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
사전프로젝트

 

길을 잃기 위하여

 

 

 

무엇을 할지 안내하지 않고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낯선 질문들을 따라간 자리에
무엇이 남겨졌을까요?

 

 

1차

○ 일정 : 2020. 7. 28
○ 장소 : 인포숍카페 별꼴
○ 기획/진행 : 창작그룹 비기자

 

 

 

 

 

 

 

2차

○ 일정 : 2020. 8. 4
○ 장소 : 띠리리제작소
○ 기획/진행 : 창작그룹 비기자

 

 

 

 

 

- 포스터 이미지 : 이려진 작가의 <타임 머신>

- 포스터 디자인 : 즈즈스

- 사진 : 양승욱

- 영상 : 우에타 지로

 

 

 

* “길을 잃기 위하여”는 9월14일(화) - 9월17일(목) 열리는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의 사전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 홈페이지 : itac5.org

 

http://itac5.org

 

itac5.org

 

 

 

* 이 글은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의 세 개의 주제 중 '언러닝unlearning' 파트에서 기획되었던 사전프로젝트 관련 원고입니다.

 

우리는 길을 잃을 수 있다.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 최선영

 

 

“이 활동의 목적이 뭐죠?”

아리송한 문장 한 줄이 제시되고 밑도 끝도 없는 수수께끼 놀이가 시작되자, 누군가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일단 한번 해보시죠.”

 

수수께끼를 던진 진행자가 대답한다. 하지만 목표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어떤 놀이에 대해 누군가는 계속해서 불안함, 혹은 의구심을 품는다. <창작그룹 비기자>(이하 <비기자>)는 이런 놀이의 기획과 진행을 자주 해오고 있고 그것의 목적을 묻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노를 젓는 상황도 아닌데, 그렇게 위험하고 막막한 일이 아니라면 한번 생각의 노를 저어보자고 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단지 책상에 앉아 질문을 던지는 것에도 불안함, 내지는 불편함을 드러낸다. 일하기도 바쁜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알쏭달쏭한 놀이를 제안한다며 불만도 내비치는 이도 있다. 그래도, 혹은 그래서, <비기자>는 일단 한 번 해보자고 제안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개발시키는 것에 익숙한 우리가, 같이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놀이, 혹은 무언가에 대해 목적을 확인하기 전에, 그것이 무엇일지 같이 찾아보자고.

 

이러한 생각이 ‘언러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와 관련한 힌트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러닝’은 학습된 개념, 관념, 언어, 학습하려는 관성, 학습과정을 지배하는 사회적 구조나 가치관 등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언러닝’은 낯설고 어렵고 불편하다. 특히 예술교육실천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혹은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언러닝’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 쉽지 않음을 마주하거나 인정하는 것부터가 ‘언러닝’의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비기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시대를 경험하며 그동안의 논리성, 합리성, 계획성을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예측하거나 확정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발빠른 대처능력이나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향해 달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상황에서 각자 덜 불안해하거나 즐기거나 혹은 방황을 통해 무언가를 찾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길을 잃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사전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만나기는 하지만 만나서 무엇을 할지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러한 ‘적극적 방황’에 공감하는 이들을 기다린다는 짧은 멘트를 사전프로젝트의 참여자 모집 포스터에 남겨두었다.

 

사전프로젝트는 워크샵 방식으로 총 2회, 각 3시간씩 다른 장소에서 이뤄졌다. 워크샵마다 7명 정도의 예술교육실천가, 혹은 이 프로젝트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

 

* 첫 번째 사전프로젝트 / 2020.7.28. / 인포숍카페 별꼴 *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모른채 모인(몰라도 괜찮은)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았다. 진행자(비기자)의 인사와 진행에 따라 목적없고 모호한 ‘그림받아쓰기’(Drawing Dictation)를 시작했다. ‘그림받아쓰기’는 한 명이 한 장의 그림을 혼자만 보면서 5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나머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토대로 질문을 하며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활동의 이름이 ‘그림받아쓰기’이니 더욱 처음의 그림과 비슷하게 그림을 그려야할 것만 같다. 그러나 진행자는 그것만이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대로, 그릴 수 있는 만큼만, 혹은 자신이 상상하는대로 그려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참여자A가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이렇게 5개의 문장을 이야기했다.

 

 

1. 대머리 남자가 승모근이 뻐근한 상태로 걷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기적 중에 하나를 터득했습니다.
3. 남자는 계단을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가고 있는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4. 대머리 남자는 사실 4명입니다.
5. 한 명은 장님이고 세 명은 눈이 부셨습니다.


참여자들이 질문을 시작했다. 진행자가 어떤 질문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으나 대부분 그림의 시각적 구성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진행자는 “예”, “아니오” 혹은 “모르겠습니다” 중 하나로만 답변할 수 있다.

“계단의 경사가 심한가요?”

 

“대머리라고 하면,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건가요?”

“사람 말고 다른 생물체가 있나요?”

“승모근이 많이 솟아있나요?”

“기적을 행할 때 선글라스가 필요한가요?”

“남자들이 티셔츠를 입고 있나요?”

그러다 점점 질문을 더 쪼개어 자세하게 하게 되었다. 혹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게 되었고 이따금 혼잣말 같은 질문도 하게 되었다.

“그림 속에 계단이 있긴 했어요?”

“남자 4명이 일렬로 서있는데 세 명은 선글라스를 꼈고 한 명은 장님인 것 같다고요? 그게 뭐지?”

“그 남자가 직업이 있다고요? 그건 또 뭐지?”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기적이 뭐가 있지? 검색해 봐도 돼요?”

 

 

30분 이상 질문과 대화를 주고 받은 후에 각자 그림을 그리고 처음에 참여자A가 혼자 봤던 그림을 모두에게 공개했다. 묘하게 비슷한 그림, 비슷하려고 딱히 애쓰지 않은 그림, 비슷하지 않을까봐 조심조심 그리다 미완성이 된 그림 등이 각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림받아쓰기’를 하며 느낀 소감을 나눠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서 질문을 해요. 각자가 떠올리는 상이 이미 있는 거죠. 그럴 때는 그 상이 맞는지 확인하는 대신 여러 질문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난감한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각자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게 흥미로워요.”

 

 

참여자들과 다른 그림을 한 장 골라 ITAC5의 아트프로젝트에서 ‘그림받아쓰기’를 이어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5가지 문장은 참여자들과 함께 의논해서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나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2. 나는 머리가 갈라져있고 팔이 매우 길어요.
3. 나는 의자에 앉아있어요.
4. 내가 키를 쥐고 있어요.
5. 거울에는 나와 다른 모습이 비춰져요.

 

이 5개의 문장을 바탕으로 전세계의 예술교육실천가(Teaching Artist)들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다양한 상상과 표현이 온라인 컨퍼런스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될 것이다.

 

- 아트프로젝트 바로가기 : itac5.org/?act=info.page&pcode=project

 

 

‘그림받아쓰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제시된 그림 없이 문장만 제시하고 이 문장 안에 잘 그려지지 않는 전체적인 상황을 질문을 통해 맞춰보기로 했다. 물론 이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그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림받아쓰기’와 달리 이 활동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다. 이 활동 혹은 놀이의 제목은 ‘이야기의 나머지’이다. 제시된 이야기의 나머지를 상상하고 맞춰보는 것이다. 제시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연기를 끝낸 후, 큰 박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삶이 편안해졌습니다.


그가 어떤 연기를 했기에 큰 박수를 받지 못했지만 삶이 편안해졌을지 참여자들이 알아내기 위해 질문을 시작했다. 답변하는 사람은 역시나 “예”, “아니오” 혹은 “모르겠습니다” 중 하나로만 답변할 수 있다.

 

“그는 죽었나요?”

“몰래카메라인가요?”

“그 편안함은 정서적인 편안함인가요?”

“그가 부유해졌나요?”

“그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했나요?”

“그에게는 가족이 있나요?”

“그 연기는 남이 시켜서 하는 연기인가요?”

 

그림도 없으니 질문이 더욱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해야 했고 답변하는 사람도 (답이 있음에도) 자신이 그려놓은 상황을 전제로 답변해야 했다. 참여자들의 질문은 더욱 산으로 가기도 했고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 하나 덕분에 단번에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나머지’에 대한 정답은 이 글에서는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모호한 것을 계속 궁금해할 때, ‘언러닝’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길을 잃더라도 말이다.

 

첫 번째 사전프로젝트를 마치며 참여자들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최근에는 어느 길로 가야할지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근데 여기서는 제가 생각하려는 것의 정반대더라고요. 그래서 신선했어요. 적극적으로 방황하자는 말이 좋았어요.”

“오랜만에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에요. 지금껏 갖춰진 생각 속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은 그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문장이 제시되니까 자꾸 맞추려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못 맞췄을 때는 자책하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이수한다고 하면 가성비를 따져요. 이걸 들어서 내가 얻는 게 뭐지? 하면서요. 따지고 보면 쓸모없는 건 없잖아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니까요. 사람들이 그러는 데에는 사회가 한몫하는 것 같아요. 불확실함을 지양하는 세상이니까요. 오늘은 불확실한 것도 괜찮다고 위로받는 시간이었어요.”

“안전하게 길을 헤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다들 처음 만났는데도 편안했어요.”

“저는 연필, 지우개, 노트가 주는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 좋았어요. 맛있는 커피와 다과도, 이런 안전한 느낌의 공간도요. 감성을 자극했다고 해야 할까요. 일반 회의실에서 했으면 뭔가 초조했을 것 같아요.”

 

 

** 두 번째 사전프로젝트 / 2020.8.4. / 띠리리제작소 **

 

역시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모른채 모인(몰라도 괜찮은) 8명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았다. 진행자(비기자)의 진행에 따라 몇 가지의 게임 같은 대화를 나눴다. 여기에서는 그 중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게임 [너도나도]

 

하나의 주제어를 정하고 그 밑에 그 주제와 관련된 것을 10개 적어보았다. 그 주제어와 관련해서 나만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다른 참가자들이 썼을 법한 단어를 생각해서 써보았다. 모두가 단어를 쓰고난 후 각자 쓴 것들을 공유했다. 제시한 단어가 다른 참가자들이 쓴 것과 일치하면 인원 수에 따라서 점수를 얻는다. 단,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했을 때 철자가 하나라도 다르면 그건 서로 다른 것이 된다.

 


주제어는 ‘길’이었다. 강아지똥, 나침반, 걷다, 산책, 끝, 배수구, 앞으로, 이정표, 선택, 인생, 신발, 동행 등등 여러 단어가 튀어나온다. 한 가지 주제어에 대해서 단어를 적어 보면, 그 사람이 어떤식으로 사고하거나 언어화하는지에 대해 어림짐작할 수 있다. ‘길’이라는 단어에서 누구는 자연을 떠올렸고 누구는 삶을 떠올렸다. 또한 누군가는 ‘길’을 걸으며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것들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길’이라는 개념과 연관된 상징적 단어들을 떠올렸다. 본인이 적은 단어들을 말하는 도중에 “나 너무 메말라있나?”라고 누군가가 읊조리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쓴 단어에 “어떻게 그게 떠올라요?”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주제어를 제시하고 ‘너도나도’ 게임을 몇 차례 해보았다. 과연 너도 나도 이걸 떠올리겠지 했던 추측이 여지없이 빗겨나갔다. 누군가는 남들과 너무 다른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확인하며 조용히 웃기도 했다. 서로가 각자의 길 위에서 생각하며 단어를 적어보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서로를 만나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번째 게임 [가치게임]

 

조금 전에 적었던 단어들을 빈 카드에 하나씩 적어 카드 더미를 만들었다. 진행자가 카드 더미에서 5장의 카드를 임의로 선택하여 5개의 단어를 모두에게 제시했다. 이 단어에 대해 각자 가치의 우선순위를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다. 그 순위를 공개하지 않은 채 옆 사람과 1:1 대화를 통해 서로 가치의 순서를 맞춰보았다.

서로의 생각을 읽는 이 게임은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어떤 말이나 질문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나와는 다른 상대방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궁금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제시된 다음의 단어들로 가치의 순서를 매겨본다면 어떨까?

 

민들레     동네     미래     과정     선택

 

민들레나 동네와 같이 구체적인 단어는 각자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민들레는 꽃 전체로 전제해도 되고, 오늘 집앞에서 본 한 송이의 민들레로 한정해도 된다. 어쨌든,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의 순서대로 단어들을 나열해보면 우리는 어떤 단어와 단어, 가치와 가치 사이에서 특히 고민하게 될까?

 

 

세 번째 게임은 아직 이름이 없다.

이 게임은 미완성으로 참여자들에게 제시되었다. 게임의 규칙이나 진행방법을 ‘비기자’가 완전히 설계하지 않은 채 어떻게 게임 혹은 대화를 다채롭게 이어갈지 함께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소통의 도구는 제시되었다. ‘비기자’와 협력해서 ‘띠리리제작소(DIRIRI Making Studio)’가 최근 만든 낯선 저울 2개가 그것이다. 그 저울을 만든 배경에 대해서만 ‘비기자’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가치는 무게로도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무게는 몇 kg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무게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말로 전하는 가치의 무게는 굉장히 모호하거든요. 상대적인 것에 대해서 시각화, 개량화는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같은 소통의 과정을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보기 위해 ‘가치 저울’을 만들어보았어요.”

 

나무와 버려진 사물들을 이용해 만든 ‘가치 저울’ 주변으로 참여자들이 둘러 모였다. 앞선 게임들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집’에 대한 이야기가 뜨거웠던 점을 모두 공감하여 ‘집’을 주제어로 저울을 이용한 어떤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참여자들은 저울에 추를 달아보기도 하고 저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러다 알록달록하고 넓직한 판이 있는 저울을 이용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판에 파여진 홈에 나무 조각을 올려놓으면 판은 기울어진다. ‘집’과 관련하여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나무 조각에 단어로 적고 판 곳곳에 올려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울의 한 쪽 구석에 ‘대출’이 적힌 나무 조각이 놓였다. 그러자 누군가에 의해 저울의 반대쪽에 ‘대출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적힌 나무 조각이 놓였다. 이로써 균형은 맞춰졌다. 전세, 사랑, 가족, 눈물, 옥상, 마당, 방수, 환기, 식물, 반려동물 등 여러 단어 각자의 자리에 놓였고 무게를 드러냈다. 안식과 불안함도 뒤따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는 저울이 한쪽으로 더욱 기울도록 했고 누군가는 계속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처음엔 권리, 자유, 독립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듯했으나 그 반대에 이웃, 안정, 사랑이 위치하면서 균형이 생겼다. 나머지 구석에는 로또, 청약, 대출이 강력한 무게로 버티고 있었다. 층간소음, 담배냄새와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담을 나누며 게임은 끝이 났다. 한 바탕 떠들고 나니 이것은 과연 길을 잃은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

 

사전프로젝트1을 진행했던 ‘비기자’의 멤버A는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언러닝을 시도하며 워크샵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 재료, 시간, 언어, 활동 그리고 다과까지 고민하고 준비했었다. 한편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또다른 멤버B는 “길을 잃기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준비하기 보다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도 좋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사전프로젝트2를 기획했다.

 

많은 것을 미리 준비했던 멤버A는 참여자들이 ‘길을 잘 잃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예술교육실천가라고도 볼 수 있다. 덕분에 참여자들은 현장에서 안전함,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고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반면 멤버B는 일종의 열린 구조를 바탕으로 사전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몇 가지 활동은 구체적인 안내를 했지만 일부 활동은 참여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나갔다. 멤버B는 우리가 정말 길을 잃을 수 있을지 같이 실험을 해봤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언러닝에 접근하는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확장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사전프로젝트1과 이번에 소개하는 사전프로젝트2의 과정이, 우리를 언러닝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두 번의 사전프로젝트를 통해 멤버A,B가 모두 공감한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언러닝’을 하기 위해서는 매우 ‘러닝’해야한다는 것. 누군가가 낯설거나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굉장한 노력과 시도를 해야하고 이따금 학습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러닝’은 ‘러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사유와 실천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러닝이다’라는 해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비기자’는 우리가 그런 시도를 얼마나 하려고 하고 있는지 함께 질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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