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아틀리에 코나스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일본의 예술단체나 기관을 답사하며 사회문화예술교육 관련 조사를 한 지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누군가의 문제의식이나 의지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는 ‘장소’를 발견할수록 나에게 떠올랐던 것은 이전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나갔던 국내의 특수학교들이었다. 번듯하게 지어진 그 학교들은 아파트 단지의 끄트머리, 혹은 외진 동네에 위치해 있었고 그래서 같은 지역에 수년간 살고 있던 나도 그 곳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학교 수업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동네를 오가던 특수학교 통학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에 OO가 타있겠구나’ 하고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다가, 내가 어떤 사람들의 존재를 그동안은 왜 잘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두 발로 길을 걸을 수 있거나 말을 할 수 있거나 앞을 볼 수 있는 소위 ‘일반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은 외진 곳에 위치한 학교, 닫힌 건물 안에서만 생활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회 안에서 ‘존재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으나 ‘일반인’으로 쉽게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왜 잘 알지 못할까. 그들이 탄 통학버스는 왜 모두의 삶 속이 아닌 닫힌 울타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까.

 

길고 긴 질문들이 이어지던 2016년 가을, 나는 다시 일본을 방문했고 그때 답사했던 몇몇 단체 중 하나가 오사카에 위치한 아틀리에 코나스(이하 코나스)였다. 물론 나라마다 사회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기에 이들 역시 사회적 차별과 나름대로의 운영적 어려움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코나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거시적인 의미나 목표를 우선으로 두지 않는 듯 했다. 그보다는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단체에 오는 개개인의 표현활동을 위한 편안한 장소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코나스의 대표 타카코 시라이와(이하 시라이와)는 그러한 태도가 개인의 삶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내 딸이 중증 장애인입니다. 생후 3개월 동안 간질과 발작을 보였고 저는 그러한 상태가 나아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딸은 40세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장애인은 예전에는 숲이나 사회 변두리에 가둬져 부모나 할머니에 의해 몰래 키워졌습니다. 그런데 1981년, 내 딸이 4세 때 ‘정상화 원리(principle of normalization)’가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어떤 장애도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새로운 이념으로부터 희망을 얻기도 했지만 내 딸이 나아질 거란 환상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딸의 장애는 우리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삶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니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장애인 보호자회를 만들고 아이들이 마을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곤란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제도나 보호 장치가 없었습니다. 바자회 등으로 지원금과 운영비를 마련하며 12년을 보냈는데 너무 어려워서 다른 사람들은 그만두고 저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시대가 변하고 이념도 생기면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93년에 설립된 코나스는 장애인의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지적 장애인 생활보호 시설로, 현재 20명에 가까운 장애인과 6명의 운영진 및 서포터즈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공동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국내의 장애인 그룹홈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장애인이 거주 하지는 않고 주 5일 이곳에 나와서 창작활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80년 된 고가옥을 개조하여 지역 내 장애인을 위한 창작공간을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코나스의 첫인상은 무언가 평화로워보였다. 지역적, 건축적 문화가 쌓인 공간에서의 창작활동이라니, 내심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막연한 인상과 달리, 코나스의 대표 시라이와는 공간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이야기했다.

 

“보통 장애인들은 빌딩 같은 곳에 가두어져 있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문을 열고 장애인들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네 가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코나스가 ‘보통의 집’처럼 운영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웃의 소리도 들리는 그런 집 말입니다. 그래서 코나스라는 단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여기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역에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다른 장애 시설도 ‘열린’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보통 문이 잠겨 있어서 장애인이 나가고 들어가기 힘든데 그런 곳과 차이를 두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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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스 입구(좌)와 테라스 공간(우)

 

코나스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장애인들은 좁고 어두운 방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우산못 조립을 했다.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한 수작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코나스 운영진은 다른 기관(나라 시 소재, ‘하나아트센터’) 장애인의 회화 작품을 만나 에이블아트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노동 형태의 부업 작업은 장애인 본래의 개성과 감성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을 시작하고자 했다. 그래서 운영진은 2005년 오래된 가옥을 개축하여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그곳에서의 작업은 붓으로 좋아하는 것을 그려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후 아틀리에 공간에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놀라운 것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쉽지 않았던 사람이 조용히 앉아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대표 시라이와는 지금까지의 10년과 다른, 미래의 무언가를 예감했다. 그리고 예술 활동 3년차에 멤버(코나스에 오는 장애인)들의 작품은 대외적으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창작활동이 외부와 소통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코나스의 운영진은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을까. 이후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창작활동에 집중적 지원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예상했다. 그러나 시라이와가 설명하는 운영철학을 들으며 그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코나스에서는 장애인에게 창작활동에 대해 칭찬하지 않습니다. 칭찬받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가치관이 창작자에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코나스의 스태프들은 장애인이 현재 하고 있는 행위를 인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있구나, 그 모습이 좋아 보인다.’와 같은 말들로 말입니다. 그 외에 작품의 우수함이나 부족함에 대해 평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그동안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제약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하는 행위 자체가 그대로 수용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을 존재 자체로 인정, 수용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이후, 오히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코나스의 운영진은 장애인이 특별히 창작을 잘 하도록 가르치기보다 사람마다의 속도와 특징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1년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두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재료의 냄새를 하나씩 맡아보는 사람도 있다. 코나스의 운영진은 그런 시간과 방식을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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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마코토 오카와가 2005년부터 지금까지 만든 170개의 마코토 인형 <출처 : 코나스 페이스북>

 

이러한 활동은 예술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참여자 개개인의 표현 또는 편안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로 보인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야마나미 공방이나 스윙의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들은 새롭거나 독특한 예술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인정받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코나스에서 이러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케어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운영진들이 오랜 시간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재료를 잘 쓸 수 있을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창작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드러난다. 자신의 작업에 집중해야 안정감을 찾는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칸막이로 개인공간을 만들어 자리를 마련해준다. 혹은 돌아다니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업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넓은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앉아서 작업하도록 한다. 작업을 하다가 잠시 바람을 쐬거나 돌아다녀야 스스로 진정이 되는 사람도 있어서 오래된 가옥의 옛날식 테라스 공간을 그대로 살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코나스는 창작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편안함을 위해서 창작환경을 세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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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스의 창작공간

 

그렇다면 창작 외에 코나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대표 시라이와는 “중요한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이 지역에 이러한 활동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 작업은 코나스 활동의 30%라고 한다. 그 외에는 동네 청소도 하고 쿠키를 만들어서 주변에 판매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을 다녀오면 이웃사람들에게 꼭 선물을 사서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코나스의 활동이 소개된 잡지를 카피해서 동네에 나누어주기도 하는데 지역 사람들이 그런 활동을 알게 된 후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활동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코나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일본의 사례를 살피다 다시 우리 동네 변두리에 위치한 특수학교를 떠올려보았다. 모든 특수학교가 도심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위치와 상관없이 학교 안과 밖의 거리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결국 교육제도나 사회정책과 같은 시스템을 바꾸자고 외쳐야하는 문제인가, 나는 문화예술교육을 주제로 조사를 하다가 고민이 더 커졌다. 그런데 문득 코나스 운영진의 실천들은 그런 시스템과 별개로 시도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의 작품에 대해 칭찬을 하지 않고 현재 하고 있는 행위 자체를 인정하는 것, 1년 동안 그림을 한 장 그리는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 정기적으로 동네 청소를 함께 하는 것 등. 이것은 안정된 사회제도 안에서만 가능한 실천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해외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그 활동을 국내에서도 실행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보다, 그 사례가 발생될 수 있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관련 연구

해당 내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이다. 

 

관련 링크

<아틀리에 코나스> 페이지 : http://corners-net.com

수원시평생학습관 웹진 [와] 166호_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④ 코코룸

최선영 / 창작그룹 비기자

 

 

 

“이렇게 운영이 어려워지는데 왜 이런 활동을 계속하려고 하나요?”

 

나에게 매순간 하고 있는 질문을 코코룸 대표 카나요 우에다(이하 우에다)에게 물었다. 그녀는 단단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을은 변하고 사회는 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빈곤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동네,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원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의 활동은 그 안의 한명 한명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어떤 순간에는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 있었던 무엇, 사람, 기억, 시간 때문에 내가 다시 힘을 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대답은 긴 시간 속에서 쌓인 힘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어떤 대안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치지 않고 스스로로 하여금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시민활동이나 문화예술교육 관련 활동가의 자기 태도에 대해 내가 최근 들은 답변 중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힘이 났다. 그래, 우리는 지금 이순간의 활동이 미래에 어떤 쓸모나 목적을 위해 작동되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 그것의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겠구나. 지금 힘들지만 나아질 앞날을 위해 버텨보자는 말보다 그것은 더 큰 힘을 주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내가 코코룸을 2016년에 이어 올해 다시 방문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2년 전에 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조사하기 위해 비영리법인단체 코코룸을 방문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는데 이유는 연구 사업 외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단체가 우수하거나 독특한 활동 사례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2년 전 나에게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던 스태프와, 단체의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활동에서의 재미도 느낀다고 말하던 스태프가, 바로 그 사람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그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다시 간 코코룸에 누군가는 있고 누군가는 없었다. 그 현장에 없는 이는 또 다른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코코룸 마당에 앉아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관찰하였다. 그곳의 프로그램을 분석하기보다 평소의 분위기나 지역과의 소통방식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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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룸 입구(좌)와 카페, 마당 공간(우)

 

 

코코룸은 가마가사키라는 오사카의 빈민지역에서 홈리스, 일용직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과 시를 매개로 문화예술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다. 현재 게스트하우스,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02년 오사카시는 신세카이 Arts Park 사업을 시행하며, 지상 8층, 점포면적 57,000㎡의 빌딩 내부의 빈 점포를 활용한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세 개의 비영리민간단체 중 하나가 지금의 코코룸이다. 그러나 2008년 건물의 매각과 동시에 사업도 중단되었다. 이후 코코룸은 근처의 상점가에 공간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코코룸이 위치한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아 일본인이나 관광객이 드나들기를 꺼려하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코코룸 반경 300미터 내 지역 주민 3만 명 중 5천여 명이 노숙자라고 추측하는 시선도 있다.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소부정의 일용직 노동자가 많고, 그 이유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 이곳에 간사이 최대의 인력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건설경기의 악화와 급격한 수요 감소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지방에서 일을 찾아 오사카로 온 사람들은 저렴한 숙소를 전전하다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코코룸 마당에 하루 종일 앉아있다 보니 지역주민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이따금 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딱히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고 동네의 익숙한 공간에 잠깐 들어와 앉았다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마가사키 지역과는 사뭇 다르게 예술적 분위기가 넘치고 타 지역의 사람들이 게스트 하우스의 손님으로 오가는 그 공간에 60대 이상의 남성이 별일 없이 드나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갈 곳이 없는 낮 시간에, 집을 나서서 잠시 이곳에 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배제하지 않았던 코코룸 사람들의 움직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문화예술교육 관련 어떤 활동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코코룸의 운영진들은 ‘예술’은 너무 추상적이라서 ‘표현’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고 했다. 예술은 유복한 사람만 전문적 교육을 받아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예술보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코코룸은 이들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예술 자체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전문가를 초빙하여 예술적 기술을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힘과 특징을 잃지 않는 것, 기술과 그 특징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코코룸의 대표적 프로그램 ‘가마가사키 예술대학’(이하 예술대학)은 그러한 측면에서 ‘표현’의 의미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술대학은 위에서 언급한 ‘표현’의 활동을 소소하고 다채롭게 담아내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에는 단체의 대표부터 지역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예술대학은 코코룸 1층의 카페 공간과 주변의 마을회관, 노숙자 휴게소, 노숙자들을 위한 긴급 보호소, 삼각공원 등에서 이루어지며 노숙자였던 사람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온다. 또 지역민이나 복지와 예술,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한 강좌에 5명~50명 정도 참여하며 큰 발표를 하는 경우에는 300명이 오기도 한다.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진행되는 예술대학 강좌는 아래와 같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사로는 전문가가 오기도 하지만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미학 / 거리걷기 / 맥주캔으로 탑 모형 만들기 / 합창 / 책읽기 / 캘리그라피 / 세미나 / 타코야키 만들기 / 하이쿠 (짧은 시) / 시 / 생각하고 표현하기 / 과학소설 / 죽음 / 라디오 댄스 / 가마카사키 오페라 / 사운드 스케이프(소리와 공간의 디자인) / 천문학 / 남성과 여성의 사랑 / 학생자치, 일반적인 미팅 (학생들이 10년 후 가마가사키 예술대학에 대한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말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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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사키 예술대학, 맥주캔으로 탑 모형 만들기  <출처 : 코코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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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사키 예술대학, 가마가사키 오페라  <출처 : 코코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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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사키 페스티벌, 캘리그라피 쓰기  <출처 : 코코룸 페이스북>

 

 

예술대학을 기획할 때 고려하는 지점에 대해 우에다 대표는 3가지의 기준을 언급했다. 첫 번째, 아저씨(일용직 노동자였거나 장애가 있거나 노숙자였던 지역 주민을 우에다는 이렇게 통칭해서 부른다.)가 해달라고 하는 강좌를 만들거나 두 번째, 아저씨가 어떤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해서 강좌를 만들기도 하고 세 번째, 이런 내용이 있으면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은 강좌를 기획한다. 그 외에 계절이나 상황의 밸런스를 생각하며 기획한다.

이렇듯 코코룸은 교육적 효과보다는 지역 사람들과 쌓아온 관계 안에서 발견되는 지점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해 가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예술보다도 ‘표현’을 강조하면서 ‘장소’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표현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스스로가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느낄 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부당하는 곳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 중요한 것이다.”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사람의 힘이라는 건 쉽게 보이거나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의 가치나 의미를 확인하기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보이는 것을 잘 보는 것도 쉽지 않기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것을 나의 관심과 질문들을 통해 보는 것은 더욱 어렵다. 더 나아가 무언가를 잘 바라보고 나의 기억으로 남겨두었다가 우리의 삶으로 이어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나도 그 어려움을 잠시 잊기 위해, 다양한 힘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찾고 현장을 방문하는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가 원했고 기대했던 답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지어 개운함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코코룸의 우에다도 그랬다. 그녀는 “여기는 카페인척 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카페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과의 문화예술활동 사례를 물으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라고 외칠 뻔 했다. 카페로 보이지만 카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카페로라도 보일 필요만 있을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카페든 뭐든 그것으로라도 보이게 하여 지속하고 지켜내려는 장소와 태도인 것이다. 그것은 설명으로 전달하기 힘들고 애써 보여주려 한다고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험되고 기억되어 다른 삶으로 퍼져나갈 뿐이다.

 

역시나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로 향한다. 우리는 얼마나 보려고 알려고 하고 있을까. 카페인척 하는 장소가 사실은 어떤 장소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힘은 무엇인지. 과연 그것을 좀 더 잘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있을까. 마지막으로 사회는 변하지만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들을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우에다의 말을 되뇌어 본다.

 

 

 

 

 

관련 연구

해당 내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이다. 

 

 

관련 링크

-<코코룸> 페이지 : http://cocoroom.org

-<코코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cocoroom

-관련 기사 야쿠자와 노숙자로 쇠락한 거리에 시민 커뮤니티 만든 시인

  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9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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