰, 응원하며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 현장은 실시간으로 부모에게 공유되고 부모들은 ‘창작그룹 비기자’와 놀이에 대해 수다를 나눕니다. 이 시간에는 아이들의 놀이, 아이들과의 놀이, 놀이에 대한 대화 등과 관련한 부모들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 일 시 : 2020.10.25(일) 13-15시
 장 소 : 용인어린이상상의숲(미르 스타디움 내 위치)
 대 상 : 만 3-5세를 포함한 가족 15명(가족당 최대 4명)

 

 

 

 

 

 

연구를 마치며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제도나 사업 안에서는 너무 한정적이다. 그 제한적 이름 중 하나가 ‘유아’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노인, 장애인 같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구는 ‘유아’라는 이름 안에 있던 사람들을 궁금해 해본 시간이었다.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게, 연구 주체들의 어린 시절과 요즘의 삶까지도 되짚어보며.

 

특히 나는 이제 10살이 된 아들과의 예전 기억을 많이 떠올렸다. 집에서, 야외에서 이것저것을 하며 놀거나 시간을 때우던. 아들은 특별하지 않았고 특별하게 놀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굴리고 싶을 때 그것을 굴리고 무언가를 던지고 싶을 때 그것을 던졌다. 나에게 ‘아들’로 불리던 그 ‘사람’은 당시의 욕구나 행위에 집중했고 나는 그것을 존중했다. 집이 심하게 지저분해질 정도로. 아이가 너무 위험하지만 않을 정도로.

 

 

연구 과정에서 공유했던 아들의 놀이 현장

 

 

나는 스스로 특별한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을 ‘너무 제지하지 않아서’ 주변으로부터 특별해 보이곤 했다. 그 기억은 나에게 기쁘게 남아 있지는 않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좀 틀어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의 행동 자체를 판단하기 전에, 그 행동을 바라보는 지배적 관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한 사람을 충분히 들여다 봤는지. (예를 들어 위 사진처럼) 한 사람이 얼마나 벽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지, 그 순간 벽은 그 사람에게 얼마나 반가운 매체일 수 있는지, 벽과 칠판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등.

 

그래서 이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연구에서 나눠보았고 마지막 ‘너는 어떻게 노니?’ 프로그램에서 참여 부모들에게 던져 보았다. 아이들의 놀이 현장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대단하지 않은 현장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이런 시도가, 많은 이유와 언어들을 대동할 필요는 없으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삶에도 왜 필요한지.

 

분필을 부수는 아이, 무거운 돌을 옮기는 아이, 한 자리에서 뱅뱅 돌며 바닥에 흔적을 만드는 아이, 작은 물체들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아이, 그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아이, 그리고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오랫동안 확보하며 안정감 혹은 익숙함을 찾아보려는 아이. 많은 것이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아이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대해 프로그램에서는 잠시 ‘놀이’라는 개념을 부여했지만 그것은 사실 ‘아이’ 혹은 ‘유아’로 불리는 ‘사람’ 그 자체였다. 그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표현이나 움직임, 미묘하거나 극명한 표정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떻게 얼마나 잘 노는지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대화에 참여했던 부모들은 각자의 자녀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걱정이나 불안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쯤에서 나는, 우리가 더 들여다봐야 할 곳을, 아이들의 놀이 현장에서 어른들 각자의 관점으로 옮겨보고자 했다. 그리고 불쑥 튀어나온 어른들의 불안이 어디로부터 오게 된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했다.

 

이것은 ‘놀이’라는 이번 연구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노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함을 동반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잘 노는 걸까? 잘 놀지 못하면 어떡하지? 잘 놀아줘야 할까? 잘 논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어른의 시선에서) 문화적, 교육적, 사회적 지식을 잘 알고 있을까? 이러한 불안이 작동되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노니?’라고 궁금해 하기 전에.

 

한 사람이 어떻게 노는지를 면밀하게 알게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끝이 없기도 하지만, 조금 알았다 싶을 때쯤에 관찰 대상의 관심사나 노는 방식 등이 변해서 관찰자가 다시 눈과 귀를 크게 열어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은 사람을 향하는 흥미진진한 여행 같기도 하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말로 모두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험난하고 흥미로운 여행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여행의 짧은 실험이 아니었을까.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던 여행의 끝에서 연구 주체들과 더불어 프로그램 참여 부모들이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을 가질 수 있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유아’라 불리는 사람들을 위한 멋진 놀이 프로그램의 개발자, 혹은 진행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도 놀 듯이, 여행하듯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궁금해 해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놀이의 방법이 떠오르기 전에, 같이 놀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것은 불안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더욱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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